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환 Jan 31. 2024

여전히 예쁜 그들을 닮은 해파랑길

비를 피해 덕하역으로 

여전히 예쁜 그들을 닮은 해파랑길

그들은 예쁘다. 해파랑길은 예쁜 그들을 꼭 닮았다. 


바닷가에 안개가 자욱하다. 간밤에 내린 비가 안개를 몰고 바닷가로 내려왔다. 모래사장과 흐릿한 바다, 그리고 뿌옇게 안개로 가득한 하늘만 그렇게 보인다. 단순하다. 쾌청한 날에 비하여 보이는 것이 적으니 그저 간결한 이른 아침의 바닷가다. 간밤에 소리 없이 내린 비로 흙내음을 품고 있는 이른 아침의 바다는 그렇게 단순하고 간결하였지만, 한편으론 신비로웠다. 그저 간결한, 감정의 과잉이 없는 안개로 오히려 차분해진 바닷가엔 평온함이 깃든다. 소소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아침 바다를 걷는 이 순간만큼은 그저 해변에 쌓인 모래알처럼 잔잔한 파도에 몸을 맡겨도 좋을 것 같다. 왠지 잔잔한 물결 속에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다.  


새벽 일찍 눈을 뜬 그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해변으로 나간다. 친구들은 아직 어제 걸었던 해파랑길에 머물고 있는 듯하여 살며시 문을 열고 나온다. 비가 내리는 송정 해변으로 나간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채 모래사장을 뛰고 있는 청년은 이 정도 비쯤이야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해변을 달리고 있다. 아직은 서핑하기에 좀 이른 계절인데, 더욱이 이렇게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영복 차림으로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에서 나오는, 다소 체격이 뚱뚱한 남자 역시 비 내리는 날씨 따위엔 크게 괘념치 않는 모습이다. 


둥그런 해안선을 따라 바다로 살짝 돌출된 죽도 공원이 안갯속에 흐릿한 모습을 드러낸다. 미동도 않고 있는 바다는 그저 작은 파도만 실어다 해변에 떨구고, 파도에 실려온 이야기는 거품처럼 모래사장으로 흩어진다. 마치 시간이 멈춰진 듯한 2023년 5월 13일 아침 07시 02분의 송정해수욕장의 풍경이다.


그는 고어텍스 점퍼 모자를 뒤집어쓰고 촉촉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해변가를 걷는다. 유난히도 비가 오면 차분해지는 그였다. 비 오는 소리를 좋아했던 그였다. 타닥 탁탁 거리며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그였기에, 그렇게 우산을 쓰는 것보단 비를 맞기로 한 것이다. 날이 훤히 밝은 거리엔 하나 둘 상가의 불 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커피숍엔 노란 불이 켜지고 토스트를 파는 푸드 트럭도 하얀 불을 밝힌다. 이른 아침부터 빨간색 푸드 트럭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커피 향이 비를 맞으러 나온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비 내리는 송정 해변의 아침이다.  


오늘은 해파랑길 이틀째이다. 친구들은 지금쯤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비가 많이 오면 걷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단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해야 할 일이기에 안개가 덮인 바닷가를 걸으며 빠져들었던 감성에서 빠르게 빠져나온다.


빨간 푸드 트럭에서 토스트를 사고 커피를 주문하여 호텔로 들어간다. 잠에서 깬 원철과 미연, 그리고 경희가 토스트 냄새가 너무 좋다며 의자를 끌어당겨 토스트 앞에 모인다. 내리는 비는 그냥 내리라 그러고 일단 아침부터 챙겨 먹는다. 비 오면 오는 대로 즐기면 될 일이고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니, 그렇게 조금은 태평스럽게 그들의 둘째 날 여정을 시작하는 셈이었다. 간단하게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한 그들은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선다. 


