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

by 김태연

내가 종종 쓰는 말이다. 언뜻 보기엔 어른한테 쓰는 말인 것 같지만 나는 이 말을 큰아들에게 가끔 하곤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 말로 해야 해. 그래야 알아들을 수 있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아이들인데 나는 내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내가 뱉는 모든 자음과 모음이 아이를 혹사시키는 것만 같다. 때린다는 표현은 너무 하잖아. 난 그렇게 폭력적인 여자는 아니라구.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아들과 대화하고 싶을 때마다 저 문구를 사용하곤 하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르침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실을 강요를 하는 무언의 압박이 아닐까 하는.

말하지 싫은 사람에게 말하라고 강요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이 또 있을까. 내 아들은 사실 말하고 싶지 않을게 아닐까. 이게 비단 아들뿐만은 아닌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명목이라는 포장을 하고 자꾸 생각하기를 강요한 것이 아닐까.


내 생각을 나도 잘 모르는데, 남의 생각을 함부로 들으려 재촉하다니, 나 정말 못됐구나. 하면서도 정말로 상대방의 의중이 궁금해서 물어본 의도를 나 스스로 너무 왜곡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자책할 때도 많았다.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각을 강요했고 듣기를 원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좀 더 힘을 주어 강조했다.

사실은 듣지 않았던 걸지도. 생각이라는 미끼를 던지고 덥석 물으면 낚아채듯이 그저 미끼를 던진 걸 지도.


그렇지만 난..

난 정말 의중을 모르겠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비언어적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는 말들이 얼마나 될까. 언어로 단번에 표현할 수 있는 그 수많은 말들을 상대는 하지 않는 걸까. 왜 나와 다른 걸까.




나는 식탁에 앉아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들에게 말한다. 나는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 네 생각이 정리되면 말해줘.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게.

아아, 이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구색 좋은 말인가. 입도 열기 싫어하는 아들을 앞에 두고 말이다.


사랑은 기다려주는 것도 포함이라는데 나는 그릇이 간장종지보다도 더 작은 건지 기다림이 너무 괴롭다. 마음 같아선 옷이라도 부여잡고 짤짤짤 상대방을 흔들면서 제발 내 말을 듣고 생각이라는 걸 하면 말을 하란 말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어른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허벅지를 부여잡고 꾹꾹 참는다. 무릇 좋은 어른이란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이 많은 여자도 아니고, 좋은 어른도 아닐뿐더러, 인내심이 깊은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앞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리려고 노력하며 스트레스에 취약한 쇼핑광인 여자일 뿐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야 할 필요가 한 번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 이 하얀 바탕에 나의 가장 찌질하고 치사한 방법에 대해 정확하게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언제 가장 솔직할까. 그건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내게 말하고 싶은 부분이 아니라는 것만은 정확히 알겠다.


이걸 깨닫고 나니 새삼 섭섭하다. 나는 상대방에게 그 정도인가.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보다 더 가벼운 존재라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인가.

하지만 나는 티 내지 않는다. 나는 좋은 사람으로 포장되고 싶기 때문이다. 겉으로 나를 드러내는 건 너무 내 생각을 뻔히 보여주는 것 같고, 일단 가족이든 타인이든 나를 내보인다고 해서 다 받아줄 의무는 없다. 내가 타인과 가족의 모든 것을 다 껴안을 필요는 없듯이.


그 정도의 그릇이라 나는 아들이 말하지 않기를 시전했을 때 나는 밥을 차리지 않겠노라 말했다. 나는 이 기분으론 너에게 밥을 차려주고 싶지 않아. 너도 감정이란 게 있듯이 나도 감정이라는 게 있어. 밥이 먹고 싶으면 이 상황을 해결하고 먹는 게 좋겠어. 아들은 밥이라는 단어에 더 서럽듯이 울더니 내게 말했다. 게임을 못하는 건 싫다고. 내 아들에게 게임을 못한다고 말하는 건 거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인가 보다.


끝끝내 말한 아들의 게임이라는 단어에 화가 올라왔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그랬구나. 그것 때문에 말하기 싫었던 거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우리는 시간을 정하기로 했고 상황은 종결되었다.

나는 묵묵히 밥을 차려주며 생각했다.

나는 절대 좋은 어른은 될 수 없겠구나.

정말로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어렵구나.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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