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맞이한 맹현봉
1945년
수호할아버지는 지난가을부터 속이 매스껍고, 음식을 잘 넘기지 못하였다. 미음을 간신히 넘기다 가도 곧 모두 게워내기 일쑤였다. 자연히 식사를 하는 양이 적어졌다. 동네 의원은 속앓이가 심해서 그렇다면서 한약을 지어주었다. 수호어머니 개성댁이 정성을 들여 약을 달여 돌보았지만, 수호할아버지는 점차 몸이 많이 야위어 가다가 결국 5월에 세상을 떠났다. 수호아버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면서도 평탄하고 전망이 좋은 산 밑에 수호할아버지의 묘를 마련하였다.
수호 집안에는 초상이 났지만 나라에는 빛이 들었다. 드디어 왜정이 태평양에서 미군과 전쟁을 벌이다 미군이 떨어뜨린 폭탄을 맞고 무릎을 꿇고 물러나서 조선은 해방이 되었다. 일본의 극악무도한 핍박은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맹현봉은 워낙 동떨어진 오지라 갑자기 세상의 끈과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새로운 시대가 되었으니, 몇몇 마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1947년
산속에서는 4월이 되어도 날씨는 제법 쌀쌀하였다. 나뭇잎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하얗고 분홍이 섞인 목련 꽃들을 서둘러 밀어내는 나무를 보아하니 기나긴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이젠 물러날 때가 되었다. 수호도 덩달아 추위를 밀어내고 밖으로 산으로 쏘다녔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수호도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 농사를 지었다. 그래도 산에 가서 나무를 주워 장작을 마련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동네 아이들도 나무하러 와서 같이 나무를 패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곤 하였다.
나무를 하러 자주 가는 곳에 가보니, 정수가 이미 나무 한 짐을 지게에 가지런히 쌓아놓고 짚으로 묶고 있는 중이었다.
“일찍 나왔네?” 수호가 물었다.
“어, 나무 한 짐 해놓고, 한동이가 항아리 한 독 땅에 묻는 거 도와달라고 해서, 한동이네 가보려고. 너도 일 끝내고 한동이 네로 건너와.” 정수가 지게를 어깨에 메려고 몸을 낮추며 팔을 끼우며 말하였다. 수호는 정수가 팔을 끼우도록 지게 끈을 벌려주며, 물었다.
“그래? 그럼 나도 얼른 나무해놓고 갈게.”
한동이는 3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장이 되었다. 어머니와 손위 두 살 위인 누이 한나와 농사를 짓는 것이 힘겨울 텐데, 변함없이 밝은 모습이었다. 수호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주로 농사를 지어 그 고단함을 알기에 한동이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호가 한동이네 부엌을 돌아 장독대로 다가가 보니, 한동이는 이미 정수와 큰 독을 거의 묻을 만큼 땅을 파놓고 있었다.
“벌써 많이 파 놓았네?”수호가 들어서며 인사를 하였다.
“어!? 왔어? 거의 다 되어가!”한동이가 답하였다.
“아까 나무하러 가서 봤을 때, 내가 이리로 오라고 했거든.” 정수는 한동이가 퍼낸 흙을 텃밭으로 옮기면서 덧붙였다.
“뭘 하면 되지?” 팔을 걷어 부치며 수호가 다가가자, 한동이가 말하였다.
“누이한테 항아리 달라고 해서 물 좀 길어다 줘. 누이가 발을 접질려서 계곡까지 가기 벅차거든.”
수호는 장독대를 돌아 집안으로 들어서서 부엌 근처를 기웃하여 한나를 눈으로 찾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수호는 방을 향하여 소리쳤다.
“누님, 저 수호예요. 한동이가 물을 받아오라고 해서요.”
방문이 열리고 한나가 나왔다. 발길을 옮기면서 통증을 느끼는지 이맛살을 찌푸리다 수호와 눈을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벗어놓은 신발을 찾아 신었다.
“수호 왔구나. 내가 나중에 받아오면 될 텐데….”
“아니, 어쩌다가 다쳤어요?”
“잘못 디뎠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부어와서.”
“아, 일없어요. 계곡까지도 안 가고 집 우물에서 받아오면 되니까 금방 다녀올게요. 항아리 어딨 어요?”
