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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Jul 11. 2023

[시카고타자기] 피츠버그 랩소디

# 앤디워홀의 도시 피츠버그에서 을지로, 성수동을 느끼다.

올해 6월 22일은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살면서 딱히 기념일에 목메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즈음에 방학을 맞이하는 아이와 슬슬 시카고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던 와이프와 마음이 맞아 급작스럽게 로드트립을 기획하게 되었다. (수많은 동선과 타임라인을 맞춰야 해서 계획이 아니고 기획이 맞다.) 4월에 플로리다로 여행을 다녀온 지라 비행기는 부담스러웠고, 자유롭게 미국 도시 여기저기를 다녀보고 싶었다.

"미국에 새롭게 정착한 유진이네도 만나야 하니 버지니아 들르고, 필라델피아에 사는 승연이네도 만나야 하니 거기도 가야 하고,  뉴저지에 있는 지용이네도.. "

미 동부 지역에 살고 있는 지인들을 모두 만나려고 하니 여행이 갑자기 블록버스터 급 로드무비가 되려 된 참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의 체력적인 한계와 태어나서 차를 타고 가장 멀리 가본 게 부산이었던 아이를 고려할 때, 하루 최대 이동시간이 6시간 남짓이 리는 점이었다. 시카고에서 버지니아만 해도 편도 13시간, 거기에서 필라델피아는 더하기 3시간. 가는 것도 가는 거지만, 돌아올 때도 15시간을 하루 만에 올 수는 없는 터인지라 중간중간 거점을 지정해야 했다.

피츠버그는 그렇게 우리의 로드트립의 여정 중에 필라델피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르게 된 도시 중의 하나였다. 피츠버그, 피츠버그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제대로 여행을 위해 정보를 찾아본 것은 처음이었으며, 워낙 관광지 성격이 아니다 보니,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등에도 많은 후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철강업이 쇠퇴하면서 도시의 성격이 바뀌게 된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하나이며, 알고 보니 유명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고향이라 그의 뮤지엄이 있다는 정도의 정보였다. 거꾸로 매달려 산을 올라가는 케이블카와 그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이 거의 관광지 정보의 전부였다.

구글이 알려준 피츠버그의 전경
팝아트의 제왕  앤디워홀

그렇게 기대 없이 가게 된 피츠버그. 최대 반전은 이번 여행에서 들렀던 수많은 동부의 도시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고, 만족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도시 자체는 규모가 작았지만, 도시 전체가 특유의 멋스러운 분위기를 갖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요즘 힙하게 변한 한국의 을지로, 성수동을 떠올리게 했다. 철강업이 발달했던 도시답게 도시 가운데를 큰 강이 가로지르고 그 남북을 연결하는 다양한 철교들이 발달되어 있어서 그런지, 도시 속을 차로 달리고 있자니, 묘하게 용산과 이촌 즈음의 강변북로와 한강을 떠올리게 했다. 공장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각종 상업시설들이 그 빈자리를 메꾸고 있었는데, 수제 맥줏집, 갤러리 등이 메워진 모습을 보자니 성수동의 그 느낌이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서울처럼 그렇게 힙한 분위기는 아니었긴 하지만, 무언가 도시가 갖고 있는 유산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초해 내려는 지역 사람들의 진지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깨끗하고 운치 있는 다운타운


곳곳에 아기자기함이 숨어 있다
러스틱한 매력의 도심 주변
퍼온사진: 철강을 모티브로한 디자인
퍼온사진: 예전 공장지대를 개조한 갤러리, 브루어리

호텔 방 액자에서 봤던 노란 철교 그림을 보면서  "꽤나 예쁜 걸" 했던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앤디워홀 뮤지엄을 찾아가는 길에 실제로 그 철교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의도치 않게 그림 속 철교를 만나 갑자기 흥분되기도 하였다. 뭔가 기대치 않은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고 할까.

앤디워홀 뮤지엄은 피츠버그의 매력을 높이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워낙 앤디 워홀을 좋아하는 터라 국내외에서 앤디워홀 전시를 만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찾아보는 편이었는데, 그 끝판왕이 바로 여기 피츠버그에 있었다. 항상 보게 되는 앤디워홀의 작품들 말고도 초년생 때의 습작들부터 말기 때의 작품들 까지 총망라되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뮤지엄 4개 층을 풀로 앤디워홀의 작품들로 채우다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뮤지엄에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며칠간 미국 음식으로 한없이 느끼해진 속은 다운타운 쪽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한 소박한 태국 음식점에서 해소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구글 리뷰 점수를 보고 찾아간 집이었는데, 진짜 태국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찐 타이' 레스토랑이었고, 맵기 정도를 1~10점 척도로 정할 수 있는 세심함에 1차 감동, 태국 현지에 온 듯한 음식 맛에 2차 감동이었다. 팟타이, 타이커리 등 기본 메뉴들을 골랐음에도 고급 타이 레스토랑을 훨씬 뛰어 넘는 솜씨였다.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의외의 순간과 장소에서 최고의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피츠버그는 일종의 그런 Hidden Gem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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