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983년 8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로 시작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아버지는 텔레비전 바로 앞에 앉으시고, 엄마는 다른 벽에 기대어 놓은 화장대 거울을 등지고 앉아서 얼굴에 로션을 바르신다. 나는 소파 의자에 앉아서 방송을 보고 있었다. 진행자가 질문하는 대로 출연자는 자신이 찾는 가족의 인적 사항과 자신이 기억하는 고향마을,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배경 등을 답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설명한다. 중간에 울음을 참으려고 잠시 설명이 끊기기도 하고, 보는 사람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러다가 방송을 통해 연락이 닿은 사람들은 마지막에 서로 수 십 년 만에 만나기도 하였다. 오래 헤어져 살다가 다시 만난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어버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흘깃 쳐다보았다.
‘아버지도 울고 계시나?’
다시 텔레비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울면서 서로에게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구의 안부를 물으며,
누구는 아직 살아있는지, 묻는 모습에 나는 나만의 생각에 빠져 들었다.
‘나라면, 내가 저 사람들의 입장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내가 만약 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나보다 21살 많은 형을 처음 만난다면, 나는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까?’
바쁜 와중에도 주말이면 아버지는 여의도 KBS 공개홀로 발길을 옮기셨다. 이산가족을 찾는 처절한 옷으로 갈아입은 벽보를 하나하나 눈이 닿을 수 있는 저 높이까지, 혹여나 하는 기대를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숙여 저 아래까지 빠짐없이 읽어 보셨다. 나도 이름만을 훑어보는데도 금방 싫증이 났다. 헤어진 부인과 아들의 소식이 있을까 하는 기대로 가셨다가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은 얼굴로 돌아오셨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 번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도 방송에 나가 보는 건 어때?”
“내가 나온 건 알고, 저쪽에서 이남으로 나왔으면 내가 볼 줄 알고, 저쪽에서 방송을 하겠지….”
‘그런가? 그럼 아버지는 저쪽에서 연락해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가?’
가족과 생이별을 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이전에 아버지에게 이산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전쟁이 끝나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각자 사는 분단국가이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닐 뿐만 아니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죽을 수 있는 이승복 어린이를 영웅으로 무수히 되새김질해 온 우리에게 북한은 적국이고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괴뢰였다. 북한이 언제 또 쳐들어올까 두려운 존재인데, 그런 곳에 나의 혈연이 닿아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북한에 가족을 두고 와 마음의 연이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긴 당신의 고향이 북한이 되었으니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을 가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겠지. 하지만 가족과 헤어져 못 만난다면, 나라면 어떠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아버지는 옛날 사람치곤 장가를 참 늦게도 가셨다. 나도 마흔이 넘어서 낳은 늦둥이고…… 아버지는 2대 독자라고 하셨는데, 나는 3대 독자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리워하고 생사여부라도 알고 싶어 하는 아들을, 나의 이복형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과연 그 형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보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아버지가 형을 많이 그리워하셨다고 알려줘야 하나?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위로를 조금이나마 해줘야 할까?
아니 일단은 찾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