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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Mar 06. 2024

그렇지만, 해냈고… 낙오자 없이 완주한 해파랑길 6코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경희로부터 연락이 왔다. 카톡으로.

 

“내일 수심회 오찬 후 트레킹 예정입니다. 걷기 편한… 복장으로 나오세요. 영환 씨 발목 상태 확인차 대충 20㎞정도 생각해 봅시다.”


다음 날, 오찬을 마치고 그들은 모였다. 약간 흐린 날씨였다. 아마도 하늘은 비를 품고 있는 듯했다. 추석 명절 후인 10월 4일 수요일이었다. 신매대교 인근에 주차한 후 의암호수길을 걸었다. 신매대교에서 의암 방향으로 걷는 의암호수길 3코스(애니메이션박물관~춘천인형극장) 구간이었다. 규철과 승문, 얼마 후 미국오로 돌아갈 은실이 합류하여 모두 일곱 명의 친구들이 함께 걸었다.


강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쯤 다다르자, 흐렸던 하늘이 비를 참지 못하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파크 골프장 그늘막에서 잠시 비를 피하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 빠른 걸음으로 이디아 커피숍(춘천의암호점)으로 이동했다. 비 내리는 서면 의암호 풍경을 즐기기엔 그만인 곳이었다. 비도 피할 겸 해파랑길 원정에 참여하기로 한 규철, 승문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며 강우 추이를 보고 더 걸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기에 커피와 라테를 주문하고 소금빵을 곁들여 잠시 머무르며 상큼한 시간을 보냈다. 승문이 커피값을 계산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천성적으로 비를 좋아하는 그에겐 상큼했고 달콤했던 휴식이었고, 비 내리는 호수풍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맛있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를 보이며 오는 둥 마는 둥 오락가락했다. 비가 불러온 안개가 몽실몽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호수길을 걸어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오락가락 내리는 비와 함께 걸었던 트레킹을 마치고 우두동 해물칼국수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해파랑길 3차 원정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교환하였다.


다음 해파랑길 여행에 모두들 살짝 달떠 있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그의 발목 상태는 크게 문제없었다. 꾸준하게 물리치료를 받고 간간히 10km 내외의 짧은 거리를 걸으며 훈련을 한 덕인지는 모르지만, 해파랑길 3차 원정에 차질은 없지 싶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발목을 보호할 수 있는 전투화까지 준비하여 오늘 신고 걸어본 터라 발목이 문제 될 거 같진 않았다.


그리고 나흘 후, 그들의 사전점검 훈련은 한 차례 더 실시되었다. 의암댐에서 출발하여 서면 ‘곰취핫도그’까지 17㎞를 걸으며 해파랑길 3차 원정에 대비하였다. 1차 원정부터 규철이 제안한 ‘수심회 깃발’을 제작해 배낭에 꽂자는 의견을 수렴하여 이러 저런 아이템을 검토하였고, 최종적으로 리본을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대박! 완주! 해파랑길 수심회 발바리!’라 경희가 제안한 문구를 인쇄하여 향순이 제작한 해파랑길 원정대 리본도 차질 없이 준비되었다. 이제 출발할 일만 남은 셈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3차 원정 출발일 아침이 밝았다.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 전화를 받는다. 미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찰나에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주섬주섬 행장을 챙겨 집을 나선다. 전 날 큰 아들네와 2박 3일 인천 가족여행에서 돌아와 분명 알람을 맞춰 놓고 잠들었는데, 밤늦게 도착한 데다 여행을 다녀온 후여서인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니 억지로라도 잠을 자 둬야 했다.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가까스로 잠이 든 모양이다. 집결지 출발시간이 07시였는데, 07시에 일어났으니 약속된 시간에 출발을 하지 못한 셈이었다.     


그렇게 허둥대며 출발한 해파랑길 3차 원정은 승문이 가정사정으로 빠지고, 명실은 서울에서 KTX를 이용하여 따로 출발하였다. 이번 3차 원정엔 수심회 맏언니로 소개한 바 있는 향순이 합류하였다. 향순은 예전에 경희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한 친구다. 사업장이 바쁜 철엔 여행이나 걷기가 어려웠지만, 가을로 접어들면서 이듬해 봄까지는 비교적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편이었다. 


