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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Mar 27. 2024

몽돌에 새겨 넣은 해파랑길 DNA

아름다운 삶을 희구하는 DNA가 고갈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해파랑길 여행

아름다운 삶을 희구하는 DNA가 고갈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해파랑길 여행



숙소 가까이 노부부가 운영하는 ‘안동간고등어정식’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아침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어제저녁 식사 후 조반을 예약해 두었던 중구 성남동 거리에 있는 식당이다. 생선까지 넉넉하게 구워 올려주는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과 따듯한 정성이 담긴 아침상을 받은 그들은 밥 이상의 정이 담긴 집 밥 같은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일산해변으로 나갔다.


오늘 그들의 일정은 일산해변에서 울산 시내 구간을 통과하여 주전해변을 거쳐 정자항까지 19㎞, 예상소요시간 7시간 거리의 해파랑길 9코스이다. 일산해변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에 따르면, 해안을 벗어나면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구간과 남목 생활공원으로 진입하는 봉대산 주전 봉수대구간 등 시내 도심구간과 산길을 따라 이어지고 나머지 구간은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어제저녁 붉은 노을로 물들었던 낭만의 바다 일산해변 아침풍경은 그윽하게 풍기는 솔향으로 물들고 있었다. 솔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닷바람은 솔향을 실어 보내며 깨끗하고 상쾌한 기분을 선사했다. 솔가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따듯한 아침 햇살은 마치 황금 비늘처럼 찬란했으며, 반달같이 동그란 해안엔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밀려들어왔다. 이른 아침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 사람들, 잔잔한 파도에 일렁이는 조각배, 솔가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따듯한 아침 햇살. 이 모든 것이 서로 교차되고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산해변의 아침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4박 5일 원정 트레킹은 차량으로 장거리 이동이 있는 첫날이 조금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 몸이 가뿐하게 느껴지며 컨디션이 매우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환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엔 가뿐한 몸과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일산행정복지센터를 우측으로 두고 해안을 벗어나 일산동 시가지 도로인 일산진 3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에서 해파랑길은 방어진순환도로변 시가지市街地를 따라 이어지고 고늘 사거리에서부터 오른쪽 바닷가는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어 산업단지 담장을 따라 걷는다.


한여름의 푸르른 잎사귀가 곱게 늘어서 있던 담장엔 버석한 가을의 손길만 머물러 있었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힌 채 담장에 붙어있는 바싹 마른 줄기는 한때 생기 넘쳤던 여름의 흔적을 기억하며 가을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버석한 줄기만 남겨둔 채 가을로 떠난 찬란했던 녹색 잎은 대부분 땅으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아직 푸르른 잎이 무성하게 담장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도 바람에 흔들리며 가을로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앙상해질 겨울을 앞두고 쓸쓸함을 더해주고 있는 계절은 그들의 가슴에 안겨 따듯한 결실의 가을로 걸었다.


그저 한적한 농어촌이었던 울산은 지난 50여 년 동안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공업단지 조성이 추진되면서 급격한 산업화를 이루었다.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공해와 환경오염 문제도 발생했지만, 지자체의 환경정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울산은 '생태환경도시'로 거듭났다.


태화강 생태하천 복원은 물론, 시가지 담장과 방음벽 등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만 보더라도 이들의 지속적인 환경 개선 노력과 실천적인 환경 정책, 그리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울산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울산시에선 2007년부터 인공 벽면에 덩굴식물 100만 본 식재사업(약 60억 원)을 추진했고, 시가지를 따라 들어선 공단 담장과 방음벽 등에 담쟁이, 헤데라(관엽식물, Hedera helix, 양담쟁이)류 덩굴식물 150만 본을 심었다. 시가지 담장에 덮여 있는 덩굴식물은 산업도시 울산을 아름다운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시키는데 크게 기여하며 2010년부턴 시민들이 참여하는 장미 115만 본 식재사업(약 10억 원)도 추가로 추진하여 삭막했던 울산을 도시숲이 우거진 녹색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이 이번 원정 첫날 걸었던 해파랑길 6코스에 포함된 울산대공원은 매년 3월엔 벚꽃, 5월이면 수십만의 인파가 몰리는 장미축제로 들썩이는 울산의 명소다.


길을 걷던 원철과 경희는 푸르른 잎이 덮여 있는 담쟁이덩굴 앞에 섰다. 도시 곳곳에서 친환경적인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도로에는 친환경 천연가스버스가 운행되고 있었고, 공단과 시가지 사이에 조성된 충분한 녹지공간은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환경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 녹지공간에는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으며, 시민들은 이곳에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여 산책이나 휴식을 즐기며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생태공학(Ecological Engineering)적인 울산시의 시도와 노력이 차츰 빛을 발하며 결실을 보이고 있었다.


졸가리에 듬성듬성 남아있는 붉게 물든 단풍잎은 비록 도시지만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없이 파란 하늘까지 그들의 해파랑길 여행에 함께하며 공단을 따라 걷는 구간에 대한 우려는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방어진 순환도로변 도심 속 녹지공간을 따라 한 시간가량을 걸어 오전 10시 40분경에 남목전통시장에 당도했다. 남목전통시장은 2015년 남목시장, 동부시장, 남목시티시장을 통합하여 주차장 등 고객 편의시설을 확충한 재래시장이다. 시장 현판이 ‘남목마성시장’으로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두 가지 이름으로 혼용하는 시장인 모양이다.  


