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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흩어진 사람들

첫 번째 재난: 한국전쟁

by Peregrine

1950년 3월


연안에서 첫해 농사를 지어서 그럭저럭 쌀 마흔 가마니를 수확하였다. 정하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호 혼자 그 많은 양의 쌀을 거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평산댁도 기력이 없고 한나 역시 점점 배가 불러와 오랜 시간 일을 하기에 힘이 부쳐 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겨울 김장을 마치고 농한기에 접어들자, 수호가 어렵게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일을 시작하였다. 수호가 가끔 면에 나가면 국민학교에 같이 들어갔던 희창이라는 동창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희창은 중학교를 나와서 면서기를 하고 있었다. 희창의 편에 전해 들은 진성이라는 친구는 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두 친구 모두 아직 장가를 가지는 않았지만, 자리를 잡았다.


안전하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강원도에서 보낸 10여 년 동안 수호는 흐르는 냇물에 우뚝 멈춰 서서 다른 물들이 더 큰 강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타지 못한 것이었다. 할머니인 평산댁 앞에서는 차마 말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수호의 얼굴은 분을 삭이듯 눈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수호는 국민학교 분교에서 2년과 서당에서 2년 반 동안 교육을 받았다. 동네 아이들과 모여 배운 한자공부는 세상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배움에는 다 때가 있는 것인데,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늦깎이 공부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인 수호가 아직 농사를 짓는 것도 서툴고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학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일까? 서당의 훈장님께서 중시조가 났다고 칭찬을 받을 정도로 수호도 공부에는 소질이 있었는데,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수호도 열심히 학업을 마치고 보란 듯이 학교에서 훈장질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기는 늦었지만 무얼 아는 게 있어야 그나마 세상살이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였다. 정하엄마인 정애누이에게 들으니, 연안읍에 있는 언중교회 목사님이 취학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야학을 운영한다고 하였다. 연령제한도 없이 누구나 받아주며 중학교 과정을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 언중공민학교!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3월이 되자 수호는 자신 보다 2살 어린 정하삼촌인 황우태와 함께 공민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국어와 영어도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 수호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1950년 4월


며칠 전부터 한나는 아기가 아래로 내려앉았는지 자꾸 배가 눌리는 느낌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앉았을 때는 배가 영 불편하였다. 밑으로 배가 눌려서 앉아 있기도 힘들었고, 자꾸 배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아니 누가 골반뼈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한나는 더는 불편하여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나려고 하였지만 일어설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천천히 일어서려다 골반이 갈라지는 통증에 놀라 한나는 자신도 모르게


“어마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평산댁은 한나가 지른 신음소리를 듣고 방에서 내다보았다. 평산댁은 서둘러 나와서 한나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니? 배가 아프니?”


“저린 것도 같고 뭐가 쏟아지는 것도 같아서요.”한나가 대답하였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 누우라!” 평산댁의 팔에 의지해 한나는 방으로 들어섰다.


평산댁은 개어 놓은 보를 바닥에 펼쳐서 깔아 주었다. 한나가 보 위에 앉는 것을 보고 평산댁은 성급히 방을 나갔다. 눕기에는 불편할 것 같아서 한나는 그대로 보 위에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평산댁이 칼과 뜨거운 물을 담은 대야를 가지고 들어왔다. 칼과 대야를 한나가 앉아 있는 자리 옆에 놓고, 아기 베네 옷과 기저귀용 광목천을 가져다 대야 옆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한나와 평산댁이 틈틈이 마련해 두었던 것이었다. 평산댁이 기저귀천을 하나 접어 한나에게 건네주었다.


“아가, 힘들면 이걸 악 물어봐야. 아파서 어쩌나?”