한나가 일러준 대로 부엌으로 들어가서 뒷마당으로 나 있는 문을 지나 나와보니 문 바로 옆으로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항아리에 물을 길어서 지게로 나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항아리에 담긴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수호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음에도 흔들림에 항아리에 있는 물이 찰랑거려서 등허리가 젖었다. 한동이네 집에 와서 항아리를 내려놓으려고 지게를 낮추고 몸이 빠져나오면서 받침대를 세워서 지게의 중심을 잡으려는데 항아리가 기우뚱하였다. 왼손으로 항아리를 붙잡으려고 하였지만 지게 뒤로 항아리가 쏠리면서 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항아리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쏟아지는 물 때문에 미끄러져서 항아리마저 놓치면서 항아리는 바닥으로 큰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에 한나가 부엌에서 절뚝거리면서 나왔다.
“이거 어떡하죠?” 수호가 난감해하며 말하였다.
“저런, 몸이 홀딱 젖었네!” 한나가 말하였다.
“한동이랑 정수는 항아리를 묻고 같이 밭에 나갔어. 옷이 다 젖었는데, 한동이 옷이라도 갈아입을래? 고뿔 걸리겠다.” 한나는 깨진 항아리 조각을 주으면서 수호에게 물었다.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누님, 어떻게 물을 다시 길어 올까요?” 수호는 한나에게 물었다.
“아니, 이따가 한동이 오면 물 길어오라고 할 테니까, 너는 얼른 집에 가서 젖은 옷이나 갈아입으렴.” 한나는 손을 저으며 서둘러 수호를 집으로 보냈다.
수호가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한동이가 항아리를 지고 수호집으로 들어섰다. 늦은 시간이기도 하여 계곡까지 가기보다, 수호의 집 우물에서 물을 길으러 왔다.
“항아리를 내가 깨버려서 어떡하냐?” 수호가 한동이를 보며 마당으로 내려서며 말하였다.
“뭐, 일없다. 누이가 너 먹으라고 누룽지 주더라.” 한동이가 손을 뻗어서 누룽지를 수호에게 건네었다.
아직 따끈따끈한 누룽지를 받아서 반으로 잘라 한동이에게 다시 건네주고 남은 반은 입에 넣어 씹었다. 아직 따뜻한 누룽지가 씹을수록 고소해지면서, 낮에 수호가 고뿔 걸릴까 걱정하며 양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자신을 쳐다보던 한나누나가 떠올라 마음까지 데워지고 있었다. 수호는 한동이 손에 들려진 나머지 누룽지 마저 다시 가져와 자신의 입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부어 다시 불을 지피는 것처럼.
한동이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항아리에 담는 것을 지켜보면서 수호가 물었다.
“예배가 언제라고 그랬지?”
“예배? 왜, 오려고?” 한동이가 물을 계속 길으면서 되물었다.
“아니, 뭐, 천주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수호가 대충 에둘러 되자, 한동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천주님한테 잘 보여서 뭐 하게?”
“에이, 아니다. 일 없다.”
한동이가 지게에 어깨를 끼우는 동안 수호가 항아리를 잡아주었다. 중심을 잡고 일어선 한동이가 집을 나서면서 수호를 향해 말하였다.
“일요일 오후에 내가 데리러 올게.”
한나의 가정은 천주교 집안이고 화목하지만, 한나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한나아버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을 앓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머니인 함안댁 혼자서 한나와 한동이를 건사하였다. 가진 논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함안댁 혼자서 농사를 짓기에는 버거웠다. 동네에서 천주교 예배도 함께 드리고 한나아버지와 서로 가까이 지내던 이웃들이 모내기와 추수할 때면 도와주었다.
산골의 아침 공기는 여전히 매서웠다. 한나는 다 된 밥을 푸어 찬합에 담아 안방의 아랫목에 놓고 이불로 덮어 식지 않도록 하였다. 밥상을 차리려고 부엌으로 가려는데, 함안댁이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한나를 불러 세웠다.
“한나야, 이리 잠깐 들어와 보렴.”
“네.” 한나는 함안댁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섰다. 함안댁은 아랫목에 앉고, 한나는 건너편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함안댁은 한나가 자리에 앉는 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한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하였다.