오전 8시 20분 치악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정오쯤 되어 울주군 덕하시장에 도착하였다. 양 갈래로 머리를 딴 만년 소녀 같은, 여전히 소녀다운, 천상 소녀인 명실도 차질 없이 합류하였다. 덕하장터 양평해장국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지난 1차 원정 이틀째 날 비를 피해 올라와 5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었던 덕하역에서 해파랑길 3차 원정을 시작하였다. 


처음에 4명으로 출발한 해파랑길 여행은 새로운 친구들이 합류하면서 더욱 다채롭고 흥미진진해질 것 같았다. 우연히도 행장을 차리고 나온 그들의 모자는 모두 검은색 버킷 햇이었고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며 작지만 묘한 우연에서 비롯된 순간에 ‘이심전심’이란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며 웃는 그들이었다. 부처님이 ‘이심전심’, 마음과 마음으로 제자 가섭(迦葉)에게 전한 불교의 진수가 그들의 검은색 버킷 햇으로 구현(?)된 “깨달음의 순간이었다”라고 하면 많이 과한 표현이려나?


아무튼 출발부터 이심전심이란 심오한 의미를 찾은 그들의 오늘 여정 해파랑길 6코스는 울주군 구 덕하역에서 출발하여 함월산을 넘어 선암호수공원과 울산대공원을 거쳐 태화강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공식거리 15.7㎞의 코스다. 소요 시간은 6시간 30분에 난이도는 ‘어려움’이었다. 난이도 높은 코스를 감안하면 6시간 이상 소요되지 싶었다.


6코스는 낮은 산이지만 산을 넘어야 하는 코스여서 차량 이동 후 오후에 출발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감안하여 난이도가 쉬운 7코스를 먼저 걷고 이튿날 걷자는 의견도 설왕설래 오갔지만,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한 옛사람들의 지혜를 따르기로 하였다. 이 속담을 이런 경우에 적용해도 되나 싶은 그런 난이도가 높은 코스였다.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구 덕하역은 지난 1차 원정 때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주차된 차량들이 없었고, 미래의 변화와 기대가 가득 담긴 공사예정을 알리는 노란 플래카드 한 장이 달랑 걸려 있었다. 주차장에 차량들이 없었던 건 이 노란 플래카드 한 장의 위력이었다. 아마도 합판으로 봉인된 구 덕하역을 리모델링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할 예정인 모양이다. 정선에 가면 꼭 들려야 한다는 수식어가 붙은 ‘나전역카페’처럼. 


구 덕하역에 모인 그들은 “해파랑길 수심회 파이팅!”을 외치며 3차 원정 출정식을 마치고 출발하였다. 


이제 계절은 가을로 바뀌고 있었다. 거리엔 노랗게 물든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왠지 모를 가을의 쓸쓸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거리 모습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계절이었다. 원철은 이번 여행을 끝내고 김장을 해야 한다며 겨울 준비를 하는 가을 빛깔 이야기를 하였고, 명실은 얼마 후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미국에서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하는 계절이었다. 절기상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하는 입동(立冬)이 다가오는 계절에 떠난 해파랑길 3차 원정길이었다. 


흰 구름을 머리에 이고 걸었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은 구름 뒤로 숨었고, 가을 태양빛이 고스란히 낙엽으로 옮겨온 듯 거리의 가로수는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가늘게 흔들리는 낙엽빛깔은 가을 햇살 같은 웃음으로 가득한 그들의 얼굴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고 서있는 곳은 울산시 남구 두왕동 두왕사거리였다. 


덕하 마을을 벗어난 해파랑길 6코스는 두왕사거리에서 상개 근린공원을 거쳐 함월산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다. 그저 떨어진 낙엽을 따라 걷는 길이였고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추색 秋色을 따라 걷는 가을의 미학 같은 길이었다. 


