괴테가 사랑한 바로크 유럽의 테라스 - 드레스덴(Dresden)편
오늘은 아침에 일찍 떠나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났다. 북쪽으로 가려고 로스토크와 함부르크를 알아봤으나, 기차가 2시간 마다 왔기 때문에 빠른 길을 찾아 드레스덴으로 향했다.
두 지역 다 조사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포츠담과 달랐기는 개뿔 이곳 독일은 당신이 동 서 남 북 어디를 가더라도 높은 확률로 기차에 문제가 생기는 빌어먹을 마법의 탈 것이다. 아무튼 여행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동 수단은 RE, RB, 시내버스, 트램 뿐이었다. 9유로 티켓으로 자동 변환되는 내 학생증 덕에 교통비는 당연히 공짜로 간다 ^-^ (포츠담도 교통비 0원 ㄱㄲ)
https://www.youtube.com/watch?v=qxxU5j2CGUc
문제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기차가 구글맵스에 뜬대로 오는 꼴을 못봤다. 분명 구글 맵스에는 9시에 출발이라고 떴는데, 오지를 않고 기차가 없다. 내가 이용하는 Ostkreuz는 베를린 동쪽의 교차점이란 뜻으로, 베를린 Hauptbahnhof, Gesundbrunnen, zoologischer 등 사방간데 다 간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에 자주 이용하는데, 이 역에는 역 바깥에서 타고가는 기차 길도 있기 때문에 하나 하나 샅샅히 봐야한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항 Terminals 1 - 2 가는 기차가 바깥에서 타고 가는 경우도 있고 안에서 타고 가는 경우도 있다. FEX, RB, RE 따라 성격이 다른 듯하다.
긴장 바짝했는데도 불구하고 해당 역에서 기차가 도저히 찾아도 없어서, RB 24 이걸 물어보니 차라리 다른 역으로 S-bahn을 타고 소도시에서 가는게 더 빠르다고 알려줬다. 그것도 이미 조사한 사실이다. 그러려고 여기 온건데, 왜 다른 역으로 가라는거냐 아무튼 그래 지금 당장에 구글맵스를 보니까 여기서 내가 알려준 도시로 가서 타지 않으면 1 시간은 뒤에 출발 해야 한다.
일단 탔다. 타고 1~2정거장을 가보니 너무 느리다. 이거타고 가다가는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내려서 다시 Ostkreuz 역으로 갔다.
그래 이렇게 된거 체념하고 50분이라도 기다리자 했다. 아침 밥을 빵빵하게 너구리 한마리 몰고 왔으니 저녁까지는 버텨줄 수 있을 거다.
근데 기차역 전광판에 분명 9시 10분에 출발이라고 한게 기차가 안 보인다, 지금 9시 20분인데 오고 있는 중인가 싶었는데, 구글맵스에서는 갑작스럽게 1시간 뒤에 출발한다고 뜨고 이 미친 청개구리 제멋대로 운행 하는게 매일같이 술판 벌이는 나이트 죽돌이의 인생과 같다. 그런데 5분도 안되어서 바로 왔다. 이게 뭐지? 전광판은 9시 10분 그대로인데? 이거 점검하는 기차인가? 아무튼 또 탔다.
알고보니 기차가 40분 정도 연착된 기차였었다. 이야~ 이제는 이 기차는 과거에서 왔는가?
독일 남서쪽에 Frankfurt am mein 이라는 큰 도시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차붐의 도시로 유명한데, 한인 사회가 이곳 베를린 보다 더 많이 인프라가 되어있다.
그런데 베를린 동쪽에도 Frank furt가 있다. 정확히는 Frankfurt(Oder) 이다. 박람회가 큰 도시로 유명한 옛 동독의 소도시이다.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광주 전라도 광주 이런 느낌인듯ㅎㅋㅎㅋ
아무튼 베를린 - 프랑크푸르트(오데르) - 콧부스 - 드레스덴으로 향하기 위해 먼저 동쪽으로 향했다.
