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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애 Nov 12. 2024

그녀를 믿지 마세요 : 고시원 창업

눈뜨고 코베이는 고시원 창업의 진실


1호 고시원을 인수하고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정신없이 바쁘던 시절.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방산시장을 비롯해 싸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발로 뛰며 견적을 받았다. 비용 절감의 일환으로, 우리는 웬만한 리모델링은 업자를 부르지 않고, 직접 우리의 손으로 했다.

셀프 인테리어 하며 고생하는 우리 남편

우리는 쿵짝이 잘 맞는다. 남편은 때려 부수고, 고치고, 설치하는 담당이었고,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디테일을 담당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몸무게는 줄어들고, 힘들었지만 열정만큼은 여느 때보다 가득한 행복한 시기였다.

고시원 주방 리모델링 전 후





"이 물건 오늘 계약 안 하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지금 결정하세요"


1호 고시원을 계약 한지 불과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계속 시간이 날 때마다 고시원 매물을 수시로 임장 했다.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고시원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도 나도 고시원 하면 돈을 잘 번다고 소문이 났다. 고시원의 열기가 과열된 해의 어느 날, 중개인의 전화를 받았다. 이 매물을 당장 계약 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당장 뺏어 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과 서로 눈빛 교환을 했다. 또다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중개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매물은 강남의 원룸형 42개와 미니룸이 섞인 혼합형 고시원이었다. 입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최고였고, 내부는 조금만 손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원룸형- 방안에 화장실 샤워실 있는 방

*미니룸- 공용 화장실 샤워실을 사용하는 방


우리는 매물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원장님 인품(인상)이다.

처음 고시원 권리 계약하러 갔을 때가 기억이 난다. 마치 007 첩보작전인 줄 알았다. 매도자, 매수자가 부동산 사물실에 도작하면, 각 다른 사무실 방에 들어가라고 안내받는다. 중개사가 두 개의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각자 이미 브리핑받은 금액을 어떠한 이유로 조금씩 조율하며, 조정한다. 그렇게 벽 하나 사이에 두고 몇천이 왔다 갔다 하기에, 매도자와 매수자 간에 배려나, 양보가 조금씩 필요하다. 대부분 매도하는 원장님의 인품이 좋으셔야 뒤탈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매물의 원장님은 인상도 정말 좋으셨다.


"이사님, 저희 20분만 잠시 고민 좀 해보고 와도 돼요?"

"네 원장님, 근데 너무 고민하진 마세요. 원장님 안 하면, 다른 원장님 대기하고 있으니까 빨리 결정하세요.

진짜 이거 황금매물이에요. 황. 금. 매. 물!"


너무 몰아붙여서 찜찜했지만, 일단 고민해보겠다고 한 뒤, 차에 탄 우리는 우선 수익률 계산부터 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고시원 수익률 계산 엑셀 파일 예

계산해 보니, 수익률이 나쁘지 않았다. 리모델링 포함 2억 투자하면 월 700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계약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바로 사무실로 달려가 계약했다. 좋은 매물이 나오면 바로 계약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하루 만에 권리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고시원 시장이 과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계약 전에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은 임대인 리스크였다. 중개사에게 몇 차례 꼭 확인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화해조서'이다.


                                       화해조서
법률 재판상의 화해에서, 당사자 쌍방이 확인하고 합의한 화해의 내용을 기록한 문서. 확정 판결과 똑같은 효력을 가지며, 기판력(旣判力)ㆍ집행력을 가진다. 민사소송법 385조


강남 고시원들은 대부분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을 할 때 '화해조서'를 필수로 하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화해조서는 임대인의 필요에 의해 (예 도시 정비사업, 재개발, 임대인 건물 전체 리모델링 등)  "너 나가" 하면 이미 계약 당시  우리는 '화해'를 해 놓았기 때문에 '찍' 소리 못하고 나가야 할 수 도 있는 불합리 조향인 것이다. 중개인 말로는 강남 임대인들이 임차인이 혹여나 월세를 안내면 내쫓을 빌미로 미리 화해조서를 들이밀고 계약을 요구한다고 한다지만, 임차인에게 화해조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불합리 조항이 맞다.


"이사님, 이 물건, 화해조서는 없는 물건이죠?"

"아, 그럼요. 이 건물주 강남땅에 건물만 몇 개예요. 그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저는 화해조서만 아니면 돼요."

그녀의 말을 당연히 믿었다.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거짓말을 할 줄은 몰랐다. 한 번도 아니고, 다섯 차례나 물어봤으니 말이다. 양도 양수 권리 계약을 할 때, 꼭 ' 임대차 계약서'를 봐야 한다. 그런데, 그날도 역시나 뭐에 씌었는지, 정신없게 만드는 중개인들 덕분에 '전 임대차 계약서'도 제대로 못 보고 계약금 이천만 원이나 송금하면서 20분 만에 도장을 찍을 찍었다. 좋은 매물을 줬으니, 중개료도 잘 챙겨 달라는 중개인의 말과 함께 말이다. (고시원 부동산은 컨설팅이라는 면목하에 중개료를 비싸게 받는 곳들이 많다.)


그런데 왜 이리 일이 술술 잘 풀리나 했더니, 역시나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소방점검할 때 (고시원은 소방법이 엄격해서 임대차 계약 전에 소방서에 가서 미리 신청 후, 소방점검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전 원장님과의 대화에서 이 고시원에 우리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화해조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 화해조서가 있다고요?"