그랬다. 이때까지 만해도… 그저 행복했다. 


가을은 마법 같은 계절이다. 마법 막대기가 유리구슬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별풍선을 떨어뜨려 놓은 자리엔 어김없이 노란색 붉은색의 가을이 피어난다. 그런 가을의 아름다움은 거리의 가로수가 붉게 물들면서 시작된다. 미학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거리의 풍경은 가을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천천히 변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호젓하니 걸으며 감상하는 것도 가을을 만끽하는 훌륭한 방법이라 생각했던 이 순간이 그들에겐 그저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여유와 평온으로 가득 찬 추색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 여행은 말해 뭣하랴. 


차 한 잔이 있고, 함께 걷는 이들이 있으니 아직 겨울의 문턱에 걸터앉아 있는 추색 충만한 가을의 아름다운 가을빛깔을 누리는 호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미 그런 가을빛깔의 호사를 누릴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는 듯한 그들의 표정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 책 한 권을 들고,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타닥타닥 창가에 부딪치는 가을빗소리를 듣는다면 더없이 아름다운 가을을 선물 받는 셈일 것 같은 행복한 오후였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조영환



당신의 마음을 온전히 따듯하게 해주는 가을은 

때론 따스한 햇살로, 

때론 서늘한 바람을 타고 

당신 주위를 그렇게 맴돌다 

깊은 정적이 숨 쉬는 겨울로 떠나는 계절이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차 한 잔이 있고, 

함께 걷는 이들이 있으니 

아직 겨울의 문턱에 걸터앉아 있는 

추색 충만한 가을의 아름다운 가을빛깔을 누리는 

호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여행이 끝난 후, 

책 한 권을 들고,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타닥타닥 창가에 부딪치는 가을빗소리를 듣는다면 

더없이 아름다운 가을을 선물 받는 셈일 것 같은 

행복한 오후 같은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바삭바삭, 사각거리는 낙엽을 밟고 걷는데 갑자기 미친 듯 떠오르는 시상을 어찌할지 몰랐다. 잠시 메모장을 열었다. 미친 듯 떠오른 감성은 나중에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일단 간단간단 짧게 메모를 남기고 걸었다. 친구들과 거리가 조금은 벌어졌다. 방법은 딱 하나였다. 사진을 찍는 방법이었다. 앞서가는 그들을 그 자리에 서라 하고 그는 그들 사이를 지나며 사진을 남겼다. 덕분에 가을빛깔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 얻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상개 근린공원길에 떨어져 쌓인 낙엽을 사뿐히 즈려밟고 진한 가을향기를 담아내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으로 들어갔다. 완연한 가을빛으로 물든 공원엔 붉은빛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뒷짐을 쥐고 사부작사부작 가을로 걷고 있는 향순의 시선은 이미 가을 숲으로 떠나고 있었고, 양손을 나풀나풀거리며 사북사북 걷고 있는 명실의 눈엔 이미 사랑스러운 붉은빛 가을이 머물고 있었다. 우리의 철각 원철과 함박웃음 가득한 경희는 저만치 앞서가며 따스한 가을햇살 속으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남아있는 나뭇가지가 가늘게 흔들리며 무어라 속삭이는지 오감을 열어놓고 걷는 규철의 모습은 마치 구도자 같이 느껴졌다. 늘 환한 웃음이 가득한 미연의 얼굴엔 이미 가을로 떠난 마음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는 행복한 순간이 담겨있었다. 해마다 맞는 노랗게 물든 가을이지만 늘 경이롭기만 한 가을이 그들의 마음속으로 그렇게 들어오고 담겨 있었다. 


