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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화는 말이야

by 용간 Jan 06. 2025

라시도에게


아빠는 자존감은 있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니야. 솔직히 말하잖아? 너희가 혼날 때 아빠가 짜증을 부리면 그건 다 너희 탓은 아니란다. 일에서 스트레스받고, 너희 엄마랑 다투고 나면, 너희를 대하는 태도도 짜증스러워지곤 한단다. 가끔 너희도 눈치채는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지만 당당한 척 한단다.


얼마 전에 너희에게 화를 냈잖아? 너무 미안해서 생각했지.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지금 아빠는 사실 항상 화가 나있는 거 같아. 평소에는 괜찮은데, 일이 생기면 급발진하며 화가 나.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빠는 아직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일로 화가 나있는 거 같아.


코로나가 정점이었을 무렵, 병원은 모두 출입이 제한되었어. 병상은 모자라고. 결국 감기를 앓으시던 할아버지의 산소포화도가 너무 낮은 걸보고 구급차를 불렀지. 하지만 구급차는 그 새벽 6시간을 넘게 병상을 찾아 헤매다가 석남동이란 곳의 한 작은 병원에 할아버지를 모셨지. 그리고 그곳 의사가 한 한 마디.


여기서는 치료 못 합니다. 큰 병원 가셔야 합니다.


근데, 병원 옮기는 게 안된대. 자리가 없다는데…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알아봤어. 너희도 기억할 거야. 아빠가 하루종일 전화 붙잡고 애원하는 거.


어느 병원에는 자리가 아직 남았다 연락을 받았어. 근데, 못 옮겨주겠대. 아빠가 병원 사람에게 계속 채근하며 따지자 들은 대답은, 국가에서 병상을 통제하는데 우리 케이스는 무슨 일로 누락이 되었대. 누락…


그렇게 아까운 시간이 지나버려서, 할아버지는 구급차로는 호송이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어. 결국 인튜베이션(기도에 직접 호흡기를 다는 것)을 했어. 그건 할아버지가 이제 코마 상태로 간다는 거야. 폐가 호전되지 않으면 다시 깨울 수 없대.


그렇게 코마 상태로 들어가신 분이 그날 새벽 돌아가셨다 연락을 받았을 때, 가슴이 메어진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어. 의식불명의 할아버지가 호흡기를 스스로 빼셨다는 거야.


간호사들은 뭘 했죠? 마취는 제대로 된 것 맞아요?


의료차트도 구하고, 소송도 생각했지만, 지난한 싸움이 될 거란 판사 친구의 말에 그만뒀어.


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그때 아빠 마음 깊은 곳에 화가 자리를 잡았나 봐.

다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잃지 않겠다. 세상으로부터 지켜야겠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나의 가족을 신경 쓰지 않으니, 내가 지켜야 한다.


그렇게 아빠는 세상이란 환영과 싸우기 시작했나 봐.


근데, 이제 나의 그 화가 너희에게로도 옮겨 붙기 시작하는 것 같아 너무 무섭단다.


아빠도 어떻게 이 화가 풀릴지 모르겠어. 이 글은 혹시 아빠가 너희에서 상처를 줄까 봐 미래의 너희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쓰는 거야.


아빠가 화가 풀릴 수 있게 기도해 주겠니? 아빠도 세상을 용서하고 싶은데, 쉽진 않네.


너희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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