잠시 해파랑길 코스를 벗어나 남목전통시장으로 들어가 커피숍을 찾았으나 전통시장답게 커피숍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다방이 눈에 띄었다. 요즘 다방은 점차 사라져 가는 것 중 하나인데, 남목전통시장엔 다방이 있었다. 해바라기 꽃 그림이 걸려있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명실과 미연, 향순이 해바라기 꽃같이 웃고 있었다. 그들이 젊은 시절엔 음악다방을 주로 이용했고, 쌍화차나 칡즙, 프리마가 들어간 ‘다방커피’를 파는 다방은 어르신들이 주로 가는 찻집이었다. 한 30~40년 세월의 저편으로 건너온 느낌이었다. 요즘은 시골에나 띄엄띄엄 한 두 개소 정도 남아 있을 법한 남목전통시장 ‘해다방’에서 그렇게 해바라기 꽃처럼 웃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이곳에서 해파랑길은 현대패밀리동부아파트 뒷길을 따라 지역주민들의 생활밀착형 공원인 남목생활공원으로 접어들어 마성터널 위쪽의 남목마성과 봉대산으로 이어진다. 남목마성, 마성터널 등 이곳에 붙여진 마성(馬城)이란 명칭은 과거 조선 초기부터 말을 사육하던 목장이 있던 이곳에 말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장 둘레에 돌로 성(城)처럼 담장을 쌓았던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남목마성(南牧馬城)은 당시 조정(朝廷)에서 감목관(監牧官)이 파견되어 관리하는 국영 목장이었는데, 울산읍지 지도의 기록에 따르면 남목 남쪽에 마성이 표시되어 있다. 또한, 울산목장지 기록에 따르면 남목마성의 길이는 2,984m로 지금도 현대공업고등학교 뒷산 일대와 심천곡 등지에는 돌담이 남아있어 옛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남목마성의 위치는 울산 동구 동부동 산 187-1번지 일대로 남목 생활공원에서 봉대산으로 오르는 탐방로를 따라가면 옛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마성을 따라 이어졌다. 수백 년 전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은 해파랑길 여정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남목 생활공원을 지나 봉대산으로 오르는 탐방로 초입은 살짝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되었다.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설렘이 그들의 가슴 한 켠으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남목역사누리길과 겹치는 해파랑길 남목마성 구간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옛 선조들의 삶과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옛사람들이 마성을 쌓아 말을 사육했던 이야기,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아온 흔적들을 설핏하게나마 느끼고 볼 수 있는 길이었다.  


계단을 오를수록 숨은 곳에 숨겨진 역사의 단편들이 드러났다. 돌무지처럼 흩어지고 무너져 내린 돌담엔 세월의 흔적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울산시에서 설치한 남목마성 추정도와 위치, 남목마성 옛 지도도 살펴보고, ‘울산 방어진목장 감목관비’ 내용도 읽어 보며 걷는 이 길은 잠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었다.  


남목마성의 흔적을 따라 주전 봉수대와 봉대산 정상을 비껴 이어지는 이 길은 주전가족휴양지까지 이어져 있으며, 완만한 경사를 오르내리며 산마루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들은 탐방로를 따라 살망살망 걸으며, 오롯이 힐링이 되는 땅과 숲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푸르른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은 마치 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했다. 새들의 노래와 시원한 바람은 숲 속으로 맑고 상쾌한 기운을 불어넣었고, 따듯한 가을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반짝거리며 가을의 정취로 한껏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숲길을 걷는 그들에겐 선물 같은 가을 숲이었다.


남목역사누리길은 단순한 힐링을 위한 산책코스가 아니었다. 길 곳곳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들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안내판은 이 길을 걷는 이들로 하여금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던 길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여행 코스로 추천할 만한 특별한 길이었다.


봉대산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미포 산업도로 굴다리를 빠져나와 주전해변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정오쯤 되었을 때 주전해안에 도착했다. 오직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이 전부인 풍경은 그들의 눈앞에 한 폭의 그림을 선사했다. 갯바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 무리는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평화로운 풍경이 되었고, 수평선 끝에 머물고 있는 파란 하늘의 끝자락은 어려서 읽었던 동화책 속의 이야기 한 페이지처럼 보였다. 그 책장 너머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솜털 같은 얇은 구름이 머문 하늘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코발트 빛깔의 짙은 푸른 바다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 오랜 시간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주전패밀리캠핑장이 있는 바닷길을 따라 걸었다. 이곳에서부터 해파랑길은 그렇게 주전해변을 따라 이어졌다. 그 길 끝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설렘과 두근거림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그들은 주전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신 밀려와 갯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그들의 발걸음을 쫓으며 해파랑길 여행에 함께하고 있었다.   