하늘을 덮고 있는 비가 금세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관계로 해운대에서 출발하는 해파랑길 2코스 트레킹은 다음 날로 미루고, 비가 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울산 울주군으로 이동해 보기로 한 것이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한 울주군의 일기예보는 부산보다는 비가 덜 내리는 것으로 예보되었다. 아마도 비가 이렇게 계속 내린다면 걷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 싶어, 바닷가 해안도로를 타고 여행 삼아 울주군으로 올라가기로 하고 길을 떠난 것이다. 울주군까지 상당한 거리이니 차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비가 그치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기대도 섞여 있는 그들의 선택이었고 행보였다. 또한, 차창으로 탁탁거리며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비 내리는 해변을 달리는 드라이브는 그에겐 꽤나 로맨틱한, 유난히 빗소리를 좋아하는 그의 감성에 찰떡 같이 어울리는 여행이기도 하였다. 모두가 ‘좋아! 좋아!’라고 외치며 길을 떠나는 그들이었다.


송정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장 대변항으로 들어간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육지로 깊게 들어온 어항이다. 연화리 앞바다에 죽도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자연산 돌미역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어항을 중심으로 활어와 건어물가게, 식당 등 다채로운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해변 어촌장터의 하루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듯했다. 기장 돌미역을 비롯하여 건어물을 판매하는 가게는 아침부터 불을 환히 밝히고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그들이 빗 속에 우연히 들른 가게는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 597, 옛날맛집∙건어물 가게였는데, 싹싹하게 반겨주는 주인아주머니의 웃음소리로 가게 안이 그 어느 곳보다 따듯하게 느껴졌다. 검정 태 안경을 쓴 수더분한 아주머니는 건멸치 진열대의 유리 뚜껑을 열어가며, 기장하면 미역이라카며 특유의 경상도 말투를 섞어가며 멸치와 미역을 재밌게 이야기한다. 부산이 고향인 미연이 역시 경상도 말을 섞어 아주머니와 응수하며 잠시지만 아주 재미난 광경이 연출된다. 옛날맛집이란 상표가 붙은 멸치액젓과 육젓, 자연산 돌미역은 물론 다시마, 산모미역 등 종류도 많고 신선한 건어물이 가득 진열되어 있는 가게였다. 


길을 따라 여행하며 만날 수 있는, 생업에 열정적이며 유쾌하게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의 그런 만남은 늘 기분 좋은 만남이다. 흥정이 오가고 물건이 오가는 만남이지만, 왠지 오가는 것이 흥정과 물건만이 아니라는 느낌이 전해지는, 사람의 온정이 느껴지는 만남이다. 그들은 그런 온정이 담긴 멸치도 사고 미역도 한 다발씩 사서 차에 싣는다. 비가 내려 발이 묶였는지 항구에는 정박한 어선들로 빼곡하다. 그들의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 옛날맛집 아주머니와의 유쾌한 거래를 마치고 다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기장 해안도로를 따라 길을 떠난다. 


월전항을 지나 기장 죽성리에 차를 세운 그들은 바닷가 붉은 바위에 올라 사진을 남긴다. 그나마 비가 덜 내리고 있으니 덕하역쯤 가면 비가 그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죽성성당이 보이는 바위로 오른 것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임에도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쓰고 있는 우산 속에서 발견한 밝은 표정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긴다. 이 바위는 이곳 사람들이 매바위섬이라 부른다. 오른쪽 해안으로 보이는 작은 바위는 노래미섬, 매바위섬 앞으로 보이는 바위는 꼭두방섬이라 한다. 


안개에 살짝 덮여 있는 해변의 죽성마을이 마치 도화지에 그린 그림처럼 알록달록 예쁜 모습을 드러낸다. 석축을 쌓아 만든 해안 길을 따라 마을이 이어지고, 마을 끝자락에 이르러 바닷가 바위 위에 지어진 죽성성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해안가 바위절벽 위에 세워진 성당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바위는 마치 성벽처럼 바다 위로 솟아 있었다. 바다로 이어지는 골이 패인 바위는 갈라지고 틈이 생겨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한 기억의 흔적을 역력히 담고 있었다. 그런 바위 위에 지어진 성당의 모습이 바다와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같이 느껴졌다. 바닷가 작은 어촌 마을,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에 지어진 죽성성당의 모습은 마치 유럽의 어느 해안가에 있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우산을 받쳐든 그들은 흐릿한 안개로 덮여 있는 하늘 아래 차분하게 모습을 드러낸 소박한 성당을 바라보며, 뜻 하지 않게 찾아온 행복한 순간을 환한 미소에 담아 그곳에 남겨두기로 한다. 


