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 기관사이다. 정확히는 부산 지하철 2호선을 운행하는 기관사이다.[사실 2호선에 묶인 지박령 신세에 불과하다]
내가 기관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끔 듣는 질문이 있다. 사실 사적 민원에 불과하지만 뭐 이것까지가 사회에서 말하는 공기업이라는 타이틀에 속박된 공직자가 짊어져야 할 ‘노역’의 일부라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주겠다 빌어먹을.
[이런 우수사례는 회사 창립 이래 최고의 ‘이달의 우수사원’ 감이 확실하니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즉각적으로 회사 고객센터에 칭찬 민원을 남겨야만 한다. 어딜 보는가? 정확히 당신 얘기다. 고민할 것 없이 지금 인터넷을 켜면 된다.]
“왜 막차가 종점이 아닌 광안이나 전포까지만 가는 것들이 있어요? 너무 불편해요. 이유가 뭐죠?”
막차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안다는 말은, 내 밥줄에 보탬이 되어주시는 우수고객님이라는 말이 되기에 성심성의껏 답해 드려야만 한다. 그 원리에 대해 확실히 이해시켜 주고, 우리 고객님께서 어디 가서도 아는 척이 가능하게 만들어드림으로써, 우리 지하철을 이용하시는 정당성을 찾게 해드려야만 한다. 이만한 고객감동이 어딨겠는가[이걸 본사에서 알아야 하는데… 망할 본사 놈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거꾸로 생각하면 간단해진다.
매일 밤 모든 열차가 차량기지인 호포로 돌아가서 일을 마친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광안역에 다음날 첫차를 이용하러 갔다고 생각해 보자. 현재 광안역의 양산행 첫차는 05:18 이다. 그 새벽에 첫차를 이용한다는 말은 생업이든 타지로의 이동이든 굉장히 중요한 일로 인해 이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중요한 첫차이기에, 나는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두른다. 5시 조금 넘은 시각 카드를 찍고 여유롭게 게이트를 통과했고, 안전하게 승강장에 도착했다. 정시성을 약속하는 지하철이기에, 승강장에 도착한 지금의 나에겐 변수란 웬만해선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5시10분… 5시15분… 16분, 17분, 18분.
19분… 20분… 25분… 30분…?
그제서야 자각한다. 승강장에 나 이외엔 아무도 없음을. 목숨 같던 첫차에 지장이 생긴 나는 화가 나서 역무실을 박차고 들어간다.
“아니 왜 첫차가 오지 않죠? 5:18분이 첫차 아닌가요? 공공성과 정시성을 추구하는 지하철이 이래도 되나요?”
하지만 역무원의 반응이 이상하다. 죄송해야만 하는 나에게 이상하다는 듯 말을 한다.
“광안, 전포행 막차가 불편하다고 하셔서 모든 열차가 호포차량기지로 가서 사업을 마치게 된지 오래입니다. 호포에서 출발한 첫차가 여기 오려면 한참 남았어요… 내려가서 기다리시면 나중에 올 겁니다 첫차.”
물론 실제로 이렇게 바뀌진 않았다.
광안, 전포행 막차가 사라지고 모든 열차가 호포차량기지로 가서 사업을 종료할 경우,
광안, 전포, 호포, 양산, 장산 등의 구간에서 5시 조금 넘은 시간에 첫차가 출발하는 지금과 달리,
호포차량기지에서만 첫차가 출발하게 되고, 반대편인 장산에서는 7,8시가 다 된 시간에야 첫차[첫차라고 말하기가 지하철 자신으로서도 수치스러운]가 출발하게 된다.
광안, 전포행 막차가 사라지고 모든 열차가 호포차량기지로 가서 사업을 종료할 경우에 찾아올 불편을 ‘가정’해봤다.
물론 누군가는 불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지하철에서는 새벽이 넘은 시간에 귀가하는 사람들보다는 생업을 위해 아침을 조금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선택’했다.
뭐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결국 다 선택이지 않은가.
대학생 시절 술 먹고 놀기 위한 시간을 선택했던 나는 시험기간에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고,
나는 장난을 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장난을 쳤음이 분명한 성적표를 받은 나는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성적표로 마음이 아팠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술집으로 향하는 선택을 해야 했을 뿐이다]
다만, 광안이나 전포행 막차를 운행하다 보면, 이 역이 열차의 종점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거부하시는, ‘음주로 인한 운전면허취소’가 아닌 ‘음주로 인한 지하철이용취소’의 처분이 적합함을 법원에서도 인정해 줄 것이 명백한, 화가 많은 고객님들께 이런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지만, 그런 상태로 존재하시는 고객님들 대부분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으므로 참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