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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Mar 13. 2024

소쇄한 바람과 솜털 같은 꽃이 되어 걷는 해파랑길

십리 대숲 태화강변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 7코스


시간도 절약할 겸 숙소에서 별식을 해 먹기로 한다. 원철이 버너에 불을 붙이고 명실이 라면을 끓인다. 침대에 걸터앉은 규철이 표정은 어제의 야간산행 피로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듯 보였다. 그런데, 여사친들은 꿀잠을 잤는지 하나같이 쌩쌩했다. 무슨 이유일까? 간 밤에 뭔 일이 있었던 걸까? 


간밤에 별일은 없었고, 이유는 남녀의 근육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여성은 30~35%, 남성은 40~45%가 근육이다. 남성의 근육은 고산소 운동에 적합한 섬유 유형이 여성보다 많고, 여성은 저산소 운동에 적합한 섬유 유형이 남성보다 많다. 이러한 차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무산소 대사능력이 높아 최대 출력은 높으나 높은 출력만큼 피로저항도가 낮고 회복이 느리다. 여성의 근육은 반복적인 수축으로 피로저항도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높으며 회복 또한 빠른 편이다.  


아침식사를 숙소에서 해결하고 오늘 걸을 7코스 출발점인 태화강 전망대를 향해 기동을 한 그들은 태화강 동굴피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행장을 정비한다. 동굴피아 주차장은 주차비가 무료여서 해파랑길을 걷는 이들에겐 매우 유용한 주차장이다.


태화강 전망대가 있는 태화강변에서 젊은 사람들처럼 오른쪽 다리를 올려가며 출발 컷을 찍고 길을 나선다. 다리를 올리는 포즈가 조금은 멋쩍었는지 사진을 찍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원철과 규철은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다리를 올리는 둥 마는 둥 어정쩡한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뒤집어보나 까보나 웃을 수 있었으니 출발은 좋은 셈이었다. 강 건너 뒤로 보이는 푸릇푸릇한 십리 대숲과 미소로 가득한 그들의 얼굴이 꽤나 많이 닮았지 싶었던 해파랑길 7코스 여행의 유쾌한 출발 순간이었다.


바람이 살살 어루만지는 수면 위엔 잔 물결이 일렁였고 하늘은 그리 맑지 못했다. 어제 솔마루정에서 내려올 때 만났던 비가 아직 하늘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대숲 뒤로 뾰족하게 올라온 고층 아파트가 강으로 내려오는 구름을 가까스로 떠받치고 있는 듯 보였고, 조금은 비를 품고 있는 흐린 구름이 꿈처럼 하늘에 머물고 있었다. 건너편 강변 십리 대숲길을 걷는 그저 몇몇 사람들만 눈에 띄었을 뿐 주위는 그저 조용하고 차분하게 느껴졌다. 제방을 덮은 풀숲은 조금씩 갈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대숲은 여전히 푸름 주의보를 발령하고 있었다. 시간이 잠시 멈춘듯한 고요함으로 잠겨 있는 이른 아침 태화강변 풍경은 바람의 노래만 들려주고 있었다. 아무튼 두 쪽 날 것 같은 하늘은 아니었고, 땅 역시 갈라질 것 같지 않았다. 한마디로 더 바랄 게 없는 좋은 날이었다.  


어제저녁부터 내린 비로 진홍빛으로 축축하게 젖은 강변 자전거길은 발밤발밤 걷는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나선다. 늘 푸른빛인 태화강변의 대숲은 유난히 맑고 깨끗해 보였다. 왜 기개 있는 옛 선비들이 대나무를 닮고 싶어 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날이 선듯한 진한 푸른빛이었고, 대숲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더없이 소쇄(瀟灑)했다.


오늘 일정은 태화강변을 걸어 염포산 입구까지 공식거리 17.3㎞, 소요시간 5시간 30분이 예상되는 해파랑길 7코스이다. 


향순, 경희, 명실이 앞장을 서고 규철과 원철, 미연이 뒤 따라가며 걷는다. 그는 태화강변을 걷는 친구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며 그들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길은 젖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아침 산책을 그렇게 시작했다. 집에서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것을 어찌 용케 알았는지 동글동글 밤송이같이 통통한 포메라니안(Pomeranian) 한 마리가 미연의 뒤를 따라 통통거리며 따라 걷고, 그 뒤로 엷은 노란색을 띠기 시작한 강변의 가을 풍경이 팔랑팔랑 따라 걷는다. 발길을 멈춰 세우기에 충분했다. 강변 습지엔 여전히 푸르름을 잃지 않은 환삼덩굴과 가시박 덩굴이 뒤엉켜 덩굴손을 빳빳이 세우며 용호상박의 기세로 한창 세 대결 중이었다. 


