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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Feb 28. 2024

4+3=느낌표와 물음표로 채워진 예술 같은 여행

예쁘다. 어떤 분이 만들었는지 참으로 예쁘게도 만든 세상

+3=느낌표와 물음표로 채워진 예술 같은 여행 해파랑길



주문진에서 출발하는 해파랑길 여행에 새로이 규철, 명실, 승문이 합류하였다.


4+3=7+α


굳이 수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4+3은 일반적으로 7이지만, 해파랑길 여행에서는 4+3이 반드시 7이 되는 수학이 아니었다. 7+α로 또 다른 느낌이 있었고 새로운 물음이 생긴 여행이었다. 기준도 없고 공식도 없고 답도 없는 예술처럼 조금은 다른 의미가 있었고 특별했다.


어차피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그저 아리송할 뿐인 예술처럼 시작된 해파랑길 여행이었기에 넷도 좋았고 셋이 더해지며 더욱 좋은 여행이었다. 물론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처럼 말이다.


전에 잠시 작은 거인으로 소개했던 규철은 이년 전 직장에서 퇴직한 친구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에서 몹시도 아날로그적인 선배들 닦달에 독학으로 주판을 배운 친구다. 당시 주판을 가르치는 학원도 마땅히 없던 터라 매일 퇴근하여 집에서 독학으로 주판을 배워야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주판이라곤 만져 본 적도 없는 그였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주판은 물론 부기 등 업무지식을 습득하였다. 그런데 주판도 주판이지만, 당시만 해도 실업계나 상경계열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던 직장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싫었던 그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싶다. 그렇게 오리알에서 시작한 직장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주판을 배워 상임이사까지 하였으니, 가히 타조알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입지전적 인물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전화위복인 셈이니 닦달했던 선배들께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튼, 그는 해파랑길 원정대에 합류하기 전 의암호 둘레길을 두 차례 함께 걸으며 호흡을 맞췄다. 걷기를 마친 후에 원로 같지 않은 원로회원들에게 흔쾌히 저녁식사까지 샀다. 그렇게 규철은 소정의 입단 절차를 마무리하였고 해파랑길 2차 원청에 합류하였다.


승문은 지난 8월 말일자로 교직에서 퇴임한 친구다.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은 후 전문직을 거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친구다. 그와는 중, 고, 대학교 동창이었다. 어려서부터 좋지 않았던 다리 수술을 받은 후 회복과 재활을 위하여 아침마다 108배를 꾸준히 하며 지금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친구다. 지난 9월 이탈리아여행에도 동행했고, 늘 자신을 ‘하나밖에 없는 큰 아들’이란 수식어를 구사하며 좌중을 웃게 만드는 친구다. 전국 방방곡곡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다. 국내 웬만한 곳은 두루두루 바삭하게 꿰고 있는 그도 의암호 둘레길을 함께 걸으며 호흡을 맞췄고 커피와 브런치, 저녁식사까지 한턱내며 이번 해파랑길 여행에 합류하였다.


명실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거주하며 한국을 오가는 매사 분명하고 깔끔한 친구다. 1년 중 반은 한국에서 생활하며 트레킹, 스킨스쿠버, 암벽등반, 히말라야 등산, 산나물 동호회 등 왕성한 레저스포츠 활동을 즐기며 삶을 다양한 색채로 채우는 친구다. 그녀와 경희는 둘도 없는 단짝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지기인, 둘이 함께하면 왠지 맞추어진 퍼즐조각 같은 친구다. 지난번 ‘DMZ 자유평화 대장정’에 참여한 후 이번 해파랑길 여행에 합류한, 때론 지극히 여성스러운 수심회 여사친이다.   


작은 불씨로 시작된 경희의 해파랑길 꿈은 그렇게 세 명에서 네 명으로, 그리고 함께 같은 꿈을 꾸는 일곱 명의 불씨로 늘어났다. 이들의 합류로 기존 4명의 회원은 졸지에 원로 아닌 원로가 된 셈이었고, 그들의 해파랑길 2차 원정은 7+α로 기쁨과 열정을 추가한 셈이었다. 주문진에서 출발하는 해파랑길 2차 원정대는 그렇게 7+α로 꾸려졌고 새로운 모험을 향해 시동을 건 셈이었다.