공원 벤치에도, 산책로에도 여기저기 듬뿍듬뿍 쌓인 가을을 한가득 마음에 담아 떠나는 그들의 발걸음은 그렇게 소소한 가을풍경과 함께 함월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울산 남구 상개동에 있는 함월산은 138m의 나지막한 산이다. 동쪽으로 태화강이 흐르고 남쪽 산자락에 울산 남구 도심을 품어 안은 산이다. 중구 성안동에도 같은 이름의 산(201m)이 있는데, 아마도 울산이 급격하게 도시화된 사정을 감안하면, 도심이 확장되기 이전엔 같은 산이었지 싶다. 함월 含月, 달을 품은 산 山이란 의미의 지명이다.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산으로 오르는 그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가을로 접어든 산은 일부 초록빛깔이 남아있었고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오를 때 들려오는 숨소리도 그리 크지 않았으며 그들의 얼굴 표정에도 힘든 기색보다는 이제 막 가을로 물들기 시작한 함월산의 풍경이 담긴 표정이었다. 


그랬다. 이때까지 만해도… 그들의 표정은 해맑았다.  


어느 만치 산을 올라왔을까 싶었는데, 덕하역에서 출발한 지 30여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향순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작은 성취감을 표출하는 대숲은 더러더러 푸른 대 잎이 남아 있었고,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으로 변한 대나무가 마치 터널처럼 이어지며 숲을 이루고 있었다. 따듯한 남쪽 땅이니 볼 수 있는 대숲 풍경이었다. 그들이 사는 춘천은 이런 대나무 숲을 볼 수 없는 곳이었기에 다소 이색적인 숲이었다. 각자 자신들만의 독특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한 장 남기고 대숲을 빠져나왔다.     


빨간 해파랑길 로고가 그려진 이정표 말뚝 위에 ‘상개 마을’이라 쓴 손글씨 안내판이 날름 올라앉아 있다. 살짝 비탈진 등산로를 따라 산을 넘어가면 상개마을에 이르는 길인 모양이다. 


상개마을(上開洞)은 개운포(開雲浦)의 위쪽에 있는 마을, 즉 상개(上開)라 하였는데, 조선 영조 이전엔 개운래리(開雲來里)라고 하였고, 이후 상개운래리와 하개운래리로 나뉘어 오늘날 울산 남구 상개동으로 편입된 마을이다.


해파랑길 표지판의 빨간색 로고는 북진방향을 파란색 로고는 남진방향을 안내한다.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등산로 표식처럼 매달아 놓은 빨간색 리본은 해파랑길을 걷는 여행자들에게 걸어야 할 방향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였으며, 낯선 길을 따라 걷는 여행자들에게 등대 같은 믿음을 주는 표식이었다.   


능선을 넘고 내리막을 만나 경쾌했던 발걸음이 다시 오르막을 만나 무거워졌다.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그렇게 걷고 또 걸어 이제는 산을 내려가나 싶으면 또다시 오르막이 이어졌다. 그런 여행자들의 심신을 배려해서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숲 속 나무에 매달은 그네는 잠시나마 즐거운 휴식을 갖게 해 주었다. 경희가 그네를 타며 함박웃음을 웃고 원철이 방자 아닌 돌쇠가 되어 그네를 밀어주며 그렇게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오르막 계단을 오른다. 숲을 집어삼킬 것 같은 그들의 거친 숨소리에 놀란 까마귀가 “까악”하며 숲을 깨우고, 미연은 귀신이라도 불러내야 한다며, 경희에게 귀신을 불러내라며 오르막 계단을 오른다. 다소 힘든 오르막 길이고 비록 헐떡거리며 오르는 계단이지만, 그런 농을 주고받으며 힘든 여정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그들의 강행군이 시작된 셈이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 만해도… 농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몸이 뜨거워지며, 무겁던 옷차림이 가벼워졌고 걸음은 한결 빨라졌다. 땀을 흘리며 몸이 풀린 셈이었다. 낮게 떠가는 하얀 구름도 파란 하늘에 기대어 덩달아 빠르게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벤치가 마련되어 있는 산 중턱쯤 되지 싶은 곳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오솔길을 따라 숲길로 들어선다. 완연한 가을빛에 자리를 내준 숲은 낯선 여행자들에게 마치 시크릿 가든이 되어 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가을로 물드는 그들의 영혼을 안아주는 것은 함월산 뿐이지 싶었다. 달이 아닌 그들의 영혼을 품고 있는 함월산이었다. 만약 영혼에 색깔이 있다면 자신 있게 ‘추색’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함월산이었다. 


