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의 아침 manhã de Fátima
새벽 04시 33분, 어느덧 이번 여행 4일 차 새벽이다. 왜 이리 잠은 빨리 깨는지 모르겠다. 노트북을 열고 생각나는 것들을 이것저것 적어 내려간다.
마드릿 스페인 광장에서 돈키호테를 만나며 시작한 우리의 여행은 프라도 미술관, 천년고도 톨레도, 톨레도 대성당을 둘러보고 어제 살라망카를 거쳐 포르투갈 파티마에 도착하였다. 짧은 기간 훑고 지나가며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중세도시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삶을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다.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며 사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운 삶의 모습은 우리네와는 무엇인가 조금은 다른, 느긋함과 자유로운, 그리 조금은 주관적이고 고집스럽기까지 한 모습들이다. 오랜 세월을 이들과 함께한 고색창연한 집들 사이로 미로처럼 얽혀 있는, 어찌 보면 여행객들에겐 훌륭한 볼거리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네들에겐 너무나도 불편할 듯이 보이는 정감 넘치는 붉은 황톳빛 거리, 이 거리의 골목길을 따라 그들과 함께 걸어보며 그네들의 삶을 아주 잠깐 들여다보았을 뿐인데, 남겨진 인상은 매우 강렬한 그런 것이었지 싶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이 정도는 양반이었고 조족지혈,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던 것을... 필자는 나중에 이보다 더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골목을 보게 된다. 기대하셔도 좋다.
A) Cova de Iria, 2496-908 Fátima, 포르투갈
B) Estrada do Cabo da Roca s/n, 2705-001 Colares, 포르투갈
C) 포르투갈 리스본
늦은 저녁시간에도 중보기도가 끊이지 않는 파티마 대성당, 성모 발현 성지에 세운 파티마 대성당을 뒤로하고 오늘은 대항해시대를 연 리스보아로 떠난다. 우리가 경유했던 이스탄불에서의 테러 소식도 들었다. 이스탄불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근처 광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된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파티마 성모상 앞에서 잠시 기도하며 이 천년을 이어오고 있는 이 지역의 갈등과 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깃들기를 빌어본다.
날씨는 약간의 한기가 느껴지고 흐리고 비가 왔다 다시 개기를 반복하는 전형적인 이곳 날씨다. 중세에 세워진 다리, 단순히 오랜 된 다리가 아닌, 어쩌면 그간 살아오고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을 그 다리를 지나 우리는 또 다른 낯선 곳으로 향한다.
까바 다 로까 CABO DA ROCA
06시 12분,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버스에 승차한 우리는 두 시간을 달려서 유럽 대륙의 서쪽 땅 끝 까보 다 로까에서 대서양을 만난다. 신트라 산맥의 끝자락이 대서양으로 돌출되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대개 바다로 돌출된, 곶은 돌 일 수밖에 없다. 흙은 바다에 시달리다 이내 바다와 하나가 되어버리니 거의 모든 곶은 돌산이거나 암벽으로 돌출되어 있다. 까보(CABO)는 ‘곶’ 로까(ROCO)는 ‘돌’, 즉 ‘돌로 된 튀어나온, 곶*’이란 의미다.
* “맑은 날엔 잘 보인다는 북녘땅 장산곶,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로 시작하는 몽금포타령의 그 장산곶, 황석영 소설 『장길산』에 한 번 비상하면 뭇 짐승이 벌벌 떤다는 장산곶매의 그 장산곶, 바로 황해남도 몽금포리 끝자락에 솟아오른 해안 마루 장산곶”과 비슷한 곳이라 보면 크게 틀리지 않지 싶다.
- 필자의 백령도 여행기 중 -
https://blog.naver.com/j8401/222761781785
설렘으로 가득한, 대서양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알 바가 아니란 듯 세찬 바람이 윙윙거린다. 바람이 윙윙거리거나 말거나 우리 또한 아랑곳 않고 유럽의 서쪽 땅 끝으로 다가가니 피차일반 피장파장의 광경이 이른 아침 까보 다 로까에서 벌어진다. 이 정도는 양호한 날씨라니 바람을 가르며 곶의 끝 벼랑 가까이 다가간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관광안내소는 물론 하나밖에 없는 상점과 레스토랑도 문을 열지 않은 상태이다. 오른쪽 능선 위로 붉은 지붕에 눈부시게 하얀 벽채의 등대만이 우리를 반긴다. 하늘은 낮았고 맑은 편이다. 두툼한 점퍼를 입었는데도 추운 편인데 이 정도 날씨는 매우 좋은, 사람이 서있을 수 없을 정도의 강풍이 불기도 한다 하니 뭐, 그러려니 할 밖에 별도리 없지 싶었다. 원목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사진 찍으려던 관광객들이 낭떠러지 절벽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곳이라 한다.
바람이 세서 키 큰 나무는 아예 보이지 않는 곳이다. 땅에 바짝 엎드린 야생초와 선인장 종류의 식물만이 가득하다. 철쭉만 가득한 우리나라 태백산 정상을 생각하면 된다. 안내판에 이곳에 서식하는 야생화와 조류의 모습이 비교적 자세하게 사진을 넣어 설명되어 있다. 살짝 경사진 둔덕 가운데 신트라 로터리클럽에서 세운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으로 다가간다. 포르투갈어로 뭐라 쓰여 있는데, 서사시인 까몽이스(Luís Vaz de Camões 1524~1580)가 ‘우스 루지아다스 Os Lusíadas’에서 묘사한 시와 좌표가 십자가 표지석에 새겨져 있다. 그대로 옮겨본다.
