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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흩어진 사람들

연안에 꽂힌 인공기

by Peregrine

1950년 6월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하면서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에 들어와서 북위 38도 위선을 경계로 하여 분할 통치하고자 하였다. 지역의 문화와 주민의 성향을 고려한 경계가 아니어서, 황해도는 개성 송악산에서 갈라져 연백 군 연안읍의 북쪽은 이북에 속하고 토끼모양의 한국지도에서 토끼발 모양으로 나온 부분은 이남에 속하였다.


지난 일요일부터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왔으며, 무슨 변고가 난 것은 틀림없는데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려고 하였지만 배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길을 돌려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농사일도 뒷전이고 서로 모여 수군대었다.


수호도 시간이 나는 대로 정하네 사랑방에 모여서 인민군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연안에 인공기를 꽂았다느니, 전쟁이 났다느니 사람들이 모아 온 소식을 전해 들었다.


27일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라디오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전하는 소리를 들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절대 안전하니까 피난들 가지 말고 일상으로 복귀를 하라고 하였다. 지금 당장 뭐 큰일이 나기야 하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대통령님도 피난은 안 간다는데 설마 괜찮겠지.




해 질 녘에 걷어 둔 홑청과 기저귀용 광목을 평산댁과 한나가 마주 앉아 다듬이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연안 토박이면서 공산당원인 두식이가 헐렁한 핫바지저고리에 빨간 완장을 차고 인민군 서너 명을 데리고 마당에 들어섰다.

“할머님, 그간 안녕하셨세요? 이번에 연안에 오신 인민군 김하성 대위돼 갔습니다.”

두식이가 마루에 앉아 있는 평산댁에게 건넨 말이었다.


한나는 평산댁과 눈을 마주치고 찾아온 일행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앉아 있었다. 소개를 받은 김하성 대위라는 인민군이 평산댁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 뒤에 서있던 다른 인민군들도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였다. 평산댁도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여 목례로 답례하였다.


“이 집에 오수호 동무가 사는데, 그니까 올해 열여덟인가?”

두식은 장부에서 뭔가를 찾다가 평산댁과 한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올해 열아홉되갔지요.” 평산댁이 마지못한 듯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아, 열아홉이군요.” 두식은 장부에 기록하고 집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그런데 수호 동지는 어디 갔습니까?”


“아, 논에 물 대러 간 모양인데. 해지고 올 때도 되었구만.”


“아, 그렇구만요. 요즘 너무 가물어서 농사는 잘 돼요?”


“그만 그만 하지. 고맙구먼. 어찌 대접할 것도 없고, 시원한 물이라도 드실랴?”


평산댁이 한나에게 눈짓을 하였다. 한나가 다듬이 방망이를 내려놓고 일어서자, 두식이가 두 손을 휙휙 휘저으며 한나를 말렸다.


“아니 아니, 일 없습니다. 다음에 또 오갔습니다.”


두식이 일행을 문밖으로 인도하여 나가고, 한나도 일어선 김에 신발을 신고 그들을 문밖까지 배웅하였다. 그들이 사라지자 수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한나 뒤에서 들렸다.


“두식이지?”


“언제 왔어요? 완석아버지 나이를 묻던데?”


“소리가 나는 것 같길래, 마주치기 싫어서 옆에 숨어있었어.”


숨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호의 마음 한편이 싸하였다.




1950년 7월


이북에서 온 인민군들은 동네 사정을 잘 모르지만 일찍이 공산당원인 두식이가 앞장서서 행정공무원, 군인, 경찰, 대한청년단을 찾아내어 같이 다니는 네다섯 되는 인민군이 총으로 그 자리에서 죽였다.


수호 자신도 두려우면서도 군에서 휴가 나왔다가 인민군이 쳐들어 오는 바람에 복귀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집에 숨어 지내던 상우네 집에 정하할아버지와 기태랑 함께 들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우네 집에 다 와가면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곡성이 들려왔다. 마당에 들어서 보니 상우어머니가 피로 뒤범벅이 되어 바닥에 누워있는 상우를 내려다보다 당신 얼굴을 상우 얼굴에 맞대고 이미 목이 쉬어 울음이라기보다 거친 호흡을 하늘을 향해 토해내고 있었다. 누구의 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둘 다 피로 흥건하였다. 정하할아버지의 눈짓에 기태와 수호가 상우어머니를 상우에게서 떼어내 바닥에 앉혔다. 남의 눈에 띌까 소리소문 없이 상우의 시신을 뒷산에 묻고, 정하할아버지가 나중에 상우어머니에게 상우가 잠든 자리를 알려 주기로 하고 수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몸을 씻었다. 몸에 묻은 흙과 피를 털고 닦아내며, 수호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 맴돌고 있었다.