두 시간 남짓 걸어 선암호수공원에 당도했다. 선암저수지를 중심으로 울산광역시 남구 선암동 476-2번지 일원에 조성된 자연생태공원이다. 과거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지어진 저수지는 오늘날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댐으로 확장되었다. 


체육대회를 했는지 경품추천 소리가 공원을 가득 메우며 왕왕거리고 있었다.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호수 산책로를 따라 한가로이 걷고 있었고, 붉게 물든 갈대는 파란 가을 하늘로 날아오르는 잠자리처럼 부채 살 같은 은빛 꽃을 한껏 바람에 실어 하늘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붉게 물든 갈대는 아마도 지나칠 만큼 정열적이었고 파란 하늘은 푸른 호수와 어우러져 더욱 화사하였다. 호수 위를 가볍게 떠다니는 구름 뒤로 모습을 드러낸 파란 하늘은 그저 그렇게 평온한 호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고, 고스란히 가을을 담아낸 선암호수공원의 예쁜 풍경과 하나가 되는 잊지 못할 순간을 또 하나의 추억으로 챙긴 그들이었다.


아름답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지사이고, 가을빛에 물들며 선물 같은 해파랑길 여행을 하고 있는 그들 또한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다분히 주관적이었지만, 그렇게 다분히 주관적인 아름다움은 그들 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하고 소중한 순간이었다. 아마도 자연을 벗 삼아 걷는 모든 이들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나 다름없는 것이지 싶었다. 


선암수변공원에서/신춘희 


오늘 이곳을 찾는 이여 안녕

그대 삶의 하루가 행복하라

불안과 걱정 따윈 떨쳐버리고 

홀로 또는 여럿이서 공원을 걸으라

건강한 두 발은 대지에 집중하라

간혹 걸음 멈추어 햇볕을 가슴에 안아라

나무 꽃 향기에 취하고 새소리에 귀를 열어라

호수의 달큰한 살내음에 코를 맡겨라

그리하여 그대 오감에 평화가 깃들거든

다시 몸을 움직여 나아가라

삶이란 바람 불고 구름 흐르듯이

자연에 순응하며 그렇게 사는 것

살다 보면 슬픔도 기쁨도 덧없음의 추억인 것을

그대가 지금 이 시간 홀로 또는 여럿이서

걷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호숫가에 잠시 앉는 것은

고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천천히 공원을 나서라

초록빛 세상이 기다릴 터이니

그대 나날의 삶이 평안하라.


선암호수공원 시비에 각자 刻字된 시를 그대로 옮겨왔다. 시 한수 읊으며 멋진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에 잠시 머문다. 호수에 담긴 물빛을 따라 해파랑길이 이어지는 선암호수공원 구간은 생태학습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민물자라를 보는 행운도 얻을 수 있고, 만산홍엽이 호수에 물드는 가을 호수의 정취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수변을 따라 이어지는 데크길이 끝나는 지점부턴 부드러운 흙 길로 이어져 맨발 걷기에도 좋은 코스이다. ‘해월당 선암호수점’ 방향으로 수변을 따라 걷다 보면 장미터널을 지나고, 선암호수공원 제1주차장 출구에서 해파랑길은 울산대공원(4.9㎞) 방향으로 이어지며 다시 산으로 오른다. 덕하역에서 약 5㎞ 지점인 선암호수공원에서 신성정으로 오르는 ‘그린나래길’ 시점이다. 이 길을 따라 신선정에 오르면 선암호수공원은 물론 울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린나래길’은 순우리말로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 같은’ 길이란 의미다.  