안내도를 살펴보니, 주전마을은 다른 지역 어촌마을에서는 유래(由來)를 찾아보기 어려운 7개의 세분화된 촌락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시계방향 12시 방향 가장 북쪽의 새마을과 6시 방향 봉수대 아래 위치한 보밑(주포) 마을, 보밑마을 위쪽으로 상마을(건너각단과 상마을)과 중마을, 해안가 아랫마을과 주전항 위쪽 1시 방향 해안가 마을인 큰불마을(대장국마을과 큰불마을), 주전항 서쪽 언덕에 자리 잡은 번덕마을이 주전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인 주전초등학교 북쪽 근처의 동사당 터와 주전초교 동쪽 해안가에 학교밑제당 등 마을마다 제당을 두어 모두 10개소의 제당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올렸다. 그러나 2005년 주전초등학교 북쪽 근방에 신축한 마을 경로당 2층으로 모든 제당의 위패를 옮겨 모시기로 결정하며 마을마다 있던 제당은 사라지게 되었다.


보밑마을 위 해안가에 조성된 성지방돌 조형물이 세워진 자리는 과거 마을의 대표적인 신을 모셨던 아랫마을 제당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세워진 성지방돌 조형물은 네 개의 돌기둥을 세워 제당의 형상을 시각화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10곳의 제당에 있었던 제당을 기억하고 육지와 바다를 돌보며 주전마을의 주요 산물인 멸치의 풍어를 빌고, 멸치를 삶아 내던 후리막을 보호하던 주전마을 제당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의 염원과 소원을 담아내고 있는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촌락의 형태를 살펴보면 대부분 마을마다 하나의 신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주전마을엔 독특하게 10개의 마을에 10개의 제당을 각각 두었다. 10곳의 제당이 사라지면서 자칫 잊힐 뻔한 독특한 마을 문화였던 주전마을 제당문화는 성지방돌 조형물이 세워짐으로, 마을의 번영과 생업의 안녕을 기원했던 선조들의 심성이 후세에 전승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조선시대부터 ‘주전’이란 지명으로 불리는 ‘주전(朱田)’은 ‘붉은색을 띠고 있는 땅’에서 유래한 땅 이름이다. 주전마을은 과거 ‘주밭’이라고도 불렀는데, 주밭은 ‘붉은 밭’이란 의미이다. 해안가 어촌 지명의 ‘밭(田)’은 어민들의 주 생업의 터전인 바다를 의미하는 ‘받’ 또는 ‘바대’, ‘바ㄷ에’ 로 ‘바다’를 이르는 말이 사용되었다. 결국 주(朱)’는 ‘븕’[赤] 또는 ‘밝’이란 뜻과 밭(田)은 ‘받’, ‘바대’란 뜻이 합쳐져 ‘밝은 바닷가’를 의미하는 말을 한자로 표기한 지명이 주전이다.


그들은 주전마을 ‘성지방돌’ 조형물이 세워진 해변에서 잠시 머물며 주전마을 제당문화에 대한 설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게시되어 있는 사진도 살펴가며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처럼 어린 시절 더러더러 보았던 기억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 그 그림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끊어진 필름처럼, 그의 기억 속에는 어렴풋한 이미지만 남아 있었다. 사람인지 도깨비인지 알 수 없는 우락부락한 모습과 뿔 같은 것이 돋아 있는 얼굴, 그리고 서낭당에 걸려 있는 그림의 모습만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취학 전 어린 시절, 그는 평창 계촌마을 외가에서 자랐다. 그곳에 있던 커다란 나무와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색동 천도 그의 기억 속에 조각처럼 남아 있었다. 때론 거칠게 변하는 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주전마을 사람들에게 제당에 모신 신은 절대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제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경희, 명실, 미연, 향순은 마치 은밀한 속삭임처럼 들려오는 나지막한 파도 소리에 이끌려 갯가로 내려가 돌다리를 따라 걸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갯바위에는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부딪히며 잔잔한 선율을 연주하고 있는 듯했다.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던 낚시꾼은 낚싯대를 거두고 돌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마치 무대 위로 오른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퇴장하는 연극배우의 모습 같았다. 물속에 비친 그녀들의 그림자는 그녀들과 함께 돌다리를 건너갔다.


성지방돌 조형물 근처에서 갯가를 바라보던 규철과 원철의 눈에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물결 위로 부서지는 햇살은 반짝이는 보석 가루처럼 흩뿌려지고, 갯바위와 은빛 물결은 자연이라는 거장의 섬세한 예술의 경지나 다름없어 보였다. 사람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녀들은 푸른 바다와 함께 그림이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바다, 갯바위와 넘실거리는 은빛 물결, 그리고 그녀들만 존재하는 이곳은 자잘한 세상의 번뇌와 동 떨어진 딴 세상 같았다. 마치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이 머물고 있었다. 갯바위로 밀려와 부딪쳐 물꽃이 되는 파도와 바다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갈매기들이 갯바위에 내려앉았다 날듯 말 듯한 날갯짓으로 다시 날아오르며 파도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화답하고 있었다. 갯바위에 부딪치며 연신 물꽃을 만들어내던 파도가 갑자기 세차게 밀려왔다. 갯바위 가까이 다가섰던 경희가 갑자기 밀려온 파도에 화들짝 놀래며 함박웃음을 웃었다. 뒤를 따르던 향순과 명실의 얼굴에도 환한 물꽃이 피어났다. 돌다리를 건너며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갯가에 비친 그녀들의 그림자만이 알고 있을 것 같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바다에 남겨두고 사붓사붓 걸어 갯바위를 떠났다.