9유로 티켓이 한창임에도 티켓 검사는 한다. 기차 내부에 동양인의 비율이 적어 보인다.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안 착용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르신들은 다 쓰신다.
기차 타고 다니면서 알게된 사실인데, RE, RB도 충전기 있으면 다 꽂아서 충전할 수 있고, 화장실도 내부에 구비 되어있어서 공짜였다.
이 사실을 3년동안 몰랐었다. 어딜 가보지를 않았었으니까 ^-^
몽골의 광활한 대지도 그렇지만, 이 나라는 산이 거의 없이 평지이다. 이건 프랑스도 똑같다.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도로인데, 산이 있고 없고 속도의 차이가 크다. 국가들마다 지리적인 이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콧부스로 가는 길을 30분 정도 기다렸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 새로운 만남이라고 그러는데 그러기에는 시간 떼우기가 너무 애매했다. 그래도 신기했던 것은 여기 역에서 와이파이가 되었다. 기차에서 나오는 것인지 역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었지만, 그 점은 고마웠다.
이 도시가 국경 끝에 있다보니 내 데이터가 켜졌다 안 켜졌다 그랬당. 지구 끝까지 수신료를 받으러 온다는 ZDF 는 로밍에도 철두철미했다.
이제 Cottbus로 가는 기차를 타서 이동하게 되었당. 이 콧털같은 이름의 도시는 왜 이런 이름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잘 모르겠다. 고전 역사 기록지를 찾아봐야 될 것 같다. 이 도시는 10세기에 소르브 인들이 정착하고 나서 중세 시대부터 섬유업이 발달했던 동독의 중부도시라고 했었다. 그래서 목화 cotton 을 따서 만든 이름인가 했었는데, 근대시대 넘어서는 넘어서며 교통편도 좋아서 금속, 기계 장치, 가공업 등 공업에 중점을 두다가 20세기 후반, 독일이 통일되고 나서 지금은 경제 난황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인구수는 약 10만명 정도 거주하는데, 3개의 대학교가 있어서 대학 도시 분위기라고 한다. 지금은 브란덴부르크 주의 행정 구역으로 속해있다.
초기 거주자 소르브 족들과 폴란드와 국경에 있다보니 두 문화가 공존하며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소르브 언어를 가르치지는 않고, 마을 기관의 펫말이나 가게 등 몇몇 곳이 남아있다고 한다.
오늘 급하게 나올 필요가 없었다 옷이라도 다려 입고 올걸 그랬다.
인구수 3만명 정도의 소도시이다. 원래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은 슈탈린슈타트(Stalinstadt) 이었는데, 세계대전 이후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여기도 통일되고나서 제철소가 민영화로 돌아가며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이거 이전에 기찻길에서 세번 멈춰 서 있었다. 기찻길이 2개 밖에 없어서 다른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잠깐 대기한다거나 하는게 아니었다.
도대체 왜 원인도 안 알려주고 이러는 걸까? 나의 견해로는 세가지 경우를 가정했다.
1.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건 독일도 마찬가지다. 점심 때는 근처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니 기관사가 차를 멈추고 밥을 먹으러 갔다.
2. 졸음 운전은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운전하다 너무 졸리다보니 잠깐 자고 가는게 좋을 것 같다. 기차는 갓 길이 없으니 철로 위에 잠시 세운 뒤 잠 좀 깨고 운행하자.
3. 나는 업무 시간 다 마쳤다. 이제 교대해야한다. 내 퇴근 시간은 소중하니 다음 업무자와 교대 하겠다.
황당한 사건은 이 다음이 문제였다. 원래 콧부스 중앙역까지 가게 되어있었는데, 기관사가 이번 역에서 모두 내려달라고 그런다.
뭐지? 사람들 다 어리둥절 그러는데, 이곳에 사는 주민들만이 알고 있는 눈치였다. 버스로 중앙역까지 이동해준다고 한다.