여행은 예술처럼 주관적이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경험이기 때문에 딱 떨어지는 정답이나 특정한 기준으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예술에서 논리성을 따진다는 것은 그저 허망한 일이고, 마찬가지로 여행에서 논리성을 찾는다는 것은 그저 허무맹랑한 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각 개인의 감성, 경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예술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나 감정은 각 관객에게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


이 문장에 예술을 빼고 여행을 대입하면 아래와 같다.  


여행은 각 개인의 감성, 경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여행이 전하는 메시지나 감정은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틀린 말도 아니다. 4+3=7+α가 성립될 수 있는 이유다.


하루의 햇살이 따듯하게 쏟아지며 꽃잎처럼 피어나는 시간 09시 50분, 주문진 해변에 도착한 그들은 7+α로 해파랑길 여행을 시작했다. 주문진해변의 하늘은 더없이 파랬고 바다는 푸르다 못해 신비로웠고 아릿하였다. 해변 모래사장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태공은 낚시를 하는 건지, 철썩거리는 파도와 함께 밀회를 즐기는 건지 모를 어렴풋한 주문진 해변엔 뭉게구름 조각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었다. 더없이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금빛 모래사장, 아릿아릿한 바닷가에 선 그들에겐 차르르 영화필름이 돌아가듯 소중한 또 하나의 특별한 순간이 업로드되었다.  


그들의 오늘 여정은 주문진해변에서 죽도정을 거쳐 하조대해변까지 공식거리 22.1km를 완주하는 해파랑길 41~42코스였다. 남애항과 휴휴암, 기사문항을 거쳐 하조대로 들어가는 동해안 해변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길을 따라 걸을 예정이다.


경희와 명실, 원철과 승문, 규철과 미연이 짝을 지어 주문진 해변을 벗어난다. 향호해변으로 들어서면 이름도 향기로운 석호(潟湖) ‘향호’가 해변에 접해 있다.


먼 옛날 고려 때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 하류와 바닷물이 만나는(合水) 지점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埋香) 풍습이 있었는데, 향호(香湖)라는 지명은 바로 매향(埋香) 풍습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매향은 미륵보살이 다시 태어날 때 묻어 두었던 침향(沈香)으로 공양을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원을 담은 풍습이다.


향호해변 석호 입구에 해변으로 이어지는 작은 보행자 전용 다리가 있지만, 향호를 한 바퀴 돌아 해변으로 내려오는 공식코스를 따라 걷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주문진까지 와서 향호를 보지 않고 가는 것은 마치 꽃밭에 와서 꽃향기를 맡지 않고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고, 마음에 남을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붉게 물든 갈대와 호수에 찰랑이는 물결이 미풍에 흔들리며 무언의 시를 노래하고, 호수 주변은 붉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을빛이 가득한 만산홍엽(滿山紅葉)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었다. 더없이 파란 하늘에 솜털같이 하얀 조각구름이 띠를 이루며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러한 풍경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장면의 주인공들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뒤따라가며 담아낸 사진은 풍경일까, 영화일까?


순간순간이 그저 마법같이 아름다웠던 향호 둘레길을 걷는 그들의 미소엔 더없이 파란 하늘과 붉게 물든 가을의 정취가 담긴다. 그리고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이 되어 마음에 담긴다.


향호로 들어오는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쪽 내륙에 향호지가 있다. 시간이 허락되면 아늑한 시골길을 따라 향호지까지 걷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그에게 호수, 잔물결이 자글자글한 호수는 외할머니 얼굴이었고 그리움이었다. 잔잔한 수면으로 파란 하늘이 내려앉은 호수에, 그렇게 파랗게 물든 수면 위를 속삭이듯 촘촘하고 자글자글한 잔 물결이 흐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늘 어릴 적 외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세월이 흘러 그가 이미 외할머니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이다. 무척이나 자글자글했던 외할머니의 얼굴은 그의 기억 속에 늘 남아있는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온다/조영환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온다

굳이 밀어내지 않으려 한다.