‘열아홉 살인 내가 잘못되거나 인민군으로 징병되어 가면, 여자만 남은 식구들이 농사일이며 집안일을 어드렇게 건사하나?’




두식이와 인민군은 동네 어느 집에 누가 살고 남자들의 나이를 파악을 하고 난 뒤, 7월 중순부터는 다시 집집마다 방문하여 젊은 사내들에게는 인민군에 입대하라고 종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이내 청년들과 마주치면 마구잡이로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청년들은 인민군이 동네를 활보하고 다녀서,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꺼려졌다. 하는 수 없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밤이 되면 혹시 몰라 정하할아버지, 매형 기태와 정하삼촌인 우태와 함께 수호는 집 뒤쪽에 퇴비를 쌓아 두는 둔덕 옆으로 토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여차하면, 기태, 우태, 그리고 수호가 그리로 숨어들 수 있을 정도로 사흘 만에 토굴은 완성되었다.


공산당 치하이다 보니 남한계는 붙잡아 가거나 대한청년단이나 공무원은 집에 있을 수 없었다. 군인이나 경찰은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토굴은 생각도 못하고 야산으로 숨어들었다. 수호와 일행은 눈치를 보다가 인민군이 안 보이는 날에는 논에 나가 심어 놓은 모를 살피기도 하였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공산당이 정식으로 연안읍에 상주하며 체제를 갖추고 나니, 집안에 숨는 것도 위험하였다. 수호 역시 인민군에 끌려갈 형편은 못되니 집에 있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수호와 정하삼촌인 성우태는 학생 신분이고, 나이도 각각 19세와 17세로, 공산당에게 더 주목을 받게 되고, 붙잡혀 가기 딱 좋은 나이였다. 그래서 29세 매형이자 정하아버지 성기태, 아직 총각인 정하삼촌 성우태, 그리고 수호까지 셋이서 논에 흩어져서 숨어 지냈다.




1950년 9월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 한구석, 절구에 심어 놓은 콩잎이 서서히 시들어 간다.

'이상하다, 물도 잘 주었고 날씨도 좋은데∙∙∙∙∙’

“혹시 물이 잘 안 빠지나?”

의아해하며 수호가 검지손가락으로 흙을 눌러보았다. 갑자기 콩잎이 빨려 들어가면서 쪼그라들었다.


“어이쿠!”

수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가슴속을 파고들며 흘러내린다.


‘꿈이었구나.’

웅크려 앉아있던 다리에서 쥐가 나서 일단 저린 오른쪽 다리를 조심조심 뻗자 잔뜩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이고, 아이고, 죽겠네.” 수호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해는 서산 너머로 이제 막 넘어갔다. 산 뒤로 보이는 하늘에는 방금 떨어진 해가 남기고 간 붉은 기운이 여전하였다. 마찬가지로,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식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루 종일 머리를 조아리고 웅크리고 앉아 있어서 다리는 저리고 베저고리이긴 하지만 무릎이며 가슴은 땀에 젖어 축축해진 지 오래다. 베저고리를 들어 젖은 옷도 말리고 통풍이 되라고 털어도 본다. 발바닥은 아직도 저리고 콩닥콩닥 뛰지만 두 무릎을 바닥에 딛고 석자도 채 안 되는 벼들 사이로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서서히 어둑어둑해져 가는 땅거미 사이로 저 멀리 검은 그림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몸을 낮추고 그쪽을 예의 주시하며 바라보았다. 굽은 등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정하할아버지인 것 같았다. 망태기를 어깨에 가로질러 매고 천천히 다가오다가 논둑 위에 서서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수호가 조용히 벼 사이를 헤치며 다가가 나지막하게 정하할아버지를 불렀다.


“어르신, 여기요.”


정하할아버지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서자, 수호가 슬그머니 머리를 들며 반쯤 일어섰다. 그러자 정하할아버지는 수호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수호는 더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에 도로 앉아서 정하할아버지가 더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낮에는 덥지?”

정하할아버지가 다가와서는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가리는 것도 없으니 더울 밖에요.”

반가우면서도 안도의 한숨처럼 나오는 수호의 푸념이었다.


