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황해도로 돌아가다!
1948년
맹현봉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서두르는 법 없이 포근한 눈이 켜켜이 쌓여가며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었다. 눈으로만 지켜보면 아무런 소리도 없는 듯 아늑하기만 하였다. 하지만 골짜기 사이를 휘돌아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소리 마냥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을씨년스러웠다. 겨우내 장질부사가 마을을 휩쓸었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하는 두려움에 몸을 사리면서도 역병이 어느 만큼 왔는지 아침이 찾아오면 마을을 둘러보게 되었다. 뉘 집의 누가 걸렸다더라, 아무개가 고열에 몸져누웠다더라 하는 흉흉한 소식이 아니어도 담 너머로 들려오는 곡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사람들 간 왕래도 끊어진 마을은 그야말로 기괴하였다.
제발 이 지옥 같은 열병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랄 즈음, 수호아버지와 정이가 고열로 앓아누웠다. 개성댁은 수호아버지와 정이를 안방으로 옮겨서 자신이 병구완을 하고, 다른 가족은 건넌방과 사랑방에서 지내도록 하며, 한나에게 부탁하였다.
“염병이 그저 아무 탈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예전에 황해도에서도 마을에 염병이 돌았어도 잘 지났는데, 이번에도 잘 넘기면 되니까, 먹을 것은 방 앞에 놓고 여기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 할머님 잘 모시고, 마시는 물도 모두 아궁이 불에 끓여서 먹고, 다른 집과도 왕래는 하지 말고…” 개성댁은 담담하게 한나에게 일러주었지만 표정은 비장해 보였다.
“어머니도 조심하세요.” 한나의 목소리에도 걱정이 묻어 나왔다.
정이는 열이 나다가 온몸에 열꽃이 피었다. 그나마 정이는 조금씩 미음은 먹었지만, 수호아버지는 고열로 신음만 할 뿐 의식이 없었다. 개성댁은 염병에게 자식이나 남편을 내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염병,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보름이 지나도록 수호아버지의 열은 내리지 않고 오히려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며느리 한나에게는 단호한 모습이었지만, 이렇게 힘없이 무너져 내린 수호아버지를 보자 개성댁도 기가 죽었다.
며칠 뒤, 개성댁마저 오한이 나고 머리가 무거우면서도 지끈지끈 빠개질 듯 아파왔다.
마침내 2월에 수호아버지가 눈을 감았고, 보름이 지났을까 정이가 세상을 떠났다. 3월에는 병마와 싸우다 낯빛이 검게 변해버린 개성댁 마저 죽음의 문턱에서 무릎을 꿇었다. 수호는 연이은 초상에 슬프다기보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신만 동네 어르신 두 분의 도움을 받아 봉분 없이 할아버지 묘 옆에 묻었다.
장례를 치르고 긴장이 풀리면서 수호도 열이 나면서 몸져눕게 되었다. 가운데 마당에 있는 우물 가장자리에서 새싹이 피어나는 것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고열과 복통으로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하였다. 간신히 열이 내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수호의 머리는 다 빠져 있었다. 수호는 기력은 없었지만 갑갑한 마음에 왼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 바른 손으로 창호지 문을 열어젖히고 시원한 공기를 가슴 한가득 들이쉬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당에 새싹으로 파랗기만 하던 옥수수에 이미 수염이 달려 있었다.
한나의 친정도 역병의 물결을 비껴가지는 못하였다. 함안댁과 한동도 장질부사를 앓았다. 한나는 시댁과 친정에 음식을 하여 나르기 바빴다. 한동이가 앓는 동안 함안댁이 정성을 다해 간병을 한 덕분에 회복이 빨리 되었지만, 함안댁도 결국은 염병에 걸려 큰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함안댁은 아직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여 계속 병상에 누워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되살아난 수호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막연하면서 무기력해졌다. 무엇보다 아버지, 어머니, 정이가 없는 빈 집은 있던 사람들이 없어져서 허전하거나 외롭다기보다 무서웠다. 역병은 여전히 마을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폐허나 다름없는 마을이 되어버려,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수호는 고향에 계신 작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어 장질부사로 인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정이의 부고를 알렸다.
수호는 할머니 평산댁과 한나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다.
“가족들이 모두 장질부사로 목숨을 잃고, 집안이 텅 빈 게 너무 무서워, 할머니. 해방도 되었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게 어드럴까 싶어요.”
지난 7월에 작은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받고, 작은할아버지가 맹현봉까지 먼 길을 찾아왔다. 평산댁은 시동생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작은할아버지가 수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정이의 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형님의 묏자리를 잘못 쓰셨어. 산을 뒤로하고 물이 모여서 명당처럼 보이지만,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이는 자리라, 한 끝차이로 오히려 재물을 잃거나 질병을 불러오는 자립니다, 형수님.” 풍수지리에 밝은 작은할아버지의 말에 평산댁도 수호도 놀랐다.