늘 가슴속에 빛으로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이나마

많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조금은 아득하다

빛바랜 추억은

한 겨울 눈발 날리듯

살포시 마음속으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가끔 불쑥불쑥

의지와는 상관없이 슬며시 올라왔다 사라지며

그리움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움은 그렇게 빛으로 와서

차곡차곡 가슴에 쌓인다.



아침저녁으로 새들이 찾아와

지지배배 지저귀며 마당에서 놀다 간다.

채소밭에 물을 주면 어김없이 새들이 깃든다.

시간이 되면 뻐꾸기도 노래를 부르고

또, 시간이 되면 희붐한 새벽하늘과 함께

쪽쪽 쪽쪽 쪽쪽 쪽쪽 쪽,

쪽쪽 쪽쪽 쪽쪽 쪽쪽 쪽

휘파람을 불며 산새도 찾아온다.

빛으로 머물러 있는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온다.



보슬보슬하니 안개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침이다.

창문을 열고 마당을 내다본다.

보슬비는 나무를 적시고 나뭇잎으로 구른다.

그리고 방울방울 예쁜 물방울을 만든다.

방울방울마다 다른 사연이 있을 것 같다.

나뭇잎으로 구르는 물방울이 터지며

담겼던 사연이 쏟아진다.

빛으로 머물러 있는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온다.



잔물결이 자글자글한 호수를 걷는다.

파란 하늘과 솜털 같은 하얀 조각구름이

잔잔한 수면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속삭이듯 자글거리는 잔 물결은

그리움을 촘촘하게 그려내고

주름진 물결 사이로 깃든 그리움은

사뿐히 기억 속에 담긴다.

파란 하늘로 흐르는 물결은

솜털 같은 조각구름으로 깃든다.

빛으로 머물러 있는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온다.



여름날,

천둥이 꽝꽝 울어대고 번개가 번쩍거리는

요란한 여름날이다.

빗소리를 따라 길을 나선다.

칠족령(漆足嶺) 먹장구름은 기세가 등등하다.

얼마쯤 빗속을 헤매고

잠시 정자각에서 비를 피한다.

타닥거리며 쏟아지는 빗줄기에

그리움도 함께 타닥거리며 떨어진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물이 정자각 처마를 타고

그리움과 함께 흘러내린다.

빛으로 머물러 있는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온다.



때론 커피 한 잔을 손에 받아 들고 떠난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다.

꿈꾸듯 배회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본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한다.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어디서나 그렇게 마주 앉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그리움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다.

빛으로 머물러 있는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온다.



눈처럼 수많은 날들이 똑똑똑!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마음속에 소복소복 쌓인다.

소복소복 쌓인 눈을 헤집어 본다.

하나하나 꺼내고 다시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리움을 찾아낸다.

빛으로 머물러 있는 그리움은 그렇게 찾아온다.



빛으로 머물러 있는 그리움은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

언제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알 수 없는 숙주와 함께

문득문득,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렇게 찾아온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걸었던 해파랑길 1~5코스와는 또 다른, 계절에 따라 특별한 운치를 느끼며 원 없이 풍경에 빠져들만한 향호였다. 평소 표정이 크게 변하지 않는 친구 승문의 각진 얼굴에도 빙그레 미소가 떠오르고 경희의 얼굴엔 이미 달덩이 같은 미소가 담긴다. 데크로 조성된 길은 마냥 걷기에 좋았다. 미연과 원철이 손을 흔들며 습지를 빠져나온다. 그들은 향호변에 조성된 데크길을 따라 다시 해변으로 내려간다. 길은 잠시 7번 국도변으로 이어지다 양양 지경리 표지석을 보며 오른쪽 마을길로 이어진다. 지경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양양, 해오름의 고장 양양이다. 멋진 해송이 볼만한 길이다. 마치 파란 하늘을 줄지어 나는 갈매기 무리처럼 은빛 가로등이 이어진다. 어쩜 저리도 기가 막히게 바닷가에 잘 어울리게 만들어 세웠을까? 그렇게 해안가 길을 따라 햇살이 세상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10시 50분, 주문진 해변에서 한 시간을 걸어 지경해변에 도착한다. 화가의 붓끝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한 청명한 파란 하늘 위로 몇 조각 새털 같은 구름이 가볍게 떠다니며, 한가로이 밀려오는 파도를 마중 나오는 풍경에 그만 발걸음을 멈춘다.