기차가 버스로 되어지는 마법이다. 나는 왜 지금 이것을 타고 있는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데 거기서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정말 울창한 숲에 길이 단 하나만 나 있었고,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탑승하며 물어보지도 않았다. 이 막장 시스템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면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배낭여행자들은 티켓 끊어놓고 안타깝게 다른걸로 타게 되는거다. 물론 목적지까지 간다는게 중요하지만, 지연되는 시간이 문제였다. 정해진 시간에 맞게 타야만 하는데, 갑자기 운행 중단되고 지연되면, 일정 꼬이는걸 떠나서 벌금을 때려 먹이는게 문제이다.
그래서 유로 패스 같은 자유 이용권이 나은 것 같다.
그렇다고 스위스처럼 그렇게 비싼거는 진짜 양심이 없다. 그런데 적어도 그들은 지연되면 지연되는 이유를 알려주고 표시를 했다.
마음 내려놓고 가기에는 손절 예정인 내 친구 구글맵스로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며 가고 있다.
이때 1시정도 되었는데, 여기서 먹기에는 20분정도로 시간이 애매하고, 드레스덴에서 3시 쯤에 도착하면 바로 먹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마치 도시가 팍 죽어버린 것처럼 도시는 넓은데 조용했다.
독일이 재생 에너지에 몰두하는 비율이 40 %를 넘어간다. 이건 정말 높은 의존도인데, 최근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가간의 문제로 경제에 문제가 생겼다.
드레스덴 가기전에 자꾸 일 메일이 날라와서 그거 확인한다고 역을 잘못 알았다.
바로 전역에 내렸당. 진짜 정신 못차린당.
트램이 동유럽에서 느끼는 그런 작은 사이즈인데, 빠르기도 빠르고, 작아서 곳곳을 갈 수 있으니 편하긴 편하다. 대신에 계단이 있어서 몸이 불펴하신 분들에게는 별로 좋은 이동 수단은 아닌것 같다.
프라우엔키르헤 이다. 일명 성모 성당인데, 독일에 이 이름을 가진 성당들은 많으나 전 지역에 딱 3곳을 손꼽는다. 뮌헨, 드레스덴, 뉘른베르크.
여기는 마틴 루터가 주인공인 도시라, 종교가 루터교회이다.
이 성당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져서 저렇게 둥근 돔 형식을 볼 수 있는데, 18세기에 만들어져서 그 영광을 뽐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바사삭 부숴지고 난 이후 재건사업에서 복구 되었다고한다. 이 과정에서 각 나라의 건축공들이 머리 모아 일했다는데, 화해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전해진다. 색깔이 살짝 베이지색 노랑을 띄는데, 사암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겁나게 단단하다고 한다. 17세기에 포탄을 200발을 넘기게 때려박았는데도 안 무너지고 잘 건재했다고 한다. 내부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성당이랑 필적한다는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다.
다 괜찮긴 했다. 어찌어찌 이곳까지 왔고, 이제 시간 지체만 없으면 되는데, 내 음식이 1시간 정도 지연되었다. 사실 오늘 뭐가 문제였는지 아무래도 내 언어의 문제 같아보였다. 아침부터 길을 잘못 알려주게 만든 계기도, 이번 음식도 주문이 안들어간 것도 내가 언어가 부족해서 그런것 같다.
오늘은 사람 참 풀이 죽게만드는 그런 하루였다. 다행히 어찌어찌 시켜서 배를 채우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lmZF8NnRCo
여기부터는 찐 브금으로 봐야 제맛
지금은 이 경이로운 건축에 잠깐 감상을 해야겠다.
가족들 방명록 대신 남겨드림 ㅎㅋㅎㅋ
나를 먼 이국까지 오게 하고, 우리 가족들의 이름을 여기로 인도하라고 그런 것 같다. 사실 뭐 이것도 내 선택이었지 뭐 ^-^.
