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샬라의 나라,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짙은 어둠이 내리는 시간, 12월 27일 저녁 9시, 강릉에서 오후 7시 시외버스 춘천행 막차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한 친구를 마중 나간다. 정년으로 은퇴한 친구 둘과 함께 튀르키예를 여행하기로 하고 춘천에서 만나 함께 출발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06시 30분에 예정된 여행사 미팅 후 짐을 부치고 검색을 통과하여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다. 그러려면 최소한 춘천에서 02시에 출발하여야 하는 어중간한 시간이 되기에 아예 저녁 10시 내지 11시경에 승용차로 천천히 출발하여 서울 아들네 집에 차를 맡기고 일찍 공항에 도착하여 쉬자는 의견이 모아진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계획을 잡고 28일 00시 10분경에 서울 아들네 집에 도착하여 인근 까치산로 183에 위치한 ‘푸주옥’에서 설렁탕에 소주를 곁들여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늘 그렇듯이 밤낮이 따로 없는 대도시의 심야도로를 달려 공항으로 향했다. 새벽 2시경 인천공항, 이른 시간임에도 공항에서 하룻밤을 유숙(?)하는,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일찍 공항에 도착한 이들로 인해 공항은 의외로 붐볐다. 어렵게 빈 의자를 찾아내어 몸을 맡기고 잠시 쪽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새벽 다섯 시가 넘어가고 항공사 카운터엔 짐 부치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06시 30분 여행사 미팅 후 바로 짐을 부치고 공항 내 식당 ‘소담반상’에서 아침식사를 챙겨 먹고 나니 시각은 이미 07시 30분을 넘어선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면세점을 몇 군데 들르고 12번 탑승구로 이동하여 아시아나 항공 OZ 551편 이스탄불행 항공기에 몸을 싣는다. 09시 35분 이륙 준비를 마친 비행기는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이어서 11시간 10분 비행 예정이란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오며 이스탄불을 향하여 비행을 시작한다.
11시간 10분, 상당한 비행시간이다. 좁은 기내에서 11시간 이상 머무는 것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륙 후 두 번의 기내식과 맥주와 오렌지 주스를 곁들인 피자를 간식으로 먹으며 11시간 40분을 비행하여 우리 시간 오후 9시 10분경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다. 우리와의 6시간의 시차로 인해 현지 시간으로는 오후 3시 10분경에 도착한 셈이다.
이런 긴 비행은 어느 정도의 피로를 동반하지만, 이스탄불에 발을 디딘 순간 새로운 모험이 펼쳐질 것에 대한 가득 찬 기대감으로 피로감은 상쇄되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꼼짝할 수 없었던 갑갑함보다 훨씬 나은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피로감을 애써 떨쳐내고, 이제부터 시작될 튀르키예 여행에 대한 벅찬 기대감만을 안고 입국심사대로 향한다.
이 독특한 도시의 아름다움, 다소 생경하고 생소한 이슬람 문화를 만나러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이 땅에서 모든 순간들이 특별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기억되길 기대한다. 아마도 낯설고 물 설은 땅으로 들어서는 이 순간이야 말로 여행자들에게 가장 설레는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이곳이 튀르키예 땅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튀르키예 국기가 모니터 화면에서 일렁인다. 금세라도 모니터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빨간 튀르키예 국기가 낯선 여행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짐을 찾아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오후 4시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공항 출구 대합실에서 가이드와 미팅하고 일행이 모두 합류하는 동안 잠시 짬을 내어 바깥공기를 쐬기 위하여 공항 출구를 빠져나오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잠시 공항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과 합류하기 위하여 다시 공항 대합실로 들어가는데, 조금 전 나왔던 출구론 들어갈 수 없다며 무장경찰이 다른 출구 번호를 알려준다. 출구와 입구가 다르다? 아무튼 어찌어찌 보안요원의 말을 알아듣고 알려준 입구를 찾아 검색대를 통과하고서야 대합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테러 대응책으로 공항 대합실로 들어가는 것도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테러를 대비하는 상황이고 다소 삼엄한 공항풍경(?)이다. 이 또한 다른 나라에서 겪어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인데, 이런 다양한 상황들이 튀르키예 여행의 시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중 하나일 것이라는 예측을 슬며시 하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당연히 여행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순간 당황스러웠다.
한 달 전에 있었던 지하철 테러 뉴스가 떠올라 무심코 안전에 대한 걱정이 스쳐가며, 무차별적인 테러가 가끔 발생되는 나라임을 그제야 기억해 낸다. 언젠가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온 후 바르셀로나 람브라스거리 테러도 떠오른다. 당시 그 거리를 다녀온 후라 더욱 피부에 와닿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는데, 튀르키예도 대테러 대응이 사뭇 삼엄한 상황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번 여행에 크게 고려하지 않았는데, 안전을 최우선으로 살펴가며, 동시에 이런 독특한 상황들에 대한 경각심과 또 다른 호기심도 함께 느끼게 될 여행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일행들과 합류한다.