흰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태화강을 따라 바다로 내려가고 있었다. 언젠가 대청봉에 오를 때 구름 속을 걸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중청 대피소에서 봤을 땐 분명 구름이었는데, 구름 속으로 걸었을 때 본 것은 희뿌연 짙은 산안개였다. 안개와 구름은 사실 같은 것인데, 산에 머물러 있는 구름은 안개가 되고 하늘로 올라간 안개는 구름이 된다. 저 하늘에 걸려있는 구름장으로 걸으면 어린 시절 꿈꿨던 구름 위를 걸을 수 있으려나? 두터운 구름 두께로 보아 어른 한 사람 정도는 넉넉하게 걷고도 남음이 있을 법한 구름인데…     


그랬던 주변이 대숲과 습지를 벗어나자 갑자기 가을빛으로 바뀌었다. 빗물이 흘러드는 도랑을 건너는 데크길부터였다. 용호상박의 기세로 대치하던 가시박과 환삼덩굴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고, 흐드러지게 핀 갈대가 가을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숲은 바통을 붉게 물드는 활엽수에게 넘겨주었고, 가랑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갈잎나무는 드문드문 날가지를 드러내며 이미 수관을 닫고 물을 뿌리로 모두 내린 듯했다. 사람 키만큼 자란 버들강아지도 갈색으로 변하며 진한 가을향을 내뿜고 있었다. 태화강변에서 바라보는 강 건너 마을의 풍경은 더욱 붉은 가을색으로 불타고 있어 마치 강 건너 불구경이 되는 듯했다. 이곳에 그들이 있다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닌 한 사람의 꿈에서 시작된 일이었기에 더욱 소중한 순간이지 싶었다. 그렇게 경희의 꿈은 모두의 꿈이 되었고 함께 꾸는 꿈이 되었다. 


투수콘으로 포장된 길을 따라 사뿐사뿐 걷는 그들의 발걸음이 상쾌하고 경쾌해 보였다. 풀숲으로 가득 덮인 강둑아래 물 위로 붉은 가을이 드리워진다. 물빛을 잔뜩 머금음 가을이 물속에서 일렁거린다. 길도 강물도 사람도 모두 가을풍경이 된다. 벌겋게 타오르는 강아지풀 뒤로 조금은 푸른빛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황금빛 잔디밭이 이어지고, 붉다 못해 빨갛게 물들어 가는 갈잎나무 뒤로 보이는 대숲은 여전히 푸르고 또 푸르렀다. 이런 걸 필시 대조적이라 해야 맞지 싶은데, 그저 대조적이지만 않아 보이는 신통방통하게도 묘하게 조화로운 풍경이다. 늘 그렇지만 자연은 그저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을… 늘 언제나 오묘함을 담고 있다는… 세월이 가고 딱 나이 먹어가는 숫자만큼 아름다움이 커지고 짙어진다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모를 무의식적인 믿음이 생기는 자연이다. 


온통 붉게 물든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강물이 지나치게 매혹적이었는지 사람들이 사는 마을도 덩달아 추색으로 물들고, 봉긋하게 솟은 마을 뒷동산도 함께 가을로 가자며 태화강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길을 걷는 여행자들의 가슴엔 이미 바람에 흔들리는 촘촘한 갈대 같은, 커피잔을 가득 메운 촘촘한 거품 같은 설렘이 보글보글거리고 있었다. 가을 정취에 한껏 도취되어 걷던 경희가 끝내 황금빛깔로 변하는 금강아지풀 이삭에 이끌려 까락 사이로 들어간다. 그녀의 허리 높이까지 자란 금강아지풀이 화들짝 놀라며 억센 까락을 곤두세우고 마지못해 자리를 비켜준다. 


추색 가득한 길을 걷고 있는 향순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가을로 떠나는 소녀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걷고 있을지 모를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그녀의 뒤에 실비 바르땅(Sylvie Vartan)의 샹송 ‘마리짜 강변의 추억(La Maritza)’의 멜로디가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에 깊어 가는 태화강변의 가을 이야기가 담긴다. 풀숲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영롱한 지난 추억이 그녀의 사진첩에서 나와 공단같이 검은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방울방울 맺힌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 가을 속으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엔 지난 추억의 그림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묵은지처럼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추억을 주섬주섬 꺼내며 금강아지풀처럼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엔 그렇게 또 다른 가을이야기가 담기는 중이었다. 


경희의 시선이 멀리 태화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 태화강 유역을 따라 발전해 온 울산의 젖줄과도 같은 강이 그녀들의 환한 미소에 담기는 순간이었다. 


울산 서쪽의 가지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의 울산만으로 흐르는 태화강은 울산의 어제와 오늘을 묵묵히 지켜보며 흐르고 있는 강이다.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일찍이 태화사(太和寺)라는 사찰을 이곳에 세웠다. 당시 자장율사가 세운 호국불교 성지는 양산 통도사(梁山 通度寺)와 오대산(五臺山) 월정사, 그리고 태화사였는데, 불국정토를 꿈꾸며 세운 세 곳의 사찰엔 중국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세 몫으로 나뉘어 봉안되었다. 지금의 동강병원 일대인 반탕골에 세웠던 태화사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든 지적도에 사지(寺址)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는 아파트와 병원 등 급격한 도시화로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시 태화강가에 세웠던 태화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1902년 발간된 울산읍지)되었으며, 태화교 사거리 인근 태화강변에 복원된 태화루는 2014년 5월 준공되었다. 당시 대곡천이라 불렸던 이름은 태화사가 창건되며 태화강이라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태화는 울산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때의 일이다. 