원래 돈을 쓰는게 싫어서 여행도 계산적이었는데, 1유로로 싼 값이니 한번 해 보았다.
Wir sind ein Volk = 우리는 한 민족이다, 원래 Wir sind das Volk 우리는 하나의 인민이다라는 뜻에서 통일 후 바뀐 옛 동독의 역사.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 지역이 가장 피해가 컸다고 한다. 또한 어느 나라가 구역을 통치하느냐에 따라 지역 간의 빈부 격차가 컸다고 한다. 발전되는 틀이 다르니 통일 이후의 삶도 크게 차이가 나서 평화 통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들은 본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어떻게든 후대에 남기려고 물질적인 기록물로 남겨 놓았다. 독일과 일본, 국제 정치 분야는 잘 모르니 언급하지 않는게 좋겠다.
대부분 한국인일거라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나 혼자 한국인이었다.
오히려 일본사람이 더 많았다.
군주의 행렬(Fürstenzug) 라는 뜻의 이 벽화는 작센 공국을 지배했던 베틴 가문의 영주들이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 안에는 각 왕들의 모습과 이름이 적혀있다. 16세기에 그려진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 헤지며 보수공사를 했다고한다. 이곳에만 사용된 타일이 약 2만개가 넘는다고한다.
전쟁으로 위에 프라우엔키르헤는 거의 박살나다시피 했다는데, 이 벽화만은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베를린과는 다르게 소매치기가 적다.
그 점은 좋은것 같다. 공기가 정말 다르다.
자전거 옷을 입은 사람이 성악과를 나왔는지 노래를 했는데, 참 사람들이 박수쳐주고 있었다.
학생 같아보였는데, 본인 연습도하고 돈도 벌고 개꿀
자리를 쉴세 없이 이동하며 같은 노래를 불렀었다.
사실 이곳이 진짜 유럽 같음. 유럽의 현관문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프라하보다 이곳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중세유럽이 보존되어서 그런 것 같다.
저 아름다운 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하며 현대식 기술로 위에 얹혀 놓은 것 같다.
관광지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내가 있었을 때는 특히 이태리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 궁금했던게 전쟁 이후 재건축이 들어갔을 때 건축가들과 석재공들이 저 잔재들을 그대로 썼을 텐데, 검은색 흰색 어떻게 구별하면서 썼을까 생각했다. 조각상 보다는 기둥에만 거의 모여있는거 보니 설계할 때 그들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이 날도 날씨요정의 힘을 빌어서 그런가 구름이 적절히 배경을 이루어준 것 같다.
이 기회를 빌어 날씨요정에가 감사 인사 드립니다.
Brühlsche Terrasse 는 유럽의 발코니로 불리는 이 길은 엘베 강 기슭으로 쭉 뻗어져있다. 1546년~ 47년에 아우구스투스와 크리스티안에 의해 건축된 요새중의 일부였다고 한다. 이 건축물은 중세유럽의 대표적인 앙상블이라고 한다.
그치 왕과 궁전을 지키려면 그 근처에는 요새로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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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우면서도 장엄한게 폐허 속에 핀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구나.
예술의 세계는 공돌이의 머리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보이는 건물은 성당이 아니라 작센주 정부 청사 건물이라고 한다.
다리달린 자동차, 이제는 긴 팔다리 인간인가
내 마음의 예술성이 한 층 올라가게 되지는 않고 봐도 사실 뭔느낌인지 모르겠다. 주제가 뭐지
문학이면 문학, 군사학이면 군사학으로 명성이 높은 작센의 왕이라고 한다. 동상 뒤에 외국인들이 많이들 앉아있다.
자 이제 들어가보장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찾는 이곳은 1728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독일의 건축 양식이 바로크 고딕 등 섞여있는데, 국경 지역이 체코와 가까이 있어서 서유럽인지 동유럽인지 애매하다고 한다. 중부유럽 인듯.
