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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가면을 쓴다

무기력과 루틴 사이에서

by 알쏭달쏭


월요일. 헬스장이 쉬는 날이자, 마음이 쉽게 가라앉는 날이다. 갑작스러운 추위 탓인지 몸이 더 무거워졌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날의 무기력은 유난히 깊다. 숨만 쉬어도 집안일은 계속 쌓여갔다. 설거지, 계절에 맞는 옷 정리, 거실청소. 나는 무기력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등원을 마친 후 마트로 향했다. 계란, 다진 마늘, 닭가슴살. 냉장고에 재료를 정리하고, 남편과 함께 두부를 구워 먹었다. 남편은 외출하고 난 거실은 여전히 아이들의 겨울옷과 쌓인 설거지 거리로 어수선했다. 결국 모든 일을 미뤄둔 채 방으로 들어가,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또 무기력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오래된 피로감은. 괜찮아질 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그림자 같다. 혹시 현실 도피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머리로는 알지만 이미 마음이 소진되어 버린 지금,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무엇이든 하려 하면 자꾸 멈춰졌다. 이젠 아이 등원 준비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또 웃는다. 밝고 다정한 표정으로, 힘이 없어도, 말할기운이 없어도 친절한 얼굴을 한다.


집에 돌아오면 그 웃음이 다 사라진다.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내 방. 무표정한 얼굴로, 회색빛 마음으로 누워 있는 시간.


하지만 오늘도 아이를 등원시키며 같은 반 엄마에게 인사했고, 친절한 얼굴을 썼다. 내 진짜 기분과는 상관없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웃고 난 뒤, 집에 돌아온 내 얼굴은 더 어두워지는 듯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야 비로소 진짜 나로 돌아온다. 그래서 점점 사람을 피하게 된다. '웃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나를 고립시키는 역설이 되어버렸다.


첫째 제리가 말했다.


"엄마는 우리만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만 좋아해."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이도 느끼고 있었던 거다. 내가 집에서는 가면을 벗고, 바깥에서는 친절한 사람인 걸.


"아니야 제리야. 엄마는 제리랑 티커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그렇게 말하고 꼭 안아줬지만, 아이의 눈빛엔 여전히 의심이 비쳤다.


어릴 때부터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했던 아이였다. 유난히 사랑이 많은 아이구나 싶었지만, 사실은 나에게 '사랑받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첫째를 낳고 27개월 뒤 둘째를 낳았던 시절,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하면서도 가장 기력이 없던 때였다. 아이눈에 비친 나는 늘 피곤하고 아픈 엄마였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엄마는 우리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해’라며 나를 바라본다는 게 마음을 찢어놓았다.




가끔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든데 나만 유난 떨며 힘들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는 좀 더 깊이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걸 인정해야 비로소 숨 쉴 틈이 생긴다는 걸.


오늘은 그런 생각마저 멈췄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곧장 헬스장으로 향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생각이 많아지면 또 멈출 것 같아서 몸이 움직이는 대로 그냥 걸었다.


루틴은 무섭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나를 끌고 간다. 그래도 그게 지금의 나를 붙들어주는 유일한 힘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순 없다.
오늘도 가면을 썼지만, 언젠가 그 가면이 필요 없을 날이 오겠지.
그날까지, 나는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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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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