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점을 인수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304호 입실자 한 분과 연락이 끊어졌다. 입실료를 내는 날짜가 훌쩍 지나고, 며칠째 꺼져 있는 휴대폰에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자, 걱정과 불안이 서서히 쌓여갔다. 처음엔 바쁜 일 때문일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전 원장님이 얘기하기로는 입실료를 단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다고 해서,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이 더 지나도 여전히 연락은 닿지 않았고, 304호 님의 행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며칠 후 불안한 마음에 방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설마 고독사...?’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방은 다행히 비어 있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급히 떠난 듯,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식사는 다 먹지 못한 채, 밥은 누렇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CCTV도 돌려보고, 다른 입실자들에게도 소문을 내어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제보가 들어왔다. 며칠 전 304호님이 병원에 간다고 하면서 고시원을 떠났다고 한다. 그날 304호님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는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시 전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 304호님 혹시 가족이 있으세요?”
“응, 딸이 하나 있지. 돈도 보내주는 걸로 아는데, 근데 내가 알기로는 왕래가 없다고 들었어.”
그렇게 다시 행정복지센터에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00 고시원 원장인데요. 저희 입실자 중 한 명이 며칠째 연락이 끊어지고, 짐은 그대로 있는데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혹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안타깝지만, 그분은 기초수급자가 아니라 개인정보를 알려드릴 수 없어요.”
“선생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가족도 없고 몸이 아픈 상태에서 고시원을 나갔는데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생사라도 확인할 수 없을까요? 정말 걱정돼요.”
강하게 호소하며 사정에 사정을 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확인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몇 시간 후,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저희가 확인해 본 결과,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시더군요. 면회는 불가능하고, 일단 기다려보세요.”
그나마 생사는 확인된 것에 안도하며, 입실자분이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오길 기도했다.
000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벨이 울렸다.
“00 고시원 원장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00 요양병원입니다. 금일 000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304호 님은 병원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고, 이후 요양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했다.
얼굴도 제대로 뵌 적 없는 입실자분이었지만, 그 소식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겁고 씁쓸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무서운 감정과 슬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몰려왔지만, 그럼에도 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에, 감정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입실자는 자동차 등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유품 처리에 대해 문의했지만, 병원, 거주지 주민센터, 사망 지점의 군청 등 모두 본인의 업무가 아니라며 도와주지 않았다. 기초수급자가 아니었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현실의 냉혹함에 화도 나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마을 변호사와 상담을 받았고, 유품 관련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촬영하고 보관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받았다.
가족이 있는 무연고자
입실자의 가족에게 보낸 등기는 결국 반송되었고, 14일이 지나면 무연고자로 처리될 예정이었다. 간절히 가족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그들의 연락은 오지 않았고, 결국 304호 님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었다. 장례도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다.
한동안 방치되었던 304호 님의 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얼마 없는 옷가지들을 대형 쓰레기봉투 하나에 담고 나니, 그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고물상에 찾아가서, 그가 남긴 물건들의 중량을 측정한 후 받은 팔천 원. 그 돈을 주머니 속 현금과 함께 사랑의 열매 모금함에 넣으며, 304호 님이 고시원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시간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304호님의 사망과 관련된 모든 과정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생의 끝자락에서 외롭게 떠난 입실자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와 작은 기부뿐이었다.
방은 점점 정리가 되어갔지만, 남편과 내 마음의 정리는 한동안 시간이 필요했다.
무연고자의 마지막 존엄성
무연고 사망은 법적으로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확인할 수 없거나, 연고자가 시체 인수를 거부한 경우를 말한다. 해마다 무연고자 사망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공영장례 제도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공영장례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이 없어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무연고자 및 저소득층을 위해 공공기관이 장례에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는 제도이고, 이는 고인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하지만 공영장례는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며, 지자체별로 시행 여부가 달라서, 사망한 지역에 따라 장례를 치를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진다. 결국 무연고자들의 마지막 존엄성이 사회적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위협받게 되고,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사망하게 된다.
그렇게, 무연고자의 생의 끝자락과 죽음 앞에서 인간적 존엄은 증발해 버렸다. 사회에 이들을 위한 자리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무연고자들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의 변화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고인이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그리고 마지막 길이 조금이라도 존엄하게 치러지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시원을 운영하면서 두 번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고시원 원장이라는 역할은 생각보다 무겁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입실자들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켜보며 많은 감정이 오갔고, 때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마지막 순간을 조금이라도 존엄하게 해 드리는 것에 고시원 원장으로서의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