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꿈을 꾸었구나
타히티 공항에 도착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마음 같아서는 짐을 먼저 부치고, 두 손 가볍게 쉬고 싶다. 작은 타히티 공항에서, 출발 시간이 한참 남은 에어뉴질랜드 항공 손님의 짐을 먼저 받아줄 리 없다. 미국으로 출발하는 손님들부터 차례로 체크인이 가능하다. 에어 뉴질랜드는 무슨 생각으로 새벽 3시에 타히티 공항을 출발하는 것으로 비행시간을 정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짐을 끌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공항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페이스 북의 타히티 투어 관련 페이지에서 종종 ‘개’와 관련된 글이 올라온다. 주인 없는 개가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객에게는 위협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다. 관광지에서는 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공항에 오니 정말로 개가 돌아다녔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개들이 식당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손님이 음식을 먹고 있는 테이블 주위로 개가 몰려든다. 아오! 개와 함께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아서 실내로 들어갔다. 다행히 음식 맛은 썩 괜찮다.
저녁을 먹고, 아직 문 닫지 않은 기념품 가게를 기웃기웃하며 시간을 보냈다. 모레아에서 함께 스노클링 했던 태국인 부부를 만났다. 보라보라에서도 스노클링 투어를 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가 엄청 쏟아졌던 그날이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물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보트 위에서 머리를 감싸고 숙인 채로 대피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쪽도 만만치 않았구나 싶다.
이제 더 이상 갈 곳도 볼 것도 없다. 세수하고 양치를 했다. 체크인하고 비행기만 타면 끝이다. 초저녁잠이 쏟아지는 남편은 팔걸이가 없어서 등을 대고 누울 수 있는 의자를 찾아 잠을 청한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술술 읽힐만한 기욤 뮈소의 소설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을 펼쳐 들었다. 프랑스어를 들으며, 프랑스식 이름과 거리, 장소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고 있으니 이곳이 프랑스는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남편은 쿨쿨 잠을 잤다. 열두 시가 넘어 체크인 게이트가 열리고 줄이 짧아질 때쯤 제일 끝에 줄을 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핸드폰의 전자 티켓을 보더니 직원이 프레스티지 줄로 가라고 한다. 사람을 착각했나 보다. 오예! 드디어 보딩 패스를 받았다. 보딩 패스와 함께, 기다리면서 스낵을 사 먹으라고 쿠폰을 준다. 비행기가 연착이란다. 어우야! 새벽 3시 출발도 말이 안 되는 시간인 거 같은데, 새벽 5시라뇨??? 잘못 들었나요??? 남편은 다음에 올 때는 잊지 말고 '에어 타히티'를 꼭 타자고 한다. 어쩔 수 없다. 출국장으로 나가자마자 눕기에 가장 편안한 의자를 골랐다. 그렇게 쪽잠으로 두 시간은 잔 것 같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 종일 부산스럽게 보냈더니, 불편한 자리에서도 잠이 왔다. 다행이다. 공항에서 이렇게 잔 건 그 옛날 저가 항공사로 새벽 시간, 밤늦은 시간 일부러 골라타며 유럽 여행 다니던 시절 이후 처음인듯하다.
비행기는 새벽 5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식사는 도착할 때쯤 주지 않을까 했는데, 비행기가 뜨자마자 급하게 밥부터 준다. 배보다는 잠이 고픈 나는 계속 잤다. 깨어보니 뉴질랜드에 거의 다 왔다. 잠들기 전에는 목요일 밤의 타히티 공항이었는데, 깨어보니 토요일 아침의 뉴질랜드다. 공항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를 부지런히 찾아, 집으로 온다. 오는 길에 커피 한 잔! 프렌치 폴리네시아 있는 동안 제일 그리웠던 건 맛있는 커피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드니 세상 맑은 뉴질랜드 하늘과 예쁜 구름이 보인다. 아! 나는 긴 꿈을 꾸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