그들은 매바위섬 건너편 호떡집으로 들어간다. ‘두호마켓’이란 가게에 붙어있는 호떡집인데, 주인장의 설명에 따르면, 특별히 개발한 찹쌀 호떡이란다. 치즈 호떡과 견과 호떡 등 너 댓 가지 정도의 호떡을 열심히 소개하는 주인장이다. 인터넷 SNS에 꽤 이름이 오르내리는, 제법 알려진 호떡 맛집이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터라 호떡을 하나씩 먹기로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뜻 하지 않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로는 그만인 선택이었다. 원철이 납작한 술병을 꺼내어 종이컵에 한 잔 따른다. 우연찮게 들어간 호떡집이었는데, 호떡 맛이 제법이었다. 미연도 종이컵에 한 잔 받는다. 경희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느라 곤욕을 치르고, 이어지는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며 짧은 시간을 그렇게 행복한 순간으로 채운 그들이다. 


그렇게 정해진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 된 그들의 여정은 11시가 훌쩍 넘는 시간에 덕하장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해파랑길 5코스 종점인 구 덕하역을 찾아 나선다. 한 때는 기차가 머물렀던 간이역이었지만, 동해선이 확장되면서 신역사가 덕하장터 맞은편에 들어서고 폐역이 된 간이 역사였다. 출입구와 창문은 모두 합판으로 봉해져 있고, 역사 벽에 걸려있는 ‘덕하역’이라 쓰인 빛바랜 간판만이 이곳이 역사였음을 말해준다. 우산을 쓴 경희와 우비를 입은 미연과 원철이 그렇게 버려진 역사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서있다. 합판으로 봉해지고 용도 폐기된, 시간의 흔적과 함께 잊힌 존재일 뿐인 폐 역사의 심란한 모습이 그들의 환한 미소에 담겨 되살아 나는 듯했다. 한때 활기차게 사람들이 오고 갔을 역사의 기억들이 합판 뒤에 감추어진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가는 덕하역은 그들의 등장으로 다시 생기를 되찾는 느낌이었다. 이젠 쓸쓸하고 심란한 폐역 사지만, 그들의 빛나는 미소로 존재의 소중함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어떤 아름다움과도 견줄 수 없는 그런 순간이었다. 


비는 여전히 추적거리며 내리고 있었다. 비닐 우의를 꺼내어 입은 그들은 비가 그치기를 기대하며, 그리 많이 올 비는 아니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덕하역에서 진하해변까지 역방향으로 걷기로 하고 다시 그들의 여행을 이어간다. 


구 덕하역 골목, 해파랑길 6코스 시작지점에 설치된 안내판엔 구 덕하역부터 온양읍까지 10km, 온양읍에서 진하해변까지 8km, 소요시간은 7시간으로 낮과 밤이 아름다운 진하해수욕장을 소개하고 있다. 해파랑길 공식 웹사이트인 두루누비의 공식 거리는 17.7km이고 소요시간은 6시간이다. 해파랑길 5코스는 진하해변에서 출발하여 화양강을 따라 강변길을 걸어 온산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망양역을 거쳐 덕하리로 들어가는 길을, 비를 피해 덕하역까지 올라와 역방향으로 걷기로 한 것이다.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들은 그렇게 진하해변을 향해 길을 떠났다. 흐릿한 날씨에 비가 내리는 그들의 여정이었지만,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고 걷는 순간순간 느끼는 행복한 감정은 화창하게 개인 맑은 날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을 닮은 해파랑길, 빗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를 잃지 않은 그들과 너무나도 많이 닮은 해파랑길로 걸어 들어간다. 빗속을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아름답고 설레는 것만이 아니다. 궂은날도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그것이 여행이다. 그렇게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앓으면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억을 얻는 일, 그것이 여행인 것이다.