여기도 드레스덴 융단 폭격을 당한 곳 중 한 곳이라 이후에 원형 복원 되었다고 한다.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어서 그런지 더 초라해 보였당.
아래 잘 찍은 사진으로 보면 다를것 같아 가져왔당.
빠르게 뛰고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였는데, 지금 가도 집에 11시에 도착한다. 빨리 가자.
근처 역을 돌다 기차 시간이 남아 볼거리를 찾았다. 솔직히 이 때까지만 해도 기차를 못 믿었긴 했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함 봐바야지.
사실 이 역근처에는 볼게 없었다. 저 멀리 드레스덴의 남쪽으로 갔었어야했다.
그냥 역만 찍고 온듯.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여행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다음에는 같은 실수는 안 해야겠다고 한다.
이러고 또 실수하면 스팀 부글부글 끌거같긴 하다.
가는 도중 말을 여러마디 나누었다. 이 분께서도 베를린이 종착점이라고 하신다.
여행하며 들었던 생각은 이 많은 관광물을 나 혼자 보기 아깝다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동생에게 이 광경들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나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끔 유럽에 있으면서 울컥하며 눈물이 벅차 오를 때가 있다. 먼 이곳까지 혼자 와서 겪는 것은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봤다는 유럽 여행을 내 가족은 못하고 있는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할 뿐이었다.
그래서 드레스덴도 다 돌지 않고 다음은 가족들이나 연인과 오도록 남겨두었다. 는 뻥이다 사실 시간 없었다.
또 내리라고 한다. 뭐지 도대체? 아까 오기 전의 상황과 똑같다. 빌어먹을 구글맵스를 떠나서 분명 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다. 그러니 갑자기 기차에서 내리라하고 버스타라고 하지.
아니 저 사람들은 안내원도 없는데 어떻게 찾아가는거지? 이미 이거를 알고 있었나? 정말 불친절하시군요 DB
아무리 철학의 나라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원인을 파악하라는 것 까지 할 줄이야.
왜 내린지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기도 그렇고, 사람들 다 타고 있으니 나도 재차 확인한 후 베를린으로 향했다.
베를린 공항으로 간다고 한다.
베를린 공항 간다고하길래 터미널이 5까지 있는데 1~2가 아니면 진짜 골치아파지는데 하고 속으로 계속 생각했었다. 배터리도 없는데, 사진 업데이트 하는것 때문에 데이터 다씀 ㅎㅋㅎㅋ
그래도 베를린이니 내 구역이당~ 찾아갈 수 있지 했다.
무사히 베를린에 오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사님, 집이 베를린인데 비행기타고 집에가라고 하는지 알았잖아요.
목적지는 베를린일뿐 제대로 전광판도, 구글맵스도 써져있지 않으니 머릿 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었다. 던져지는 캐리어백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래도 무사히 집에 잘 와서 도착했당.
이 기회를 빌어 오늘 하루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빌어주신 날씨 요정님들에게 감사 인사 드립니다.
2017년 미국 학술대회에서 수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질문하셨던 독일인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분을 따라 TU Dresden 으로 가고 싶었었다. 그런데 명예 퇴직을 앞두셨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셨다. 예전에 유학을 준비했을 때 제일 처음으로 들어간 웹사이트가 지금 다니는 학교였는데, 그 분의 추천으로 그곳을 가게되었다. 참 기구한 운명이다. 한국의 스승님들에게는 추천서를 한장도 못 받았는데, 생판 몰랐던 외국 대학에 다니시는 분한테 추천을 받다니... 말이 안되는 상황이긴 하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3년동안 어디 가지를 않고 폐관 수련만 했었던 것 같다. 물론 폐관 수련은 멈추지 않을 것이지만 ^-^
3줄 요약
1. 옛 동독의 문화가 남아있는 엘베강의 피렌체 드레스덴에 가봤다.
2. 이렇게 멀리 가본건 처음이라 이리저리 준비가 부족했다.
3. 군주의 행렬, 레지덴츠 벽화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