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계절, 다시 걷는 포르투갈-벨렘역사지구
벨렘탑 Torre de Belem 4월 25일 다리 Ponte 25 de Abril 벨렘지구 뷰 맛집 Confeitaria Nacional Belém
까보 다 호까에서 리스보아로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까보 다 호까를 떠나 대서양을 끼고 달리고 있다. 지금 시간은 09시 23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해안 경치를 감상하며 이동하는 중이다.
A) Estrada do Cabo da Roca s/n, 2705-001 Colares, 포르투갈
B) 벨렘탑
Av. Brasília, 1400-038 Lisboa, 포르투갈
C) 포르투갈 Lisboa, Pte. 25 de Abril, 4월 25일 다리
D) 포르투갈 리스보아
출처 1280px-Guincho_May_2012-2_The Guincho beach viewed from north, with the Fortess of Guincho in the back_Praia do Guincho, west coast of Portugal. View to south_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출처 1280px-Guia,_Cascais._Panorama_outubro_2017_Panorama da costa de Cascais, na zona da Guia_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우리는 윈드서핑을 즐기기 좋은 프라이아 두 기인쇼(Praia do Guincho) 해변을 지나고 있다. 이곳은 유명한 007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어 붉은색의 아름다운 등대인 파롤 두 카보 라소(Farol do Cabo Raso)를 지나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왕의 별장, 그리고 호날두의 별장이 있는 빼어난 해양 휴양 도시 카스카이스(Cascais)를 빠르게 지나친다. 이곳은 아름다운 해안 절벽인 보카 두 인페르노(Boca do Inferno)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유럽의 가장 서쪽 끝 까보 다 호까에서 해안을 따라 서서히 남쪽으로 내려오며, 대서양 물결이 유난히 반짝이는 경치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일정상 저 해안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Praia_do_Guincho
https://en.wikipedia.org/wiki/Cabo_Raso_Lighthouse
도로 옆으로 놓인 철로가 한없이 뒤로 밀려난다. 기찻길 옆 도로변에는 이른 아침 속보로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우리와 함께 달리는 이들, 가끔 오가는 자동차들, 그리고 노란색 예쁜 전차가 달린다.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아침 풍경이다.
하지만 대서양 건너 끝자락에 솟은 나지막한 산과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여행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낮은 하늘에 옅은 구름이 여인의 블라우스 자락처럼 은은하게 번져 있는 리스보아에서 맞는 아침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다.
이 순간,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아름다움에 눈을 담고, 마음의 여유를 느끼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새벽 4시경 잠에서 깨어, 성치 않은 몸으로 며칠째 여행을 하고 있어 피곤할 만도 한데, 보는 즐거움이 상대적으로 커서인지, 딱 반음정도 올림표(#)가 붙어있는 기분이다.
테주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바닷가 옆, 수평선을 가리지 않게 낮게 지어진 박물관으로 보이는 아담한 건물의 붉은 지붕 위 너머로 부두의 컨테이너 크레인들이 고개를 들고 서있다. 상당히 높은기둥 위에 매어 달린 조명등이 밤새 밝혔던 등불을 끄고 비행접시처럼 낮은 하늘에서 웅크리고 있다.
리스보아로 갈수록 해안의 풍경이 복잡해진다. 한적했던 해안이 바다로 돌출된 시설들 덕분에 갑자기 분주해지며, 도심으로 진입하는 느낌을 준다. 이윽고 리스보아의 상징인 벨렘탑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저씨, 아줌마 집시들이 대거 마중(?) 나온다. 이렇게 열렬히 환영(?)을 받는 곳은 벨렘 역사 지구가 처음이다. 그들은 손에 나뭇잎 같은 뭔가를 들고 관광객들에게 주며 생떼를 부린다. 만약 실랑이가 벌어진다면 경찰들도 개입하기를 꺼려한다고 하니, 이들에겐 꽤나 골치 아픈 상황인 것 같다. 심지어 심한 경우에는 버스 앞에 와서 드러누운다고 한다.