그렇게 길을 걸으며 울주군 청량읍 동천리 227번지에 있는 양동마을회관 앞 한 정자를 찾아 준비해 온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정오가 조금 넘어가고 있으니, 덕하역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남짓 걸은 셈이다.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운동을 하는 곳인 모양이다. 마룻바닥에 펼쳐 놓고 소박하게 먹는 김밥이지만, 소주 한잔을 곁들인 원철은 ‘너무너무 좋다!’며 양손을 올리며 짜릿함을 표현하는 특유의 표정을 짓는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원철의 얼굴 표정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수많은 감정들이 하나로 모아져 표출되는 듯했다. 정자 마루에 걸 터 앉은 경희는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마사지한다. 호텔을 나올 때 준비해 온 커피를 컵에 따라 마시며 그렇게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정자에서 조촐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빗방울이 제법 굵어진다.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며 굵어졌다 가늘어 지기를 반복한다. 다시 우비를 꺼내 입고 길을 걷는다. 오랜 시간 비를 맞으면, 비록 걷는다 할지라도 체온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방수가 되고 통기성이 좋은 바람막이나 고어텍스를 챙겨 입고, 우비를 입는 것은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된다. 걷기에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우산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양동회관에서 출발하여 약 한 시간가량을 걸어 온양읍 망양리에 이른다. 해파랑길 지도를 열어보니 이제 화양강이 그리 멀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만큼이나 마음이 차분해지는 순간이다. 바람이 장대비를 몰고 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온갖 잡념은 해파랑길 위에 내려놓고 그저 걷는 그들이다. 


그렇게 1시 30분, 덕망교 사거리를 지나 온양읍 화양강변에 이르렀고 촉촉이 젖은 강변길을 따라 해파랑길 여정을 이어간다. 강변을 따라 진하해변까지 내려가는 해파랑길이다. 축축한 날씨에 꽤 먼 거리를 걸어왔기에 다소 지칠 만도 한데, 그들의 얼굴표정은 여전히 밝고 명랑하다. 특히 미연의 얼굴엔 늘 웃음이 가득한 행복한 표정이다. 


그렇게 걷기를 한 시간쯤, 비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그들은 화양강변을 따라 덕신리 마을로 접어들어 덕신소공원을 지난다. 그리고 덕하역을 출발하여 약 4시간쯤 걸은 오후 3시 30분, 비는 내리기를 멈추었고 그들은 삼평마을이 보이는 강변 벤치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버스 정류장처럼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덮인 의자는 길손들에게 참으로 유용한 해파랑길 휴식처였다. 잠시 머물고 가는 곳이었지만, 비를 맞으며 그곳까지 온 그들에겐, 유리벽에 붙여 놓은 ‘해파랑길 휴식처’란 스티커가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이제 진하 해변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거리이다. 비는 그쳤고 강변 산책로엔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걸으며 사람을 보질 못했었다. 당연한 일이지 싶다. 비 내리는데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들뿐이었다. 비가 그친 하늘엔 조금씩 안개가 벗어지고 공기는 상쾌하였다. 모터보트가 물살을 그리며 오가는 화양강 하류에 다다르자 특유의 바다냄새가 향긋하게 바람을 타고 전해진다. 바다와 인접한 하류에 보트장 등 수상 스포츠 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모양이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과 함께 사람 꽤나 북적거리는 곳이지 싶다. 


오후 4시 28분, 덕하역에서 11시 20분경 출발하여 다섯 시간을 걸어 진하해변에 당도한다. 진하해변 모래사장에 설치한 양손을 모은 손가락 하트 조형물에서 사진을 남긴다. 비가 오락가락하며 궂은 날씨에도 덕하역에서 진하해변까지 5코스를 모두 완주한 그들의 표정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하였다. 그들은 해파랑길 5코스 시작점 이정표에서 환한 미소와 더불어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완주를 자축하였다. 그리고 이정표 가까이에서 핫도그를 파는 노점상을 발견한다. 핫도그를 하나씩 사 먹으며 빗속을 걸어온 오늘의 여정을 잠시 되돌아본다. 


그들은 여전히 예쁘다. 여전히 예쁜 해파랑길은 그들을 꼭 닮은 추억이다.


진하해변도 그가 이른 아침 걸었던 송정해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일 내린 비로 촉촉한 안개로 덮여 있는 바다는 아무리 봐도 그들과 너무 닮아 있었다. 궂은날 비로 흠뻑 젖은 해파랑길을 걸으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던 그들처럼, 종일 안갯속에 머물던 진하해변도 화사하게 밝은 표정으로, 하루 여정을 마친 그들을 기다리고 따듯하게 안아 주었다.


비를 피해 울주군으로 올라오기를 참으로 잘했다며,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자찬하며 진하해변에 잠시 머문다. 바다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다. 그들의 마음엔 또 하나의 해파랑길 추억이 새겨지는 소중한 순간이다. 