지금의 태화강 모습은 2004년 12월 십리 대밭 인근에 태화강 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부터 2019년 7월 12일 국가정원으로 지정되기까지 이루어진 새롭게 정비된 모습이다. 과거 ‘잘살아 보세’로 시작한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었다. 임해 중공업 단지가 들어서며 공업용수 수요가 급격히 상승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잘살아 보기 위해 폭발적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심각한 수질오염이 발생되었으며, 급기야 물고기 집단 폐사가 수차례 반복적으로 발생하기에 이른다. ‘잘살아 보세’로 추진했던 경제개발계획으로 사람은 물론 물고기조차도 살 수 없는 최악의 하천으로 오염된 태화강은 대한민국의 경제개발과 산업발전에 따른 환경오염의 상징과도 같은 ‘죽음의 강’이었다. 


뒤늦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깨달은 시민사회단체와 지방자치단체의 ‘태화강 살리기’로 2000년대 들어서며 하수처리 시설을 확충하고,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생활오폐수 분리배수가 이루어졌다. 정기적인 오염물질 제거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살아나기 시작한 태화강에 새끼 연어 방류, 수변생태계 복원과 자연친화적인 하천정비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자연환경복원 노력이 결실을 맺으며 연중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은어, 갈겨니, 버들치, 연어, 오리, 백로, 논병아리, 수달, 노랑부리백로와 물수리, 솔개, 말똥가리 등 멸종 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을 포함하여 다양한 어류와 조류 등 약 10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명의 강으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자연환경보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조되는 태화강의 오염과 복원 사례는 현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주제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태화강의 오염과 복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자연환경보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우수한 사례이자 모범이라 할 수 있지 싶다. 태화강을 따라 이어지는 해파랑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겐 또 하나의 축복과 같은 것이었고,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깨달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축복은 부지런히 지키는 자에게 속하는 보상이며, 이는 결코 수월하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교훈을 얻은, 추광으로 반짝거리는 태화강변에 머물고 있는 그들에겐 또 다른 추억이 아로새겨졌다. 


경희와 향순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금강아지풀이 흐드러진 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소곤소곤 가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어서 도착한 명실과 미연이 함께 이야기를 보탠다. 순간 그녀들의 웃음 속에 다시 환하게 피어나는 가을꽃이다. 저리도 행복한 모습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싶었다. 어젯밤 비로 고인 물 위에 그녀들이 만들어낸 가을꽃이 만개하고, 한 때 자취를 감췄던 멸종위기종인 황새가 희고 검은 날개를 활짝 펴고 물 위로 우아하게 날아오른다. 물 위로 드러난 자갈밭에 백로 한 쌍이 한가로이 털을 고르며 노닐고 있는 태화강의 가을 풍경으로 그녀들의 가을꽃이 그렇게 국화송이처럼 만개하고 있었다.  


태화강 습지엔 왜가리, 백로, 황로, 해오라기, 흰날개해오라기, 큰고니, 큰기러기, 물닭, 쇠물닭, 두루미, 황새, 흰목물떼새, 꼬마물떼새,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뿔논병아리, 알락오리, 혹부리오리, 홍머리오리, 원앙, 가마우지, 흰죽지, 딱새, 물총새, 직박구리, 방울새, 참새, 박새, 노랑할미새, 백할미새, 알락할미새, 검은등할미새 등 셀 수없이 많은 텃새와 철새들이 찾아오는 생태 하천이다.  


동남아 등지에서 무더위를 피해 3월부터 9월까지 울산을 찾는 여름 철새와 11월부터 4월까지 몽골, 시베리아 등지에서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겨울 철새가 서식하며 3~4월엔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를 모두 볼 수 있는 도심 속 철새 도래지이다. 대표적인 여름 철새로는 물총새와 중대백로, 황로 등이 관찰되고, 흰죽지와 물닭, 알락오리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다. 철새였지만 텃새로 눌러앉은 천연기념물 원앙이나 흰뺨검둥오리 등 해마다 찾아오는 철새들의 종과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2021년 울산시 자료에 따르면, 79종 13만 5000여 마리가 관찰되었고 이듬해엔 90종 14만 3500여 마리가 태화강에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잠시 머문 삼호교 인근 습지는 사계절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삼호철새공원’으로 '삼호 버드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곳이다. 


구) 삼호교는 울산 중구에서 남구로 이어지는 태화강에 건설된 최초의 다리로 1924년 5월 22일 준공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다. 해파랑길은 강변 산책로를 벗어나 잠시 남구 무거동에서 중구 다운동으로 이어지는 구) 삼호교를 건너 태화강 둔치로 이어진다. 구) 삼호교 아래로 삼호교와 위로 북부순환도로가 이어지는 신) 삼호교가 건설되어 있다. 현재는 보행자 전용 교량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삼호교의 난간과 상판을 떠받치고 있는 교각의 구조와 형태만으로도 오래전에 건설된 교량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다리다. 


