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향하던 곳
너무 귀하고 소중한 것은 차마 선뜻 말할 수 없다. 스스로 가진 언어와 표현을 동원해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럼에도 그것은 소중함 때문에 불완전하더라도 고백되어야 한다. 혼자의 그릇에는 담을 수 없기에. 그리고 고백되어야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을 서투른 나의 언어로 고백해 본다. 이것은 나의 진실한 마음과 깨끗함이 담긴 '열망'에 관한 고백이다. 끝내 지키고 싶은 것에 관한 고백. 말할 수 없이 소중해 때로는 나를 눈물짓게 하는 소망에 관한 고백.
간절함이 내게 온 날을 기억한다. '글을 쓰고 싶다.' 불현듯 찾아온 그 소망에 가슴이 터질 것 같던 날, 그 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우울한 마음을 안고 고요한 방에서 그저 책을 읽고 있었다. 꽤 긴 시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발악해 왔다. 타인의 열정이라도 좋으니 어떤 뜨거움이라도 내게 끌어오겠다는 발악.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시간을 내서 어딘가로 갔다. 무엇이라도 영감을 주는 일을 만나고 싶어서, 타인의 뜨거움이라도 끌어오고 싶어서, 어떤 뜨거움이라도 옮겨 받고 싶어서 마음을 태울 것을 찾았다. 특히 나는 가장 만만하지만 가장 나를 뜨겁게 사로잡던 책에 집착했다. 나의 발악에 동참해 줄 현실의 무엇이 없어도, 내겐 책이 있었다. 타인의 열정이 담긴 책. 안전하지만 실존하고 언제든 곁을 내어주는 책. 그래서 책에 집착했다. 필사적으로 책에 기댄 마음이 마침내 어디론가 가닿았던 것일까.
두근! 두근두근
불현듯. 정말 불현듯. 심장이 엄청나게 뛴다. '글을 쓰고 싶다.' 선명한 그 감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 순간의 열망. 그 뜨거움은 결코 오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고 싶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마음속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시간 누군가가 쓴 글을 읽으며 어떻게든 삶의 의지를 다시 끌어오려던 시간. 그 시간 읽었던 글 같은 글. 뜨거움에 데일 것 같던 글. 열정에 타들어 갈 것 같던 글. 진실함을 담은 글. 마음을 일으키고 치유하고 희망을 주고 삶을 버티게 해 주던 글. 삶이 힘겹고 지친 누군가에게 삶의 의지를 끌어올 수 있게 해주는 글. 온기를 주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생각지 못한 시간 찾아온 열망은 나를 휘감았다. 고요하고 잠잠한 나의 공간에서 한동안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 두려움과 절망으로 집에 있는 끈들을 잘라버렸던 나는, 같은 공간에서 이 순간 열망에 휩싸여 있다. 내가 아직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나의 모든 열정은 오래전 식어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떨림과 두근거림이 감당 안 될 정도로 심장이 요동치는 감각. 훗날 이 시간을 떠올리면 다시 눈물 날 것 같은 생생한 이 감각.
나는 누구인가.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지 모른다. 사는 날 내내 헤맬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이 순간 나의 심장이 향하는 곳. 가슴이 가리키는 곳. 찰나의 순간 강렬하게 나타난 가고 싶은 곳. 가장 깨끗한 마음으로 가보고 싶은 곳. 나의 뜨거움이 있는 곳. 가슴 저릿하게 아름다운 곳.
아직 내게는 군인으로서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곧 파견도 떠나야 하고, 중대장님의 뒤를 이어 중대를 이어받아야 하고, 이곳에서의 시간이 다하면 새로운 부대로 떠나야 한다. 또다시 고된 삶의 자리로 돌아가 일상을 버티며 어느 순간 이날의 두근거림조차 흐릿해 질지 모른다. 삶에 지쳐 이 시간을 오래도록 잊을지 모른다. 하지만 끝내 이 마음을 외면하며 살 수 없을 것을 막연하지만 확신한다. 그것을 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