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장애 말기 환자인 나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남편에게 물어본다. 아기 옷을 반팔을 입힐지 긴팔을 입힐지, 저녁은 생선이 좋을지 닭고기가 좋을지. 그러면 남편은 '반팔' '생선' 하고 바로 대답해 준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결국 반팔이건 긴팔이건 생선이건 닭고기이건 아무 상관이 없다.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고민하며 살아간다.
꿈이란 것도 그렇다. 어느 날 대단한 무언가가 삶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사실 어떤 꿈이든 상관이 없기 때문에 꿈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 하나 잡고 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인 사람도 있고 꿈인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 그것이 꿈이길 바랐다. 꿈을 펼치며 사는 인생을 항상 동경했다. 하지만 이것저것 흥미가 가는 것도 있었고 재능이 있는 것도 있었고 좋아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 하나 '이거다' 하는 것이 없었다.
나는 꿈을 찾는 과정이란 하나의 수련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천직이란 없다. 그냥 무엇 하나 잡고 그것에 사랑을 주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거다' 하는 꿈도 '이 때다' 하는 완벽한 타이밍도 '이 사람이다'라는 완벽한 사람도 없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꿈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꿈을 찾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꿈을 무언가 대단한 것으로 생각했다. 바로 내 곁에 있는 것들에서 사랑을 찾지 못하고 언제나 더 대단한 것을 찾아야 한다며 허황한 꿈을 좇았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씨앗을 심고 매일 물을 주고 자신만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간다면 꿈을 찾은 것이 아닐까? 결과가 아닌 과정에 완전히 몰입하여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을 때 바로 꿈을 찾은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몰입의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을 때, 회사에서 회계장부를 정리했을 때, 옷을 디자인했을 때. 모든 순간에 꿈을 꽃피울 기회가 있었지만 자라나는 싹을 꺾어 버린 것은 언제나 나의 불안이었다. 그러면서 언제나 신에게 한탄만 늘어놓았다. 나의 삶은 왜 이 모양인지, 왜 나에게만 꿈을 찾을 기회가 오지 않는지, 난 왜 재능 없이 태어난 건지.
결혼 전 나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했었다. 하지만 크게 성공시키지는 못하고 결국 그만두었다. 하지만 일 년 뒤 그 당시의 블로그를 방문했을 때 꽤 많은 사람들이 옷을 사고 싶다고 문의 한 걸 알았다. 길이 열리기 바로 직전에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때 나는 꽤나 열심히 일했다. 매일 작업실에 출근했고 옷을 만드는 그 순간만큼은 완전히 몰입했다.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나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아무도 나의 옷을 사주지 않을 것 같아, 클레임에 걸리면 어떡하지. 결국 성공을 가로막는 건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지금 글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육아와 병행하기 적합한 것 중의 하나가 글쓰기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나의 꿈으로 정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한 번도 이것을 꿈으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서 전공한 적도 없고, 배워 본 적도 없으며, 좋아하긴 하지만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히 이 길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글쓰기보다는 명상에 더 집중한다. 이리저리 날뛰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다.
결국 꿈을 좇는 길이 마음을 다스리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천직이 없이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처럼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나 자신이다. 사랑은 어디서 굴러 들어오지 않는다. 그 무엇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꿈도 찾을 수 없다. 사랑이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데 또다시 사랑을 찾겠다며 길을 떠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