구) 삼호교를 건너는 그들이 다리 위에서 만세를 부르며 서있다. 흰구름과 파란 하늘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조금씩 서로의 색깔로 물든 하늘에 천진스럽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이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다. 마침 태화강을 지나던 거센 바람이 대숲을 흔들어 깨우며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었고, 대숲에선 거친 파도소리가 쏴아 쏴아 소리를 내며 밀려왔다 빠져나가길 거듭하고 있었다. 차량들이 줄지어 이어지는 삼호교 다리 아래 습지엔 일렁이는 황금빛 억새 물결이 반짝이며 가을의 마법으로 물드는 노랫소리로 가득하였고, 대숲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엔 소쇄한 대숲 향기에 이끌려 나온 시민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살랑살랑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에 그려진 그들의 얼굴엔 마치 흰구름 가득한 하늘에 설핏설핏 드러나는 파란 하늘처럼 동화 속 이야기 같은 행복한 순간이 그대로 묻어나며 사이좋게 서로를 물들이고 있었다. 


해파랑길은 신삼호교 아래 산책로를 따라 다운 자전거연습장으로 이어지고 대숲의 노랫소리로 가득한 태화강변 산책로로 이어진다. 잠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머물고 있는 대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남긴다. 그들의 웃음 가득한 얼굴엔 이미 대숲만큼이나 상큼하고 시원한 녹음이 물들어 있었다. 어린아이 마냥 대숲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추억을 담고 있는 그들의 해맑은 모습은 푸릇푸릇한 대숲에 가득한 맑고 깨끗한 향기처럼 상큼한 색감으로 자신만의 추억을 담아내며 대숲에 머문 바람과 함께 그림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없이 머물고 싶은 대숲을 간신히 떠나는 그들의 발걸음은 다시 산책로로 들어선다. 대숲에 남겨둔 각자의 색감이 담긴 바람이 훗날 다시 대숲을 기억하게 할 것임을 알기에 바람처럼 머물다 떠나는 대숲이었다. 태화강을 오른쪽 곁에 두고 걷고 있는 경희의 발걸음이 한층 가볍고 경쾌해 보였다. 삼호교 아래를 지나는 규철과 미연, 명실, 원철의 뒷모습에 대나무 몇 그루가 어우러지며 그림처럼 느껴졌다. 노란 손수건을 쓴 미연의 입술이 푸른 대숲과 대비되며 유난히 붉게 보였다. 


미연이 쓴 노란 손수건을 보며 잠시 30년 전 고등학교 음악실로 되돌아가는 그의 머릿속에 기다림의 서사가 담긴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Tie A Yellow Ribbon’이란 노래를 가르쳐 주었던 풋풋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지금보다는 훨씬 더. 


당시 아이들에겐 정서적 탈출구나 다름없었던 그는 어떤 노래든 노래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새 노래를 가르칠 때마다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Tie A Yellow Ribbon’ 이야기는 법학자 커티스 보크(Curtis Bok)가 쓴 'Star Wormwood'라는 책에 나오는 버전과 오천석 박사의 ‘노란 손수건’ 버전이 있는데,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교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나름대로 각색을 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업을 하였던 시절이었고, 아이들은 새 노래를 배우기 전에 듣게 될 이야기를 은근 기대하는 편이었다.  


아무튼 ‘Tie A Yellow Ribbon’ 노래에 얽힌 이야긴 오랜 세월 감옥생활을 하고 가석방으로 출소하는 죄수의 이야기다. 오랜 수감생활 끝에 가석방이 결정되고, 수감되며 헤어진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을 용서한다면 동구 밖 커다란 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어 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나무에 노란 리본이 걸려있지 않으면 고향을 지나쳐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살겠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가석방 날이 되어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주인공은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이런 사연을 털어놓게 된다. 주인공의 애틋한 사연을 들은 사람들은 차츰 고향 마을이 가까워 오자 함께 가슴을 조리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노란 리본이 걸린 나무를 기대하는데…, 세상에! 나무엔 하나도 아닌 수없이 많은 노란 리본이 꽃처럼 걸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루도 주인공을 잊지 못했던 아내가 노란 리본으로 가득한 나무 아래서 주인공을 기다렸다는 이야기이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는 1973년 미국 팝 뮤직 그룹인 토니 올랜도 & 던(Tony Orlando & Dawn)의 노래로 1973년 빌보드 차트에 4주 동안 1위에 머물렀던 히트송이다.

https://youtu.be/hyGpSs1Y75I?si=4gyH-E0RninkwQVm

물론 이 음악이 만들어진 실화적 배경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노란색 리본은 언젠가부터 그리움과 기다림의 서사가 담긴 정서로 다가온 것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다. 


노란 리본의 유래는 청교도 혁명 당시 의회파 소속의 군대에서 사용된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청교도들에 의하여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노란색 리본'에 관한 이런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구전되었는데, 남북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목에 노란 손수건을 맨 여성의 이야기부터, 미 기병대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그와 관련된 군가와 행진곡이 남아있다. 이후 신문 칼럼니스트인 피트 헤밀(Pete Hamill)의 ‘Going Home’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노란 리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선 1987년 아버지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임진각 근처 소나무에 400장의 노란 손수건을 내걸었던 동진호 선원의 딸 최우영 씨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기다림의 서사로 각인되었고, 최근 세월호 사건으로 더욱 우리에게 그리움과 기다림의 서사가 담긴 이야기가 되었지 싶다.


