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법률 신문에서 검사 출신 김종민 변호사가 프랑스의 즉시 기소제를 한국에 도입하는 문제를 언급을 하더군요.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 전체 기소가 65만 건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전체 기소에서 약식명령 비율만 61만 건이 넘기 때문에, 여기에 또 즉시 기소제까지 도입하면 재판권은 유실에 가깝습니다.
약식명령이란 범죄자가 재판을 받지 않고, 경찰의 수사를 토대로 검사가 기소를 하고 판사가 이 문서 만을 가지고 검사의 구형 그대로를 결정하는 이른바 문서 재판인데요. 범죄자 입장에서 사람들이 보는 공개된 재판을 받는 게 수치스러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보기 때문에 재판이 잘못될 위험 또한 적어집니다. 따라서 공개된 재판을 받는 것은 피고인 또는 범죄자의 권리 중 하나가 됐는데요. 약식명령은 이 과정을 모두 생략하여 그냥 문서로 재판을 확정하는 거죠. 사법적 편리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재판을 받으면 오랜 기간 불확정 상태로 범죄자 또한 고통을 받기 때문에, 서로 간 이득이 된다고 보고 진행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어떻든 이 제도는 범죄자가 자신을 처벌하는 검사나 판사를 직접 만날 수는 없는 상태인 거죠.
해당 검사가 언급한 프랑스의 즉시 기소제란 검사가 기소를 하고 바로 판사가 형을 확정하여 주는 것으로, 빠르게 사건이 전개되고 공개된 재판 또한 열리지 않아, 확정된 범죄를 굳이 재판까지 받게 할 필요를 생략 하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미 프랑스 전체 기소 건에 가까운 61만 건이 판사와 검사의 얼굴도 모르고 약식 명령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이 제도를 또 도입할 필요를 모르겠고, 오히려 판사와 검사가 범죄자를 직접 대면해야 하는 과정은 그대로인 것 같아 업무 부담도 그대로라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위 의견을 제시한 변호사에게 아래와 같은 메일을 송부했는데, 주말이라 답변이 없는 건지, 혹시 몰라 공유합니다.
하단 이메일에도 있지만, 프랑스에서 이러한 즉시 기소제를 도입한 것은 단순히 재판을 빨리 진행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고, 한국은 문서 재판의 일종인 약식 명령 만으로도 이미 프랑스 전체 기소 건을 넘어설 정도로 범죄가 대단히 많기 때문에 (고소 중에서 기소율이 30%에 불과하고, 그중에서 약식 명령이 61만 건이라면, 범죄자 비율을 추정해 봐도 프랑스보다 현저히 높죠, 일본보다도 현저히 높습니다.) 이렇게 비교를 하는 것은 정보에 대한 조사 자체가 미흡하다는 의견을 보냈습니다. 하단에 메일 내용 송부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법률신문에 <형사사법의 고정관념과 상상력> 기사에 대해 의견이 있어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단 저는 제 개인의 억울한 일 때문에 소송을 시작해서, 결국 대통령, 정당 대표, 법원행정처장이나 검찰총장, 판 검사나 공무원 등, 여러 국가 상대 때로는 공익 소송을 진행한 바 있는 일반 시민이자 비영리 활동가, 디자이너 이미진이라고 하고요. 현재는 일반인 외에 검사 두 명을 상대로도 민사 및 형사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작성하신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법원에 기소된 총 65만 9467건의 범죄 중에서 8.8%가 (재판 없이 기소와 동시에 빠르게 선고하는) 즉시 기소 결정을 받는다고 하면서, 한국도 형사범죄를 반드시 공판정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너무 늦은 전개로 인한 비용과 시간의 소비) 구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한국의 경우 검사가 기소하여 법원에 넘기면 사실상 형량이 그대로 확정되는 약식명령 사건이 연 간 61만 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즉 프랑스 전체 형사 사건에 버금가는 약식명령 결정이 한국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약식명령은 재판은커녕 검사와 판사 얼굴도 볼 일이 없기 때문에, 결정한 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결정대로 하는 국민이 프랑스 전체 기소 건수에 이른다는 겁니다. 보니까 프랑스 즉시 기소 사건에서는 단지 당일에 결정이 난다는 취지일 뿐이지, 범죄자가 검사 혹은 판사를 대면하기는 하더군요.
한국의 경우 기소율이 30%에 불과하다고 할 때 약식명령이 61만 명에 이른다면 고소 건수는 프랑스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며, 이 자체로 인한 사법부 혹은 검찰의 부담이 과중된 것일 뿐, 공판주의 자체는 한국에서 그다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61만 명이 서류만으로 결정을 종결당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공판을 축소한다?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죠. 프랑스 전체 기소 건수가 한국에서는 서류상으로 종결되고 있는데요.
그리고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저와 동료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 바이어를 찾으러 갔다가 경찰에게 인권침해를 당하여 고소를 하면서 생애 처음 사법 절차를 밟기 시작했으며, 프랑스는 이 사건을 전혀 수사도 하지 않은 채 심지어 서류를 분실했다는 등의 이유로 사건 진행을 아예 안 하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해서 유럽인권법원에 프랑스 파리시를 고소하기는 했으나, 이 역시 접수만 됐을 뿐 진행은 멈춰 있는 상태고요. 프랑스의 업무 처리 속도가 대단히 느리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그 와중에 일부 사건에 대해 즉시기소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 내부적으로 법령을 적용했을 때 발생할 추가적인 문제가 더 심각한 경우 혹은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한 여러 조처의 하나에서 나온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하튼 검찰에서 주요직에도 계시고 변호사로서 주요 업무를 하시면서 한국을 비판하시는 거는 그럴 수 있겠는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한국의 실정 자체는 인지를 하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은 대단히 심각한 고소 남발국이고 (이 외에는 갈등을 해소할 방법이 전무하므로) 또한 대단히 심각한 사기 범죄자의 활동 장소입니다. 한국에서 사기 한 번 안 당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요. 한국에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거짓말로 속여도 처벌이 강하지 않은 등 근본 문제가 고소 고발로 치닫는 거라고도 봅니다. 이렇게 사건의 양 자체가 많다 보니 어떤 범죄자가 더 악질이 될 지도 감안할 수 없이 기계적으로 약식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상황인 것이고요.
높은 자리에서 실질 경험을 하신 분으로서 한국의 이런 특수한 상황을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메일 보냅니다. 앞으로는 한국이나 프랑스 등 정보를 전달할 때 기초 자료 조사 정도는 해주시거나 혹시 모르는 정보를 나중에 알게 되면 시정 정도는 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