잠시 계단에 멈춰서 단체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산으로 오른다.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오르고 암반 위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을 오르면 신선정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산엔 신선암이라 이름 붙인 바위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안내판에 설명에 따르면 과거엔 이 산을 신선산이라 하였고, 그들이 서 있는 바위는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며 놀았다고 하여 ‘신선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바위에도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우리나라 웬만한 산에 얽혀 있는 ‘신선놀음’ 관련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그들도 그렇게 신선바위에 올라 울산 전경을 내려다보고 서있으니, 바둑은 두지 않았지만 신선놀음을 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빌딩으로 가득 채워진 시가지를 내려다보면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이 허탈함은 무엇일까? 너무나 밀도 높게 채워진 시가지 전경은 충만하게 채워진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상실감이 더 커진다. 상실감을 주제로 도시 공간을 재해석하고 있는 작은 아들 녀석이 생각나는 신선놀음이었다. 

https://www.joyunguk.com/exhibitions 



그랬다. 갈 길이 아직 멀었다. 


여기서 신선놀음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그들이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은 언제나 신선놀음 같은 것이기에 머무를 수만 있으며 무한정 머물러도 될 일이지만, 그들은 오늘 울산전망대까지 걸어야 하는 목표를 갖고 길을 나선 터라 마냥 신선암에 머무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10여분의 신선놀음을 마치고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붉게 물든 단풍도 바위까지 붉게 물들이며 가을을 재촉하긴 마찬가지였다. 발그레한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 들어앉은 경희,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원철, 버킷 햇을 반쯤 벗어 송글송글 땀이 맺힌 이마가 훤히 드러난 향순, 여전히 장난기 넘치고 발랄한 미연, 그저 조용히 빙긋한 미소로 일관하는 규철, 다소곳이 두 손을 모은 명실 그렇게 일곱 색깔 무지개 같은 그들 모두의 얼굴 표정에도 이미 가을은 바짝 다가서 있었다. 


신선암을 떠나 잠시 내려오면 휴식시설과 운동시설이 갖추어진 만남의 광장이다. 이곳에서 울산대공원까지 그리고 태화강전망대까지 약 10㎞는 남은 셈이었다. 길은 편안히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어서 맨발 걷기에도 그만인 길이지 싶다. 산을 내려오면 울산해양경찰서를 왼쪽에 두고 두왕로 방향으로 이어지고 육교를 건너 울산대공원 숲길로 이어진다. 


오르막 내리막이 수 없이 교차되며 이어진 산길이 다소 지치게 만드는 길이었다. 다 내려왔나 싶으면 또다시 오르고, 다시 내려와 이젠 그만 오르고 싶으면 또 오르막 길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노란 손수건을 이마에 동여맨 달처럼 환하게 웃는 향순의 얼굴엔 노랗게 물든 단풍이 수채화처럼 그려졌다. 그녀의 얼굴은 다름 아닌 ‘추광’이었다.


평생 변변한 벼슬을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두고두고 세세무궁 대박인 작품을 남겼지 싶은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 9 월령에서 우리나라 방방곡곡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가을 절기를 “만산 풍엽(楓葉)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밑에 황국화는 추광(秋光)을 자랑한다.”라고 노래하였다. 또한,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 杜牧은 “서리 맞은 나뭇잎이 이월(양력 3월)의 꽃보다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라고, 가을철 서리 맞아 붉게 변한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랬다. 만산풍엽이 연지를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끝없이 산을 오르내리며 땀으로 흠뻑 젖은 그들의 몸은 서리 맞은 나뭇잎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산길을 계속 오르내리고 있는 고된 여정이었지만, 온 산하가 붉게 물드는 계절을 걷는 여행은 더 없는 기쁨이었다. 몸을 적시는 땅방울만큼 커지는 기쁨이었다.


3㎞ 전방으로 다가온 울산대공원이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조금씩 지쳐가는 그들의 표정을 읽어내며 읽어낸 표정만큼 걱정이 앞서는 그였다.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 수심회 대표선수들 아닌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환하게 웃으며 화답해 주는 그들을 믿기에 남은 구간을 완주하기로 마음먹고 편한 길에선 속도를 올리고 조금 힘든 구간에서 적당히 속도를 늦추며 걷기를 이어갔다. 