태화강 대숲에 머물던 바람은 그렇게 그리움이 되어 미연이 머리에 쓴 노란 손수건에도 머물고 있었다. 


가까스로 물 위로 드러난 풀숲에 깃든 백로가 길게 늘인 목을 주억거리며 태화강변으로 깃드는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있었다. 어느 것이 구름이고 어느 것이 하늘인지 구름과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진 하늘로 깃든 구름이 태화강으로 낮게 내려앉으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원철이 구름처럼 웃었고 하늘처럼 웃었다. 늘 명료하기만 했던 하늘과 구름이 오늘따라 서로에게 물들며 불분명했다. 원철의 웃음이 구름 같기도 했고 하늘 같기도 했다. 파란 하늘로 깃든 구름이 나란히 걷는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지고, 철새에서 텃새가 된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한창 먹이활동 중인 태화강으로 따스한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이미 점심때가 지났다. 겨우 물 위로 드러난 자갈 위에서 부리로 털을 고르는 것으로 보아 민물가마우지 무리는 아마도 점심식사를 마친 듯했다. 헤엄쳐 다니다가 잠수를 하여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는 민물가마우지는 텃새화되는 개체수가 점차 늘어나며 물고기 씨를 말릴 정도로 먹이활동이 왕성한 조수이다. 삼삼오오 태화강변으로 나온 사람들의 도란거리는 이야기 소리와 민물가마우지 울음소리가 섞여 간간히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산책로를 걷는 그들도 서서히 시장기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태화강 둔치 전용주차장 앞에 마련된 정자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원철과 경희가 의자에 앉으며 주고받는 농담으로 한바탕 친구들을 웃게 만들었다. 원철과 경희의 재담으로 전날 야간산행까지 감행하며 완주한 해파랑길 6코스 여독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휴식이 되었다. 울산 내부순환도로인 이예로가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국가정원교 아래에 있는 쉼터이다. 


이예로는 조선 전기의 외교관 충숙공(忠肅公) 이예(李藝)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로명이다. ‘국가정원교’는 2010년까지 이곳의 옛 지명을 붙여 ‘오산대교’로 불렸다. 이후 2020년 초까지 ‘이예대교’로 불리다 개통을 앞두고 국가정원교로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가정원교의 개통 지연으로 보행자를 위한 인도가 ‘은하수 다리’로 명명되며 2020년 6월 25일에 먼저 개통되었다. 자동차 전용교량 하부에 보행자를 위한 인도를 설치한 국내 최초의 사례로, 태화강과 접한 중구와 남구를 잇는 인도교이다.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했던 휴식을 마치고 국가정원교 옆으로 조성된 데크길을 잡아 십리 대숲 산책로로 들어선다. 십리 대숲의 일부구간인 이 길은 ‘십리 대숲 은하수길’로 은하수정원이 조성된 대숲을 이르는 명칭이다.  

십리 대숲은 태화강변을 따라 약 4km에 달하는 산책로에 조성되어 있는 대숲으로 그들이 이미 지나온 무거동 삼호교부터 동강병원에 이르는 산책로이다. 문헌 기록을 참고하면 고려시대부터 이 지역에 대숲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근대에 들어서며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홍수 범람을 막기 위해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산풍엽으로 물든 건너편 삼호산 북사면과 마주한 태화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대숲은 꽤나 이색적인 산책로였다.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다가 아닌데 들리는 파도소리의 출처는 다름 아닌 대숲이었다. 조금 전부터 거세지기 시작한 바람이 대숲에 머물고 있었다. 파도소리를 따라 대숲으로 들어섰다. 바람이 대수일 수 없는 그들에겐 대숲에서 들리는 쏴아 거리는 소리 또한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대숲에 마련된 의자에 모여 앉아 삼호산 자락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머문 바람이 다시 대숲을 흔들며 내는 소리는 영락없는 파도 소리였다. 대숲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세상을 온전하게 묘사할 수 없는 언어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소리였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나 자연이 사물을 비추어 모습을 드러내는 빛이나 결코 온전히 사물을 표현하고 드러낼 수 없음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닫는 곡진(曲盡)한 순간이었다. 세상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것은 언어나 빛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바람이 머문 대숲과 대숲에 담긴 바람에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어떤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그저 한 편의 시(詩)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태화강 십리 대숲

바람은 늘 대숲에 머문다/조영환



바람은 늘 대숲에 머문다.

늘 한아름 바람을 품어 안은 대숲엔 

짙은 대나무 향기 묻어나는 바람의 노랫소리가 머물고

대숲으로 깃든 바람의 추억이 머문다.


바람은 늘 대숲에 그렇게 머문다.

바람의 속삭임을 거부하지 않고 품어 안은 대숲엔

길 떠난 나그네의 옛이야기가 추억이 되어 머물고

대숲으로 깃든 추억은 꿈처럼 머물며 쉬어 간다.


바람은 늘 대숲에 그렇게 머문다.

가지산 쌀바위를 떠난 바람을 살포시 품어 안은 대숲엔

태화강을 따라 바다로 떠나는 바람의 이야기가 머물고 

대숲으로 깃든 태화강 이야기는 바람이 되어 바다로 떠난다.


