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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Apr 03. 2024

고운 빛깔로 물든 햇빛엽서

해파랑길 10코스 정자항에서 신명마을까지(울산구간)


다시 밝아 온 아침, 오늘은 해파랑길 원정 4박 5일 일정 마지막 날이다. 펜션을 얻어 하룻밤을 유숙한 그들은 아침 일찍 서둘러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어서 오전에 10코스를 걷고 오후엔 귀갓길에 오를 예정이기에 새벽부터 서두른 셈이었다.


식탁에 이마를 맞대고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휴가 온 가족들의 아침 식사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여덟 시에 숙소를 출발해 정자항으로 향했다. 늘 씩씩하게 앞장서 걷는 경희가 오늘도 앞장을 섰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거치하여 사진과 기록을 남기며 걷는 그가 뒷장을 섰다. 바다로 흘러드는 정자천을 건너는 다리 위를 일렬로 건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알록달록 일곱 색깔 무지개가 뜬 것처럼 정자교를 화사하게 물들였다. 옥녀봉(167.3m) 산기슭에 머물던 따듯한 아침햇살이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싸막싸막 다리 위를 걷는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아침햇살이 함께 길을 나섰다. 마을을 붉게 물들인 가을 빛깔 아침 햇살이 그들의 여정과 함께 찬란한 하루를 시작하였다. 정자항 바다와 하늘은 어디까지 바다이고 어디까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영락없이 같은 푸른색 하늘과 바다였다. 부둣가에는 어구들과 생선 궤짝, 어망, 로프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빈 생선건조대와 함께 얇은 날개를 접은 나비처럼 가지런히 접힌 빨간색 파라솔이 한적한 부둣가를 지키고 서 있었다. 조업에 나서지 않은 고깃배들은 가을 하늘로 물든 어항에서 그림 같은 풍경이 되었고, 부둣가 상가 건물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간판들이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아 알록달록 무지개빛깔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잠자리 날개 같은 흰 구름이 이따금씩 푸른 하늘을 오가고 있는, 그렇게 눈부신 가을하늘이 머물고 있는 정자항 부둣가를 걸었다.  


정자항 가자미 조업은 새벽 3시에 출항하여 오후 3시경에 입항하는 자망어업으로 연중 월 20회가량 조업에 나선다. 정자항은 하루 20~25척의 어선들이 출어하여 척 당 70~100㎏의 어획량을 올리고 있는 국내 최대 가자미 어항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참가자미의 대부분이 이곳을 통해 공급되는데, 가자미 활어는 이곳 울산지역에서만 유통되는 귀하신 몸이다.  


오후에 출어하여 집어등을 밝히고 밤새 조업한 후 새벽에 입항하는 어항과 달리 조용할 수밖에 없는 정자항의 아침풍경은 사람들은 고사하고 그 흔한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았고 늘 선창가를 기웃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거리지 않았다. 그저 고요함이 머물고 있는 정자항 아침 풍경을 뒤로하고 길을 따라나선 그들의 오늘 여정은 그렇게 조용하기만 한 정자항에서 해안을 따라 강동화암, 읍천해안 주상절리 절경이 펼쳐지는 해안길을 따라 나아해변까지 이어지는 13㎞ 거리의 해파랑길 10코스로 예정 소요시간은 5시간이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정자항의 풍경은 그들에게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얇아진 영혼을 살찌우는 따듯한 위안을 주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와 하늘 가득 펼쳐진 푸른빛의 향연, 그리고 그 위로 떠다니는 하얀 구름은 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들은 그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 깊숙이 담긴 마음의 평화를 건져 올리는 어부가 될 수 있었고, 늘 새롭고 경이로운 풍경을 통하여 세상의 일부인 자신을 들여다보며 마치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걷는 해파랑길 여행은 미술관에 걸린 멋진 그림 같은 소중한 순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공존하는 그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파랑길 여정으로 인하여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졌고 행복한 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더욱 따듯했던 가을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바닷가 마을로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걷는 해파랑길은 곱게 물든 단풍이 가득 담긴 그림엽서 같은 낭만이 가득했다. 봄날 돋아나는 새순처럼 싱그러움까지 묻어나는 바닷가 마을 정자해변, 그곳엔 산과 바다와 길이 있었고 햇빛과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흰색 무명천 같은 그들이 있었다. 언제나 고운 빛으로 물들 준비가 되어 있는 무명천 같은 그들이 고운 푸른빛 하늘색으로 물들고, 가을색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그림엽서 같았던 해파랑길에 고운 빛깔로 물든 봄꽃보다 예쁜 단풍이 되었고, 햇빛 엽서가 되었다.