경희와 향순이 앞장서서 단풍이 빨갛게 물든 공원 숲길을 그렇게 오르내리며 현충탑 입구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4시 2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고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해야 했다. 잠시 목을 축이며 이곳에서 10분을 쉬어 가기로 했다.


길은 때론 희망이지만 때론 유혹이기도 하다. 현충탑 입구로 이어지는 임도는 차량이 드나드는 대로였다. 저 길을 따라 잠시만 내려가면 남부순환도로와 연결된다. 향후 1시간 내에 일정을 끝내고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길이 눈앞에 있었다.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다시 오르막 계단이었다. 여기서 걷기를 멈추고 내일 여기서부터 걷자는 의견이 나왔다. 지도를 열어 남은 여정을 살펴보고 설왕설래 의견이 오고 갔다. 시내로 연결되는 저 길로 인하여 나온 의견이지만 사실 유혹이지 싶은 의견이 나온 셈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해가 남아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서, 마저 걷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다시 계단을 오르는 그들이었다.     


가을이 선사하는 황금빛 햇살이 숲 속을 채우며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었다. 산속으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게 그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고, 숲 속에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생명의 소리가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흘러나와 그들의 품으로 안겼다. 자연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지 싶었다. 


품고 있던 물을 줄기에 모두 내려주고 마치 제 할 일을 다한 듯 조용히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마저도 생명의 소리를 만들며, 새들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 그리고 그들의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가 어우러진 숲 속은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가을 소나타가 달빛처럼 조용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피아니스트 샬롯으로 출연한 영화 ‘가을소나타’의 스웨덴의 가을숲이 그랬던 것 같다.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의 영화 ‘가을소나타’는 샬롯에 대한 원망과 애증을 안고 목사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던 샬롯의 딸 에바가 어머니 샬롯과 7년 만에 재회하며, 두 모녀가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용서와 화해의 편지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마치 숲 속을 거니는 것처럼 차분하게 감정의 숲을 거닐며 이야기를 그려 나가는 영화다.        


그에겐 어쩌면 자신만의 평화를 찾아 나서는 여행인지도 모를 해파랑길 여행이었다. 가을 숲으로 들어와 무디고 무뎌진 가슴에 성찰의 화두를 던져 자신을 바로 응시하고 찾아 나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갈망이었지 싶었다. 마치 영화 ‘가을소나타’처럼.


누군가 가지런히 쌓은 돌탑이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숲을 지키고 있었다. 돌 하나하나마다 어떤 소원이 담겨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는 돌탑이었다. 산에 오르면 보게 되는 돌탑은 늘 애잔했다. 울산대공원으로 이어지는 길 옆에 쌓아 놓은 돌탑 또한 그렇게 애잔했다. 

울산대공원

공원이라 길은 험하지 않을 것이란 그들의 기대와 달리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울산대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안내판 지도를 살펴보며 남은 여정을 확인하는 명실과 원철이 ‘고래전망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노란색으로 표시된 맨발 등산로에 주목했다.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함께 원철의 손끝을 따라가는 명실의 눈동자엔 조금은 걱정스러움도 묻어났다.  에어건을 이용하여 흙먼지를 불어내며 행장을 정비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 규철과 미연, 경희였고, 향순은 사부작사부작 공원을 산책하듯 걷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를 열어 코스를 확인하고 시간을 확인하며 이리저리 자를 들이대 보는 그였다. 내려갈 거면 여기서 내려가는 게 맞지 싶은 지점이었다. 시간은 오후 4시 45분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공원은 이미 한적하였다. MTB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벤치에 앉아 가을을 원 없이 느끼고 있는 듯한 사람, 그리고 노랗게 물든 가을만 머물고 있었다. 이미 그렇게 늦은 시간이었다. 공원을 벗어나 10시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기를 이어갔다. 그만그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을 따라 이예로를 횡단하는 과선교를 건너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산길이 끝나는가 싶던 길 끝자락에서 다시 문수로를 횡단하는 과선교를 건너고 삼호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접어든다. 과선교 통과 시간은 오후 5시 15분이었다. 


