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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Jul 16. 2022

슬픔으로 덮었다.

Embrace by Ron Hicks








긍정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토라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평생을 부정적으로 살아온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십 년 넘게 명상을 하고 나만의 영성적인 마음수련을 구축해 왔지만 나는 그렇게 매일이 행복하지도 않고 마음이 항상 평화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많은 영성 책들에서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평화롭고 상처받지 않는 마음 상태에 그렇게까지 도달하고 싶은 의지도 없다.


나는 어둡고 복잡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무엇보다도 매일이 혼란스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어두운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어둠은 나를 더 나답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나는 나의 어둠과 고통과 괴로움과 혼란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거침없이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게 나고 나는 이런 내가 좋으니까.




글은 언제나 괴로울 때 더 잘 써진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엄청난 속도로 굴러가며 글을 써 재낀다. 어쩌면 이 만성적인 괴로움은 글을 더 잘 쓰게 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의도적으로 붙어있던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괴로움은 글을 쓰기에는 참 안성맞춤인 마음속 제도이다. 개인적으로 즐거운 글은 별로 재미가 없다. 인간의 깊은 밑바닥에서 오는 슬픔이란 감정이 더 아련하고 좋다. 나는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슬픔을 선호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이다. 폐허가 된 땅을 걸어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그린 먹먹하고 가슴 아픈 소설이지만 글의 문체만큼은 너무 간결하고 아름다워서 소설이 아니라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슬픔이 이상하게 나를 위로해 준다.


슬픔만이 슬픈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로해 줄 수 있다. 나는 내 안의 고통과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로해 주고 싶다. 외롭고 차가운 마음에 슬프지만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고 싶다. 그리고 슬픔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버린 그 슬픔 내가 갖겠어요. 내가 온전히 사랑으로 품겠어요.


나의 마음은 평화롭지 않지만, 에고가 언제나 함께 있고 슬픔과 질투와 온갖 부정적 감정이 나의 몸속에 고통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나는 살아있고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나의 글이, 나의 슬픔이 누군가의 슬픔을 덮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결국 내가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이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 타인 또한 사랑할 수 있다.


문득 내가 어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만이 어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수도 사랑하는 것. 왼쪽 뺨을 때린 사람에게 오른쪽 뺨도 내어주는 것.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보는 것. 슬픔을 온전히 끌어안고 사랑해 주는 것.


사랑은 그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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