또한, 관광객들과 이런 실랑이를 벌이는 틈을 타 소매치기가 일어나는 양동 작전도 왕왕 발생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리스보아의 매력과 혼잡함이 집시들의 열띤 환영(?)과 함께 얽히며, 생생한 여행의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여행의 즐거움과는 달리, 저들에겐 녹록지 않은 삶의 현실이 펼쳐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벨렘탑 Torre de Belem
필자는 왼쪽으로 테주강 Rio Tejo을 보면서 벨렘탑으로 내려가고 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긴 강인 테주강(포르투갈어 Tejo, 라틴어 타구스강 Tagus, 스페인어 타호강 Tajo), 스페인 카스티야 라 누에바 Castilla la Nueva의 쿠엥카 cuenca 산지의 해발고도 1,600m 부근에서 발원한 테주강은 우리가 첫날 지나온 톨레도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를 관통하며 1,007km를 흘러 이곳 포르투갈 수도 리스보아 부근에서 삼각강(三角江, estuary)을 이루면서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어제도 우리는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넘어오며 세투발 주의 작은 국경 마을인 Vilar Formoso에서도 마을을 가로질러 남으로 흐르는 이 강을 보았다. 이곳 벨렘지구는 이네들의 대항해시대의 영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테주강 하구에 있는 리스보아 근교의 역사지구이다.
벨렘탑 Torre de Belem은 1515년 마누엘 1세가 테주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위치에 항구를 감시하기 위해 건설한 요새이다. 당시 인도나 브라질 등으로 떠나는 배가 통관 절차를 밟기도 했던 곳이며, 해외 항해에서 돌아오는 배를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1층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물이 차고 빠지는 감옥이었다. 이건 뭐 거의 물고문 수준의 감옥이었지 싶다.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1460년 또는 1469년~1524. 12. 24)는 이곳에서 출항하여 최초로 아프리카 남해안을 거쳐 인도 항로를 개척한다.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Pedro Álvares Cabral, 1468년?~1520년?)이 브라질을 포르투갈 영토로 편입하여 포르투갈은 해상 무역을 통해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벨렘탑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벨렘지구의 뷰 맛집 Confeitaria Nacional Belém
우리는 벨렘탑 주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테주강변을 따라 걷는다. 강변, 대서양과 접한 곳에 다리가 세워져 있고, 단층으로 지은 카페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벽과 지붕, 어닝 천막까지 모두 흰색으로 치장된 테주강 하구의 레스토랑은 아침 햇살에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이곳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닫는 Confeitaria Nacional Belém 레스토랑으로, 와인 한 잔과 함께 벨렘빵, 페이스트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https://wanderlog.com/place/details/1905078/confeitaria-nacional-belém
아쉽게도 너무 일찍 도착해 문이 열리지 않은 이곳 유일한 레스토랑. 뷰가 좋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와인 한 잔을 즐기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패스해야 한다. 그래도 이런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언젠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와인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할 날을 꿈꿔본다.
맞은편에서 푸른 베레모를 쓴 다섯 명의 군인들이 걸어온다. 전투복을 입고 군장을 휴대하지 않은 모습으로 보아, 잠시 산책을 나온 듯하다. 군인들 뒤로는 프로펠러가 곧 돌아갈 것 같은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 비행기는 무려 90년 전 이곳을 출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까지 3,000km를 비행한 역사적인 항공기라고 한다.
그 순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군인들의 한가로운 모습과 그 뒤에 자리한 비행기의 웅장함이 대비를 이루며, 이곳의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 주변에는 아직도 상인들과 집시들이 서성이고 있다. 뿌리에서 가지가 갈라진 아름드리나무들은 몸통을 뒤틀며 공원을 지키고 서 있다. 저 나무는 아마도 이곳에서 몇 백 년의 역사를 지켜봤을 것 같다. 비행접시 모양의 야간 조명등이 푸른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은 행복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긴다.
모형 비행기 아래에서 걸터앉은 선글라스를 낀 집시 남자는 담배를 피우며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다. 공원 입구 상점에는 코르크 가방, 코르크 찻잔 받침, 냄비 받침, 코르크 신발, 사진첩, 기념 배지 등 다양한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손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몸에 쫙 달라붙은 청바지에 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가 주인과 한창 흥정 중이다.
