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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애 Nov 05. 2024

여보 고시원 임장 갈래?

난 호구가 아니야.

남편은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곧 잘하기도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재테크 책을 보고 있던 남편이 느닷없이 나를 부른다.


"여보, 여보 이 책 '고시원킹'이라는 책인데, 한 번 봐바"

"고시원킹? 풋. 그게 뭐야?"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오래된 고시원을 저렴하게 인수해서 인테리어 하고 꾸며서,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면서 월 천만 원 번대. 그리고 나중에 팔 때도 권리금을 더 올려서 받을 수 있대."


이건 또 무슨 뜬구름 잡는, 뚱딴지같은 소릴까 싶었지만, 그래도 월 천만 원이라니, 눈이 번쩍 뜨여 일단 앉은자리에서 한 시간 만에 정독했다.

고시원에 살아 봤던 사람으로서, 내가 생각한 고시원 원장님의 이미지는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할아버지나 할머니 원장님인데, 요즘은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뛰어들어 재테크로 돈을 번다니, 놀랍기도 하고,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때부터 남편과 나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미 고시원을 운영하는 원장님들의 블로그를 찾아 정독하고, 유튜브에 고시원 창업을 검색해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보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가면서 월 천이라,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나 실행력 갑인 우리 남편이 먼저 나섰다.

"실전이다. 여보 일단 고시원 임장부터 가자" 

우리에겐 그동안 열심히 재테크해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다. 1억 5천. 지금은 이 금액으로 고시원을 찾기엔 너무 많이 올라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1억 5천으로 깔끔하게 리모델링해서 월 500 수익률 정도 보장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고시원이 많이 올라, 1억에 200만 원 정도의 수익률이라고 한다.


"이거 오늘 계약 안 하면 바로 다른 사람이 가져갈 물건이에요. 오늘 계약하세요."

고시원 부동산은 특수 부동산이라서 일반적인 부동산과는 조금 다르다. 동네에 있는 공인중개사 간판만 보고 들어가서 "고시원 매물 좀 보여주세요"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우선, '고시원넷'사이트나 '아이러브 고시원'이라는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서 내가 보고 싶은 지역과 금액에 맞춰서 매물들을 검색한다. 그리고 관심 있는 매물을 올려 둔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중개사와 날짜를 잡고 만나서 매물을 보면 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 반드시 해당 매물을 크로스 체크 해야 한다. 

A매물이 시장에 나와있다면 B중개사와 C중개사가 브리핑하는 가격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불과 몇 천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좋은 매물이 있다고 해도 달콤한 중개사의 말에 덥석 계약하지 말고, 반드시 발품을 많이 팔고, 무조건 많이 보고 크로스 체크 해야 한다.


고시원을 성급하게 인수해서 적자를 유지 중인 분과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 운영하기 힘들어 곧바로 내놓으셨다는 뼈아픈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으므로, 부디, 발품도 안 팔고 중개사의 달콤한 말만 듣고 성급하게 계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계약 전에 수익률 계산은 필수이며, 최소 10군데 이상 임장은 해보길 추천한다. 또 한 내 성향이 고시원과 맞을지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꼭 갖길 바란다.


처음 만난 중개사는 우리의 가용 가능한 금액을 듣고, 적당한 매물 두 개를 보여준다고 한다. 


"여기는 보증금, 권리금 포함 1억 2천인데, 수익률도 좋고, 예쁘게 꾸미면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원장님이 집도 멀고, 일이 너무 바빠서 급하게 내놓으신 물건이에요."


첫 매물은 대학가에 있는 고시원. 방 36개, 절반은 샤워룸, 절반은 미니룸이었다. 


*원룸형 - 방안에 화장실 샤워실이 있는 방

*샤워룸 - 방 안에 샤워실만 있고,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방

*미니룸 - 공용 화장실 샤워실을 사용하는 방


내가 머물렀던 고시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원장님과 대화해 보니 인수 한지 한 달 만에 내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물건인 것 같아, 남편에게 눈짓을 보냈다. 남편도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긴 아니다.'


바로 다음 매물로 향했다.


두 번째 매물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귀신의 집보다 더 으스스하고 한기를 느꼈다.

1억에 35개 미니룸.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복도에는 지린내가 코를 찌르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복도 바닥은 내 뒤꿈치가 꽁꽁 어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빈 방을 보여주는데, "여기 사람이 사는 곳 맞나요?" 1평 남짓한 방안에 꽃무늬 벽지는 니코틴과 온갖 오물들로 얼룩져 있고, 분명 사람이 산다고 했는데, 노랗게 얼룩진 이불과 한 번도 빨래를 한 것 같지 않은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이 도저히 누울 곳이 없어 보였다. 


"여기는 좀 썩고(낡은 고시원을 중개사들은 썩은 고시원을 줄여서 '썩고'라고 부른다)이긴 한데요, 원장님이 젊으시니까, 예쁘게 다시 인테리어 하면 이만한 물건 없어요. 입실료도 올리고, 권리금도 몇 배는 더 받을 수 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 싹 다 고쳐서 권리금 장사 하는 사람도 많다니깐."


우리는 중개사와 헤어진 뒤,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우리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억 단위로 돈이 왔다 갔다 하니 무섭기도 하고, 저런 열악한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또 저런 달콤한 말만 하는 중개사 말을 믿을 수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더 본격적으로 고시원 임장을 나섰다. 

만나지 않은 고시원 부동산이 없을 정도로 부동산에 전화했다. 하루 걸러 약속을 잡고 정말 미친 듯이 발품을 팔았다. 그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연락이 오는 중개사님도 많다. 

"원장님, 좋은 매물 또 나왔는데, 보실래요?"


또 고시원 부동산은 매물을 확보하는 게 이기는 싸움이라, 하루에 2통 이상 부동산 전화를 받는다.

"원장님, 고시원 팔 계획 없으세요?"라고.


우리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고시원 부동산의 세계를 조심해야 한다.

물론 좋은 중개사님과 인연이 되어 지금의 고시원들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혹시 고시원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고시원 임장을 나서기 전에  

"난 절대 호구가 아니야."라는 마음 가짐으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자고 나면 이 매물 없다는 중개사의 말에 조급해하지 말라. 

내일 그 매물이 없어졌으면, 나와 인연이 없는 매물인 것이고, 

또 다른 고시원은 아주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자고 나도 그 매물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오늘 지나면 이 매물 없어요. 
네, 그럼 내일은 다른 매물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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