햇빛엽서/조영환


이른 아침 바닷가 마을

내리쬐는 햇볕,

곱게 물든 단풍,

잠자리 날개 같은 구름은

낭만 가득한 그림엽서를 그린다.


봄날 돋아나는 새순처럼

싱그러움까지 묻어나는 바닷가 마을

정자해변, 그곳엔

산과 바다와 길이 있었고

햇빛과 바람이 있었다.


언제나 푸른빛 하늘로 물들

언제나 고운 빛 단풍으로 물들

무명천 같은 해파랑길 이야기는

푸른빛 고운 하늘이 되었고

봄꽃보다 예쁜 단풍이 되었고

햇빛엽서가 되었다.



천천히 가을 햇볕을 쬐며 바닷가를 걸었다. 진흙탕물 속에서도 결코 물들지 않는다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연꽃이 이곳을 걷는다 해도 고운 가을하늘 푸른빛으로 물들지 않고는 배겨 날 재주가 없어 보였다.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그들에게 담긴 푸른빛 햇살과 바다, 먼 산을 물들이고 있는 고운 빛깔 단풍은 그렇게 그들과 함께 해파랑길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종종거리며 걷는 갈매기 한 쌍이 두리번거리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갯가엔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떠밀려온 물결이 둥근 원을 그리며 일렁거렸고, 낯선 여행자들을 바라보던 갈매기는 다시 제 할 일에 집중하며 갯가를 오가고 있었다.


어쩜 저리도 예쁜 파랑으로 물들었을까? 너무나도 매혹적인 코발트블루 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다. 두런거리는 그들의 그림자가 그들보다 앞서 길을 걷는 해파랑길 아침엔 하늘도 바다도 온통 파랑파랑했다. 작은 갯바위가 흩어져 있는 갯가엔 남실거리는 파도가 바다의 노래를 들려주었고, 바다로 꼬리를 감춘 먼 산과 가을로 물든 하늘은 숨바꼭질을 하며 그들과 함께 해파랑길을 걸었다.


그렇게 가을로 물들고 햇살에 물들며 길을 나선 지 15분 만에 강동해변으로 들어섰다. 해안가를 따라 지어진 고층 아파트 단지가 눈길을 끌었다. 어촌 마을 풍경치곤 다소 생경한 풍경이었다. 인구 밀집지역도 아닌 이런 어촌 마을에 어찌 저리도 많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을까? 이곳에 저렇게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것일까? 고층 아파트 단지가 대도시처럼 많았다. 조금 과장하면 ‘단지’라는 표현보다 밀림이라 해야 맞지 싶었다. 이것저것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강동해변의 마을 풍경은 일반적인 어촌 마을의 풍경과 조금은 달리 느껴졌다. 진부한 고정관념이라, 꼰대 같은 생각이라 비판을 받는다 할지라도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풍경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다소 도시의 치열함이 느껴지는, 어떻게 보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어촌 마을 풍경이었다.


바다 위로 멋지게 날아오른 갈매기가 아파트 단지를 선회하여 다시 바다로 내려앉았다. 해안가 깊이 밀려 들어온 파도가 흠뻑 해변을 적시어서인지 붉은 황토 빛에 가까운 색깔을 띠고 있는 해안이었다. 해안가엔 한 무리 갈매기 떼가 간 밤에 다녀간 파도의 발자국을 따라 종종거리며 오갈 뿐, 아직 사람이 찾지 않은 이른 아침 강동해변의 풍경은 고요한 호수처럼 평화롭기만 했다. 파도가 빠져나간 모래사장엔 촘촘한 물결무늬가 새겨졌고, 따듯한 아침 햇볕을 쬐며 털 고르기에 여념이 없는 갈매기 무리는 머리를 주억거리며 다시 밝은 새날에 만족하며 즐거움에 빠져들고 있었다. 새로운 아침을 맞은 이른 아침 강동해변은 부드럽게 밀려와 해안에 닿은 물결이 슬며시 머물다 촘촘한 그리움만 모래사장에 새겨놓고 떠나는 차분함이 느껴지는 바다였다.


