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어떻게 우리의 일상이 되었는가?
나는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여행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이다. 어딜 가든 가까운 곳에 맛있는 커피집이 있는지 찾아보고, 맛집을 찾아내면 혼자 뿌듯해하며 지난번 먹어 본 집과 조용히 비교해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소개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겐 이 전시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 이렇게 즐기고 있는 커피가 서양으로부터 건너온 것인 줄은 알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되게 되었는지, 궁금하니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 ‘요즘 커피’는 부제를 지어 본다면 ‘커피 한국 정착기’ 정도가 될 것이다. 술, 담배와 함께 온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기호식품인 커피가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에 상륙해서 100여 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우리 일상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궤적을 재밌게 살펴 볼 수 있다.
요즘 한국인의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은 무려 405잔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평균인 153잔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다. 이 소비량은 단순히 그 양이 많은 것만을 의미할 뿐 아니라 기호식품으로써 커피가 우리 일상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요즘 커피’는 바로 그런 점에 착안하여 우리 사회에서 커피가 시대별로 어떤 존재로 자리하여 왔는가를 살펴볼 수 있도록 꾸려진 전시다.
먼저 커피가 처음 들어왔던 대한제국기 이 낯선 검은 물은 외국인과 함께 들어와 우리나라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종이 커피를 좋아했던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대한제국의 황실에서 사용하던 오얏 꽃이 시문 된 커피잔이 유물로 남아있기도 하다.(전시를 통해 유물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커피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기호식품이 되었는데, 이를 이끈 건 당시 지식인층이었던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다방에 않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서양의 살롱 문화가 유행하게 되면서 커피를 마시는 광경이 당시 힙한 문화의 한 장면이 되었다.
광복직후부터 60년대까지 마시던 커피의 모습은 지금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당시 아침 대용으로 마시던 커피는 뜨거운 커피 안에 달걀노른자를 톡 깨 넣은 마치 옛날 쌍화차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전시장에 당시 계란을 띄운 커피가 재현되어 있는데, 그걸 보니 계란 노른자를 넣은 것이 쌍화차가 먼저인지 커피가 먼저인지 궁금해졌지만 답은 못찾았다.
1970년대 출시된 인스턴트커피는 본격적인 커피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직장인들이라면 사무실 탕비실에서 적어도 하루 한 잔은 마시게 되는 맥심커피가 바로 이때 등장했다. 이때는 지금처럼 한 포에 든 커피를 털어먹는 형식보단 커피, 설탕, 프림을 둘둘둘을 기본으로 직접 제조해 먹는 커피의 형식이었다. 이때 가정에선 이게 너무 맛있어서 스탠 대접에 타먹기도 했다는 썰(사실 우리 엄마의 썰)이 있는데 전시장에서 그 스탠 대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이로써 우리 엄마만 그랬던 건 아님이 확인되었다) 또 당시 커피를 파는 다방은 만남의 대명소이기도 했다. 맞선으로 혼인하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첫 만남 장소도 바로 다방이었다고 하는데, 전시를 보면 그것도 역시 우리 부모님만의 추억은 아닌 듯하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커피 시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커피, 설탕, 프림을 둘둘둘로 제조하거나 한 봉지에 든 믹스커피를 타마시는 행위조차 생략되어 캔커피를 슈퍼에서 쉽게 사 마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 이런 캔커피 광고에는 어김없이 그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던 남녀 배우들이 등장했는데(버스에서 캔커피를 들고 낯선 남자에게 ‘저 여기서 내려요’라고 말하는 유명 여배우의 광고와 20년 가까이 모 회사의 캔커피를 광고했던 원빈이 유명하다), 이러한 세태는 커피가 일상적이면서도 멋스러운 문화로써 자리 잡았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드디어 1997년 스타벅스가 등장했다. 스타벅스의 등장은 우리나라 커피문화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벅스와 함께 등장한 에스프레소 커피는 싼 값에 어디서나 전문가가 만든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하였고, 커피시장을 다변화시켰다. 이제는 어느 거릴 가도 한 블록에 하나 정도의 커피숍이 있을 정도며, 도시뿐 아니라 시골 한적한 마을에도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한 커피가게가 한 곳 이상 있게 되었다. 또 믹스커피, 캔커피, 에스프레소, 드립커피 등 다양한 종류의 커피와 커피를 활용한 다양한 음료들이 어딜 가도 넘쳐나게 되었다. 이제 커피는 저가부터 고가까지 직장에서부터 가정까지 우리의 일상과 늘 함께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커피의 일등 소비국이 되어 세계 어딜 가도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갖춰놓고 있을 정도다.(원래 외국에선 차가운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아 아이스커피를 잘 판매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여기까지가 전시 ‘요즘 커피’의 나름대로의 요약이다. 커피의 역사를 유물과 함께 보여주고, 또 여러 사람의 과거에 대한 회상 인터뷰와 커피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인식조사 등을 활용하여 꽤 오랫동안 준비한 흔적이 력력한 전시다. 내용이 우리 일상과 밀접하기도 하고, 전시 방식도 지루한 조사 수치나 증언자료를 미디어와 게임의 형식 등을 빌리는 등 다양하고 재미있게 표현하여 작지만 알찬 전시였다.
경험상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시는 ‘민속’이란 분야를 다루다 보니 우리 일상과 밀접한 주제의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곧 나와의 공감대가 형성될 만한 지점이 많다는 이야기다. 어떤 것에 재미를 느낀다는 건 자신에게 와 닿는 부분, 즉 공감대가 형성되는 지점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민속박물관의 전시가 재밌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민속박물관이 머지않아 세종시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민속’이란 주제를 다루는 박물관이니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인 서울에, 또 궁궐과 한데 묶어 관광하기 좋은 지금의 위치에 계속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가기관을 모두 지방으로 내려 보내는 추세 속에서도 서울관을 개관했는데 국립민속박물관은 왜 내려가야 할까? 실제로 두 곳에 가 보면 민속박물관을 찾는 외국인의 수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 외국인의 수보다 현저히 많은데 말이다. 민속박물관이 세종시로 가면 과연 외국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될지 의문이다. 민속박물관의 현 위치 상 경복궁 복원에 문제가 되는 등 많은 현안이 있겠지만 재고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덧붙여 본다.
암튼 박물관 전시가 지루하단 편견이 있으시다면 이 전시는 꼭 한번 보시길 추천드린다. 작지만 최근 봤던 전시 중 가장 알차고 재밌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