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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Apr 10. 2024

바람에 실려 보낸 햇빛엽서

해파랑길 10코스 경주시 지경마을에서 나아해변까지


신명길을 따라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2~3층 규모의 펜션단지가 새로이 조성된 신명마을을 지나 지경마을로 들어선다. 울산 북구 신명 마을에서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 경계지점을 통과하여 경상북도 땅으로 들어서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마을이다.


경주시 양남면으로 들어서던 미연은 '행복소리 양남, 파도소리 주상절리'라는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이정표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옅은 갈색 버킷 햇과 연한 녹색 바지, 진한 초록색 티셔츠를 매치한 미연은 왼손을 들어 이정표를 가리켰다. 가을 햇볕에 붉게 그을린 그녀의 손끝으로 '경주시' 세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난 이정표가 앵글로 들어왔다. 마침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으려던 차였는데,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격으로 모델까지 등장하니 금상첨화(錦上添花)였고, 용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화룡점정(画龙点睛)이었다.  


여름 내내 맹렬하게 덩굴손을 뻗어 세력을 확장하던 덩굴식물은 가을바람에 한풀 꺾인 듯 보였지만, 그 생명력은 여전히 경이로웠다. 단단한 콘크리트와 아스콘 포장 틈새를 비집고 인도까지 영역을 넓힌 덩굴은 반듯해야 할 인도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덩굴숲을 이루고 있었다. 무성했던 덩굴숲엔 내년 봄을 기약하는 갈색 꼬투리가 가을볕과 바람에 씨방을 한껏 추겨 세우고 있었다. 놀랍게도 덩굴은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나무를 타고 올라가 얽혀 있었고 도로변 철제 가드레일을 뒤덮으며 거센 환경이 무색하리 만치 억세고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듯했다.


미연이 이정표에 선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지난 5월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시작된 1차 원정은 부산에서 울주군 구) 덕하역까지 이어졌고, 11월 5일 구) 덕하역을 출발한 3차 원정 5일 차인 오늘 울산을 거쳐 마침내 경주 땅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 구역 경계를 지났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바람 따라 걷는 해파랑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대단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른 아침 울산 정자항에서 출발한 그들은 오전 9시 31분경 그렇게 경주 땅에 발을 들여놓으며 상징적 의미가 큰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양남면 수렴리 지경마을, 한자로 쓰면 ‘땅의 경계’를 이르는 地境이 붙은 마을 이름은 우리나라 전역에 꽤 많이 쓰인 지명이다. 양남면 수렴리 지경마을도 경상북도의 지경이란 의미로 붙은 마을 이름이다. 지금의 경주시 교동,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숲 계림의 동남쪽 끝 동해안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서쪽 배후에 오발산(160.1m) 붕금산, 갈골산, 우산(385.1m) 등 나지막한 능선이 이어지고 마을 서쪽 상계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수렴천이 동해로 빠져나가는 양남면 수렴리에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잠시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관성 솔밭해변에 도착하였다. 아래는 지경 방파제, 북쪽으론 수렴 방파제가 있어서인지 비교적 물결이 높지 않은 잔잔한 바다였다. 잔잔한 파도가 몽돌과 모래가 섞인 해변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몽돌과 모래가 적당히 혼재되어 있는 그저 한적한 해변엔 파란 하늘만 머물고 있었다.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해변에 유난히 눈에 띄는 빨간색 지붕의 예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은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햇살 가득한 해변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묘하게 강렬한 느낌을 주는 빨간색 지붕이 돋보이는 단층 건물이었다. 샤워장과 화장실, 수도시설이 갖추어진 공중 건물이었다.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과 빨간색 지붕이 그렇게 묘하게 어우러진 해안가 산책로변에 흰색 사진틀이 포토존으로 꾸며져 있었다. 해변 풍경이 흰색 사진틀 속으로 들어와 그림 같은 풍경이 되었다.