“너도 이제 올해 열여덟인데 마침 해주 오씨에서 혼담이 왔는데, 너보다 두 살 어리지만, 집안이 그만그만하니 올봄에는 너도 혼인을 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혼담 얘기가 오가는 것이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한나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력이 없었지만, 함안댁은 한나에게 적절한 혼처를 마련해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함안댁의 고심과는 달리, 두 살 어린 사람이면 한동이와 동갑인데 생각하는 것도 한참 어린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나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시집을 가면 어머니랑 한동이는 어쩌지요?”
“우리야, 이제 한동이도 많이 컸고. 네가 시집가서 자리 잡으면 우리도 든든한 게지.”
‘출가외인이라는데 내가 시집을 가면 어머니 마음이 든든해질 수 있을까?’ 어머니와 한동이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도 그렇고, 전혀 모르는 남의 집에 시집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암담하고 심란하였다.
일요일 예배 시간에 맞춰, 예배당에 들어서며 한나는 미사포를 쓰고, 성호를 긋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뒷모습만으로도 계순이를 단 번에 찾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신 옆에 앉는 한나를 돌아보며 계순이도 눈으로 인사를 하였다.
“계순아, 어머니가 아침에 혼인 얘기를 꺼내시던데.”
“어머, 정말? 누구랑? 몇 살인데?”계순이는 호기심을 보였다.
“해주 오 씨인데 한동이랑 동갑이래.”
“꼬마신랑이네. 혼인은 언제 치르는데?”
“올 5월에 날짜를 잡아 본다고 하셨어.”
“에고 얼마 안 남았네, 왜 이렇게 급하게? 좋겠다!”
“좋기는.”
혼인이 결정되자 한나의 마음은 뒤숭숭하였다. 자신이 살던 정든 집을 떠나 낯선 시집에 가서 살아야 한다니 덜컥 겁이 났다.
한동이를 따라서 어색하게 예배당에 들어선 수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의 10년을 맹현봉에 살면서도 최 역관댁 사랑방이 예배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전혀 낯설었다. 외형상으로 달라진 거라곤 방 상석에 놓인 서안이 하얀 천으로 덮여 있고, 그 위에 나무로 된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왼쪽에는 남자들이 오른쪽에는 여자들이 모두 머리에 흰 천을 쓰고 앉아 있었다. 한동이가 수호의 팔꿈치를 잡고 왼쪽으로 잡아끌자, 수호는 한동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서 왼쪽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부님의 인도로 미사가 이뤄지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다 수호는 발견하였다. 오른쪽 앞에서 두 번째 하얀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머리를 흰 천으로 가리고 앉아 있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나누나였다. 방안이 온통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수호는 미사가 어찌 진행되던 상관이 없었다. 수호의 시선은 신부님이 앉아 있는 앞과 한나누나가 앉아 있는 오른쪽을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호가 물었다.
“한동이 넌 나라 한 (韓)에 동녘 동 (東) 자를 쓰지? 누이는 이름 한자가 어떻게 돼?”
“순할 순 (順)에 샘 천 (泉) 자를 쓰지.”
“뭐, 순천? 한나누나 쟎아. 한 (韓) 자가 돌림자 아니었어?”
“한나는 세례명이고.”
“세례명? 세례명이 뭔데?”
“세례를 받으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서 성인의 이름을 받는 거지. 나도 세례명은 베드로야.”
“무슨 소린지, 그럼 무슨 호 같은 건가?”
“호는 아니지.”
“한나!”수호는 조용히 뇌 되었다.
방에 들어서는데 수호아버지와 수호어머니 개성댁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서 수호할머니 평산댁과 정이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정이가 수호를 보더니,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오라버니 장가가게 생겼대. 밀양박씨 32대손인데 오라버니 보다 두 살 위래. 박순천!”
짜증이 나려고 하던 차에 박순천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수호는 부모님 앞으로 바짝 다가가서 물었다.
“누구? 누구라고요?”
“너 한동이 누이 알지? 그 어머니도 참하고, 그 어머니를 보면 알지. 한동이도 아이도 진중하잖아.”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고, 수호는 겨우 물었다.
“언제 혼례는 올리는데요?”
