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를 살린 건 다른 사람이 쓴 글이었다.
오랜 기간, 나는 자기 비하와 자책감이라는 습관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살았다. 모든 실패와 불행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이 패턴은 인간관계를 두렵게 만들었고, 나를 평온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이 습관이 언제 시작되었든, 반드시 끊어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바로 나의 딸들이다. 나는 딸들이 나처럼 살지 않도록, 내 안의 사고방식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한때 '난독증에 가깝다'라고 느낄 만큼 글을 읽지 못했다. 글자는 지루하고 재미없으며, 문자만 보면 다른 생각을 하며 집중하지 못했다. 시험문제조차 글로 된 건 건너뛰어 틀리기 일쑤였고, 피부관리기계 설명서를 읽지 않아 잘못된 방법으로 써서 피부가 따가워 혼이 나기도 했다. 조립식 가구도 마찬가지였다. 설명서를 펼쳐보는 대신 부품을 눈대중으로 맞추다 결국 엉뚱한 모양으로 조립해버리곤 했다. 그만큼 나는 '글자'라면 본능적으로 피하던 사람이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나 역시 믿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당당함은 잠시였고, 이내 '그 말은 하지 말걸' 하는 후회 속에 다시 기가 죽었다. 그러나 그 견고했던 신념은 독서를 통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변화의 동력을 찾기 위해 자기 계발서, 육아서, 경제서적, 뇌과학, 소설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다. 책을 덮으면 세부 내용은 잊혔지만, 내 의식에는 한두 가지의 강력한 메시지가 남았다. 수많은 저자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두 가지는 바로 운동과 독서였다. 몸과 마음을 움직여 단련시키라는 문장들이 나를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끈질기게 설득하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지자, 나는 헬스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안 밀리의 서재로 글을 읽었다. 신체 활동을 하면서 정신 활동을 하는 이 이중적인 행위 속에서, 나는 글에 깊이 빠져들어 몇 분이나 운동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오랜만에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이제 나는 글을 통해 나를 움직이라고 설득했던 책들의 힘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나를 살린 그 '글'처럼, 나 역시 하고자 하는 말을 논리적이고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글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지금 막막한 인생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더라도 괜찮다. 절망과 고독을 이해하는 이 문장들이, 나를 일으켜 세웠듯 당신에게도 조용히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고독 속에 갇힌 사람에게 '혼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행동의 동력을 전달하는 단단한 다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