바람은 늘 대숲에 그렇게 머문다.

늘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천하를 주유하는 바람을 품어 안은 대숲엔

때론 휘어지지만 부러지지 않는 옛 선비의 기개가 머물고

대숲으로 깃든 선비의 기개는 푸른 바람과 함께 내일로 떠난다.


바람은 늘 대숲에 그렇게 머물다 

때론 노랫소리로 

때론 추억으로

그리고 때론 이야기가 되어 

더러는 흩어지고 

더러는 바다로 그렇게 떠난다.   


*가지산 쌀바위는 태화강의 발원지임.


경희와 미연이 만회정(晩悔亭)을 지나 붉게 물드는 가을로 걸어 들어간다. 물들고 물들다 이내 떨어진 낙엽조차 거룩해 보이는 계절 가을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들의 뒷모습에 수북수북 갈잎이 쌓였고, 대숲에 머물던 소쇄한 바람이 머물렀다.  


그들이 걷고 있는 십리 대숲 길은 예전에 오산(鰲山)이라 불렸던 지역으로 십리 대숲이란 명칭이 사용되기 이전엔 오산대밭이라 불렸던 곳이다. 자라를 뜻하는 자라 오(鰲) 자를 땅 이름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 지형이 자라모양의 언덕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보인다. 이곳에 있는 만회정은 조선 인조 22년 28세의 나이에 무과로 급제한 울산 출신의 무신으로 안동 김해 등지의 지방관을 역임했던 만회당(晩悔堂) 박취문(1617~1690)이 건립한 정자인데, 소실된 정자를 최근 태화강 국가정원을 조성하며 새로이 복원하였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대나무를 많이 닮았지 싶었다. 대나무처럼 늘 푸른 마음이 대나무의 상록미를 닮았고, 곧게 위로 뻗으며 자라는 직선미 또한 바르게 살아가는 그들을 닮은 듯했다. 그렇지만 때론 휘어지고 다시 되돌아오는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는 대나무의 탄성미 같았고, 세상만사 욕심을 부려 되는 일 없다며 어느 정도 속을 비워내며 사는 삶의 지혜 또한 속이 빈 대나무의 공간미 내지 여백미 같았다. 그리고 한 뼘 정도 되지 싶은 대나무의 매듭 같이 매사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아쌀한 성정 또한 그랬다.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소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들이다. 


오늘 아침 출발지였던 태화강 전망대 모습이 설핏하게 눈에 들어온다. 거센 바람에 모자를 더욱 눌러쓰며 걷는 향순, 모자를 아예 벗어버린 원철, 옷매무새를 고치는 규철, 대숲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화답하듯 두 팔을 벌려 환호하는 미연을 따라 길을 나서는 바람은 그들과 함께 대숲을 따라 걸었다. 그들과 함께 비까지 동행으로 삼으려는 바람이 거세게 대숲을 흔들었다. 명실이 꺼내 든 배낭 커버가 거센 바람에 펄럭여 우연찮게 풍향을 가늠할 수 있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걷는 등뒤에서 불어와 동해로 떠나는 바람이었다. 그들의 배낭에 매단 해파랑길 원정대 리본이 사그락사그락 자지러지게 팔락거렸다. ‘대박!, 완주! 해파랑길 수심회 발바리’라고 쓴 3차 원정을 준비하며 만든 리본도 그렇게 바람을 따라 길을 나선 셈이었다. 


바람이 거세 지며 파도소리도 더 거세지고 있었다. 대숲과 그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싸르락거렸다. 모자를 눌러쓰게 만들었고 두 팔을 벌려 환호하게도 만들었다. 리본을 팔락거리게 만들었고 배낭 커버가 날개 하였다. 바람은 그렇게 세상 만물을 움직였고 그들 마음으로 깃들기 시작했다. 대숲에서는 쏴아 거리는 소리는 물론 대나무끼리 부딪치며 내는 티격태격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산책로 방향으로 한껏 휘어져 내려오는 대나무가 허리를 잔뜩 굽히며 바람을 달래 보았지만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름까지 몰고 나타났다. 


태화강 전망대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 지점까지 이동한 그들은 잠시 바람을 피해 대숲으로 몸을 숨긴다. 그와 경희가 푸른 대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좌우로 빼곡한 대나무 숲을 걸으며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대하며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한다는 십리 대숲 산책을 이어가는 그들이었다. 대숲 밖에 비하여 안쪽의 산책로는 비교적 잔잔한 바람만 머물고 있었고, 오른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멋쩍어하는 십 대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는 그녀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만 머물러 있었다. 원철이 얼굴을 동그랗게 감싸며 취한 포즈로 순간 웃음바다가 되어버린 대숲엔 그렇게 그들의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하였다. 대숲으로 들어선 규철도 역시 멋쩍어하며 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며 대숲으로 깃든 추억의 한 자락을 품어 안는다. 느티마당을 지나 십리 대숲 산책로를 따라 해파랑길 여행을 이어가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오히려 거센 바람이 멋쩍어할 지경이었다. 사정이 이 정도 되면 구름과 하늘의 경계가 모호했듯이 그들이 바람인지 바람이 그들인지 모를 지경이지 싶었다.  

