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원칙
남편이 물었다. 삶의 원칙이 있느냐고.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다.
"당신의 원칙은 뭔데? 예로 들어 설명해 줘."
남편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
"아 그런 거? 그런 거라면...."
쉽사리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일까? 한참 고민하다 문득 떠올랐다.
"나는 꼴 보기 싫은 사람을 안 만나고 사는 것인 거 같아."
"좋아. 그럼 그 원칙을 지키며 살면 선택이 쉬워지는 거지. 그 원칙을 최우선으로 의사결정하는 거야. 회사에 갔는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두는 거지."
남편의 설명에 생각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음, 그러네. 나 또 있는 거 같아. 애들 어릴 땐 남의 손 안 빌리고 내가 애들 돌보고 싶어."
"응. 그러면 누가 일하라고 해도, 당신은 애들을 직접 돌보는 게 낫다고 당당하게 말하면 돼. 그럼 그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지. "
"근데 현실적으로 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하니까. 나도 사회에 나가서 일하기 위해 교육을 받았는데, 그래도 일을 놓지 않아야 하지 않나."
남편은 날카롭게 내 머릿속의 갈등을 짚어냈다.
"자, 만약 육아가 당신에게 최우선 원칙이라면, 당신은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육아를 먼저 하겠다고 하겠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망설인다면, 육아는 당신에게 최우선 원칙이 아닌 거야."
"육아를 내가 직접 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하니까..."
내가 핑계처럼 변명하자, 남편은 다시 핵심을 찔렀다.
"일단 제일 중요한 걸 지키고 나서 나머지를 하는 거잖아. 애들이 엄마손이 제일 필요할 때가 최소 13살이라고 하면, 애들이 그 나이가 될 때까진 일단 돌보겠다고 하는 게 원칙인거지. 그런 원칙이 있어야 누가 뭐라고 해도 잘 안 흔들려. 자격지심도 안 생기고 당당한 거지."
"그렇긴 하네. "
"제일 중요한 거 한다는 확신만 있으면, 그 이후의 일은 그때 되면 생각해."
"당신은 뭔가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것 같아."
오늘 새벽 2시까지 애들 재우고 남편과 한 대화이다. 이것도 포기 못하고, 저것도 포기를 못하는 생활에 갈팡질팡하며 마음이 늘 불안했었다. 그런데 남편과의 대화 후, 생각이 좀 명료해진 기분이었다.
내 나름대로 정확한 원칙을 정하고, 그걸 지키며 살아가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만약 나의 최우선 원칙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내가 직접 돌본다'로 확정된다면, 나는 밖에서 들어오는 모든 일이나 경제적인 압박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전업주부로서의 불안감과 자격지심을 덜어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를 괴롭히던 갈팡질팡한 마음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명료함이 주는 이 편안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