 

타박타박 앞서 걷던 향순이 사진틀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파란 하늘과 빨강 지붕, 흰색 사진틀과 예쁜 해변이 향순과 함께 어우러지며 풍경이 되었다. 챙이 넓은 붉은색 사파리 모자아래 가을볕에 살짝 그을린 듯한 향순의 붉은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하늘을 담은 듯 밝은 하늘색 티셔츠, 짙은 바다색 바지 차림의 향순이 포즈를 취했던 관성해변 풍경이 향순의 꿈을 싣고 멀리 수렴항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해안산책로와 바다가 좌우 투시선을 이루며 수평선과 만나는 소실점에 놓인 수렴항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원근감 있는 관성해변 풍경은 그렇게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사진 제목은 ‘향순의 바다’로 붙였다. 늘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향순과 너무나도 닮았지 싶은 강렬했던 관성해변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명실은 관성 해변을 걷고 있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파도가 밀려왔고, 멀리 보이는 수렴항은 평온하였다. 그녀는 해변을 걸으며 양손을 위로 들어 무용하듯 손목을 돌리며 밀려온 파도 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녀의 자유로운 몸짓의 언어는 세월조차도 피해 간 듯했다. 자유롭고 행복한 그녀의 모습이 관성해변에 새겨졌다. 작고 둥근 솜사탕 같은 구름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햇살을 가득 담은 듯한 밝은 표정으로 해변을 걷던 그녀의 행복한 모습은 관성 해변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될 것만 같았다. 수렴항을 에워싸고 있는 마을 뒷산이 바다로 내려왔고, 바람은 해변으로 파도 소리를 밀어 넣고 있었다. 아름다운 관성해변 풍경은 그녀에게 즐거움과 평안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하늘에 떠있는 솜사탕 구름 같은 그녀의 마음을 살짝 하늘에 걸어 놓았다.

 

솔밭에 설치된 몇 동의 텐트와 캠핑카, 그저 몇 사람이 띄엄띄엄 해변 가까이에 머물고 있는 관성 솔밭해변은 하릴없는 파도만 밀려와 금빛 모래에 쌓이는 한적함이 머물고 있는 철 지난 바다였다. 마을 뒷산에선 갈잎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쓸쓸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따듯하고 행복한 바다였다. 적어도 그날 그들에겐.

 

해변에 설치된 파라솔 모양의 그늘막에서 몽돌이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정자항에서 약 1시간 40분가량을 걸어 관성 솔밭해변에 도착한 그들에겐 풍경 같은 달콤한 휴식이었다. 그저 쉬어 가는 휴식도 관성 솔밭해변에선 풍경이 되는 순간이었다.

 

상계리에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구에 설치된 수렴천 보도교를 건넜다. 다리 중간에 아치형태의 철 구조물을 세운 보도교다. 그들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보도교 위에서 수렴천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내려다보았다. 가끔 물방울을 튕기며 노니는 물고기를 구경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가끔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누리는 해파랑길 여행이 행복한 이유다. 보도교를 지나 솔밭을 따라 해변을 걷다 보니 수렴항이 눈앞으로 바투 들어왔다. 가을 하늘빛에 물리적 거리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햇볕에 반짝이는 물결 위로 점점이 들어왔다 흩어지며 초점을 잃고 멀어졌다. 모래사장 끝으로 점점 작아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그 위를 거니는 사람들. 자연과 인간이 이토록 조화로운 모습으로 어우러져 있는 광경은 그의 마음에 깊은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그 순간, 그는 자연의 위대한 힘과 자연을 닮은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을 동시에 느꼈다. 모래가 쌓인 해변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잔잔한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왔고, 시원한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가 안긴 자연의 품은 여전히 따스했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모래사장을 거니는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다. 자연과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들 주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은 평온했고 한층 맑아지는 듯했다. 잠시나마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도 이러한 아름다운 조화가 늘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수렴천 보도교는 푸른 바다와 맞닿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엔 편안한 운동복 차림의 한 쌍의 커플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가벼운 짐을 챙겨 걷는 여유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커플이었다. 마치 푸른 바다를 노래하는 한 편의 시처럼,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자유로웠다.