         


십리 대숲 산책로를 벗어난 그들은 이제 금빛 은빛 물결로 가득한 억새 군락지로 들어선다. 스러진 다홍빛 억새 잎이 때론 바스락거리며 귀를 간지럽히고, 때론 바사삭 거리며 소스라치게 운다. 그리고 때론 사락사락거리며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내는 억새밭이다. 가을로 접어들며 갈변한 억새가 축제마당에서부터 이어지는 억새밭은 동해로 흐르는 태화강을 따라 십리대밭교, 태화교, 번영교와 학성교를 거쳐 명촌교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억새 군락지다. 


반짝이는 은백색 꽃차례가 하늘거리는 은빛 물결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정이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르지 않았기에, 말보다 앞서 일단 억새숲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행보는 그저 자연스러운 것임을 말해 뭣하랴. 억새만큼이나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이 억새밭으로 깃들어 추억을 건져 올리고 있는 모습은 가을을 은빛으로 물들이는 억새 꽃차례만큼이나 반짝거리는 풍경이 되었다. 


태화강 억새밭은 그냥 보기에도 상당한 규모였다. 거의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인 억새는 강가, 저지대 습지에서 흔하게 자생하는 풀이다. 억새 숲으로 들어간 그들의 키를 훌쩍 넘긴 것으로 보아 키가 2~2.5m는 되지 싶었다. 태화강 습지에 자생하는 억새는 물억새인데, 껍질은 까락이 없어 그들이 억새 숲으로 들어가도 깔끄럽지 않았다. 잔털이 비교적 길어서인지 꽃차례가 전체적으로 더 희고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깊어 가는 가을 억새는 이미 줄기와 잎이 갈변하며 붉은빛으로 물들었고, 아파트와 빌딩숲이 이어지는 도심 속에서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도심 한가운데 가을 감성을 유감없이 뿜어내며 숨김없이 추색을 드러내는 억새밭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고 축복이지 싶었다.   


바람과 한참을 실랑이하며 대숲길을 걸었고, 억새밭으로 들어가 저마다의 은빛 추억을 담아 나왔다. 시간은 13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십리대밭교 앞 편의점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빨간색 파라솔 아래 테이블을 잡아 앉는다. 배낭에서 간식도 꺼내고 물도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인다. 커피를 주문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으며 쉬어 간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은백색 억새물결이 담긴다. 향순이 준비해 온 고구마 말랭이는 커피와 제격으로 어울리는 간식이었다. 아이들처럼 월드콘을 하나씩 들고 가을 정취는 잠시 옆으로 슬쩍 미뤄둔다. 


여전히 푸른 하늘을 향해 은빛 꽃차례를 밀어 올리는 가을 억새는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꽃이 되고, 살포시 한 손을 뻗어 흔들리는 은빛 꽃차례를 잡은 미연의 마음도 그렇게 흔들리는 꽃이 된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데크길 난간에 기대어 세상의 꽃들과 함께 사진을 한 장 남기는 그들도 그렇게 가을 속으로 들어가 꽃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들 뒤로 봉긋하게 올라온 나지막한 산과 어우러진 은빛 억새물결과 푸른 하늘이 강이 되었고, 흰구름 또한 흐르는 강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꽃이 아닌 게 없는 예쁜 세상이다. 하늘도 구름도 억새 물결도 꽃인 것처럼 그들도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흔들리는 꽃으로 피어나리/조영환



여전히 푸른 하늘을 향해 

은빛 꽃차례를 밀어 올리는 억새는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흔들리는 꽃이 되고 


살포시 한 손을 뻗어 

흔들리는 은빛 꽃차례를 잡은

미연의 마음도

그렇게 흔들리는 꽃이 된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세상에 흐드러진 꽃들과 마주 보며 

한 장의 추억을 가을 하늘에 남기는 그도 

그렇게 가을 속으로 들어가 꽃이 된다. 


봉긋하게 올라온 나지막한 산도 

은빛 억새물결과 어우러져 흔들리는 꽃이 되고 

설핏하게 모습을 드러낸 푸른 하늘도 

흰구름과 어우러져 흐르는 강이 된다. 


그러고 보면 꽃이 아닌 게 없는 예쁜 세상이다. 

하늘도 구름도 은빛 억새 물결도 꽃인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선 그녀와 그도 

그렇게 흔들리는 꽃으로 피어난다. 



꽃으로 피어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화강에 담긴 울산 도심의 실루엣이 또 다른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수면에 비친 서로 다른 높이와 모양을 가지고 있는 도심 빌딩의 독특한 실루엣이 태화강으로 스며들었다. 강 양안을 따라 고층 빌딩이 줄지어 늘어선 도심 풍경은 다른 고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철새가 날고 억새가 나부끼는 태화강에 드리운 울산 도심 풍경은 흔들리는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태화교 근처 언덕에 복원된 태화루가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태화강을 내려다보며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 태화루는 울산의 상징적인 누각이다. 울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태화사와 태화루는 빼놓을 수 없는 유적이다. 영남지방엔 대표적인 세 개의 누각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태화루이다. 진주엔 촉석루(矗石樓), 밀양엔 영남루(嶺南樓)가 있어 이들 세 개의 누각을 영남 3대 누각이라 한다. 