이곳은 다양한 삶의 모습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짧은 치마에 고동색 얇은 상의를 걸친 집시 여인이 테주강을 등지고 걸어온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고, 파리한 모습이 몹시 추워 보인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순간이다. 오늘 장사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집시지만, 결국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서 지갑을 열면 모든 집시들이 내게로 모여들 것 같은 기분이다. 강변에 정차한 승용차에서 커피를 마시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테주강으로 흘러들고, 돛을 내린 요트가 가득하다. 카메라를 목에 건 관광객들이 부지런히 어디론가 오가는 한가로운 벨렘 역사지구의 오전 모습은 대조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곳의 다양한 삶의 단면이 서로 얽히며 한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길을 따라 더 걸어 올라가다 보니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용감한 선원들을 기념하는 범선 모양의 ‘발견기념비 Padrao dos Descobrimentos’가 가까이에 보인다. 포르투갈어로 '디스쿠브리맨토스' (Descobrimentos)는 탐험의 의미를 내포한 단어다. 이 기념비는 엔리케 왕자 사후 5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960년에 세워졌다.
고풍스러운 조형물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상기시킨다. 그 시절, 바다를 향한 용기와 탐험의 열망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곳에서 선원들의 모험과 희생을 되새기며,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의 여운을 만끽할 수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Monument_of_the_Discoveries
기념비는 52m의 높이를 자랑하며, 조각들로 가득 찬 외관은 당시 탐험가들의 다양한 업적을 기념하고 있다. 기념비의 앞면에는 엔리케 왕자의 모습과 함께, 바다로 향하는 탐험가들이 조각되어 있어 대항해 시대의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주변은 테주강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제공하며, 기념비 아래에는 벨렘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단순한 기념비를 넘어, 포르투갈의 항해 역사와 탐험 정신을 기리는 상징적인 장소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4월 25일 다리 Ponte 25 de Abril
레스토랑 너머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흐리게 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의 이 다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비슷하게 생긴 ‘4월 25일 다리 Ponte 25 de Abril’로, 현수교의 웅장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바라보니 꽤나 높아 보였고, 높이 솟은 다리는 마치 성냥개비로 만들어 놓은 모형 같아 보인다. 다리는 바다와 만나면서 폭이 넓어진 테주강을 시원하게 가로지르고 있다.
https://youtu.be/n1W4VZ7-4wA?si=FQmNL29Cl_WGwlyL
이 다리를 건너면 구세주 그리스도상이 있는 알마다 Almada가 나타난다. 2,278m에 달하는 이 교량은 테주강의 북안인 리스보아와 남안인 세투발 Setúbal을 연결하며, 지역의 중요한 교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 드넓은 경치가 펼쳐지고,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을 이루며 흐르는 과디아나강을 건너 세비야 Sevilla에 도착하게 된다. 더 나아가 지브롤터 해협으로 이어지며, 타리파에서 해협을 건너 모로코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이처럼 4월 25일 다리는 단순한 교량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포르투갈 현대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대서양을 목전에 둔 테주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 다리는 1974년 4월 25일에 일어난 포르투갈 혁명 쿠데타를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포르투갈은 살라자르의 40년에 이르는 독재 체제 아래에서 억압과 불안이 만연했고, 각 식민지에서는 반군과의 끝없는 전쟁으로 경제적으로 낙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좌파 청년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 바로 구국혁명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부패한 정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 결연히 일어섰고, 시민들은 그들의 용기를 지지하기 위해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이로 인해 이 혁명은 ‘카네이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카네이션_혁명
혁명은 무혈로 진행되었고, 이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결과적으로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제외한 전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게 되었고, 이는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의미한다. 4월 25일 다리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단순한 교량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현재는 포르투갈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과거의 아픔과 그로 인해 얻어진 희망을 되새기며, 포르투갈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역사 속의 사건들이 이 다리와 연결되어 있는 만큼, 매년 많은 이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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