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동생에게 반드시 복수할 거다.'
첫째는 첫째라서 예쁨을 받고, 막내는 막내이자 아들이라서 예쁨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 항상 관심 밖에서 조용히 있던 둘째 딸이 바로 나였다. 심지어 삼 남매 중 공부도 제일 못했고 존재감도 가장 희미하다고 느꼈다. 어릴 땐 누가 나를 좋아해 주기만 하면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해 주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로, 인정받는 것에 목말라 있었다.
나는 늘 차별에 민감했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먼저 살폈다. '저 사람도 나를 안 좋아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관계를 시작하니 자신감은 바닥이었고, 늘 주눅 들어 있었다. 말 잘하고, 당당하고, 자기주장 확실한 사람들은 참 멋져 보였다. 설사 그게 예의 없는 행동이라 해도 나는 부러웠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남편이 멋져 보였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늘 말했다.
"넌 참 착해."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나는 그런 척했을 뿐. 속으로 질투도 하고 나쁜 마음도 품어봤다. 다만 표정을 숨기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 어릴 적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언니와 동생에게 반드시 복수할 거다.'
매일 둘이 편을 먹고 나를 외롭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보니 그때 언니의 마음이 조금 이해된다. 우리는 모두 두 살 터울. 언니 입장에서 나는 태어나자마자 모든 관심을 빼앗아간 동생이었을 것이다. 사랑도, 관심도, 엄마 품도.
그러니 바로 아래 동생인 나를 미워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반면 네 살 터울로 태어난 남동생에게는 언니가 이미 사회성도 생기고 이해심도 자란 상태였다. 그러니 덜 얄미웠을 수도 있다.
지금의 언니와 나는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난다. '복수하겠다'던 어린 나의 다짐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언니의 아들, 그러니까 나의 첫 조카는 우리 딸들과 너무 잘 지낸다. 친남매인가 할 정도로 얼굴도 닮았다.
'이 관계가 커서도 계속되면 좋겠다.'
문득 그런 마음이 든다.
어릴 땐 사랑받지 못한다고만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 나 혼자 만든 오해였다. 가족들은 모두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만 각자가 서툴렀고, 표현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그걸 읽어낼 만큼 단단하지 못했다. 사소한 말에도 쉽게 상처받았고, 작은 다툼도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라고 해석하곤 했다. 결국 어린 시절의 주눅듦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그리고 내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내가 말하지 못한 채 삼키는 것들을 금방 알아채고, "하고 싶은 말 해도 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어색했다. 말하면 미움받을까 봐 조심스러웠던 습관이 평생 따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내 말을 듣고, 이해해 주고, 존중해 줬다. 그 덕분에 나는 점점 '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연봉협상을 할 때도, 연차를 낼 때도, 육아휴직을 말할 때도 예전의 나는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의 조언이 없었다면 순응하는 쪽을 선택했을 테니까.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당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과거의 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 마음을 설명하고, 느낀 것을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둘째'였기에 누구보다 사람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는 능력이 생겼다. 눈치를 보던 감수성은 이제 타인의 마음을 읽는 따뜻함으로 변했다. 사랑을 의심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사랑을 다시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