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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Dec 19. 2023

입영전야 17화

수료식 전야

입추는 진작에 지나고 내딛는 걸음마다 땀으로 얼룩지던 여름이 조금씩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지 않을 것 같던 국방부 시계는 그래도 돌아가고, 어느덧 훈련병 기간의 막바지인 5주째가 점점 다가왔다. 이제 며칠만 기다리면 내 새끼 얼굴을 볼 수 있다. 눈물박스에 들어있던 수료식 초대장은 냉장고 문에 단단히 잘 붙여놓고 보고 또 보고…. 머릿속에서는 수료식 날을 어떻게 준비할지 계획이 팽팽 돌아갔다.

계획형 인간이 전혀 아닌 나였지만 아들의 수료식 때는 모자람 없이 잘 준비하고 싶었다.

수료식을 하고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불과 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짧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들을 입대시킬 때부터 나에겐 마치 바이블과 같았던 입대 커뮤니티 카페.

그곳에서 한 가지 알아 둔 꿀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수료식을 마친 후 외출 시간에 식사도 여유롭게 하고 아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훈련소 근처 펜션을 예약해 두라는 것이었다. 근처 식당이나 카페 등을 가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니 시간 절약이나 편의성 면에서 전자의 선택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펜션 예약은 아들이 훈련소에 입소할 당시에 미리 해 두었다. 5주 후인 수료식 날짜는 정해져 있으니 그때 가서 마음에 드는 펜션을 찾으려면 예약이 끝나버릴 수 있기에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이왕이면 아들의 수료를 축하하는 배너와 케이크에 꽂을 귀여운 토퍼도 주문하기로 했다.

이런 준비를 하고 있자니 이것은 왠지 프러포즈 이벤트 아닌가 하는 현실타격감이 잠시 뒤통수를 스쳐갔지만 그래도 한여름 고된 훈련을 해낸 장한 아들을 생각하며 다시금 즐거워졌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엄마표 음식의 재료들을 준비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하며 아들을 만날 설렘으로 시간이 흘러 수료식 전날이 왔다.

아…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어쨌든오긴 오는구나. 온몸의 움직임은 풍선을 단 듯 가볍기 그지없었다.

과연 우리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햇볕에 그을린 얼굴의 군복 입은 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들을 입대시킨 여러 부모님들의 얘기를 접하다 보면 훈련기간에 적응이 어렵거나 건강이 안 좋아져 중간 퇴소를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런 소식을 볼 때마다 깊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심란했다.

내 아들, 남의 아들 할 것 없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소중한 시간과 노력이지 않은가? 당사자의 마음은 어떨 것이며 부모의 마음 또한 어떠할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온다.

그러니 무사무탈하게 훈련을 잘 마친 것은 마땅히 축하해 주고 격려할 일 일 것이리라. 이 또한 아들을 군대에 보내보기 전까지는 진하게 실감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수료식 날을 앞둔 주말.  아들과의 통화에서 포병으로 배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 마이 갓! 총을 다루는 것도 모자라 대포라니…. 너무 의외의 보직에 좀 당황스럽긴 했다.

포병이 힘든 보직 중의 하나이긴 했지만 군대에서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아들은 마치 해탈한 듯 받아들여야지 했다.


드디어 수료식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해 둔  펜션으로 향했다.

늦은 오후에 펜션에 도착하여 하나하나 짐을 풀어 정리하고 테라스로 나가 아들이 있는 훈련소 방향을 바라보았다. 펼쳐진 논밭사이로 여름의 미풍이 초록 물결을 일으키는 저 너머에서 묵직한 구령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 중에서 혹시 우리 아들도 있지 않을까? 어스름 저녁은 이제 곧 만날 그리움을 실어다 주었다.


-18화에 계속

훈련병 수료를 축하하는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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