차량회수를 위해 택시를 타고 걸었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 덕하장터로 이동한다. 숙소는 기장시장 거리에 있는 ‘호텔 케니 기장’으로 잡았다. 로비는 깔끔하고 쾌적한 편이었다. 데스크에 직원이 있어 체크인을 도와주는 깨끗한 호텔이었다. 로비엔 대기공간이 예쁘게 꾸며져 있고, 미니 갤러리가 있어 잠시 머물러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엔 아침 조식을 위한 테이블과 편의 시설이 갖추어진 라운지가 있다. 투숙객이라면 누구든지 라면을 즉석 조리기에 끓여 먹을 수 있고 커피, 정수기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지하층에 있는 셀프 코인 세탁실과 피트니스 센터 또한 투숙객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이다. 물론 침구도 깨끗했고 룸 컨디션이 쾌적한 호텔이었다. 


비를 피하여 올라온 여정이었지만, 기장을 기점으로 내일 4코스와 모레 3코스를 걷고 해운대로 내려가 2코스를 걷기로 마음먹고 잡은, 그들에겐 안성맞춤의 쾌적한 호텔이었다. 해파랑길을 걷는 여행자들이라면 한 번 이용해 볼만한 호텔이다. 주소는 부산 기장군 기장읍 차성남로 51번 길 26, 호텔 케니 기장이다. 단, 차량 주차는 기계식 주차여서 전기차, SUV, 대형 승용차는 제한이 있다. 호텔 근처 공영 주차장이나 시장 주차장을 이용해도 크게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이다.    


여행 중 시장 근처에 호텔을 잡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용하고 현명한 선택이다. 모든 도시는 자연스럽게 시장을 중심으로 발달한다. 근처엔 경제활동이 집중되는 번화가가 형성되고 은행은 물론이고 병∙의원, 학교와 주택가가 있게 마련이다. 시장 근처엔 다양한 편의 시설이 집중되어 있어 여행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편이다. 


또한, 부수적으로 시장구경은 꽤 쏠쏠한 재미를 더해주는 즐거운 여행이 되기도 한다.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이 있게 마련인 시장은 때론, 그 어느 관광지보다 그 고장을 더 깊이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테마가 되기도 한다. 시장에서 쇼핑을 즐기면서 현지의 다양한 제품들을 구경하고 구입함으로써, 그 지역의 문화와 특산품에 대한 이해도 풍부해진다. 시장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보는 것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덤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도시의 생생한 에너지와 다채로운 특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장 구경은 여행 경험에 더욱 특별한 즐거움을 더해준다. 


거리상으로도 대부분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는 시장 근처의 호텔 예약은 여행 일정을 조율하는 데에도 편리하다. 어느 쪽으로 이동하거나 사통팔달인 경우가 많아 이동이 용이하고 시간을 절약해 준다. 운이 좋다면 시장에서 벌어지는 지역 축제를 통하여 다양한 먹거리는 물론이고 지역 특색의 문화적 경험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여행자에게 더욱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을 선사하는 시장 근처에서의 숙박은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들이 잡은 호텔 근처엔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장을 풀고 호텔을 나온 그들은 낯 설지만 정감 넘치는 시장 구경을 하며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아 나선다. ‘호떡여장군’이란 재밌는 상호도 발견한다. 기발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상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장 구경은 즐겁다. 대게를 파는 식당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으로 보아 대게 맛집으로도 유명한 고장인 듯했다. 상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과 어린이집도 호텔 근처에 있었다. 


대개 이 시간쯤이면 일반적인 상점들은 문을 닫는 시간이다. 이곳 기장 시장도 청과나 야채를 파는 가게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식당이나 카페, 편의점 정도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를 맞고 돌아다닌 터라 시장 구경을 길게 이어가진 못하고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간다. 그렇게 찾아 들어간 호텔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저녁식사를 마친다. 역시 시장이 반찬인 셈이었다. 하루 여행을 끝내고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먹는 맛있는 저녁식사는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기가 막힌 만찬이다. 더욱이 밥정 20년으로 함께해 온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 말이다. (계속)

이전 04화 방울방울 마음에 새겨진 설렘의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