 

수렴천 보도교에서 솔밭 해변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걸음도 한 쌍의 커플 못지않게 여유롭고 경쾌한 발걸음이었다. 푸른 바다를 노래하는 한 편의 시는 그들에게도 물씬물씬 묻어나고 있던 감성이었다.

 

수렴천 보도교를 지나 해변을 따라 걸으면, 넓은 솔밭이 나타났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솔잎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솔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서로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커플들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들 얼굴에도 역시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해파랑길 여행은 단순히 해변을 따라 걷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해파랑길을 걸으며 푸른 바다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래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자연의 숨결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렇게 자연의 품에서 천진스러운 아이들이 되었고, 가끔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먼바다를 바라보며 해파랑길을 걸었다.

 

해파랑길 여행은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함께 했던 시간은 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이 길을 다시 걸으며, 오늘의 행복을 추억할 것이다.

 

해파랑길 여행은 푸른 바다를 노래하는 발걸음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시였다. 자연과 하나가 된 시간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잊지 못할 그들 만의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 놓았다. 해파랑길 여행은 그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수렴항을 지나 둥글게 해안을 돌아 나가자, 한적하기만 한 하서 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잔잔한 파도만이 부드럽게 해변을 쓸어내리는 해변이었다.

 

눈부시게 파란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 그는 낚싯대에 매달린 낚싯줄보다는 눈부신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바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낚시에 크게 관심이 없고 세월의 물결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세월을 낚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세월이 밀려왔고 낚시꾼이 꿈꾸는 미래가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이내 바다로 떠나갔다. 낚시꾼이 낚는 세월과 꿈꾸는 미래 사이엔 짭조름한 바닷바람만 있었다. 낚시꾼은 꿈꾸는 미래를 햇빛엽서에 빼곡히 담아 바닷바람에 실어 보냈다. 그의 꿈은 햇빛엽서가 되었고, 햇빛엽서는 그의 꿈이 되어 바다로 떠났다.          

 

우리가 사는 오늘은 과거 사람들의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그려 나가듯 과거의 사람들 또한 그들의 시각으로 미래를 그려냈고, 그 결과 오늘이 있는 것이다.  

 

바다에 펼쳐 놓은 낚시꾼의 꿈은 언젠가 훗날, 누군가의 오늘이 될 것이다. 그의 꿈은 미래의 파도가 되어 훗날,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줄 것이다. 조금 전 그들이 지나온 해파랑길은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앞으로 그들이 나아갈 길은 미래로 걷는 길이듯 누군가에게 새로운 꿈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바라보는 것도 자유고 생각하는 것도 자유지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좀 나갔지 싶긴 한데, 그렇다고 영 엇나간 것은 아니니 과히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하서 해변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차박차박 몽돌을 밟을 때마다 리듬감 넘치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아우러져 흥겨운 발걸음이 되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 에메랄드빛 바다가 반짝이며 펼쳐져 있었고, 금빛 모래사장에는 하얀 파도가 부서지고 흩어졌다.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고즈넉이 바다에 엎드린 어촌마을은 마치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그림엽서 속의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짭조름한 소금기와 햇볕에 달궈진 모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된 듯한 장관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하서 해변이었고, 영혼이 맑아지는 화양연화(花樣年華) 같은 하서 해변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우연히 책갈피에서 떨어진 그림엽서를 보았을 때 떠오르는 추억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11월 9일, 가을색으로 한창 물드는 계절이지만 더위를 느낄 수 있는 기온이었고, 이미 3시간을 넘게 걸은 터라 시원한 얼음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마침 눈에 띈 바닷가 편의점에서 눈꽃 빙수와 얼음컵에 맥주를 따라        마시며 삶아 온 달걀까지 챙겨 먹으니, 세상이 달리 보이리만치 눈이 밝아졌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밥 먹고 떡 먹기다. 장구 울리면 춤추고 북 울리면 꽹과리 치는 것이다. 잠시 유쾌한 대화가 오가고 파이팅도 외치며 편의점 노상에 놓은 테이블에 껌 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오늘 여정의 끝점인 나아 해변을 향하여 걸었다. 이곳에서부터 해파랑길은 하서항을 지나 바닷가에 꽃처럼 피어난 양남 주상절리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따라 이어졌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柱狀節理群)은 이곳 하서항을 지나며 나타나는데, 읍천리까지 약 1.5㎞ 해안에 형성된 주상절리로 수직으로 형선 된 다른 곳과 달리 수평 또는 비스듬히 옆으로 누운 경사 형태, 활짝 핀 꽃처럼 부채꼴의 방사 형태 등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방사형태의 주상절리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형태로 지표면 위로 분출하지 못한 마그마가 급격히 냉각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주상절리다.