솔마루 산성을 지나 삼호산(125.7m)으로 들어서며 오후 5시 30분이 넘어서자 어둠이 숲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말이 없어졌고 너나 할 것 없이 표정이 같아지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친구들을 앞질러 계단을 내려오는 친구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봤다. 반응이 전과 같지 않았다. 규철의 표정은 애써 고통스러움을 참고 있는 듯했다. 규철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헤드랜턴을 켜고 계획에 없던 야간산행(?)을 이어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계획은 없었지만 막판 30여 분가량은 야간산행이 될 것을 예상했었다. 그는 경희와 원철을 앞세우고 규철과 함께 대열 후미에서 걸었다. 헤드렌턴으로 어둠이 내린 길을 비춰가며 그와 함께 그렇게 천천히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솔마루정에 당도했다. 그는 수년 전 하루에 치악산을 올랐다 내려와 다시 감악산에 올랐다 하산시간이 늦어져 야간산행을 한 바 있었다. 무서웠다. 컴컴한 숲을 혼자 걷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이미 경험을 통해 잘 아는 그였다. 규철은 아마도 난생처음 야간 산행을 했을 것이고, 속으로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 나오는 욕을 억지로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삼호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만만치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욕이 나온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길이였다. 이미 어둠이 길을 집어삼킨 후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아무튼 그렇게 야간으로 이어진 여정으로 예정에 없었던 울산 야경을 보고 태화강전망대로 내려오니 오후 6시 20분이었다. 이동거리 15.8㎞, 소요시간 5시간 41분, 휴식시간 30분, 평균속도 3.1㎞/h였다. 난이도 보통구간의 경우 평균속도가 4.3~4.5㎞/h인데 비하여 평속 3.1㎞/h였으니 기록상으로만 봐도 상당히 힘든 코스였다.   


그렇지만, 해냈고… 낙오자 없이 완주한 해파랑길 6코스였다.


살짝 비까지 뿌리는 산길을 무사히 내려와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남산로변의 태화강 동굴피아 주차장이었고, 마지막 남은 길은 건널목을 건너 주유소를 오른쪽으로 두고 태화강 전망대로 이어졌다. 그렇게 해파랑길 6코스 스탬프를 찍고 나니 오후 6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원철, 향순과 함께 택시를 타고 덕하 시장으로 출발했다. 다른 친구들은 숙소 체크인과 저녁식사를 할 식당을 알아보기로 하고 차량회수를 위하여 떠났다. 


야간산행으로 이어진 해파랑길 6코스를 전체적으로 요약하면, 함월산에서 선암호수공원, 울산대공원, 삼호산으로 이어져 태화강전망대까지 S자 형태를 그리며 이어졌고, 거의 전부 길은 도심을 벗어나 숲과 산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낮은 산이었지만 산은 산이었다. 크게 3개의 산을 오르내린 코스여서 중간중간 거듭된 오르막 내리막길로 막판엔 다소 지치는 길이었다. 


덕하 시장으로 가는 택시에서 잠시 오늘 걸었던 해파랑길 6코스를 전체적으로 요약하는 메모를 남기고 오는 길에 케이크도 하나 사서 친구들이 기다리는 울산 중구 학성로 41 휴모텔로 향했다

숙소 근처 거리를 걸어 찾아낸 식당 울산 중구 중앙길 85 '중앙뒷고기'에서 고기와 소주 한 잔으로 고된 하루 일정을 말끔히 털어내고 밤 10시가 임박한 시간에 숙소로 들어와 사랑하는 명실의 생일 축하 케이크에 촛불을 댕기고 와인을 따랐다마침 그날이 생일이었던 명실이 이제껏 생일 중 아마도 가장 힘든 날이었지 싶어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이었다


와인잔을 기울이며 정말 고생스러웠다라는 말을 덧붙인 명실, 그럼에도 즐거웠다며기억에 남을 거라며와인이 맛있다며잊지 못할 고생이었다며기분은 그 어느 때 보다 좋고 상쾌하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칭찬이 담긴 말이 너무나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thebcstory


#해파랑길 #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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