그랬던 바다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갈매기 무리들이 모두 해안을 떠나 바다로 날아올랐고 잔잔하던 물결이 흰 포말을 일으키며 해안가로 밀려왔다. 거친 파도가 밀려오며 머리만 주억거리던 갈매기 무리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자리를 이동했다. 푸른 하늘엔 조금 전만 해도 없었던 작은 유리조각 같은 구름이 띠를 그리며 바다로 내려오고 있었다.


해파랑길을 북진하며 걷는 그들이 들어선 강동해변 남쪽 해안은 몽돌해안치곤 비교적 모랫바닥이 드러난 해안이었다.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난 테트라포트가 보였다. 수중에 테트라포트를 설치한 것으로 보아 해안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수중보인 듯했다. 강동 몽돌해변도 침식이나 세굴(洗掘)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동해안 대부분의 연안처럼 침식이 진행되며 몽돌이 유실되고 있는 듯했다.


테트라포트 구조물이 거의 대부분 바닷물에 잠겨 극히 일부만 물 위로 드러나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테트라포트는 울산시와 울산지방해양수산청이 2013년과 2016년에 설치한 수중보로 어느 정도 몽돌의 유실을 방지하고 있다고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150513151900057?input=1195m


눈으로 보는 형상만으로 딱히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해저보까지 설치해야 했던 강동해안의 침식도 꽤나 심각해 보였다.


해안침식과 퇴적은 매우 위협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이다.

해안 퇴적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해안선 후퇴, 생태계 파괴, 경제적 손실, 사회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여 심각한 위협이 되는 문제이다. 해안 면적이 감소하고 주택, 도로, 공공시설 등이 위협받을 수 있으며, 퇴적물 증가는 해안 습지, 산호초 등 다양한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 해수욕장, 어항, 관광 시설 등 해안 관련 산업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되는 해안 퇴적은 침식만큼이나 위협적인 재해이다.


해안침식은 파도, 조력, 해류, 표사 이동 등의 자연적인 요인과 인공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강원도 동해안 해안침식은 심각한 지역사회 문제로 부각된 지 이미 오래전 일이다. 해안침식은 기후변화로 해수면 상승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파랑(波浪)이 발생하며 침식이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류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해수면 상승은 연간 2.5㎜로 세계 평균 해수면 상승치인 1.8㎜보다 높은 편이다.


그런데, 무분별한 개발은 침식을 더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바닷가를 여행하다 보면 과거에 비해 해안에 많은 시설물이 설치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항만·어항 개발과 해안도로 개설은 물론이고 해안에 각종 인공구조물이 설치되고 있음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더욱이 무분별한 바다 모래 채취까지 이루어진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할 수 있는데, 이 분야에 대한 전문 식견이 부족한 문외한이다 보니 더 언급할 순 없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은 해빈류의 변화를 가져오게 됨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늘 조류에 따라 흐르는 바닷물은 해안의 모래를 이동시키며 어떤 지점에선 침식이 발생되고 또 어떤 지점에선 퇴적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균형을 찾고자 하는 자연의 이치가 작용하여 발생되는 침식과 퇴적이지 싶다.


동해안 연안의 해안침식 피해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청정 해변이 훼손되고 국민들이 찾는 휴양지인 백사장은 폭이 좁아지고 있고 심할 경우엔 도로까지 유실되고 있는 심각한 실정이다. 이러한 해안 침식은 바닷가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동해안 주민들에겐 생계가 걸려있는 심각한 문제로 이리저리 대책을 세우고 해빈옹벽과 도류제와 돌제, 수중보 등을 설치해 보지만 크게 개선되는 것 같지 않다. 침식이 예상되는 해안에 미리 모래 또는 자갈을 인공적으로 공급하여 해안선을 유지하는 양빈 작업도 이루어지지만 크게 효율적이진 않아 보인다. 과거에 보았던 백사장에 비해 상당히 좁아진 해안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가 과거에 살았던 동해 어달 해변만 보아도 그렇다. 지금은 해수욕장이란 명칭이 무색하리 만치 좁고 짧은 백사장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해안침식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문제이다. 다양한 방안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해안선을 보호하고 침식을 방지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자연재해는 늘 소리 없이 진행되고 미리 예측하고 대처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저기 뜯겨 나가고 생채기가 난 후에 대처하는 일도 규모가 점점 커지는 재해로 힘겨워 보이는 게 현실이다.