“그럼 어쩌지요?” 평산댁이 물었다.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묘를 써야지요, 별수 없지요.” 작은할아버지가 주변 지관을 유심히 살피면서 말하였다. 그래서 새 묏자리를 보아, 이장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된 마당에 이장을 마치면, 형수님은 아이들 데리고 황해도로 가셔야지요?” 하고 작은할아버지가 넌지시 평산댁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수호가 공방이 들었는지, 무섭다는데, 이곳을 뜨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여야 지요?”
“형수님께서 결정하시면 이장을 마치는 대로 여기는 정리하면 되갔지요.”
한나는 아직도 입맛이 깔깔한 함안댁을 위해 죽을 쑤어 와서 함안댁이 한 술 뜰 수 있도록 함안댁을 자리에서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혔다. 함안댁이 몇 술을 뜨는 것을 지켜본 뒤, 한나가 말을 꺼냈다.
“황해도 가좌에서 오신 작은할아버님이 가족들 묘를 이장을 하고 고향으로 가자고 하시는데, 어머니와 한동이도 함께 가는 건 어떨까?”
함안댁과 한동이는 한나를 바라보았다.
“사돈댁 고향에 우리가 가서 무슨 연고도 없고, 너한테 짐만 되지.”
함안댁의 염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해졌다. 시집을 보냈어도 같은 이웃에서 살면서 한나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마침내 한나를 멀리 떠나보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쿵하고 주저앉았다.
“우리야 어차피,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아버지 고향이라고 한들 우리 연고가 될 수도 없잖아요. 그래도 함께 있으면 서로 의지도 되고, 같이 가요.” 한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해방도 되었고, 우리도 언제까지 맹현봉에 있을 것도 아니고, 누이와 매형이 있는 곳에 같이 가는 것도 괜찮지. 그래도 어머니가 아직은 산 길을 넘어갈 만큼 기력을 되찾은 건 아니니까, 우선 몸을 회복하고 난 뒤에 누이한테 갈게. 그동안 나도 여기 정리하고 떠날 차비를 할 테니까” 한동이가 전향적인 자세로 말하였다.
함안댁도 말은 그렇게 해도 한동이가 한나와 다시 합류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히니 안도하였다. 마치 당장 기운을 차리겠다는 의지로 마음이 급해진 양, 미음을 뜨는 손이 바빠졌다.
“그래, 그럼 우리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놓고 연락을 할게. 어머니도 좀 더 기력을 찾으시고 여기 정리되는 대로 황해도에서 같이 살자.” 한나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오랜만에 세 사람은 정리해야 할 것들과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호도 어릴 적 떠나와서 기억이 없고, 한나도 가 본 적이 없는 미지의 곳이라 그저 상상만으로 가늠해 볼 뿐이었지만, 강원도의 산골과는 달리 넓은 평야에 옥토의 곡창지대라 풍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로 이야기는 좀처럼 매듭을 지을 줄을 몰랐다.
“늦어도 내년 여름에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맹현봉을 떠난다는 계획을 듣자마자 함안댁과 한동이가 눈에 밟혀 도무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한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1949년
그다음 해 4월, 맹현봉에서 고향으로 떠나올 때는 평산댁, 수호와 한나 이렇게 세 명뿐이었다. 다시 황해도로 향하는 소달구지에 간단한 짐을 싣고, 평산댁은 소달구지에 타고 한나와 수호는 계속 걸었다.
강원도 맹현봉에서의 10여 년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황해도 가좌면으로 돌아갔었다. 작은할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권유하였지만, 수호네가 정착하도록 발 벗고 나서는 친척은 없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 금의환향을 하지는 못해도 역병으로 가족 대다수를 잃고 돌아온 평산댁도 친척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수호 손위 누이인 정애가 시집가 살고 있는 황해도 연안으로 가서 3천여 평 정도의 땅을 샀다. 정애가 권하기도 하였지만 고맙게도 정애의 시아버지이면서 생질인 정하의 친할아버지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적은 땅이지만 평산댁과 수호부부를 포함한 세 식구가 먹고 살 농사를 짓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부득이 살 집은 세를 얻었다. 땅은 생겼어도 수호가 주도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처음이라, 정하할아버지가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농사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정하네 집 옆 터에 흙벽돌을 틀에 넣어 만들면서,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마당 겸 헛간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에 외양간이 있고, 그 안쪽으로 부엌이 있고, 부엌 옆으로 안방과 웃방이 있고 그 뒤로 장독을 놓을 수 있는 뒤뜰을 갖춘 고미집을 정하할아버지와 함께 지었다. 강원도에 살면서도 황해도 가옥 구조로 안방, 건넌방, 사랑방, 광, 외양간을 갖춘 또아리집에서 조부모님, 부모님, 한나와 손아래 누이 정이 등 대가족이 살던 집에 비하면 조촐하고 바람은 피할 만큼 구색을 갖추었다. 그래도 살 집이 생겨 마음이 편하고 논에서 훨씬 가까워서 농사짓기도 수월하였다.
한나도 자리를 잡았으니, 맹현봉에 있는 함안댁과 한동이에게 하루속히 사는 곳으로 오라고 소식을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