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1년 후기
저출산율 압도적인 세계 1위!(우리는 왜 뭐만 하면 나쁜 걸로 항상 1등일까?) 요즘 한국 저출산 걱정에 인구소멸이니 하는 말들이 여기저기 많이 들린다. 지나친 교육열, 감당하기 힘든 양육비, 주거비로 인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적게 낳아서 그렇다는데, 혹자는 최근에 유행처럼 늘어나는 ‘금쪽이’ 방송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긴 내 신혼시절에는 ‘슈돌’, ‘아빠 어디 가’등 육아 예능이 방송가를 휩쓸었던 시절이랬다. 윤후나 사랑이 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빨리 저런 아이 갖자고 했었는데, 요즘엔 TV나 휴대폰만 켜도 여기저기에서 ‘금쪽이’ 짤들이 돌아다니니 그것만 봐도 아기 낳기 무섭겠다 싶다.
아이는 태어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와 아주 많은 시간을 같이하진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새벽에 나가서 밤에나 들어오는 아빠였고, 주말에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이와 잠깐 같이 외출하는 거 말고는 실질적인 육아는 거의 와이프가 전담하는 체제였다. 게다가 중간중간 잦은 해외 출장과 파견, 주재원 초반 단독 부임, 코로나 때 강제 생 이별 6개월 등 다 합쳐보면 10년 중에 거의 1년 반 정도 되는 기간을 함께 살지도 못했던 게 사실이다.
우리 아이(아들, 9세)는 상당히 예민한 편이다. 결국 부모 닮은 것을 누구를 탓하랴마는, 갓난아이시절부터 소리나 주위 자극에 아주 민감해서 엄마, 아빠의 육아 난이도를 엄청 높였다.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이 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도 쉽지 않아서 처음 어린이집에 가거나 유치원에 가는 날에는 대성통곡은 일종의 통과 의례였다. 이런 예민한 아이를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멕시코, 필리핀 유치원에, 다시 한국, 그리고 지금의 미국 초등학교까지 해마다 여기저기 옮기게 했으니 나도 참 가혹한 아빠였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에게 나는 참 이상한 아빠였을 것 같다. 집에도 잘 있지도 않으면서 가끔 보는데 잔소리하고, 아이가 잘못하면 큰 소리로 혼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소음의 스트레스가 심해서 매일같이 아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이 아니라 "뛰지 마! 조용히 해!"라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살았던 거 같다. 아이를 혼내고 내면 서로 풀어야 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시간도 없이 나는 새벽이 되면 다시 사라지고 마는 그런 아빠였다.
작년에 육아휴직을 하고 미국에 온 뒤 이제 1년이 훌쩍 넘었다. 육아휴직 1년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아이와 그동안 못 보냈던 시간을 보충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지난 10년 중에 내가 빼먹은 1년의 넘는 아빠의 공백을 메우라고 하늘에서 허가해 준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침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종일을 같이 있다 보니, 서로의 모르는 모습도 많이 알게 되고, 예전보다 서로 친근함을 느끼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너무 붙어 있어서, 티격태격 다툼도 많이 하고, 아이가 아빠를 친구처럼 느껴서 오히려 너무 막대하나 싶을 정도로 편하게 대하기도 한다. 특히 여름방학이 3개월인데, 이 기간을 오롯이 같이 있다보니 후반부에는 개학날만 기다리기도 하였다.
미국에 와서 지난 1년간 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주에 3~4회는 아이와 함께 낚시를 다녔다. 동네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가 있다 보니 아무 때나 낚싯대랑 미끼만 들고 가면 쉽게 즐길 수 있었다. 초기에는 bluegill 같은 작은 물고기만 잡아도 좋아했는데, 이제는 catfish(메기), largemouth bass 정도는 잡아야 뿌듯함을 느낄 정도로 스킬도 늘었다. 동네 공원에서 같이 농구도 하고, 피클볼도 치는 등 취미생활을 같이 하니 자연스럽게 친근감이 쌓였다. 가끔씩 집에서 내가 해주는 사소한 별미 음식들 (떡볶이, 짜파게티 등 엄마가 잘 안주는 음식들)에도 아이는 행복해했다. 이 모든 게 아빠에게 시간이 많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여름 방학의 추억들]
어찌 보면 나도 '아빠'라는 직업(?)이 처음이고, 어디에서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려울 때가 많다. 아이가 나쁜 말이나 행동을 할 때도 어떻게 '훈육'을 해야 하는 게 정답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은영 선생님의 처방도 실전에 대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나 아얘 안 통하는 경우도 많았다. 때로는 내 개인적인 감정으로 아이에게 욱하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가끔씩 우리 아이가 너무나도 '금쪽이' 같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어찌 보면 나 또한 준비 안된 '금쪽이 아빠' 였을지도 모른다.
머지않은 시간에 아이와 함께하는 이 소중한 시간(Full-time 육아 대디)도 끝날 것이다. 나도 이제 다시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새벽에 헤어지고 저녁 늦게나 만나는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이제 조금 더 크면 사춘기에 접어들고 자연스럽게 부모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겠지. 이번에 치열하게 함께했던 서로의 1년이 우리에게 평생의 추억으로, 특히 녀석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를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