 

이곳 양남 주상절리군은 신생대 제3기인 마이오세(약 2,600만~700백만 년 전) 때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우리나라 동해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매우 학술적 가치가 높은 주상절리다.

 

자연이 빚어 놓은 아름다운 예술품, 다채로운 모양의 주상절리를 보며 걷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걸었다. 4박 5일의 여정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 오자 모두들 상당히 고무되는 기분을 느꼈는지, 얼굴엔 기쁨의 미소가 넘쳤고 두 팔을 올리고 흥겨움에 젖어 걷기도 했다.

 

바다가 불러주는 철썩 노래를 들으며 어느새 읍천항이 가까이 다가왔다. 너무나 예쁜 바다가 그들을 기다렸던 주상절리 전망대에 머무르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다 같이 모여 사진도 한 장 남겼다. 아련히 떠오른 지난 여정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메모를 남겨야 했고 머릿속을 정리해야만 했다.  

 

읍천마을은 국가어항 읍천항과 어우러져 작지만 너무나도 예쁜 어촌 마을이었다. 비단결처럼 하얀 구름이 하늘과 바다를 곱게 뒤덮고 있었다. 계단식으로 조성된 항구에는 다채로운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언덕 기슭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집들이 마을 풍경에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얹어 놓았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읍천마을은 보는 그들에게 평안함이었고 선물 같은 풍경이었다.  

 

읍천항을 벗어나자 아름다운 바다, 나아 해변이 그들의 눈에 담겼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나아 해변, 햇볕에 반짝이는 윤슬이 마치 수천수만 개의 다이아몬드를 흩뿌려 놓은 듯했다. 한마디로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특별한 선물이었고, 그런 바다를 날고 있는 갈매기는 환상적인 풍경의 백미를 장식했다. 음악으로 치면 오케스트라와 같은 장대한 풍경을 마주한 그들에게 밀려온 감동의 바다 나아 해변, 아름다운 바다 나아 해변 모래사장엔 누군가의 추억이 담겨 있는 발자국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오늘 본 나아 해변 풍경은 평생 본 바다 중 아마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바다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아름다움 보다 늘 감동적이다. 섬세한 그림처럼 감성을 끝없이 자극하는 나아 해변의 아름다움은 그런 감동이었다. 풍경 그 자체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행복한 시간, 평화로운 마음을 찾는 소중한 공간, 영원히 간직될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는 특별한 곳, 나아해변에서 느꼈던 감동은 잊을 수 없는 해파랑길 이야기로 남게 될 것 같았다.

 

 

해파랑길이 몹시 그리워질 땐/조영환

 

 

문득문득, 아름다운 바다가 떠오른다.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금빛 모래사장,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짭조름한 소금기까지.

커피 잔에 보글거리는 거품처럼

촘촘하게 새겨 놓은 추억들이 몹시 그리워진다.