통증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아기가 나오는 것에 대한 걱정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 또다시 한나의 골반 뼈를 갈라치는 진통이 찾아왔다. 한나는 부르르 진저리를 치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한나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평산댁이 한나에게 건네주었던 광목천을 눈으로 찾아서 손을 뻗어서 집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한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배가 허벅지에 닿자 배가 눌려 몸을 앞으로 뻗었다. 엎드리고 싶었지만 배가 불룩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다시 뼈를 몸 바깥방향으로 잡아당기는 중압감에 놀라 한나는


‘아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아기가 나왔다. 아기는 악을 쓰며 울어대더니, 평산댁이 핏덩이를 닦아내고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광목에 꼭 싸서 한나 옆에 눕혀놓으니 아기는 이내 조용해졌다. 한나가 평산댁을 올려다보자,


“실한 사내네. 수고했네, 수고했어!” 대견하다는 듯이 알려주었다.


한나는 아기를 낳았는데도 배에 통증이 느껴지고 아직도 몸에서 무언가 물컹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나는 피곤해 지면서 졸음이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내 한나의 눈이 감기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1950년 6월


화양천, 풍천, 그리고 한교천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간척지에 관개를 하여 황해도 연백평야는 우리나라 3대 곡창지대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벼농사는 연백에 물고를 터서 직접 물을 받거나 지대가 낮은 지역은 바닥에 저수지를 만들어 거기서 물을 받아서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하게도 이북에서 저수지를 막아서 6월이 되도록 논바닥이 바싹 말라있었다.


6월 25일은 마침 일요일이고 날씨도 좋아서 이른 아침부터 품앗이로 정하할아버지를 비롯한 우태, 인식이랑 함께 수호네 논에 모를 심었다. 정하할아버지의 지휘아래 정하할아버지가 못자리 기준이 되는 막대를 꽂으면, 우태가 맞은편에서 막대에 묶은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논바닥에 꽂았다. 인식이는 우태쪽에서 수호는 정하할아버지 쪽에서 모를 심어 나갔다. 인식이네와 정하 네는 이미 품앗이로 모내기를 마친 터라, 네 사람의 손발은 딱딱 들어맞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땀이 나기 시작하고, 등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하였다. 수호는 허리를 펴고 숨 좀 돌릴 겸 몸을 꼿꼿이 세웠다.


아직 오전이었는데, 사람들이 보따리를 이고 지고 포구 쪽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요일 아침에 서둘러 어디들 가나보다 싶었다. 다시 정하할아버지의 장단에 맞춰 모를 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조금 있자니, 더 많은 이들이 바쁘게 지나다녔다. 모를 잠시 내려놓고, 수호가 서둘러 지나가는 이를 불러 세워 물었다.


“이 시간에 어디 그래 가시우?”

수호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손에 진흙물이 묻은 것을 보고, 초로의 남자가 빠른 어조로 대답하였다.


“아, 인공기가 연안 읍에 꽂히더니 인민군들이 여기저기 휩쓸고 다니는 게, 거 무슨 사달이 난 게 틀림없어. 일단 어디든 배를 타고 피난이라도 가야지. 거시기는 여기서 한가하게 모를 심고 있어!”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면서 이쪽저쪽으로 오가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배를 탈 수 있는 포구로!


“이게 어드렇게 돼 가는 거야?” 인식이가 우태와 수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로를 쳐다볼 뿐 무슨 변고라도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모는 못 심갔는데! 일단 파하고 다 챙겨서 집에 가자우.” 정하할아버지가 외쳤다. 그제야 마법에서 풀려나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처럼 머리를 돌리며 허둥지둥 널브러져 있는 모판과 막대를 둘둘 말아서 달구지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호는 집에 도착하여 한나가 부엌에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멸치육수 냄새가 무거운 솥뚜껑을 뚫고 연기로 차고 올라왔다. 한나가 참으로 손칼국수를 만들고 있었나 보다. 수호가 부엌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더니, 한나가 깜짝 놀랐다.


“왜, 벌써 왔어요? 조금 있으면 점심참 내가는데?”