그런 풍경을 보고 감성을 풀어내는 미연이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형언할 수 없는 이 아름다움을 어찌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길 위에 아름다운 그들이 있었고 아름다운 그들 속으로 지경해변의 풍경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가을볕에 얼굴이 빨갛게 물든 명실과 경희, 미연과 규철, 그리고 승문과 원철을 그리움이 담뿍 담긴 쪽빛 하늘에 담아 놓고 다시 길을 떠난다. 훗날, 그리움이 아리도록 사무치는 날 다시 꺼내 보면, 그 순간의 따뜻한 햇살과 서로에게 묻어났던 따스한 대화가 마치 시간을 뚫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듯 떠오를 것 같다. 그 추억은 그들의 마음속에 고요한 감동을 남길 것이고 기억에 다시 담길 것이다.


예쁘다. 어떤 분이 만들었는지 참으로 예쁘게도 만든 세상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두고두고 그리워질 것 같은 지경해변을 가슴에 품는다.


그는 쓴다. 일단 간단하게 기록한다. 이 순간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 산행이든 트레킹이든 여행이든 무엇이든 그때그때 간단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기고, 후에 그 기록을 정리하고 복습을 하며 쓴다. 가기 전 예습은 최소한으로 한다. 선입견을 미리 심어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선입견은 어떤 여행이든 방해가 될 때가 더 많다. 대신 다녀와서 여행 중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복습을 하는 편을 택한다. 미리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대로 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사전에 계획된 효율은 대부분 처음 보는 여행지에 대한 설렘이 반감되는 부작용도 있다. 어느 정도 환상도 있고 어느 정도 설렘을 가지려면 조금은 모르고 낮 설음이 있어야 하는데, 사전에 많은 부분을 계획하고 예습을 하다 보면 날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신선함이 반감되는 느낌이 싫기 때문에 예습은 최소한으로 하는 그였다. 대신 여행을 하며 오감을 열어놓고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접하는 실전에 충실한 편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여행이라 했던가?


맞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때론 그 ‘아는 것’이 잘못하면 따라 하기가 되어버릴 수 있는 시대다. 인터넷과 SNS 덕이라고 해야 할지, 폐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식을 포함한 역사, 문화는 물론이고 음식과 여행지 패션까지, 사진은 어떻게 찍는지까지 미리 리허설을 하게 되는 셈이어서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닌 ‘따라 하기’가 되는 셈이라 생각했던 그였기에 예습은 조금,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기록하고 복습을 통하여 구체화하는 작업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는 그렇게 여행이야기를 쓴다. 그렇게 쓰는 여행 이야기엔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 사랑하는 친구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그에겐 여행지이지만, 현지인들에겐 삶의 공간이 되는 그곳을 기록하고 쓴다. 그리고 인문과 지리, 역사와 문화, 소소한 에피소드를 잘 버무려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한다. 과거 조선 팔도를 유람하던 매월당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쓰다 보면 여행이야기는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된다.


이왕지사 따라 하기 말이 나왔으니 잠시 언급을 해보겠다. 독자들께서 공감하시는 부분일 수 있기에 언급하고자 한다.


일단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자신이 주로 보는 SNS를 열어보라. 일단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시각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피드를 넘겨보라. 내용과 모습, 포즈, 풍경, 먹는 음식, 패션은 물론 덧붙인 짤막한 메시지까지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하다. ‘따라 하기’ 결과물이 수없이 넘쳐나는 SNS다.


