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참관수업과 간담회
어떤 조언은, 안타깝게도 그것을 전수해 준 이가 가까이 없을 때 중요성이 와닿을 때가 있다. 오늘은 엄마의 조언이다.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하신 어떤 날 엄마의 조언. 그 조언을 떠올리며, 말 그대로 밥(rice)심을 끌어오고자 미역국에 성게와 들깨와 두부를 넣은 아점을 만들었다.
실질적 효과는 모르겠지만 추운 날 따뜻한 국물의 힘을 빌리니 겸사겸사 조금 든든해진 느낌이다. 오늘 일정인 출근과 참관수업과 간담회를 생각하니 살짝 비장해졌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학기는 4월 초~7월 말, 9월 초~12월 중순, 1월 중순~3월 중순. 이렇게 약 3학기 체제로 구성되어 있어서 오늘이 사실상 이번학년의 마지막 참관 수업일 것으로 예상된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덧 1년이 지났다니 시간의 빠른 흐름을 새삼 실감했다.
14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학교로 가는 길, 바람은 아직 차지만 햇살에서는 봄이 느껴져 산뜻했다.
참관일 학부모 참여는 자율임에도 참여율이 꽤 높은 편이었는데, 오늘은 이번 학년 마지막 참관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학부모가 더욱 많다. 아빠들의 참석 비율은 언뜻 봤을 때 학부모 전체의 35% 정도 되는 듯싶었다.
한국의 학부모 시절을 겪어보지 않아 한국의 현황은 모르겠지만, 지금 있는 곳을 보면 일본 학부모들은 학부모 참관일에 대부분 평상복으로 참석하는 편이다. 겨울에는 캐주얼에 점퍼, 여름이나 봄가을에는 남방이나 블라우스. 티셔츠를 입고 오신 분들도 꽤 많이 보이며, 아빠들 복장 또한 대부분 캐주얼이다. 졸업식이나 입학식 등의 행사 외에는 대부분 소박한 복장으로 다니며, 행사 날 정장도 사용감이 오랜 정장이 대부분으로 꾸밈보다는 예의를 차리는 것에 국한되는 것 같다. 지역에 따라 다를지 모르지만.
오늘 참관 수업 주제는 1학년 학교생활에 관한 발표였다. 한 명씩 순서대로 앞에 서서 1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2-3분 정도 발표하는 수업인데 부쩍 자란 아이들의 발표 모습이 대견했고, 학부모들의 경청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도 좋았다. 이어서 악기(멜로디언, 트라이앵글, 탬버린 등등) 합주가 이어지며 참관 수업을 마쳤다. 곧 이어진 간담회(懇談會, 정답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는 간담회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선생님께서 1년간의 학습과정에 관해 설명해 주시는 자리였고, 덕분에 함께 참석한 분들과 안면이 생기는 이점도 있었다.
요즘 나의 일상은 관성에 기대 흐른다는 생각을 했다. 관성을 따라 달리고, 아이를 키우고, 출근하는 관성에 따른 일상. 깨어 있기를 바라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럴 때 오늘처럼 이렇게 관성을 벗어나는 상황을 마주 하는 것도 괜찮은 방안이라 여겨진다. 긴장감에 평소보다 조금 비장해지는 날. 덕분에 오늘은 얼마간 관성을 벗어났고, 엄마의 조언에 힘입어 비장함을 준 일들을 해치웠고, 덕분에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도 닿았다.
오래전 엄마는 어떤 관성에 이끌려 학부모의 시간을 보냈을까. 앞으로 내게는 어떤 학부모의 시간이 찾아올까. 모르겠지만 아주 조금은 알겠다. 엄마의 새로운 조언이 문득 떠오르는 어느 날, 그 조언을 따르면 되겠다는 것을. 어떤 조언은 시공간을 초월해 적용될 수 있을 테니.
오래 겪은 것은 아니지만, 학부모의 일상은 성실함이 무척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는 지속적인 성실함이 요구되기 마련이므로. 무턱대고 관성에만 기대 살아서는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때로는 관성에 기대서라도 한 시절을 넘길 수 있도록 성실함이 관성이 되도록 만들어 두어야겠다. 관성과 관성을 벗어난 마음(타성은 아닌 듯)이 필요에 따라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삶에서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지만, 학부모의 일 또한 내게는 무척 어렵다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