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는 그대로의 나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본다.
내가 보는 나, 타인이 보는 나.
그건 분명 다를 터이다.
코로나로 세상사람 얼굴들은 모두 네모난 마스크로 가려져 눈만 덩그러니 드러났었다. 네모난 상자 속에 가려진 얼굴은 각자의 머릿속 상상 속에 맡겨져, 각자가 그 사람의 얼굴을 그려냈다.
하루는 초등학교 수업을 갔는데 한 학생이 나를 반갑게 불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동글동글 잘생긴 얼굴사이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참 예쁜 학생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처음 보는 아이였다. 난 도무지 생각이 안 나서 되물었다. "넌 누구니?"
"선생님, 저 동훈이에요. 저 모르세요?"
"아, 네가 동훈이니? 하하 그동안 마스크 썼어서 너를 몰라봤어. 반가워 동훈아."
아! 그제야 탄성이 섞인 한숨이 나왔다. 동훈이는 2년 동안 내가 방과후 수업에서 지도했던 아이다. 네모난 마스크로 가려졌던 나의 상상 속 동훈이의 얼굴과 진짜 동훈이의 얼굴은 99퍼센트나 달랐다. 이렇게나 귀여운 녀석이었다니. 그제서야 내가 상상했던 그 동훈이의 형상이 스르륵 벗겨진다.
그렇듯 코로나가 만들어준 마스크의 얼굴 형상 속에서 이제 진짜 그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이제 인정하고, 다시 머릿속으로 새로운 그 사람의 이미지를 집어넣어야 했다.
'어디 보자. 나도 마스크를 벗어야지.' 이제 나도 마스크를 벗어던져야 했다.
네모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나의 얼굴을 거울 속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느덧 마흔일곱이라는 내 나이가 얼굴에 드러난다. '흐음, 이게 내 얼굴이란 말이지?' 왠지 나의 얼굴인데도 어색한 다른 사람을 보는 것 마냥 익숙지가 않다. 마스크를 착용할 땐, 그렇게 나의 얼굴을 천천히 자세히 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시 거울로 천천히 나를 들여다보니, 참 이상하다. 그새 그렇게 나이 든 나의 얼굴이 익숙지 않았고, 왠지 눈이며 팔자며 얼굴에 생겨나는 주름이 창피하기까지 한다. 그래도 한때는 일하는 교육기관마다 예쁜 선생님이라 불리며 외모에 대한 준수한 평가를 들었건만, 이젠 나 스스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왜 이리 자신이 없을까?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처음엔 그렇게 답답하고, 불편하더니만, 이젠 외출할 때도 얼굴 신경 안 쓰고 착용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안하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이 인간의 적응성이란......
다시 피부며 화장이며 나의 얼굴을 신경 써야 했다. 당당하게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또 새로운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보는 나, 타인이 보는 나
그래, 나는 나야. 나는 나를 다시 익숙하게 보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거울 속으로 비친 나는 이만하면 그 나이대처럼 보이고, 운동도 열심히 해놓은 탓에 처녀 적 몸처럼 탄탄하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이면의 나는, 코로나의 시간만큼이나 책도 많이 읽었고, 힘든 시간을 수련하며 보다 깊이 세상을 보는 지혜를 가졌다. 겉으로 보이는 나 말고 이면의 나를 더욱 보아주니, 참 사랑스러워졌다.
거울로 나를 쳐다보며, 어여쁜 숙녀처럼 치마를 양쪽 손으로 들어 올려보았다.
조명등 아래에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니, 눈가주름이 드러난다.
'주름 좀 있음 어때, 나는 웃는 게 예뻐.'
혼잣말을 되뇌며 있는 그 자체로의 나를 만족스레 쳐다본다.
내 나이만큼이나 나잇값을 다하려는 노력, 나를 좀 더 따뜻하게 보아줄 수 있는 마음, 타인을 좀 더 이해하며 바라봐줄 수 있는 마음, 가족을 잘 보듬고 사랑하는 마음, 아름다운 자연을 천천히 아름답게 보아줄 수 있는 여유. 그렇듯 예전보다 조금은 더 철든 내가 참 마음에 들었다.
거울 속의 내가 그렇게 웃고 있다.
'너, 참 예뻐. 네 나이만큼 앞으로 더 나이답게 예뻐지기로 하자.'
거울 속의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