"네, 왜 말씀을 안 해 주셨지? 근데, 강남에는 다 화해조서 있어요."

"그리고 우리 임대인이 좀 깐깐하셔서 비가 올 때는 건물 창문을 모두 닫아야 해요. 안 그럼 건물에 빗물이 조금씩 새어 들어와서 누수도 생길 수 있고, 건물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그럼 갑자기 비가 올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창문 닫으러 고시원 왔죠."


이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화해조서'는 웬 말이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출근하려고 하는 무인사업인데, 비가 오면 창문을 닫으러 고시원에 와야 한다고? 갑자기 머리가 띵 하다.

그나마, 전원장님이 좋은 분이셔서 솔직하게 다 말씀해 주셨기에, 이제라도 알 수 있게 된 것이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하나.


"안녕하세요, 이사님, 이 고시원에 화해조서가 있다는데요?"

"네 화해조서 있어요. 강남에는 화해조서 없는데 없어요."

"제가 분명히 화해조서 있냐고. 몇 차례 여쭤봤을 때는 전혀 문제없다면서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증거 있어요?"

"증거 있어요?" 라니, 와, 눈뜨고 코 베이는 게 고시원 부동산 이라더니, 진짜 나쁜 사람이다. 남편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빠졌다. 눈앞에서 우리 피 같은 이천만 원이 공중분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임대인 위에 임차인 보호법이 있다지만, '화해조서'가 가진 무거운 독소조향들이 우리를 짓 누른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건데, 혹여나 안 좋게 될 수도 있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면서까지 2억을 투자하면서 고시원을 운영하고 싶진 않았다. 아는 변호사와 상담도 하고, 셀프소송 하는 방법까지 공부했다.

네, 임대차 계약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분명히 '화해조서'에 대한 얘기를 못 들었기 때문에,
화해조서는 빼주십시오. 안 그럼 계약 무효입니다."





계약 해제, 그리고 임대인 면접



역시나, 중개인은 말이 안 통한다.
언제나 문제는 중개인에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데, 중개인이 임대차 계약을 진행하기 전에 임대인을 꼭 만나봐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뭔가 싶다.

임차인 면접? 들은 적 있는가?
임대인이 임차인을 만나서 계약을 할지 말지 판단한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순간, 나는 '이건 또 무슨 갑질인가?'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강남의 부자들은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그들이야 고유의 룰이 있겠지.

그때 번뜩,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 당신이 우리를 면접 본다고? 그럼 우리도 임대인 면접을 해보자. 당신이 우리의 임대인이 될지 말지를.'


임대인과의 임대차 계약이 불발되면 양수 계약은 계약불이(민법 546조)이 되므로 우리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제546조(이행불능과 해제)
채무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이행이 불능하게 된 때에는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연세 지긋한 임대인과의 면접이 시작 됐다.

"고시원 잘 운영할 수 있어? 1층에 주차장도 관리해야 돼"

"네, 잘할 수는 있어요. 대신 화해조서만 없으면요."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건 안돼"


우리는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지만, 임대인은 이 한마디를 남기며, 우리랑은 계약을 못하겠다고 자리를 떠났다.


"허허, 내가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 여자분이 아주 똘똘하구먼, 남편 장가 잘 갔어."


아싸. 칭찬 맞죠? 감사합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임대차 계약이 불발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되었다. 바로 나쁜 중개인. 중개인은 노발대발 난리가 났다. 눈앞에서 중개료가 날아가게 되자 신경이 곤두섰다. 중개수수료는 내놓으라고 한다. 내가 미쳤나요. 당신이 무얼 했다고, 오히려 우리를 속였으면서. 철면피 같은 사람이다.

"원장님, 얘네 계약금 주지 마세요."

중개인은 반말까지 하면서 무조건 우리의 잘 못으로 몰아갔다. 계약금을 모두 몰수하고, 우리한테는 소송을 하라고 말했다.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이 계약은 이미 임대인에 의해 이행 불능 상태가 됐고, 이제는 매도자와 매수자와의 일이니 중개인은 빠지시라고. 정중하게 전달했다. 이렇게 대응하니 중개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겼던 전원장님의 인품은 역시나 빛을 발했다. 예정되어 있던 임대차 계약 당일 날

계약금 전액을 모두 돌려주셨다. 전원장님께는 눈물을 흘리며, 죄송한 마음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살 달콤 씁쓸한 인생공부를 아주 크게 맛보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중개인의 증거 있냐는 뻔뻔한 거짓말과 강남 건물주 임대인과의 면접은 내 평생 잊진 못할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이 경험 덕분에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고시원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 한 마디 드립니다.

고시원 창업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계약 전 반드시 꼼꼼히 점검하고 철저히 준비하세요.
권리 계약 할 때 전 임대차 계약서와 화해조서, 그리고 중개인의 신뢰성까지 이 모든 걸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당신의 소중한 투자와 시간을 날릴 수 있습니다.
고시원 창업이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계약의 작은 부분이라도 간과해서는 안 돼요.
계약서 한 장에 모든 것이 달려 있을 수 있으니,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준비하세요. 끝으로, 고시원에 관심 있는 독자님들께서는 저처럼 고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고 철저하게 대비하셔서 성공적인 사업을 이루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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