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 트램은 내가 좋아하는 식당들을 지나간다. 그중에서도 세인트 킬다(St Kilda)의 피츠로이 스트리트(Fitzroy St)에 위치한 The Prince 호텔은 최고의 입지를 자랑한다.
최근 개조된 이 호텔은 아름다운 아르데코풍 디자인을 갖추고 있으며, 넓고 시설이 잘 갖춰진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트램역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도심이나 다른 목적지로의 이동이 매우 편리하다. 깔끔한 외관과 세련된 인테리어, 그리고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여행객뿐만 아니라 멜버른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스티븐의 회사도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를 이곳에서 열었다. 베란다에 서서 와인 한 잔을 들고 트램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거리는 유독 반짝거렸다. 트램이 천천히 움직이며 창문 너머로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한껏 들뜬 연말의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친구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창가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잔을 기울이며 한 모금 머금은 와인은 묵직한 향을 남겼고, 멀리서 들려오는 거리의 음악과 어우러져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세인트 킬다의 밤바람은 살짝 차가웠지만, 호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따뜻하고 근사했다.
Hotel Esplanade 호텔 안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있지만, 나는 특히 Mya Tiger를 좋아한다. The Espy의 웅장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마주하는 이 레스토랑은, 1850년대 빅토리아 골드 러시 시대에 세인트 킬다 전역에 생겨난 중국 요리점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높은 천장과 전통적인 동양풍 장식이 어우러진 공간은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자랑한다. 거대한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세인트 킬다 베이(St Kilda Bay)와 도시의 광활한 전경은 Mya Tiger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곳의 메뉴는 광둥식 요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요리를 나눠 먹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딤섬, 바삭한 오리구이, 풍미 깊은 국수 요리까지 모든 것이 정성스럽게 준비되어 나온다. 여기에 엄선된 맥주와 와인 리스트는 식사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가끔은 16번 트램을 운전하고 세인트 킬다를 지나칠 때면, Mya Tiger에서의 저녁 시간이 떠오른다. 창가에 앉아해 질 녘 바다를 바라보며 향이 깊은 차이나타운 스타일의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따뜻한 조명이 드리운 공간 속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그리고 테이블을 가득 채운 요리들. 이곳에서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시간을 즐기는 법을 배운다.
나는 그래서 16번 트램을 운행하면서 세인트 킬다를 지날 때면 자연스레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익숙한 거리 풍경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 안에서 나는 늘 새로운 순간을 발견한다. The Prince 호텔 앞을 지날 때면 크리스마스 파티의 기억이 떠오르고, The Espy 근처에서는 Mya Tiger에서의 따뜻했던 저녁이 생각난다.
트램이 흔들릴 때마다 유리창에 비치는 바깥 풍경이 조금씩 변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언제나 그대로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길목을 지날 때면, 저녁노을이 번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걷고 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마치 도시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때로는 바쁜 일상 속에서 그냥 지나쳐 버리는 곳들이지만, 16번 트램을 타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특별해진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 스쳐 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내 기억들. 그래서 나는 16번 트램을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위의 작은 여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