“그래도 한식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단오를 지나서 수호와 한나는 혼인을 올렸다. 마을 사람들끼리 올리는 혼인잔치라 온 동네가 시끌벅적하였다.
지난 한 달간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다. 한나는 자신의 부군이 될 사람이 한동이와 동갑내기인 수호라는 사실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동이와 늘 붙어 다니며 함께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평생 의지할 베필이 될 수 있을까, 아니 한나가 사모할 수 있는 부부의 정을 나눌 수 있을까 의아하였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혼례 준비를 도와주었지만, 옷가지며 이부자리 등 혼수 준비는 오롯이 함안댁과 한나가 며칠 밤을 새워가며 마련하느라 노곤하였다.
혼례를 치르고 하루 종일 방에서 혼자 새신랑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다 보니, 한나는 다리가 저려서 이리저리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배는 고픈데, 그렇다고 상에 놓인 음식에 손을 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피곤하여 잠깐이라도 누워서 눈이라도 붙일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는 중이었다. 그래도 시집에 가기 전에, 내 집에서 누리는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이 밤이 더디 가기를 바랐다.
첫날밤, 발바닥이 얼얼하도록 맞고, 벌주로 술도 엄청 마셨지만 수호의 정신은 또렷해져만 갔다. 간신히 친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한나의 방에 쭈볏쭈볏 들어서 보니, 한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흐릿한 촛불에 비친 한나는 단아해 보였다. 어색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겨우 내뱉은 말이
“어드래 배가 고프지… 요?” 반말도 존대도 아닌 어정쩡한 질문이 되어버렸다.
“아니…요.” 한나도 얼결에 대답은 했지만 사실은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서 시장하기는 하였다.
딱히 더 할 말이 없어서 머뭇거리는데, 한나가 말하였다.
“불편한데 이거 좀 벗었으면 하는데…”
“어, 그럼요.” 수호는 한나가 답답하다는 말에 얼른 벗겨주려고 무릎을 딛고 반만 일어나서 저고리라도 벗는 것을 도와주려고 하였지만, 도무지 활옷을 어떻게 어디서 풀어줘야 하는지 헤매었다. 한나가 지켜보고 있으니 손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보다 못한 한나가 스스로 무겁고 더운 활옷을 벗었다.
“나 술 한 잔만 주련?” 한나가 말하였다.
수호가 한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없이 술병을 들어 한나의 잔에 술을 붓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한나는 수호가 잔을 들기 전에 먼저 목을 축였다. 빈 속에 술을 마시니 몸이 풀리면서 노곤해졌다.
“나랑 혼인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니?” 한나가 물었다.
“어떤 생각이 들다니요?” 수호가 놀라 물었다.
“한동이 친구쟎니, 너무 잘 아는 사이라.”
“한동이야 잘 알죠. 정작 누나는 모르죠.”
“하긴, 그렇구나. 집안 어른들은 어떤 분들이셔?”
한나는 첫날밤을 치르는 것을 최대한 늦추느라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수호는 한나의 질문이 이어지자 대략 난감하였다. 살아가면서 차차 알아가면 될 것인데 하는 생각이었다. 한나의 질문에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짧게 되돌아오는 수호의 답변에 분위기가 오히려 어색해졌다.
“한 달 내내 혼례 준비하느라 피곤하고 내일이면 시댁에도 가야 하는데, 오늘은 편히 자면 안 될까?” 마침내 한나가 담아 둔 이야기를 꺼내었다.
수호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보고 한나는 멈칫하였다.
“그래요, 오늘 피곤했을 텐데 편히 주무세요.”수호가 간신히 대답하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웠다. 잠시 후, 한나가 소곤소곤 잠드는 소리가 들렸다.
‘첫날밤에 진짜 잠이 오나, 이 사람이?’ 수호는 생각하였다.
수호는 조용히 한나 쪽으로 돌아누우며 팔을 머리 밑에 받치고 한나의 옆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한나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무리 자기 집이라지만 난생처음으로 남자 옆에서 잠이 든 한나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편안히 잠든 한나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수호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에 쥐가 나서 수호는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어느새 한나는 수호를 마주 보고 잠들어 있었다. 수호는 고요히 잠든 한나를 향해 다가가 살짝 벌린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