“어드래, 별일은 없지요?”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논에 숨어 지내며 아무 일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마을 돌아가는 사정이 궁금하기도 하였다.


정하할아버지는 망태기에서 주먹밥과 물이 든 조롱박을 꺼내어 수호에게 건네주면서도 눈은 여전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거 인민군이 징병한답시고 마을을 또 죄다 뒤져다가 수천이하고 학수 있잖아? 걔 둘이 끌려갔어.”


“수천이형님이요?”

수호는 적쟎이 놀라 물었다. 수천이형님은 수호와 항렬이 같은 종친이고 수호보다 네 살 위였다.


비가 오면 논에는 물이 가득하여 숨을 수가 없었지만, 날씨가 맑으면 논에 가서 숨어 있다가 평산댁이나 정하할아버지가 골망태에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논을 거닐면서 숨어있는 가족들에게 슬쩍 건네주고 갔다. 공산당에서도 사람들이 논에 숨어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가진 무기는 없고,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인민군이 마을을 순시하고 다닐 때, 함께 다니면서 눈에 뜨이는 남자들을 붙잡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운이 없는 청년 서너 명이 인민군에게 잡혀 가는 날이면 한 이틀은 인민군의 발길이 뜸해졌다.




수호는 밤이 짙어 어두워진 시각에 몰래 집에 들어갔다. 한나가 잠든 완석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오늘 수천이 형님이랑 학수가 잡혀갔다지? 한 이틀은 마을이 조용해지갔지.” 완석이의 잠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수호가 조용히 말하였다.


“갈아입을 옷가지 가져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한나가 일어나 문갑에서 수호의 옷을 가져다가 잠든 완석이의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옷보다도 땀을 한 사발은 흘린 거 같은데, 먼저 씻고 올게.” 수호가 부엌으로 조용히 들어가 몸을 씻기 시작하였다. 이제 9월에 접어들어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였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그렇다 치고, 지난 7월부터 숨어 지내느라고 마음 놓고 제대로 씻을 수가 없어서 수호가 이대로 바가지를 두드리며 각설이 타령을 해도 해주 오 씨 아무개를 알아보는 이 없이 먹던 찬밥이라도 있으면 두드리던 바가지에 가득 채워줄 몰골이 되었다.


수호가 몸을 씻고 있는 동안, 한나도 부엌에서 수호가 간단히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아궁이에 끓여 놓은 뜨거운 물에 옥수수 서너 개를 넣어 삶았다. 한나가 옥수수를 건져서 방에 들어서니, 오랜만에 개운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수호는 한나가 가져온 옥수수는 손도 대지 않고 베개를 완석이 옆으로 끌어다 놓고 베고 누워 두 다리를 쭉 뻗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은 다음에 베개를 두 손으로 쥐고 눈을 감았다.


“허기지지 않아요? 이거 좀 먹고 자요.” 한나가 물었다.


“일 없어. 다리를 이렇게 뻗고 자는 게 얼마만인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수호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이내 잠이 들었다.


한나는 만세를 부르며 잠이 든 수호와 완석이를 차례대로 돌아보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뻘뻘 나는 삼복더위에 땡볕에서 숨어 지내느라 벌겋게 그을은 얼굴이 안쓰럽고 아빠와 데칼코마니처럼 만세를 부르며 뻗은 두 팔이 고작 머리에 닿는 완석이를 보면 미소가 나왔다. 한나는 완석이를 가운데 두고 완석이를 향해 누웠다. 완석이 너머 잠든 수호를 바라보니 차마 말로 물어보지는 못했던 질문을 마음속으로 던지고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지요, 천주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다. 수호가 버선을 신고 잠든 한나를 돌아보다가 한나와 눈을 마주쳤다.


“날이 밝기 전에 나가 볼게. 완석이가 많이 자랐어. 볼살도 오르고. 완석이 돌보느라 고생이지.”


수호는 어둠 속에서도 한나의 손을 찾았다. 한나도 수호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걱정 말고 몸 조심해요.” 한나는 완석이가 깨지 않도록 속삭였다.


“나야 절대 안 잡히지. 걱정 말아.” 수호는 쥐고 있던 한나의 손을 위로하듯 꼭 쥐었다. 한나의 손을 놓아주고 수호는 잠든 완석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손으로 살짝 쓸어주고 조용히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수호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주위를 둘러보며 인기척을 살폈다. 그리고 도둑고양이처럼 몸을 낮추며 논두렁으로 숨어들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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