 

때론 아주 짧은 순간이겠지만,

그 순간마다 가슴은 따뜻해지고

삶은 기쁨과 감사로 풍요로워진다.

시원한 파도가 발목을 스치고,

부드러운 모래가 발바닥을 감싸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그 느낌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기억하고 있는

바닷바람도 몹시 그리워진다.

 

문득문득, 예쁜 바다가 떠오른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

끼룩끼룩 갈매기 울음소리,

사각사각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싸박싸박 걷던 발자국 소리,

소쇄하게 대숲을 흔들던 바람 소리가 몹시 그리워진다.

 

달빛이 산으로 내려오는 소리,

햇살이 마을로 내려오는 소리,

방어진항 어물전에 흩어졌던 삶의 소리,

붉게 물든 억새가 바람결에 부딪치며

가을로 가을로 예쁘게 물들어 가는 소리까지.

유쾌하게 한 바탕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걸었던 여정이 새겨진

해파랑길이 몹시 그리워진다.

 

 

문득문득, 푸르른 바다가 떠오른다.

몽돌을 베고 누워 바라본 하늘,

구름이 오가며 그려줬던 그림,

풍경으로 들어가 그림이 되었던 순간까지.

바다가 들려주는

철썩 노래가 몹시 그리워진다.

 

따뜻하게 마음을 감싸 주었던 햇살,

금빛 모래사장을 쓰러 내리던 물결,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고즈넉이 바다에 엎드린 어촌마을,

때론 평온함을,

때론 이번 생 내내 활력이 되어

세상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행복했던 기억이 몹시 그리워진다.

 

 

문득문득 그리운 바다가 떠오른다.

바람에 나부끼던 손수건을

바닷가에 남겨둔 것처럼,

해파랑길에 남겨둔 아름다운 기억이

바닷바람에 실려 햇빛엽서가 되어

언제나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기에

예쁜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던

해파랑길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면

몹시 심한 해파랑길 앓이를 할 것이다.

 

           

이 여행이 끝나면 문득문득 아름다운 바다가 떠오를 것이다.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금빛 모래사장,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 그리고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짭조름한 소금기까지. 그리고 비를 맞으며 덕하역에서 역 방향 남진으로 걸었던 추억, 몇 개의 산을 넘으며 야간 산행까지 이어진 강행군. 그동안 해파랑길을 걸으며 커피 잔에 보글거리는 거품처럼 촘촘하게 새겨 놓은 추억들. 때론 아주 짧은 순간이겠지만, 그 순간마다 가슴은 따뜻해지고 삶은 기쁨과 감사로 풍요로워질 것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었던 기억. 시원한 파도가 발목을 스치고, 부드러운 모래가 발바닥을 감싸는 그 느낌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기억하고 있는 바닷바람도 몹시 그리워질 것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 끼룩끼룩 갈매기의 울음소리, 사각사각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싸박싸박 걷던 발자국 소리, 소쇄하게 대숲을 흔들던 바람 소리, 붉게 물든 억새가 부딪치며 가을로 물들어 가는 소리, 유쾌하게 한 바탕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걸었던 그들의 여정이 떠오를 땐 해파랑길이 몹시 그리워질 것이다.

 

예쁜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던 해파랑길 추억이 때론 평온함을, 때론 이번 생 내내 그들을 지켜주는 활력이 되어 줄 것이다. 몽돌을 베고 누워 구름이 오가며 그려줬던 그림, 풍경으로 들어가 그림이 되었던 그들, 햇살이 따뜻하게 그들의 마음을 감싸 주었던 순간, 세상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행복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면 몹시 심한 해파랑길 앓이를 할 것이다.

 

그들의 해파랑길 여행은 바람에 나부끼던 손수건을 바닷가에 남겨둔 것처럼 해파랑길에 남겨 둔 아름다운 기억이 바닷바람에 실려 햇빛엽서가 되어 그들에게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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