결국 모든 것은 돈으로 연결되는 세상이다. SNS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비슷한 사진들은 소비를 동반하고 소비는 마케팅으로, 마케팅은 비즈니스로 이어진다. 비슷한 말들이지만 다 다른 목적이 숨어있는 말이다. 조회수와 ‘좋아요’에 숨어있는 치밀하고 계획적인 함정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등산을 예로 들겠다. 등산을 예로 든다고 절대로 등산 자체를 폄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등산을 가며 찍은 사진과 간단한 메시지를 올린다. 사람들의 관심은 일단 시각적인 것에 고정된다. 등산 자체보다 등산하는 사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부터 어떤 옷을 어떻게 입고 어떤 산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은 것 인지를 보게 된다. 여기까진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사진을 보고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럼 이때부턴 SNS를 소비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소비가 따르니 광고가 붙는 것이고 광고가 붙으니 마케팅이 따라오고 결국 비즈니스가 되어버리는 ‘기승전 비즈니스’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기승전 비즈니스가’ 절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은 자체가 비즈니스일 수 있으니까. 단지, 여행은 논리가 아닌데, 기승전 비즈니스가 되어버리는 SNS 탓에 엄밀한 규칙에 따라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는 수학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이야기다. 수학에서는 특정한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된 공식이나 방법을 사용하여 해답을 찾을 수 있지만, 여행에서 그런 명확한 정의나 공식을 찾으려 한다면 난센스도 이만저만한 난센스가 아니다.


여행은 수학이 아닌 예술에 가깝다. 예술과 수학은 각각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표현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측면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발전시키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어떤 여행을 하든 지향점은 같다는 얘기를 너무 어렵게 했지 싶은데, 아무튼 선택은 자유다. 끌리는 방식으로 하면 될 일이다.


그렇기에 예술에 가까운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예습보다는 적극적이고 충실한 실전, 실전을 마친 후 구체적인 복습을 택한다.


노란 손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미연, 둥근 사파리 모자를 쓴 원철, 아이보리 버킷햇을 쓴 경희, 옅은 그린색 버킷햇을 쓴 명실, 그들의 발그레한 웃음이 푸른 바다와 아릿하게 파란 하늘에 담긴다. 이곳은 원포해변이다. 어쩜 이리도 하나같이 예쁠까? 그들을 매혹시키는 바다와 그들의 모습에 매혹된 그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에 머물고 있다.

승문과 규철은 어디로 간 걸까?

금빛 모래사장에 하얗게 내려앉은 갈매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승문과 규철이다. 빨간 등대가 마을을 지키는 남애항이다. 크고 작은 바위섬들이 바다로 이어지고 방파제로 연결된 두 개의 섬을 연결하는, 견우와 직녀가 만날 것 같은 다리가 이어진다. 다리를 구실 삼아 솜털 같은 구름이 기어이 바다로 내려오려는 모양이다. 너무나 매혹적인 풍경이 거듭되니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할 지경인 남애항 풍경이다.


더없이 행복했던 그들의 오늘 해파랑길 여행은 파란 하늘을 숨김없이 드러낸 날씨가 한몫했지 싶다.


혼자 산행을 즐겨했던 그는 산행을 하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그때그때 느껴지는 아름다운 감성들을 짤막한 키워드로 메모하며 산행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여럿이 함께 다니는 여행은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혼자일 때와 전혀 다른 여행이 되어야 했다. 더욱이 그들은 그를 ‘대장’이라 부르고 있었기에, 해파랑길 걷기 여행에 합류한 그들에게 오늘 날씨만큼이나 한몫해야 했지 싶었지만, 오늘 날씨는 그런 그의 기우를 가볍게 즈려밟고 그 대신 ‘날씨대장’이 되어 주었다. 그러고 보면 오히려 그가 날씨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남애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에서 환하게 웃는 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미연이 손을 들어 올리고 검지와 중지를 집게처럼 벌려 구름 한 조각을 잡는다. 붉은 황금색으로 변한 갯바위에 물거품이 흩어지고 항구에 정박한 고깃배는 잠시 그들의 무대가 되는 남애항이다.


지난번 ‘예쁜 해파랑길과의 밀회는 덤이고 세상이 예쁘다 말하는 고백은 경품이다’ 이야기 중 ‘커피우유가 없어 못 일어난다’는 경희의 이야기를 잠깐 했었다.