그녀들이 나갔던 갯가의 돌다리는 네 개의 둥그런 모양을 이루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섶다리든 돌다리든 물을 건너기 위한 것이 다리인데, 이곳에 놓인 돌은 물을 건너기 위한 돌다리는 아니지 싶었다. 저곳에 그물을 치고 연안으로 들어오는 멸치를 잡는 전통 멸치잡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인가 싶었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따르면, 추어 또는 멸어(蔑魚)라 했던 멸치는 봄에 연안으로 들어오고 가을에 남해로 이동하여 겨울을 나는 어종이다. 전통적인 멸치 잡이 방법은 봄에 연안 바다에 그물을 친 뒤 멸치가 그물로 들어오면 육지에서 끌어올리는 ‘후리 어업’이 전통적인 방법이었다. 후리 어법은 갓후리 어법이라고도 한다. 육지에서 멸치그물을 끌어올리는 방식이어서 장애물이 없는 완만한 사빈해안(沙濱海岸)에서 주로 사용되는 전통 멸치잡이 방법이다. 이곳 보밑마을엔 멸치잡이와 후리막을 돌봐 주던 보밑마을(주포)제당이 있었다. 후리막은 전통 멸치잡이 방법인 후리 어법으로 잡은 멸치를 삶아내던 막이었다. 우리말 사전에 후리막은 ‘후릿그물을 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은 막’이라 설명되어 있다.


그들은 아랫마을을 떠나 하리항으로 들어선다. 성지방돌에서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어항이다. 해파랑길을 걷는 것은 늘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과 예쁜 바다를 따라 걷는 일이니 특별히 지명을 염두에 둘 이유는 없었지만, 주전마을의 일곱 개 마을은 왠지 다른 해파랑길에서 만나는 마을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주전 아랫마을에 하리항은 바다에 흩어진 갯바위에 기대어 꾸려진 작은 어항이다. 주전초등학교 바로 앞바다엔 큰불항이 있고 고래 같은 모양의 갯바위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며 큰불항으로 들어오는 파도를 막아주고 있다. 그리고 큰불항 위로 마을 당산나무 근처에 지방어항 주전항 포구가 있다.


하리항엔 고기잡이 배 몇 척만 정박해 있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하리항 부둣가에 머물고 있었다. 부둣가엔 군데군데 그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각종 어구들이 나름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부둣가에서 어구를 정리 정돈하는 마을 아저씨의 모습은 평화로운 어촌의 일상이지 싶었다. 로프와 그물, 부표, 통발 등 각종 어구들이 아저씨의 손길에 따라 가지런히 정돈되고 있었다. 밤새 고기잡이를 마친 어부들은 해 질 녘에 정돈된 어구를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갈 것이다.


하늘은 어찌나 파랬던지 금방이라도 온통 파란 물이 들 것만 같았다. 그들이 걷고 있는 바닷가 마을길과 어우러진 바다와 하늘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었다.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예쁜 바다는 해파랑길을 걷는 여행자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경치였다.


하리항을 지나 큰불항을 향하여 걸었다. 가장 앞서서 걷고 있는 원철의 뒤를 따라 규철과 미연, 명실이 뒤를 따랐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그녀들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리게 했고, 나란히 걷는 경희와 향순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그녀들의 환한 미소가 은은하게 파도를 따라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바닷가 마을길을 따라 함께 걷는 그들에겐 밀려오는 파도만큼이나 진한 유대감이 넘실거렸던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큰불항을 지나고 주전항이 가까워지며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해변에서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르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고 ‘차르르’보단 더 맑고 청아했다. 이곳엔 몽돌여인으로 유명세를 탄 김순연 시인의 집이 있는 곳이다.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의 허름한 구옥에 방부목으로 가벽을 세워 시인의 대표적인 시(詩)와 작가소개를 게시한 바닷가 시인의 집이다. ‘누가 주전동 좀 사 가소’, ‘달그림자가 머무는 곳’, ‘몽돌여인’ 등 주전마을 사람들의 삶을 재치 넘치는 시어로 풀어낸 시집을 출간한 한울문학 경남지부 회원으로 활동하는 주전마을 시인이다.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어촌마을 주전, 각 마을마다 제당이 있었을 만큼 마을마다 절절한 삶의 이야기가 ‘숨은 이야기’로 전해오는 주전, 그곳에서 살아가는 어부와 해녀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이야기는 주전 해안의 몽돌만큼이나 무수히 많을 것 같았다. 시인은 그런 이야기가 담긴 몽돌을 노래했고 주전해변에서의 삶을 노래하였다.


김순연 시인의 작품 중 주전마을의 삶과 풍경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달그림자가 머무는 곳’을 소개한다.



달그림자가 머무는 곳/김순연


파도소리 배고 누우면

물밑 용굴암 돌미역 사이로

망상어, 놀래미, 칵다구들이

해조음 따라 요리조리 지느러미 흔들고

성계와 안장구들은 등줄기 맺힌 땀방울 잊고

노젓는 것 보이지요

좌아! 좌아! 하늘로 치솟았다가 내리꽂혀

달그림자 핥아내는 몽돌소리가

생생 절박한 소리로 울려 퍼지면

산 어촌 온통 들썩거렸던 해녀들

바다가 마를까

날마다 걱정하는 어부의 딸

파도소리 찜질로 시름일랑 씻지요

황토 속 불순물 까부리는

찰랑찰랑 몽돌이 재이질

해녀들 너나없이 휘파람 불며 바다에 빠지고

산으로 뒷걸음질하던 고깃배는

단숨에 미끄러져 어느새 풍덩!