그런데, 5시 34분, 비행기에서 내린 지 이미 두어 시간이 넘어가고 있음에도 두 사람이 합류하지 않는다. 가이드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열심히 찾아보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가이드를 붙잡고 사정을 물어보니 전화 통화가 가까스로 되긴 했는데..., 25번 출구에 있다는데..., 이스탄불 공항엔 25번 출구 자체가 없는데..., 이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늦게 합류한 부부는 25번 출구가 아니고 짐 찾는 25번 벨트에서 줄곧 서 있었다 한다. 결과적으론 두 사람의 어이없는 판단으로 두 시간을 공항에 버린 셈이다. 일행이 36명이다 보니 출발부터 별일이 다 있지 싶다. 아마도 모르고서 그랬겠지만, 알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싶지만, 해외여행 경험이 처음이라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하고 모두들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를 할 식당으로 이동한다.
여행 중 이와 같이 예상치 못한 일들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참을성을 가지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일행 중 몇 명이 늦게 합류하는 상황은 왕왕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일 중 하나이다. 때로는 통신 오류나 오해로 인해 적지 않은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오늘, 튀르키예 여행 첫날, 바로 그 예기치 못한 일이, 적지 않은 그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다소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어찌하겠는가, 서로 이해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풍요로운 여행을 만들어야 하는 공동의 목적이 있으니, 두 시간을 공항에서 버리긴 했지만,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가 후엔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음을 기대하며 이스탄불 도심으로 들어간다.
인샬라(ان شاء الله)의 나라,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임에도 버스엔 터키석과 국기가 그려진 부적 같은 것들이 눈에 띄게 걸려 있었다. 버스의 제일 앞 좌석에도 국기가 휘장처럼 걸려있는 모습은 우리에겐 조금은 생경한 모습이지만, 유난히 국기가 곳곳에 많이 보이는 국가관이 투철한 이네들의 정체성엔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닌 일상적인 풍습이라 한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의 세계관과는 다른 문화와의 만남에서 나타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다. 이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며, 하루에 다섯 차례 메카를 향하여 절을 하며 살아가는 신앙심이 매우 깊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국기와 푸른색의 터키석은 그네들의 일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상징적이고 부적 같은 것으로 그네들의 정체성과 국가에 대한 애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첫날 이스탄불 오후 일정은 튀르키예 전통시장 카파르 차르쉬(Kapali Carsi, Grand Bazaar)를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관광은 내일로 미루고 시장기가 느껴지는 배부터 채우러 가게 된 셈이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벌어진 예기치 못한 일로 내일의 일정이 더욱 기대되고 궁금증이 배가되는 느낌이다.
이스탄불,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는 독특한 도시 이스탄불,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고 녹색 조명이 드리워진 조금은 낯설고 이색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이스탄불의 저녁, 녹색 조명으로 일렁이는 낯설고 이국적인 좁은 골목길은 이리저리 이어지고 길을 따라 조그만 가게들이 즐비한, 마치 예전 어렸을 적 우리네 골목길을 떠올리게 한다. 그 골목길에 즐비했던 조그만 구멍가게, 신발을 파는 진옥이네, 양복점과 시계방, 늘 ‘아저씨!’ 하고 부르면 ‘네이! 네이!’라며 반갑게 꼬마 손님들을 맞았던 장난감 가게, 퇴근하는 아버지께서 즐겨 들렸던 왕대포집이 있었던 그 좁은 골목길 같은 이스탄불 도심의 골목길을 따라 아야소피아(Ayasofya) 근처의 도이도이 Doy-Doy 식당으로 향한다.
이런 작은 가게들과 골목길은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동시에 이색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사하기에 충분하였다. 아야소피아 인근 골목에서 맞은 이스탄불의 숨은 아름다움은 그렇게 여행자를 50년이 훌쩍 넘는 어린 시절로 데려가 주었다. 이스탄불이 품고 있는 그 이야기에 한없이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여행자를 더욱 설레게 하는 밤이다.
시차까지 고려하면 이미 30여 시간 넘게 움직이며, 잠잘 시간이 한참 지난 혼미한 상태에서 어떻게, 뭘 먹었는지 모를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오늘 묵을 호텔로 이동한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낯선 이스탄불의 거리는 일반적인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차량들이 어디론가 질주하고 오토바이 굉음이 조금은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소박하지도 않은 도시의 거리 모습이 그렇다. 그렇게 30여 분 이상 밤거리를 달려 LA Quinta by Wyndham 호텔에 당도한다. 이슬람 국가임에도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 분위기는 여느 국가의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리라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는데, 호텔엔 크리스마스트리와 새해를 알리는 장식물이 설치되어 있다. 잠시 호텔 로비에서 휴식을 취하며 방 배정을 기다린다. 호텔 방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깔끔한 편이다. 여장을 푼 우리 친구, 외국 음식이 입맛에 잘 맞지 않았는지 컵라면부터 끓인다. 소주 한 잔을 나눠 친구들과 함께 여행 첫날을 자축하며 건배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노트북을 열어 간단하게 오늘 지나온 일정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다.
빗물에 얼룩진 창밖으로 뿌옇게 비치는 이스탄불 외곽의 밤거리는 마치 그곳에 갇힌 듯한 여행자의 진한 호기심이라도 유혹할 것처럼 주광색과 노란 주백색(Warm White) 불빛 가운데 붉은색 조명이 어우러져 일렁거리며 한층 더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든다. 이네들의 가장들이 늦은 귀갓길을 서두르며 도시의 끝으로 질주하는 불빛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이스탄불, 마치 수채화에 담긴 듯한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이스탄불, 이미 여행자의 마음을 사정없이 사로잡는 이스탄불의 밤이 그렇게 깊어 가고 여행자의 마음 또한 이스탄불 속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