우유는 마셔야 하지만 속이 문제라, 일반 우유를 마시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왕왕 있을 것이다. 우유는 아침을 든든하게 해주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료이다. 하지만 우유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의 속사정은 조금 복잡한 편이지 싶다. 우유 속에는 락토스라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다른 말로 유당 또는 젖당이라 한다. 국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약 70%가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우유를 마시면 속이 복잡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도 가끔은 ‘소화가 잘되는 우유’, 유당분해우유를 사 오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이 일상에서 놓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커피이지 싶은데, 그도 하루에 세 잔 정도는 마시는 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뭔가 마구 헝클어진 느낌일 때가 있다. 매일 그런 기분을 느끼며 일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경우에도, 이런 헝클어진 느낌이 드는 아침엔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럼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반듯하게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다. 몸속 혈관 곳곳에 커피 향이 스며들며 균형을 찾는 느낌이 커피를 손에 놓지 못하게 한다.


아침을 든든히 해주는 우유와 헝클어진 느낌을 정리하고 균형을 찾아주는 커피를 한 번에 해결해 주는 커피우유를 마시는 매우 효율적인, 그리고 실속 있는 방법을 택한 경희다.


그런 경희와 달리 그는 우유는 우유고 커피는 커피라 생각한다. 이른 아침에 춘천에서 출발하여 주문진에서 남애항까지 걸었다. 시간은 이미 정오가 넘었다. 커피도 생각나고 배도 고파오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경희의 커피우유였다. 커피와 우유를 합친 커피우유처럼 점심과 커피가 합쳐진 뭐가 없을까? 머리 굴리는 소리가 달그락거렸다. 요란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지 싶었다. 하나 있다면 브런치와 커피 정도였는데, 남애항을 빠져나오고 나니 먹을 곳도 딱히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짧고 맛있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지금이 딱 그랬다. 그들 모두가 같은 처지였기에 막국수에 소면에 물회까지… 아무 말 대잔치가 열린다.


별 수 없이 걸어야 했다. 죽도가 가까워지자 갯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장관이었다. 당연히 가던 길을 멈추고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구경에 배고픔도 잠시 잊는다. 파도는 끊임없이 갯바위를 때리고 갯바위는 끊임없이 파도를 끌어안아 하얀 물거품을 허공에 흩뿌린다.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감성을 연신 토해낸다. 그런데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갯바위+파도=물거품+α 같은, 마치 4+3=7+α인 그들처럼 +α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 강렬한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에 부딪히고 포말로 흩어지는 모습은 우리 삶에서 도전과 어려움이었고, 강인함과 결기 같은 거였다. 그저 상징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런 +α를 보듬고 있는 감성이 더 있었다. 승문과 함께 한참을 서서 갯바위+파도=물거품+α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작고 무의미한지도 보았고, 동시에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지를 그곳에서 보았다.


남애항을 지나 갯마을 해변에 이르자 길은 다시 7번 국도변으로 이어진다. 가을이 물들어가는 계절 10월 하순이었지만, 도로가 갓길은 여전히 뜨거웠고 여름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리는 차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자동차가 질주하며 내는 굉음도 여름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해파랑길 41코스 남애 갯마을해변서 기사문항에 이르는 구간은 국도변과 일부 숲길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딱히 먹을 곳이 없는 구간이 약 1시간가량 이어진다. 그나마 숲길 구간에선 더위를 피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한 여름에 걸을 경우 참고해야 할 만한 구간이다.


암튼 그렇게 휴휴암 休休庵으로 들어오면서 길은 다시 해변으로 이어진다. 휴휴休休, 쉬고 또 쉬어 가는 암庵, 암자庵子, 큰 절에 딸린 작은 절을 의미하는 사찰 이름이다. 일상 번뇌를 잠시 내려놓고 쉬어 가라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강원 양양군 광진 2길 3-16에 있는 작은 사찰이다. 휴휴암은 1997년에 창건된 그저 소박한 작은 절이다.


잠시 휴휴암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기암괴석과 파도가 너울거리며 하얀 물거품이 흩어지며 묘하고 신비로운 빛깔을 연출하였다. 짙은 파란색부터 점점 엷어지며 푸른색, 그린색 그리고 하얀색까지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는 물빛깔은 제주바다에서나 볼 수 있지 싶은 감성의 물빛이었다. 신비스러운 바다색의 표본과도 같은 물빛깔을 잠시 바라보는데, 웬걸, 얼마 전 다녀온 이탈리아 카프리섬 바다 빛깔도 저런 신비로운 느낌의 푸른 빛깔이었다.