물속에서 헤헤 웃고

어부의 딸은 옹달 바구니와 까꾸리 들고

해안선 뛰어다니며

우뭇가사리, 도박, 진두발이를 줍지요.



그렇게 주전해변의 풍경에 취하여 걷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12시 4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주전항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모두들 칼국수가 땡긴다며 칼국수집을 찾았다. 마침 상가 쪽을 바라보니 언덕 위에 ‘수라해물칼국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상당히 가파른 언덕을 따라 설치한 좁다란 계단이었다. 관목을 타고 오른 덩굴식물들이 소나무까지 감고 오르고 있었다. 정비가 필요해 보였다. 계단을 침범한 관목 가지들을 손으로 제켜가며 계단을 올랐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무일인지 문을 닫은 상태인지 모를 식당이었다. 그들은 두 발로 서서 사방을 살피는 사막의 미어캣(Meerkat)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려 용케 도로 건너편 ‘홍가네 손 칼국수’ 집을 발견하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큰불항과 주전항 중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한 작은 식당이었다. 식당 내부는 깔끔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여전히 꽉 찬 상태였다.


칼국수, 들깨 칼국수, 비빔칼국수가 주 메뉴였고 왕만두와 해물파전이 사이드 메뉴였다. 칼국수와 함께 김치 왕만두와 고기 왕만두를 섞어주는 반반 세트를 주문하였고 태화루 막걸리도 두 병을 시켜 반주로 곁들였다. 한 젓가락 면을 감아 맛을 본 경희가 양손을 활짝 벌리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맛있다는 표현을 했다. 모두들 맛있다며 그야말로 게눈 감치듯 말끔하게 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칼국수 반찬은 뭐니 뭐니 해도 김치가 맛있어야 하는데, 반찬으로 나온 겉절이 김치 맛도 일품이었다. 이 동네에선 소문난 맛집인 모양이다. 대부분 손님들이 현지 주민인 듯했다. 여름철엔 계절메뉴 콩국수도 꽤 맛있을 것 같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 먹었던 홍가네 손 칼국수 맛이 생각나 절로 군침이 돈다. 해파랑길 여행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홍가네 손 칼국수(울산 동구 새싹길 25)’의 방문자 리뷰는 압도적으로 ‘음식이 맛있어요(98/106)’에 집중되어 있다.


건축면적의 반 정도를 필로티(pilotis) 형 구조를 채택한 건물인 식당 앞에서 잠시 행장을 정비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주전항으로 들어섰다. 하리항, 큰불항에 비해 규모가 큰 항구였다. 부둣가 선양장 바로 옆에 활어회센터가 있었고 주기적인 어선 수리를 위한 크레인이 설치되어 있었다. 부둣가엔 수리를 위한 어선이 올려져 있었다.


내륙에 사는 그들에겐 늘 익숙하지 않은 어항 풍경이었지만 해파랑길을 걸으며 많은 어항들을 보아서인지, 아니면 주전항이 특별해서인지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설핏설핏 드리워진 구름이 하늘에 걸려있지 않으면 바다와 하늘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주민들이 돌미역을 말리는 모습과 해녀들의 일상이 담긴 한 폭의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방파제에 타일을 이용해 그린 이색적인 벽화였다. 자칫 삭막하게 느껴질 만한 콘크리트 방파제 벽에 타일 붙여 벽화를 그려 넣으니 사뭇 다른 분위기의 풍경이 된 주전항이었다. 바닷속에서 이제 막 해산물을 건져 나온 듯한 해녀상 모습은 생동감이 넘쳐났다. 규철이 주전항 부둣가에 설치한 주전마을 안내도를 살펴보며 그들이 지나 온 성지방돌과 큰불항이 있는 아랫마을을 가리키며 주전마을을 살펴보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되지 싶었다. 안내도엔 보밑마을부터 상마을, 중마을, 아랫마을, 번덕마을, 대장국마을, 새마을까지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었고 주전마을에 담긴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와 마을마다 있었던 제당과 제당에 얽힌 숨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듯했다.  


주전항 포구에는 특이하게 붉은 탑이 세워져 있었다. 방파제 끝머리에 세운 붉은색 탑은 어찌 보면 생경하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탁 트인 해안가 풍경 속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왜 해안가에 붉은색 탑을 세웠을까?

붉은색은 열정, 사랑, 위험 등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색이다. 불가에서 탑의 의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상징한다. 주전마을 어민들의 어로 안전과 인근 해역을 오가는 대형 수출입 선박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운 붉은 탑 모양의 등대이다.


갯바위에 앉아있는 갈매기들은 따스한 가을 햇볕을 받으며 꾸벅꾸벅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햇볕이 좋을 때 빨래를 너는 것처럼 어쩌면 갈매기들도 가을날 좋은 햇볕을 본능적으로 알고 갯바위에 잔뜩 모여 그들 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며 주전항을 떠났다.     

