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기간
스터디카페 안에 긴장감이 마치 시험 문제처럼 팽팽하다. 긴장감 속에서도 도무지 공부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 속닥속닥 거리는 모습은 눈물을 머금게 만든다. "여기 공부하러 온 거 맞나요?"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다. 스터디 카페 관리자 앱과 CCTV만 번갈아가며 뚫어지게 보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이 시기가 관리의 정점이기도 하다. 한 번의 경고가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으니까.
나만의 노하우 중 하나는 처음 방문한 학생들에게 정성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며 경각심을 준다.
안녕하세요. BN스터디카페입니다.
이용하시면서 불편사항이나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아래 카카오채널이나 문자로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신속하게 답변 및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현재 실내 온도는 24-25도로 학습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는 중이지만, 혹시 춥거나 덥게 느껴지면 주저 마시고, 바로 카톡 및 문자 주세요. 바로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스터디카페는 학습 환경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스터디존 내에서 친구와 소곤소곤 및 손동작 대화는 삼가 주시고, 장시간 통화는 밖으로 나가서 부탁드립니다.
우리 스터디카페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학습공간으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공부가 잘 되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이 문자를 받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온 학생들도 "아, 이곳은 진짜 공부하는 곳이구나!" 하고 대부분은 마음을 다잡게 된다.
자영업자의 비애
인수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생 남녀 5명 무리가 우르르 몰려온 적이 있다. 역시나 앉자마자 옆자리 친구와 속닥속닥 거리고, 옆 옆 친구에게 쪽지를 던지며 부산스럽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원님께 민원 문자가 들어왔고, 역시 경고 문자를 보냈다.
"속닥속닥 안 했고 쪽지로 대화했는데요."
"CCTV로 옆자리 친구와 속닥속닥한 거 확인했고, 손동작 및 쪽지도 공부하는 다른 분들에게 불편을 드릴 수 있습니다. 지양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10분 뒤 온 답장.
"ㅇㅇ 다신 안와 ㅃ"
안녕도 아니고, 빠이도 아니고 ㅃ? 아이고 얘야. 나 너 또래의 딸이 있는 아줌마야. 이놈의 자식. 속에선 용암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자영업자가 별 수 있나. "네 고맙습니다." 답장을 보냈다.
'응 그래, 다신 오지 마.'
그리곤 퇴실 후 다신 놀러 오지 못하게 영구 이용 제한 시켰다.
잊지 말자. 스터디 카페의 본질은 공부하는 공간이다. 공부를 방해하는 회원님들은 과감하고 단호하게 경고해야 한다. 물론 한분 한분 모두 소중한 회원님들이지만, 다른 분들에게 불편을 주는 분들을 끝까지 붙잡았다가는 열심히 공부하던 다른 회원님들이 조용히 떠난다. 한번 떠나간 회원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삼 년간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이 정말 많았다.
그중 하나만 뽑자면, 이 학생을 잊을 수 없다.
밤 9시. 만석을 채우며 열기가 과열되어 갈 때쯤, 처음 보는 17살 남학생 세명 줄줄이 등장.
이 친구들은 책상에 가방만 던 지 듯이 올려놓고 의자에 착석하기도 전에 밖으로 나간다. 문자를 보내도 소용없었다. 한참 뒤 들어와서 핸드폰만 보다가 둘이 속닥거리다가 웃다가 난리가 났다. 매의 눈으로 CCTV로 포착. 바로 다시 문자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BN스터디카페입니다.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옆자리 친구와 속닥속닥 하지 마세요. 공부하는 분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세 번 경고받으면 퇴실조치 하겠습니다."
A학생 "네 죄송합니다."
B학생 "네"
C학생 답장 없음.
그 이후에도 종종 셋이서 같이 오다가, C학생 세 번 경고 후 영구 이용 제한. C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며칠 뒤, A, B 다시 등장. 똑같은 행동으로 둘 다 이용 제한. 그렇게 세명 다 영구 이용 제한 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A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혹시 제가 이용제한이 됐나요?"
"네 미안해요. 계속 경고드렸는데, 변함이 없어서 그렇게 됐어요. 이해 부탁 드립니다."
"이제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만 하겠습니다. 한 번만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우리 스터디 카페가 그렇게 오고 싶은가?
기특한 마음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한 번 더 다짐을 받고 풀어주었다.
그 이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A학생은 그 전화를 기점으로 우리 스터디카페 공부꾼으로 거듭났다. 항상 37번 좌석을 사수하며 학교 가기 전 잠시 들러 1시간 공부하고,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는 망부석처럼 앉아 공부했다.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해서 사물함도 무료로 제공해 주고, 간식도 챙겨 주었다. 이 학생의 특징은 성실함이다. 매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계처럼 공부한다. 매일 규칙적으로 공부하면서, 고맙게도 사장에게 작은 민원들을 알려주었다.
스카 안이 더운데, 온도 좀 조정해 주세요.
30번에 앉아 계신 분이 얼음 먹는 소리가 너무 큽니다.
27번에 앉아 계신 분이 다리를 너무 떨어서 방해가 됩니다.
사장님 스카 안이 습합니다.
많은 스터디카페 사장님들은 이런 민원들을 귀찮아 하지만,
하지만 곰곰이 잘 생각해 보자. 스터디 카페 사장에겐 정말 고마운 고객이다. 스터디카페 안이 더운지 추운지 알려준다. 누가 떠드는지, 공부 분위기를 흐리는 분이 있는지, 사장인 내가 직접 가서 보지 않아도 이렇게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사장님 서울대 합격했습니다."
카톡으로 직접 보내온 서울대 합격증
고마운 A학생은 시간이 흘러 고3 수험생이 되었고, 수능을 보기 전날까지 37번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했다.
다음 해 2월 어느 날,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사장님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 드렸는데, 카톡으로라도 감사 인사 드려요. 제가 공부할 때 예민해서 환경에 신경 많이 쓰는데 독서실 환경이 너무 쾌적하고, 부탁드린 것도 바로바로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원하던 학교도 어제 발표 났어요. 대학 다니면서도 이용할게요. 감사합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스터디 카페가 단순한 공부 공간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낀다.
학생들이 변화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며, 그들의 성공이 곧 나의 보람이기도 하다.
성공은 준비와 기회의 만남이다.
-오프라 윈프리-
앞으로도 이 공간 안에서 많은 학생들이 꿈을 이루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관리하는 공간에서 누군가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건, 그 어떤 보상보다 값진 것이 아닐까.
고맙고 기특한 A학생은 정말로 대학교 시험기간이 되면 우리 스터디카페를 찾아 공부한다.
그리고 여전히 37번 자리에 앉아 분위기를 체크하며 나에게 알려준다.
"사장님, 스카 안이 덥습니다. 온도 좀 조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