바다를 둥지 삼아 살아가는 갈매기와 바다새들에게도 환경변화와 재해는 그다지 이로운 일이 아닌 일이다. 한가로이 해변을 따라 무리를 지어 노닐고 있는 갈매기와 바다새에겐 어찌 보면 더 치명적일 수 있는 문제이다.


아무튼, 수중보가 설치된 해변엔 무지개 색을 입힌 해안옹벽 보다 더 높이 테트라포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테트라포트는 방파제 높이와 같거나 엇비슷한 높이로 축조한다. 그런데 이곳 강동해변은 해안 옹벽보다 훨씬 높게 쌓았다. 그곳을 걷고 있는 그들의 키와 거의 같은 높이로 축조된 테트라포트는 파도가 높을 때 파랑(波浪)을 막아 주긴 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안타까운 궁여지책이 얼기설기 쌓여 있는 것만 같았다. 파고가 높을 땐 필시 도로까지 바닷물이 들이칠 것 같았다.  


해양 토목 전문가도 아닌데 오지랖이 좀 과했다.

과거 강릉 남항진 해안에 도류제(導流堤)와 돌제(突堤)를  설치했던 일이 잠시 떠올랐다. 남항진은 남대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 남쪽에 있는 작은 해변이다. 하구 북쪽엔 안목항이 건설되며 방파제 축조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래서인지 남항진 마을 사람들의 생계와 직결된 하구 해변에 모래가 쌓였고 출어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강릉시에서 발주한 공사를 수주하여 남항진에 설치한 도류제와 돌제 공사를 관리하였던 오래전의 일이었다.


울산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과거 수중보를 설치했던 강동해안의 몽돌 유실은 현재도 진행형으로 보인다. 모랫바닥이 드러나 몽돌과 모래가 반반인 유실이 심한 지역도 있다 한다.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522126


이제 해안침식과 퇴적은 워낙 민감해진 환경과 재해 문제이다 보니 전문가들에게 만 보이는 문제는 더 이상 아니지 싶다.


아무튼 다시 해파랑길로 돌아와서, 울산의 동쪽 끝, 강동 몽돌해변이 가까워지자 몽돌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해변을 따라 구르고 굴러 보석이 된 몽돌의 사연이 들려왔다. 너무나도 예쁜 바다였다. 빨강, 파랑, 노랑, 보라색… 무지개 빛깔로 예쁘게 칠해 놓은 해안 옹벽이 바다와 기막히게 잘 어울렸다.


경희와 미연이 무지개 빛 해안옹벽으로 올라섰다. 서로 손을 잡고 해안 옹벽에 올라선 그녀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허리를 동그랗게 좌우로 휘고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크게 벌려 예쁜 몽돌바다와 푸른 하늘로 들어가 그림이 되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흰구름이 세 줄로 띠를 그리며 바다로 내려오며 햇빛 엽서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뒤로 보이는 콩알 같은 자잘한 몽돌과 반짝이는 물결이 밀려온 바다는 하늘이 유난히도 예쁜 어느 날 찾아온 그녀들을 새겨 넣으며 철썩이고 차르르! 차르르! 구르고 있었다.       



몽돌처럼 구르고 구른 나의 마음/조영환



몽돌이 차르르! 차르르!

햇살에 반짝이는 파도가 밀려와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적시고

코끝을 간질이는 시원한 바닷바람 불어와

하늘로 날아오른 갈매기를 노래한다.

푸른 바다와 하늘 아래

몽돌처럼 구르고 구른 나의 마음



몽돌이 차르르! 차르르!

작은 몽돌 하나가 부드러운 파도에 실려

길고 긴 사연을 바닷가에 털어놓고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이 물러서면

다시 모래 위로 눕는다.

푸른 바다와 하늘 아래

몽돌처럼 구르고 구른 나의 마음


몽돌이 차르르! 차르르!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 저녁이 되면

하늘과 바다는 붉게 물들고

구름은 한바탕 불꽃놀이를 펼친다.

몽돌에 비치는 노을은 반짝이는 보석이 되고

물결이 남겨놓은 발자국은 촘촘한 그리움이 된다.