  

https://youtu.be/yNo7imT5IGE?si=NE4UEONNWLI6Bl1h


주전 몽돌해변엔 동그란 해안선을 따라 반짝반짝 윤이 나는 몽돌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목측으로 보아도 대략 1.5㎞ 이상 되는 해변에 가득 쌓여 있는 몽돌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몽돌 해변이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반짝거리는 몽돌이 가득한 해안으로 들어갔다. 가을볕에 잠시 몸을 말린 갯바위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동그랗게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며 너무나도 예쁜 바다를 보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몽돌해변과 푸른 바다, 우가산 자락이 바다로 내려온 해안선 끝까지 한눈에 보이는 너무나도 예쁜 바다였다. 우가산 산마루도 몽돌해변을 닮았는지 그저 나지막하고 둥글둥글 완만하게 바다로 내려와 곶(cape, 串)을 이루고 있었다. 가을 쪽빛 하늘엔 구름이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거듭하며 몽돌을 베고 누운 명실과 향순에게 어떤 그림이 좋은 지를 연신 묻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이 있었다니…, 주전 몽돌해변으로 들어서는 순간 현실감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와 빠져나갈 때마다 작은 몽돌이 파도에 쓸려 구르고 서로 부딪혀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내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따지고 보면 수천수만 년의 셀 수도 없을 오랜 세월 동안 쪼개지고 부딪쳐 갈리고 닦이며 만들어졌을 동글동글한 몽돌의 노랫소리는 셀 수 없는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담긴 돌이지 싶었던, 결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노래였고 감동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몽돌 위에 그들의 배낭을 나란히 세워 놓고 그들의 해파랑길 이야기를 하나 더 몽돌해변에 보탰다. 그들의 이야기는 몽돌과 함께 파도를 맞으며 ‘차르르!, 차르르!’ 청아한 소리를 내며 구를 것이다. 그들이 보탠 그들의 해파랑길 이야기는 주전 몽돌해변에 남아 그들을 기억하며 구를 것이다. 몽돌이 구를 때마다 푸른 바다와 쪽빛 하늘에 그들의 해파랑길 이야기를 새기고 또 새길 것이다. 그렇게 뭇사람들이 몽돌 해변을 찾을 때마다 눈물이 날 지경으로 아름답고 예뻤던 그들의 해파랑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몽돌 위에 나란히 세운 배낭이 바다를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몽돌 해변서 천진하게 뛰어노는 그들의 순백색 영혼을 바라보았다. 그 새 흰 구름은 몇 장의 그림을 더 그리고 있었다. 해안으로 밀려온 물꽃에 발을 담근 경희가 하트 모양으로 갈고 닦인 몽돌을 용케 찾아들고 쪽빛 하늘에 걸어 주었다. 수평선 위 푸른 하늘에 하트 모양의 몽돌이 반짝이는 목걸이처럼 걸렸다.



경희와 미연은 그렇게 몽돌이 구르는 해변을 뛰어다니며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었고, 명실과 향순은 몽돌을 베고 누워 구름이 그려주는 가을날의 그림이 되었다. 따듯한 몽돌의 이야기가 그녀들의 몸으로 전해졌고 그녀들의 눈엔 가을 쪽빛 하늘이 담겼다. 그리고 규철과 원철은 몽돌해변에 세워 놓은 배낭과 함께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파란 하늘에 그들의 추억을 새기고 반짝이는 몽돌에 그들의 해파랑길 이야기를 새기고 있었다. 그들은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주전 몽돌해변에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새겨 놓았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파도가 넘실거리는 갯가엔 마치 커피잔에 보글거리는 촘촘한 거품처럼 쌓인 수많은 몽돌, 바닷물이 오가는 길목에 듬성듬성 갯바위가 징검다리처럼 이어지고, 갯바위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즐기는 갈매기들, 갯바위와 해안에 닿은 파도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물꽃, 바닷가 방파제 위에 강렬한 붉은색 탑 모양의 등대가 서있는 주전해변의 풍경은 그렇게 그들과 함께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하나하나 몽돌에 담겨 소리를 내며 구르고 있었다.


세상이 너무나 예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아름다운 물꽃을 만들며 갯바위에 부딪쳤고 그들에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긴 몽돌의 노랫소리까지 함께하는 순간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은 그새 하늘에 엷은 구름띠를 그려 놓았다. 인상주의 화풍은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감을 담아내기 위하여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던 화풍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쉽게 말해 하늘멍을 한 셈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몽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은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몽돌은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새겨 넣은, 그들이나 다름없는 아바타 같은 것이었고 주전 몽돌해변은 그들의 이야기를 위한 아름다운 무대가 되어주었다.


누구에게나 좋건 나쁘건 습관 하나는 있게 마련이다. 습관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굳은살 같은 것이다. 굳은살 같은 습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지속적이며 견고하기까지 하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성채같이 굳은살 조각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견고하게 쌓아 올린 결과물이 습관인 셈이다.


표정에도 말투에도 걸음걸이에도 밥 먹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배어 있는 것이 습관이다. 어쩌면 거울처럼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굳은살 같은 습관은 언제부턴가 소리소문 없이 '나'를 대신해 '나' 행세를 하고 있는 아바타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파랑길을 걸으며 그들에겐 아바타가 하나씩 생긴 듯했다. 해파랑길을 걷기 전에 이미 생겼을 수도 있을 아바타 같은 습관일지 모를 일이었지만, 여하튼 해파랑길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예쁘다 말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리고 만끽하며 자연스레 그곳으로 들어가 함께 하나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그림이 되는 습관 말이다.