그런데, 점입가경은 그다음부터였다. 이곳에서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사이에 봉긋하게 솟은 죽도를 바라보니 왼쪽으로 깊게 파여 들어와 동심원을 그리며 이어지는 둥그런 해안선이 더없이 예쁜 바다였다. 하얀 포말을 둥그렇게 그려가며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감성 충만한 파도까지 얹어지는 인구해변은 그야말로 비현실적 풍경 자체였다. 최근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리면서 서핑 성지로 자리 잡은 인구해변은 그렇게 온통 푸른빛 감성이 넘치고 또 넘치는 동화에서나 그려질 것 같은 바다였다.      


오래된 천년 고찰은 아니지만, 묘적전(妙寂殿) 아래 갯가에 오랜 세월 바닷물결을 품어 안으며 몸소 휴휴를 이어오고 있는 너른 바위(연화대)에서 관세음보살 바위와 거북이 형상의 바위, 발가락 바위, 발바닥 바위, 주먹바위 등 기이하고 묘(妙)한 모습의 기암괴석이 신비감을 더해주는 풍경은 사람들의 발길을 자연스레 이곳으로 이끌어 쉬어 가며 마음의 평화(寂)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주는 묘적비경(妙寂秘境)(*) 이었다. 과연 휴휴암이란 사찰 이름이 허언이 아니지 싶었다.  


*[필자 주] 묘적비경(妙寂秘境)이란 어휘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다. 필자가 휴휴암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하여 휴휴암의 ‘묘적전’에서 빌어온 묘적과 비경을 합쳐 만든 어휘임을 밝혀둔다.


그렇게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죽도해변을 지나 동산항을 낀 작은 마을 동산리에 도착한다. 마을을 통과하며 식당을 찾아야 했다. ‘갈이천정(渴而穿井),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 그는 동산항 근처 길을 가던 어르신을 다짜고짜 붙잡고 물회 잘하는 식당을 물었고, 마침 그 어르신 조카가 운영하는 물회와 홍게라면 맛집 ‘바다한그릇’ 식당을 소개받았다. 주택가 골목 깊이 들어와 있어 소개받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식당이었다. 친절한 어르신이 미리 전화를 해 놓아 큰 길가에 어르신의 조카가 나와 안내해 주었고, 그들은 어르신의 조카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 마침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주 맛있는 물회 한 그릇을 게눈 감치듯 뚝딱 해치운 그들은 그렇게 심한 내적 갈등을 해결하였다. 해파랑길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식당이었다. 주소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동산큰길 78-1 ‘바다한그릇’이다.    


그렇게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이미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하조대 까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다시 길을 나서고 해변을 벗어나 복분 삼거리에서 7번 국도를 오른쪽에 두고 ‘복분 안길’을 따라 걷는다, 도로선형 개량 공사구간도 지나고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계속해서 7번 국도를 오른쪽으로 두고 걷는 마을길로 들어선 터라 잔교해변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약 1시간을 걸어 7번 국도를 횡단하는 과선교를 건너 38선 휴게소에 도착한다. 휴게소는 과거처럼 북적대지 않았다. 커피와 어릴 시절 행복한 기억의 대명사였던 그 유명한 ‘추억의 쫀득이’를 간식 삼아 사 먹고 화장실도 이용하며 잠시 쉬어 간다. 정말 사람이 많던 휴게소였는데, 너무나 썰렁한 모습에 장사하는 상인들을 대하기가 다소 민망할 지경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된 탓일까? 도로변 식당이나 휴게소는 도로확장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추측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일상의 소란이 조금은 잠잠해지는 오후 4시 20분, 기사문항 근처의 작은 마을 길로 들어선 그들은 마을 벽에 그려진 그림을 살펴보며 마을을 통과한다. 현북면 기사문마을이다. 38선의 마을 기사문리 골목길 벽에 그려진 그림은 과거 한극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미연이 벽화에 기대어 총을 쏘는 모습을 재현한다. 포대기로 강아지를 업고 뭔가 입에 욱여넣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전쟁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했다. 미연이 벽화의 소녀에게 다가가 입에 뭔가를 넣어주는 모습을 다시 재현한다. 그림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마을 곳곳에 그려 놓은 벽화는 그저 방문객들의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긴 그림으로 느껴졌다. 이 그림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잔교리 공공미술프로젝트’ 작품이다.