푸른 바다와 하늘 아래

몽돌처럼 구르고 구른 나의 마음



몽돌이 차르르! 차르르!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바다가 잠들고

이 밤 고요함이 어색한 듯

멀리서 들리는 바람 소리만 바다에 남는다.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하게 빛나고

몽돌은 모래 위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푸른 바다와 하늘 아래

몽돌처럼 구르고 구른 나의 마음


몽돌은 차르르! 차르르!

달빛에 깃든 몽돌이 내일의 꿈을 꾸며

새로운 하루를 기다리다 달님에게 말하기를

달님! 달님! 달님을 사랑합니다.

늘 은은한 달빛을 저에게 보내주시는 달님은

저에겐 소중하고 귀한 달빛 사랑입니다.

푸른 바다와 하늘 아래

몽돌처럼 구르고 구른 나의 마음



몽돌해변에서 햇빛엽서가 되고 몽돌처럼 구르고 구른 마음을 노래한 그에게 경희와 미연은 아주 훌륭한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해안 옹벽으로 올라 호흡을 맞춘 그녀들의 모습을 햇빛 반짝이는 몽돌해변 물결에 새겨 넣고 다시 길을 떠났다.



강동화암주상절리, 화산암의 신비가 담긴 주상절리 해안은 해파랑길의 숨겨진 명소였다. 몽돌이 쌓인 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화암마을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주상절리는 약 2000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마그마가 식어 굳어지며 육각형 또는 삼각형 형태의 수직 기둥모양의 절리가 를 겹쳐진 암석이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띄엄띄엄 나타나는 주상절리의 형태는 실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양이었다. 조그만 산이 솟은 듯한 모양, 비스듬히 옆으로 누운 모양, 물고기처럼 마치 꼬리를 팔딱거리는 듯한 물고기 모양, 육각기둥이 수평으로 쌓인 형태의 주상절리 등 마그마가 급격하게 굳을 때 만들어진 주상절리는 화사하게 활짝 핀 꽃 모양을 띠고 있기도 했다. 하나하나 보다 보니 발걸음은 더디었지만 신비함이 깃든 자연과 함께 걷는 맛은 해파랑길 여행의 또 다른 풍경 맛집이었다.


이곳 마을 이름은 화암花岩 마을이다. ‘꽃 같은 바위’를 이르는 한자의 뜻으로 보아 개화한 꽃같이 형성된 주상체의 횡단면을 보고 마을이름을 화암이라 붙인 듯했다. 강동화암주상절리는 용암의 분출로 형성된 주상절리로는 가장 오래 전의 것으로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공허한 번영/조영환

신명방파제 해안 끝자락, 잡초와 덤불에 뒤덮인 폐 목선은 황량함을 자아냈다. 녹슨 선체와 찢어진 깃발과 선체는 마치 과거의 영광을 잃은 노련했던 어부처럼 쓸쓸하게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멀리 보이는 정자동 고층 아파트 숲은 버려진 폐 목선과 달리 번영과 활력을 상징하는 화려하고 치열한 도시의 풍경을 연출했다. 버려진 폐 목선과 현대적인 고층 아파트는 서로 다른 시대의 상징처럼 대조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과거의 낭만과 모험을 상징하는 폐 목선과 현재의 물질 만능주의를 상징하는 고층 아파트는 서로 어긋나면서도 바다와 함께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 풍경은 현대 사회의 발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과거의 가치와 잊혀가는 영광과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현대 사회의 번영과 화려함 속에서 느껴지는 한없이 공허한 무기력함을 떠올리게 했다.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묘한 풍경은 과거와 현재, 낭만과 현실, 그리고 번영과 공허 사이의 거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빌딩으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를 던져주었다. 과연 우리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가치를 모두 버려야 하는가? 그리고 현대 사회의 공허한 번영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이 풍경은 단순한 자연 풍경을 넘어 현대 사회의 모습과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시사성 가득한 작품 같은 풍경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 그는 이리저리 구도를 잡고 몇 장의 사진을 찍느라 일행들과 거리가 벌어졌다.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 사진으로 기록을 했고 사진제목은 ‘공허한 번영’이라 붙였다.    


@thebcstory

※     해파랑길 10코스 경주 구간인 지경마을에서 나아 해변까지의 이야기는 후속 편 ‘바람에 실려 보낸 햇빛엽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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