해파랑길은 여기서 잠시 강변을 벗어나 태화루로 이어진다. 울산 지방엔 이만한 명소가 또 없지 싶다. 울산 태화강을 조망하는 야경 명소로도 유명한 태화루를 지나쳐 해파랑길은 다시 강변 산책로로 접어들어 강변에 조성된 체육공원으로 이어지고, 학성교를 지나며 다시 명촌 억새 군락지로 이어진다. 


그저 코끝을 간질이는 작은 미풍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물결은 촉촉하게 젖은 가을 감성을 편지에 써 어디론가 부치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산에 오르지 않고도 도심에서 누릴 수 있는 가을의 낭만이 명촌 억새군락지에 있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3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점심 먹을 적당한 식당을 찾지 못했던 그들은 남은 구간을 마저 걷고 늦은 식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명촌 억새군락지로 향했다. 오전보다 훨씬 맑아진 온전한 파란 하늘이 태화강으로 드리워졌고, 바다로 착각할 정도로 검푸른 태화강을 바라보며 억새 군락지로 들어섰다. 억새 줄기는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었고 호피무늬처럼 군데군데 검붉은 점이 박혀 있었다. 하늘을 향해 한껏 밀어 올린 꽃차례는 파란 하늘과 대비되며 더욱 흰 백색 솜털이 되어 나부끼고 있었다. 이 또한 형언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그들은 다시 은빛 물결 억새 꽃과 함께 솜털 같은 꽃이 되어 바람에 실려 가을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태화강 억새 군락지는 울산 중구와 남구, 북구에 걸쳐 약 21만 7,000㎡ 규모로 조성된 억새밭이다. 북구 명촌 억새 군락지는 12만 6,055㎡로 가장 넓은 억새밭으로 가을 낭만을 찾는 여행객들에겐 억새 성지로 알려져 있다. 억새밭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인생 샷을 건지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산지가 아니기에 해 질 녘 석양빛을 받아 황금물결로 변하는 억새와 함께 일몰풍경을 즐길 수 있는 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해파랑길은 명촌 억새 군락지를 벗어나면 현대자동차 공장을 끼고 조금은 지루하게 이어진다. 대략 5~6㎞가량 이어지는 아산로를 따라 성내고가도를 왼쪽에 두고 걸어 성내삼거리에 이르고, 여기서 좌측 방어진 순환도로변을 따라 염포산 입구까지 이어진다. 

흰구름이 서서히 노랗게 물드는 것으로 보아 일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낯선 마을이었고 공장이 들어선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노랗게 물드는 노을 덕에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성내 고가도 옆을 지나는 그들의 얼굴에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를 띄우고 싶어 지는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지는 해가 구름에 불을 붙여 놓았을까? 구름은 언젠가 하코네 오와쿠다니 화산 지대에서 보았던 펄펄 끓는 유황천처럼 노랗게 불이 붙어 흔들리는 불꽃이 되었다. 멀리 하늘로 솟은 고층 건물들이 마치 성냥개비 만한 불쏘시개처럼 보였고 촛불 심지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불쏘시개 같았고 촛불 심지 같았던 고층 빌딩들은 여울여울 타오르는 노란 불꽃 속에서도 결코 위용을 잃지 않았다. 노랗게 물드는 석양빛 한가운데로 바삐 움직이는 빨간 크레인은 수술이 되어 부지런히 꽃가루를 만들었고, 구름은 꽃으로 깃드는 벌과 나비가 되어 꽃가루를 하늘로 실어 날랐다. 울산항은 꽃받침이 되어 꽃잎 같은 주변 건물들과 함께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염포산 입구에 당도했을 때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어제 야간산행까지 이어진 강행군을 감안하여 오전 11시경 태화강 전망대를 출발하여 태화강변을 따라 18.5㎞ 거리를 걸었다. 소요된 시간은 5시간 36분이었고 해파랑길 7코스의 공식거리와는 1.2㎞차이가 있었다. 염포삼거리 현대자동차기술교육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원철의 얼굴이 노을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다. 미연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촌오빠와 통화를 하는지 전화기를 귀에 대고 통화를 이어갔고 명실은 스마트폰으로 저녁 먹을 장소를 검색하는 듯했다. 불꽃같은 석양이 교육원 담장을 넘고 있었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조금씩 졸가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늦은 점심이자 저녁식사였다. 한번 먹어보면 단골이 된다는 매콤한 아귀찜 맛집, 울산 중구 중앙길 102 아구회센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침샘이 자극되는 맛깔스러운 양념으로 버무린 아귀찜에 소주를 곁들여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40년 전통의 아구 전문점으로 냉동 아구가 아닌 생아구만 쓴다는 주인장의 설명에 생아귀탕도 맛을 본다. 차림표를 보니 메뉴마다 앞에 생자가 접두사처럼 붙어 있었다. 순식간에 동이 난 아구에 밥을 볶아 김가루를 얹으니 이 또한 꽃이었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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