전쟁으로 인한 처참하고 가혹한 현실은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일이다. 한국전쟁은 인류 전쟁사 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된 비극이었다. 38선이 그어진 배경과 역사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 참혹한 현실과 부딪치며 살아야 했던 풀뿌리 같았던 서민들의 삶에 집중하면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었던 전쟁이다. 그 비극은 결국 38선이란 흔디(부스럼의 강원 사투리) 딱지를 남겨놓은 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이 둘로 나뉘어 오가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라. 한마을에 사는 경희와 명실네 집이 38선으로 나뉘고 안방은 이남이고 부엌은 이북이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것이었던 문전옥답이 갑자기 두 동강으로 갈라져 오늘은 이북으로 넘어간다. 갑자기 38선에 쳐진 장막으로 38선 이북에 있던 학교를 가지 못했던 아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38선을 기준으로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는 사람들의 현실은 상상보다 엄청 심각하고 참혹한 현실이 된다. 어제는 이북이었고 오늘은 이남이 되는 현실을 풀뿌리 같은 작은 몸으로 온전히 맞닥뜨려야 했던, 38선이 그어진다는 것이 어떤 비극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물줄기도 도로도 마을길도 철도도 나누어져 오가도 못하는 현실을 어느 날 갑자기 마주한다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져 내리는, 요즘 말로 멘붕이라 표현할 수 있는,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산천초목이 경천동지 할 일이었던 한국전쟁의 상흔은 그렇게 고스란히 기사문마을에 남아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적대감이 고조되며 휴전협정 내내 38선을 기준으로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지고, 무차별 총질이 자행되며 엄청난 사상자를 낳은 비극이었다.


기사문마을은 국군의 날 제정 경위가 깃든 마을이다. 국군 3사단 23 연대는 1950년 10월 1일 양양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였다. 후에 이날을 기념하며 정부는 1956년 매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한다.


그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본 목격자인 셈인 기사문해변을 떠나 바다가 붉은 빛깔로 물들기 시작하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하조대에 도착한다. 하조대의 해넘이는 마치 해당화 꽃빛깔처럼 유난히 붉었다. 전망대에 올라 잠시 붉은 빛깔로 물드는 바다를 바라보는 경희와 미연의 얼굴로 붉은빛이 드리운다. 노을의 황금빛은 그저 바다 위로 부서져 내리고 경희와 미연의 뺨엔 불꽃같은 해당화 꽃이 피어난다. 하조대 절벽에 핀 한 송이 해당화 꽃이 유난히 붉어지는 하조대 해넘이를 보며 해파랑길 여정을 마무리하는 그들이다.


그들은 오늘 주문진해변에서 하조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41~42코스 27.2km 거리를 약 07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때론 저릿저릿한 흥분과 떨림이 있는 아릿한 감성에 빠져 들었고, 때론 묘하고 신비스러운 묘적비경에 빠져들었던 해파랑길 여행이었다. 그리고 또한 전쟁의 아픔이 담긴 기사문 마을에선 가히 짐작할 수조차 없는 비극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조대 해변의 석양이 그들의 영혼을 감동으로 채워주는 순간이었다.


세 명의 친구가 더 합류했던 그들의 해파랑길 2차 원정은 그렇게 4+3=느낌표와 물음표로 충만하게 채워진 예술 같은 여행이 되었다. (계속)


<알림>


지난주 글 발행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연재글을 일반 발행 했는데, 옮겨지지 않네요. 일반 발행한 글을 연재 브런치북으로 옮길 수 없어 링크를 걸어 둡니다. 혼란을 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https://brunch.co.kr/@thebcstor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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