몽돌 위에 세워 놓은 배낭 뒤로 모여 파란 하늘과 바다가 들려주는 ‘몽돌해변 가을 이야기’가 된 그들은 한 장의 사진에 추억을 담아 그들의 아바타에 새겨 넣었다.


이미 오랜 세월 함께 국내외를 다니며 여행을 한 친구들이었지만, 해파랑길을 걷다 보면 그런 여행에서 볼 수 없던 그들의 모습을 왕왕 목격하게 된다. 부지불식간에 재발견하는 그들의 모습이 새롭게 느껴질 때면, ‘너라는 사람은 또 누구니?’라고 물어보고 싶어 질 지경이다. 그런 그들을 보다 보면 김칫독에서 새로 꺼낸 맛깔스러운 김치처럼 곰삭은 감성이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감동을 한 아름 안겨주는 이 여행의 주인공이었고, 서로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동행이었다. 해파랑길 여행이 다른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여행인 이유이기도 하다.


흰 구름이 띠를 이루며 황홀한 오로라 빛줄기처럼 하늘에 걸려있는 주전 몽돌해변을 걸었다. 쏴아! 밀려오는 파도가 해변에 닿았다 밀려 나갈 땐 어김없이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물꽃이 피어나는 몽돌해변을 떠나 당사항으로 발길을 옮겼다. 당사항 이정표에 해파랑길 리본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거리며 해파랑길 여행자를 안내하고 있었다.


금천교를 건너 당사항으로 들어섰다. 바다로 길게 이어지는 노란색 아치교가 눈에 들어왔다. 당사항 해양낚시공원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교량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일종의 바다 낚시터 같은 곳이었다. 방파제에 올라가 낚시하는 것보단 상당히 안정적일 것 같았다. 가끔 방파제 낚시 중 실족사고를 당하는 뉴스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데, 이곳에서 낚시를 한다면 그런 사고는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요즘 여행을 하다 보면 지자체마다 관광사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농어촌 마을에서도 관광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마을 공동체에서 관광사업을 운영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당사항 해양낚시공원도 조사들에겐 바다낚시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꽤나 매력적인 장소가 되지 싶었다.  


조금 더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다에 설치한 철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다소 생경하기도 하고 이색적이었다. 생김새를 살펴보며 뭐 하는 물건인가 궁금해졌다. 천천히 구조를 살펴보니 텐트를 칠 수 있는 데크 형태였다. 바다에 설치한 야영장, 당사현대차오션캠프(울산 북구 당사동 378-4)였다.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또 다른 핫 플레이스, 바다 캠핑 명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바다 위에서 캠핑을 즐기는 기분은 어떨까?


강동사랑길 구간 중 일부인 이곳 당사마을 공원엔 용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당사마을은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용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다.


옛날에 하늘에 살았던 뱀과 거북이 있었는데, 서로 앙숙이었던 거북과 뱀은 늘 서로 싸우며 옥황상제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누가 음모를 꾸미고 나쁜 행동을 하는지 분간이 어려웠던 옥황상제는 이 둘을 모두 지상으로 쫓아내는 벌을 주었다. 평소 말이 없고 과묵한 행동으로 옥황상제로부터 신임을 받던 거북이는 옥황상제의 신임과는 달리 두꺼운 갑옷에 몸을 숨기고 밤낮으로 음모를 꾸몄다 한다. 벌을 받고 지상에 내려와서도 거북의 음모는 끊이질 않았는데, 반면 뱀은 인내하며 수행에 수행을 거듭하였다고 한다. 뱀의 정진을 뒤늦게 알게 된 옥황상제는 뱀에게 내린 벌을 거두게 되었고, 당사마을에서 수행하던 뱀은 용이 되어 승천하였고, 용이 승천할 때 당사마을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져 물길이 뚫렸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다. 금천교를 건너 당사항으로 들어오다 보면 지나게 되는 해양낚시공원에서 볼 수 있는 바위가 용이 승천할 때 둘로 갈라진 ‘용바위’다.


해파랑길은 당사마을을 벗어나 우가산(牛家山)으로 이어진다. 높이 173.2m의 낮은 산이지만, 바다를 조망하기엔 충분한 높이의 산이다. 그저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르기에도 좋은 마을 뒷동산 같은 산이었다. 틈틈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는 바닷가 마을의 산은 언제 올라도 상쾌한 산이 대부분이다. 따듯한 햇살이 골고루 산을 비춰주어 음습하지 않아 쾌적한 산행을 할 수 있는 점이 바닷가 산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산을 오르면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우가마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주전마을, 산을 내려가 걸을 강동마을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산과 바다를 원 없이 만끽하기엔 그만인 곳이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그저 20~30여분 가볍게 걸어 오르면 까치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본 멋진 바다 풍경은 그야말로 인생 풍경이었다. 까치 전망대에 설치한 항공우편 봉투 모양의 포토존은 산을 오른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고 찍으며 멋진 바다 풍경에 빠져 들었다. 바다 풍경이 사람을 사정없이 유혹하는 흔치 않은 곳이었다. 잠시 야외 탁자에 앉아 준비해 온 간식을 먹으며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 보니 딱 소풍 나온 기분이 들었다.     


