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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흑역사

#1. 나 이거 안 먹을래요!

by Peregrine

1975년 여름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시기이니까 아마 다섯 혹은 여섯 살 때였다. 온 동네 아줌마가 이모인 시절을 살았다. 서울이어도 전화는 인선이모네 집에서 누군가 달려와 알려주면, 메신저와 함께 이모네까지 달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린이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동네 아이들 모두 희순이모네 몰려가 다 같이 앉아서 방송이 시작되면 주제가를 따라 부르곤 하였다.


저녁이 되면, 경찰과 도둑의 역할을 정하고, 시장을 포함한 모든 동네에서 아이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경찰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도 도둑이 되어 혼자 신나게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다가, 정작 경찰과 한 번도 마주쳐보지도 못하고 시간이 흘러 어둑어둑해지면 혼자 지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정자이모네가 길을 건너 초등학교를 지나 반대편 동네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가는 날,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면서 새로 이사 간 집과 옛집을 오가며 짐을 날랐는데, 나도 한 차례 새로운 집으로 갔었고, 그때는 엄마를 따라간 것이라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며칠 뒤,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정자이모네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간 사실을 모르고 정자이모네를 찾아온 아저씨가 있었다. 혹시 새로 이사 간 집의 위치를 아는지를 우리들에게 물었다. 내가 당당하게 나섰다.

“내가 알아요!”


아저씨는 고맙다고 하면서 나에게 초콜릿을 사 주셨다. 그 당시 초콜릿은 귀한 간식이었다. 내가 철이 든 아이였다면, 그 아저씨를 무사히 이모네 집에 모셔다 드리고 그 보상으로 초콜릿을 먹었을 텐데, 나는 성큼성큼 앞장서서 아저씨를 인도하면서 초콜릿을 입에 물었다.


길을 건너고 우측으로 걷다가 초등학교가 있는 곳으로 좌회전하여 초등학교를 지나쳐 쭉 가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 이후부터는 기억에 없었다. 다시 되돌아 초등학교까지 갔다가 왼쪽 골목까지 왔다 갔다가 반복하기를 여러 번 하다가 깨달았다.


‘아, 이모네 집이 어딘지 모르겠다!’


손에 든 초콜릿을 보니 이미 반 이상을 먹었고, 손에서 녹아내려 그 모양도 흐물흐물해진 상태였다. 이걸 자백하기에는 너무 무서웠다. 나만을 빤히 바라보는 아저씨의 표정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얼마나 황당하고 화가 나겠는가? 그렇다고 계속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먹던 초콜릿을 아저씨에게 되돌려주며,


“나 이거 안 먹어요!” 안내를 포기하였다.


아저씨는 오히려 나를 달래며 초콜릿을 돌려주며 나를 다시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후 아저씨가 어떻게 이모집을 찾아갔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길안내를 해주고 대가로 먹었던 그 귀한 초콜릿은 달콤하다기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녹아내려 내 손에 엉겨 붙은 끈적끈적한 검은 기름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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