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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Aug 26. 2022

울지 마세요.

Lucy Campbell







글쓰기 공부를 위해 류시화 님의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의 필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를 쓰다가 겨우 한 장을 끝내고는 '이걸 언제 다 끝내지'라는 마음의 소리와 함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차피 글쓰기 공부를 위해 하는 것이지 필사를 마치는 것이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작하자마자 진절 머리가 났다. 나의 마음은 왜 그냥 매일 조금씩 하게끔 나를 조용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일까? 왜 꼭 나를 괴롭혀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시끄러운 마음속의 이야기를 들으며 필사를 하고 있자니 이혼 법정에서 남녀의 싸움을 타자기로 치고 있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은 필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글씨가 삐뚤어졌다며 토를 달거나 갑자기 옛날 일을 떠올리거나 오늘 저녁밥은 또 뭘 해야 하나 하고 일생일대의 중대한 고민에 빠진 것처럼 하고 있던 모든 일을 잃어버린다.


나는 정말이지 성격이 급하고 집중하는 것을 싫어하며 언제나 무거운 눈꺼풀을 이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조용히 마음속으로 웃으며 '그래, 이런 나를 데리고 삼십칠 년을 살아온 나도 고생이 참 많다.' 하고 자신을 조금 위로해 본다.




류시화 님의 책에는 원숭이를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가   동안 명상 수련의 결과를 얻지 못하자 이름난 스승을 찾아가 비법을 묻는다. 그러자 스승이 절대로 원숭이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다. 남자는 비법을 얻은 것에 기뻐하며 명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명상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원숭이였다. 그렇게  시간을 원숭이를 생각하느라 명상을 하지 못한 그는 다시 스승을 찾아가 방법을 묻는다. 그러자 스승이 이번엔 원숭이만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는 집에 돌아와 원숭이만을 생각하며 명상을 시작하지만 이번엔 다른 온갖 짐승들을 생각하느라 원숭이를 떠올리지 못한다.




사실 오늘 나는 친절함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다. 어젯밤부터 글에 대한 내용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글을 썼지만 '이 글은 너무 유치해' '이 글은 예전에 쓴 글이랑 너무 비슷해'라는 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을 듣다가 결국 글을 지워 버렸다. 자기비판적인 오늘의 나는 친절함보다는 어리석음에 대한 글을 썼어야 했던 것 같다.


계획했던 글을 쓰지 못하고 갑자기 생각난 이런저런 말들을 짜깁기해서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글을 써서 어느 세월에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자조적인 비판과 함께 시끄러운 마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반대 의견이 생겨나 내 머릿속은 다시 원숭이들로 가득해진다.




인도의 현자 삿구루는 말했다.


울지 마세요.

자신의 어리석음을 웃어버릴 수 있다면 여러분이 지고 다니는 쓰레기가 거름으로 변하게 될 겁니다.

아시다시피 거름은 성장에 도움이 많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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