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시작부터 예감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가벼운 고백만을 위함이라면 애초에 고백을 시작하지 않았으리라는 예감. 언젠가는 덮어둔 일을 떠올릴 것 같은 예감. 끄집어낼 것 같은 예감. 사실은 그래서 고백을 시작했을지 모른다는 예감.
어떠한 고백들을 하고 나면 그 후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에게 나는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나였고, 나이고, 나일 테니. 그렇다면 그뿐일까. 그렇다면 고백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궁금하다.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고백들은 하지 않으면 나를 설명할 수 없다.
흐릿하지만 흐릿하지 않은 기억이 하나 있다.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기억이지만 행위자가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기억.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사실 꽤 오래도록 나는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나는 망한 것 같다고. 망한 것 같은 게 아니고 어쩌면 나는 망했다고. 완전히 망했을지 모른다고.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도 모를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출구가 안 보인다고.
'언제나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사람이 되자.'라고 임관 앨범에 새겼던 나는, 어쩌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버린 것일까. 언젠가는 다시 밝음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그 밝음의 시간 속 나는 과연 실존하던 나였을까?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돌아가는 길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단지 '의무' 뿐.
출근해서 미친 듯이 일하고 퇴근해서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으로 돌아와서 자고, 다음날 다시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삶. 쉬고 싶다.. 잠시 여기서 멈추고 싶다. 아주 잠시라도. 하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과연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삶을 견디고 있는 자는 누구일까. 이 삶을 견디는 자는 진짜 '내'가 비어버린 나의 껍데기 아닐까.
한 번도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죽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추상적인 형태로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죽음과 아픔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이들이 곁을 가까이 스쳐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이 심히 쇠약해졌기 때문일까. 그래서일까. 죽음이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인 실체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 이유가. 밀어내야 한다. 어두운 기운과 어두운 그림자를 내게서 밀어내야 한다. 멀리. 아주 멀리.
어떠한 연상에서 이른 결론이었을까. 문득 '끈'을 떠올렸다. 택배 상자를 묶었던, 언젠간 쓰임이 있을지 몰라 두었던 끈. 그리고 그 끈을 잘랐다. 잘게 아주 잘게 잘랐다.
그것은 당시의 마음으로 '죽음'을 연상시킬 수 있는 어떤 조그마한 것이라도 내 곁에서 치워버리려던 무의식 아니었을까. 어두운 그림자가 내게 오지 않도록. 다시는 오지 않도록. 그 어떤 것에도 나를 결코 내어줄 수 없기에.
어쩌면 그날 비로소 나는 확신했는지 모른다. 이제 이 조직에서 나를 데리고 나가자고. 이 조직과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지금은 중요치 않다고. 일단 이곳에서 나가자고. 주어진 일들을 끝내고 나가서, 내가 누구인지는 그 후에 생각하자고. 이 조직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내자고.
흐릿하지만 강렬했던 어느 날의 기억. 묻어버릴 기억일지 모르지만, 떠올릴 것 같은 기억. 확실한 것은 한 가지뿐. 그럼에도 이 시간 나는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다시 새로운 가능성들을 꿈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어렴풋이 예감한다. 그 어느 날 나는 비로소 내가 되어 마침내 이 기억조차 떨치고 원하는 만큼 날아오를 것을.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