우가산 자락이 동해로 흐르며 떨구어 놓은 물방울 같은 우가포 마을, 소가 누운 것 같이 생겼다는 우가포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산, 우가산은 일명 구봉산이라고도 부른다. 우가마을엔 연안어업을 위한 우가항이 있고 우가마을 갯가엔 고래아구리섬과 칠무섬 등 크고 작은 갯바위가 해안을 따라 유영을 하며 이동하는 고래무리같이 이어진다. 어쩌면 아주 오랜 옛날에 이곳을 유영하던 꿈 꾸는 고래들이 갯바위가 되어 머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드는 풍경이었다.


우가산을 내려온 그들은 수평선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석양이 지는 일몰 무렵에 정자나무 스물네 그루가 있었다는 정자항에 당도하였다. 마주 보고 있는 빨간색과 흰색 귀신고래등대가 꽤나 매력적인 정자항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한창 추색으로 물들고 있는 산자락에도 붉은 황금빛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북 방파제의 붉은 귀신고래는 더욱 붉은 빛깔을 띄며 금세라도 살아 움직여 바다로 뛰어들 것 같았다.   


연신 방실거리며 웃는 미연, 키가 비교적 큰 미연이 걸으며 지난날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점만 이야기하면 자신은 키 큰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한다. 웬만한 남자들이 모두 자신보다 작아 키 큰 사람과 데이트해 보는 것이 젊은 시절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정자항에 도착한 그들은 숙소를 정해야 했다. 미리 숙소를 정하지 않고 출발한 오늘 일정이었다. 펜션에서 다 함께 하루 놀자는 의견에 따라 정자항 인근의 숙소를 수배해 펜션을 하나 잡았는데, 결론적으로 그리 추천할 만한 펜션은 아니었기에 상호를 밝혀 두지 않는다.


정자항이 내려다 보이는 펜션은 방 두 칸에 거실이 있고 주방이 딸려 있는 구조였다. 마당이 넓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꽤나 낭만적일 것 같은 펜션이었다. 하지만 장을 봐 오기엔 이미 날이 어두워졌고 일산해변부터 이곳까지 약 20㎞를 걸은 터라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정자항에 나가 회를 먹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펜션을 얻었으니 음식을 배달시켜 느긋하게 만찬을 즐기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는 미연과 함께 정자항 근처 마트를 찾아 간단한 부식과 과일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주방 구석에 쌓인 상 두 개를 옮겨 거실에 펴주자 명실이 행주를 빨고 상을 깔끔하게 닦아가며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노련하고 익숙한 솜씨로 밥상을 준비하는 그녀의 손놀림은 가히 달인의 경지에 이른 깔끔한 주부의 솜씨였다. 그녀의 손놀림에 식탁은 금세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사 온 포도가 상위로 올라왔고, 물컵과 소주잔도 준비되었다. 곧이어 중국집에서 배달된 요리가 하나 둘 상위에 차려졌다. 그렇게 임금님 밥상 부럽지 않은 진수성찬이 한 상 차려졌고 그들은 밥상에 둘러앉았다.  


전에도 잠시 명실을 소개하며 언급했듯이 온갖 레저스포츠와 여가 생활에 진심인 그녀의 또 다른 면모이기도 했다. 예전에 명실이 회장을 맡아 주관했던 2020년 정월의 신년회 모임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손수 만두를 빚고 육수를 준비해 만둣국을 끓여 친구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며 새해를 맞이했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의 손끝이 야무지다는 것은 이미 그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펜션에서 상차림을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옛 추억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풍성했던 이야기 꽃으로 가득했던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자 야심한 밤이 되었다. 정자항에서 반딧불이 같은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는 화장도 지우고 세수를 한 미연을 불러 정자항으로 나갔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은 더욱 들어줘야 했기에, 키 큰 남자인 그가 미연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데이트 신청을 하고 정자항 밤 나들이에 나선 셈이었다. 이미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기에 이른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정자항 주변의 상가는 모두 철시하고 인적이 끊어진 선창가엔 짙은 어둠만 내려앉아 있었다. 방파제 끝 붉은 고래귀신 등대 불빛만 물결에 따라 흔들리고 있는 시간이었다. 부둣가 가로등 불빛 아래 정박해 있던 어선에서 비리척지근한 냄새가 정자항 부둣가를 뒤덮고 있었다. 그렇게 인적 없는 정자항을 걸으며 그녀의 ‘키 큰 남자와의 데이트’ 소원은 느닷없이 실현된 셈인데, 좀 더 근사한 데이트로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꼬깃꼬깃 접혀 마음 한쪽 구석에 쌓이는 순간이었다. 암튼 그렇게 그들의 짧은 심야 데이트와 미연의 소원은 그들의 해파랑길 이야기 책에 그려 넣어졌다.    


때론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지난날의 어떤 일들이 섭리적인 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경우 지난날의 일들이 가끔 섭리적인 일들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그러했고, 젊은 시절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들이 대부분 또 그러했다. 그러한 섭리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해파랑길을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훗날 어떤 섭리적인 깨달음으로 이해되고 평가되어 귀결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훗날 돌이켜 생각해 보았을 때 한 점 후회 없는, 아름다운 인생의 한 페이지가 해파랑길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아직 감성이 메마르지 않은 그들의 인생에 아름다운 삶을 희구하는 DNA가 고갈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해파랑길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기대해 보는 그녀와의 정자항 데이트였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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