CABO DA ROCA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
(CAMOES)
여기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PONTA MAIS OCIDETAL DO
CONTINENTE EUROPEU
유럽 대륙의 서쪽 땅 끝
(포르투갈 국가 문장)
CAMARA MUNICIPAL DE SINTRA 1979
1979년 신트라 시청에서 제작
LATITUDE: 38° 47 NORTE
LONGITUDE: 9° 30 OESTE
ALTITUDE: 140m ACIMA DO NIVEL
MEDIO DAS ÁGUAS
위도 북위 38도 47분, 경도 서경 9도 30분, 고도 140m 라 음각되어 있다.
액면 그대로 읽어보면 참으로 간결한 표현이다. 대서양이 시작되는 서쪽 땅 끝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는 특별히 다르진 않지만, 그저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끝이라 생각할 만큼의 수평선만이 끝도 없이 보이는 그런 바다였다. 대륙의 동쪽 끝, 가장 먼저 해를 보는 아침의 나라에서 대륙의 서쪽 끝으로 온 기분,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우리는 이 표지석에서 대서양을 바라본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곳에 왜 이런 표지석을 세웠을까?
까몽이스는 왜 이곳을 “여기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 했을까?
15세기 대항해시대 이전, 적어도 당시 유럽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을 굳이 이렇게 쓴 이유가 무엇일까?
끝이었는데 끝이 아니었고 그네들의 위대한 상상력 덕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은 걸까?
어쩌면 그 반대편의 사람들에겐 그 위대한(?) 상상력이 없었던 것이 더 평화로웠을 텐데...
포르투갈어를 ‘까몽이스의 언어’라 표현할 정도로 극찬하는 까몽이스의 걸작 ‘우스 루지아다스 Os Lusíadas’는 1572년 처음 출간되었다. 그렇다면 이미 그들의 자존심인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도 남는 시점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 1469-1524)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하며 포르투갈의 해양탐험에 대한 해석을 서사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라는데...
15~16세기의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Isabel I de Castilla y Aragón) 후원을 받은 크리스토발 콜론(Cristóbal Colón)의 아메리카 도착으로 신대륙 개척을 시작한 1492년, 즉 15세기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생각해 본다.
인도나 아메리카, 신대륙을 생각지도 못한, 바다로 나가면 끝도 없는 절벽이라 생각했던 당시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이곳 까보 다 로까 CABO DA ROCA를 정말 이 땅의 끝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중 극소수의 일부 사람들, 크리스토발 콜론(콜럼버스),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 그리고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 1469-1524) 등이 절벽이라 믿었던 바다를 향해 나갔던 것이고, 바다 건너에도 새로운 땅과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이 현실이 된, 신대륙 발견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까몽이스는 이곳 까보 다 로까를 ‘여기 육지가 끝나고’ 그저 수평선만 보이는 ‘바다가 시작되는 곳...’, 이라 표현하며, 땅 끝인 줄로 알았던 이곳에서 끝도 없는 수평선이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 해양탐험이 시작되었음을 서사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해양 탐험으로 인하여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고, 식민지 개척으로 이루어지는 막대한 부와 영광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이미 땅 끝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육지가 끝나고’라 표현한 것이지 싶다.
아무튼 상상이 현실이 된 그 사실로 인하여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필자가 이미 전편 ‘살라망카 여행기’에서 언급하였듯이 세상을 양분하게 되었으니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엄청난 제국의 시대를 연 것임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때 본 재미로 이네들의 땅 위엔 곳곳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이 산재되어 있고 지금도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는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지 싶다.
까몽이스는 포르투갈어를 ‘가까몽이스의 언어’라 극찬할 정도로 언어에 숨겨진 코드를 잘 활용할 줄 아는 포르투갈의 대문호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이 표지석에 적힌 이 표현, 그의 걸작 대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 Os Lusíadas’에서 묘사한 이곳은 어쩌면 포르투갈 사람들의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너무 나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간결한 단 세 줄의 표현을 말이다. 뭐, 여행 중 이 정도 상상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자유로운 상상과 생각의 발현이니 달리 해석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생각의 열쇠는 열어두고 상상력은 쌓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주변을 두루 거닐며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제대로 맞아 보기로 한다. 사정없이 얼굴에 부딪치는 대서양 바람을 맞으며 까바 다 로까 둘레를 걷는다. 이네들의 땅 끝에 왔으니 이제 이네들의 땅덩어리를 가늠해 볼 차례다.
오른손 주먹을 쥐고 거꾸로 돌려보면 대충 이베리아반도, 이네들의 땅 모양이 될 것 같다. 중지 관절이 튀어나온 부분이 이곳 로까곶이고, 엄지 관절 끝부분이 아프리카와 닿아 있는 지브롤터 해협이라 할 수 있고, 손목 부분은 프랑스와의 국경으로 생각하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형상이다.
대서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뱀이 기어 내려오듯 굽은 산길을 구불구불 내려와 아침 댓바람, 대서양 바람에 시달린 몸을 버스에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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