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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세계 속으로 독일(Deutschland)-3

공학과 예술의 낭만, 커닝시티 베를린(Berlin)편

by 폐관수련인
베를린 여행 일정

3년만에 베를린에 가고 싶었던 곳을 가게 되었다.

내 구역이니 어디든지 갈 수 있음 ^-^ 은 무슨 여기도 기차 연착과 앞으로 갔다 뒤로가는 청개구리 열차는 기본 셋팅임

베를린 시내, unter den linden 에서 오면 신식 거리에 아주 볼만하다.

다른 도시들을 가니까 알겠다. 베를린이 대도시이고 볼거리와 각종 먹거리가 가득한 특별한 곳이긴 개뿔 3년 사는데 베를린 돔만 3번 갔다. 볼 거 없다.

체크 포인트 찰리 벽면

집에서 트램타고 30분 정도 걸리는데 이동시간이 20분 정도인듯

check point chalrie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는 군대 용어이다.


알파 브라보 찰리 델타 등의 용어 중에 하나인 구역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전쟁 이후 냉전의 기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분단하던 베를린 장벽에서 가장 이름난 검문소를 연합군에서 지칭했던 지명이라고 한다.


사진 속 군인은 서 베를린을 바라보던 소련과 동 베를린을 바라보던 미군인데,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당.

서 베를린 쪽은 당시 연합군 3개 국가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곳을 관할 하였고, 동 베를린은 소련,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가 관리하였었다.


당시에 그 어떤 영구적인 건축물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이 지역을 연합군은 국경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분단의 상징이었는데, 외국인이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구역이었기에 동독 주민 20%인 약 350만 명이 서독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1961년 당시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보니 국경선을 따라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을 한 이후에는 달렘(Dahlem) 연합군 박물관으로 기록물이 남아있다.

베를린의 당시 관할 지역 지도
베를린 장벽 중의 일부분 탄소강 철골 뼈대에 시멘트로 부어 만든듯 하다
체크 포인트 찰리는 비대칭이다.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당시 베를린 장벽 돌을 장식으로 붙여 놓았다.
돌아서 오른쪽 보면 바로 체크 포인트 찰리임
근처 거리인데, 걸어서 10분 안되는 거리에 베를린 장벽 관광지가 있다.

견학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학교 선생님인가 싶은 사람이 무승 말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박수치는게 일종의 무슨 밈 을 따라하는 것 같았음.

오늘 룩 너무 아싸 공돌이 같은걸
큰 지구본 같음
베를린 장벽 기념 장소

빠르게 보고 가보자.

베를린 살면서 베를린 지역을 잘 안가게 되는 이유가 이 곳은 일 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벽은 그래비티가 없었다.
그때 당시 부숴진 벽 그대로이다.

통일 이후 일자리를 구하는 동독 여성에 대한 뉴스기사가 걸려있다.

독일의 당시 정치적 상황 설명판
미대 지망생, 이 나라에서 이 사람은 볼드모트다.
우리가 알던 브란덴 부르크 문, 베를린 개선문인데 저 때 나치를 위해 저렇게 모였다고 한다.

브란덴 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에서 모인 당시의 나치군들

언론 방송이 전공이었던 괴벨스, 이 친구도 볼드모트 2
나치 선전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실려있다.

쟤네들이 서있었던 시간 이후에 내가 찾아갔다는 사실이 신기하긴 했다.

내가 지나는 이 길이 어쩌면 몇백년 몇천년 전에는 누군가 행복을 나눌수도 혼자 고군분투 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구글맵스 믿으면서 길을 못찾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

철골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다. 녹슨 것을 보니 탄소강철이 맞군
역 바로 아래에 강이 있다. 모기 장난 없겠네?

이 날은 생각보다 많이 더웠다.

역 바깥으로 베를린 타워가 보인다

다음으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이동하자.

이 나라도 한강의 기적처럼 라인강의 기적이 있는 나라이다. 어떻게 일어서게 되었던 걸까.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라인강의 기적보다는 경제 기적 (Wirtschaftwunder) 라는 말을 더 사용한다. 영국을 앞서는 경제에 대해서는 서독의 영향이 컸다. 루트비히 빌헬름 에르하르트 (Ludwig Wilhelm Erhard) 가 당시 독일 마르크 화폐를 들여 기반을 맞췄고, 지금의 독일 경제의 기반을 만들었었다.

독일인들은 정치인을 존경하는 인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종교인, 과학자, 운동선수들이 더 많다.

커닝시티 베를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근처 거리
근처 REWE에 가서 커피를 마시려는데 오랜만에 스위스에서 만났던 커피를 만났다.
사실 여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우리 집에서 30분도 안걸린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작품들, 나 같은 초짜는 봐도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가장 유명한 작품, 형제의 키스(Brotherly Kiss)

Socialist fraternal kiss 라고도 불리는 이 행위는 사회주의 형제 의 입맞춤은 공산주의 지도자들 사이의 특별한 형태의 인사였다. 포옹과 함께 세 번의 키스로 드물게 두 정상이 유난히 친하다면 뺨 보다는 입에 맞췄다.

찐으로 하는거였음 진짜로

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1990년대 세계 미술가들이 와서 그렸다고 한다. 105 점의 그림이 있어서 1.5km 정도 되었는데, 다 돌지는 않고 가장 유명한 몇몇 개의 그림만 봤다.

평화의 비둘기, 브란덴 브루크 개선문을 물고있다
이 벽화 옆에 있는 슈프레 강에서 맥주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 가만히 앉아서 쉬거나 저렇게 맥주 마시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날이 더워 그늘로 가고 싶었기도 했는데, 저런 곳에서는 운동을 하지 뭘 먹으러 가는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사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안에 경비원이 쳐다보고 있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날 더운 날엔 과일로 영양 보충 해 주는게 좋지.

노랭이 수박인데, 되게 파프리카 같은 맛임.


베를린은 일 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내가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재미를 못 느끼는 것 일수도 있다. 내 여행들은 여행 장소에 가서 사진만 찍고 오는 거였다. 맘 먹고 찾아가면 찾아가고 사람 만나면 만나는 건데, 먹으러가거나 보러가거나 사람을 만나는데 재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가족들이랑 함께 안가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랑은 잘 안 맞는 것 같다.


그동안 여행을 안 다녀본 이유가 있을텐데, 재미 없다고 생각해서 안 찾은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랑 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여행에 재미는 못 느낀다. 괜히 돈 쓰러 가는게 싫었고, 아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떠나는 이유는 함께 올 가족들을 위해 미리 예행 연습 하는게 목적이다. 그 뿐이다.



3줄 요약

1. 3년동안 거주하면서 안해본 베를린 관광을 해봤다.

2. 체크 포인트 찰리,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장벽에 가서 역사를 즐겼다.

3. 커닝시티 베를린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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