한나의 말에 방에서 완석이를 보고 계시던 할머니도 부엌으로 난 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연안에 인공기가 꽂혀서 다들 일단 피난을 가야겠는데. 간단히 짐을 챙겨서 백석포에서 보자고 하고 왔으니까 어서 짐 먼저 챙기라우.” 말을 마치고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수호는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평산댁도 한나도 수호에게 시선을 고정하면서 이끌리듯이 수호를 따라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뭔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기만을 기다리며 눈으로 수호를 좇으며 재촉하였다. 그러나 수호 역시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는 직감만이 있을 뿐이지 아는 것이라고는 서둘러 피난 가는 사람들의 절박함 뿐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고 우리 역시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백석포에 가서 사람들 편에 소식도 듣고 일단 배를 타야 하니까, 내가 쌀팔 것 좀 챙길 테니, 할머니랑 옷가지 좀 싸보라고.”

수호는 이것저것 손에 닿는 대로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가지들을 바쁘게 보자기에 싸면서도 마음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한 시간도 채 안되어서, 간단한 옷가지, 이불과 쌀을 보에 싸서 평산댁과 수호가 나눠지고, 한나는 갓난아이 완석이를 업고 백석포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연안에서 백석포까지는 10리 길인데, 날씨는 덥고, 길은 좁은데 사람들은 예전에 없이 많아서 길을 줄이는 데는 더디었다. 게다가 평산댁도 먼 길을 걸어 본 지 오래되었고, 완석이를 업고 옷가지 보따리까지 머리에 얹은 한나도 걸음을 재촉해도 마냥 느렸다. 혹시나 배편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쌀 1말을 한 손에 들고, 옷가지 짐을 다른 손에 들고 가려니 수호 역시 고역이었다. 수호가 앞서 가며 길을 뚫으면서도 평산댁과 한나가 따라오고 있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백석포로 가는 길은 하나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길옆으로 삐어져 나와 걸어가고 있었다.




6월 25일 새벽에 인민군이 남하하여 이미 연안은 당일에 인민군 영향 하에 있었다. 연안에서 육로로 서울에 가려면, 해주에서 출발하는 토해선 연안역에서 기차를 타고 토성을 지나 개성까지 가서, 개성에서는 다시 경의선 서울행 기차를 타야 한다. 뱃길로 가려면 예성강을 건너 개성으로 가서 경의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갈 수가 있었다. 백석포에서 어떡하든 배를 구해 개성으로 가서 서울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백석포에 도착하니, 이미 전쟁으로 위험지구가 되어 연락선은 한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남아 있던 마지막 연락선도 이미 오전에 떠나갔다고 한다. 결국 어부가 가진 개인 어선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이마저도 어부들이 배를 타고 떠나가면서 남은 배에는 불을 놓고 피난을 갔다. 38선 인근인지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떠난 배는 돌아올 리 없고, 수호가 배를 가진 사람에게 쌀을 좀 더 얹어 주더라도 배에 자리를 얻어 보겠다고 간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보채는 완석이에게 한나는 젖을 물리며 눈을 마주치니 완석이도 한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눈을 돌려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입을 움직이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완석이의 이마를 쓸어주고 자연스레 완석이의 몸을 살펴보니 오랜 시간 한나의 등 뒤에 업혀서 연한 허벅지는 붉어져 있고 땀띠가 울긋불긋 올라와 있었다. 젖을 먹는 동안만이라도 통풍이 되라고 한나는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었다. 때마침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수호는 미간에 주름을 한껏 잡고 있었다.


“도통 자리가 없어서 도저히 안 돼 갔어.”

한나에게 수호가 나지막이 건네는 말이었다. 그리곤 평산댁에게 향하였다.


“배가 없어서 피난은 못 가갔어요. 한 데서 있기도 거시기하고 집으로 일단 가야겠어요.”


“웬 사단이라니! 할 수 없지, 그만 집으로 가야지.” 평산댁은 순순히 답하였다.


십리가 되는 길을 급한 마음에 네 식구가 걸어서 왔지만 하는 수 없이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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