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언니의 새해 다짐은 늘 비슷했다. 매년 1월이면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2월이면 포기했다. (사실 시작을 하지도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반복되는 실패가 쌓이다 보니 우리 사이도 미묘해졌다.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해야 되는데'라며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언니의 표정이, 때로는 날 불편하게 만들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우리는 절대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전에는 서로가 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웃으며 했던 '살 빼야 되는데.' '맞아, 맞아.' 맞장구치던 일도 사라졌다.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내 바지 사이즈가 줄어들 때마다, 등근육이 생길 때마다, 언니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갔다. 어쩌면 그건 질투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한 실망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헬스장 블로그 게시판에서 빼빼로데이 이벤트 포스터를 발견했다. '11월 한달간, 친구와 함께 등록 시 1+1'. 이건 자꾸만 다이어트를 미루는 언니를 위한 운명이었다.
"언니, 이번에는 진짜 해보자. 내년 말고 지금. 내가 도와줄게."
카톡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지냈다. 내가 운동을 시작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언니는 미묘한 경계심을 보였었다. 마치 내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된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운동이란 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라는 걸. 내게 있어 운동은 황금 열쇠 같은 존재였다. 그것은 나를 더 강하게,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열쇠는, 관계가 서먹해진 언니에게도 똑같이 주어져야 할 기회였다.
"진짜? 근데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너무 부담될 것 같아."
언니의 답장에는 망설임이 묻어났다. 그래, 이래서 운동을 시작하기가 어려운 거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나도 처음에는 레그프레스가 뭔지, 랫풀다운이 뭔지 구분도 하지 못했다. 무게 설정도 못 했고, 웨이트 존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했다.
"내가 천천히 다 알려줄게. 나한테 그 헬스장은 좀 머니까, 언니가 등록을 먼저 해. 그리고 날을 잡자."
나는 진심이었다. 운동이 내 삶을 얼마나 바꿔놓았는지, 나의 자아가 운동을 통해 큰 성장을 이루었음을 알기에.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특히 우리 관계가 어색해진 이후로, 이런 기회를 통해 다시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있었다.
"그래! 고마워.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해볼게."
답장을 확인하고 웃음이 났다. 마치 동생이 언니를 이끄는 것 같아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내가 먼저 경험한 이 세계를, 이제는 내가 언니에게 안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설렜다.
11월의 쌀쌀한 저녁, 헬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빼빼로처럼 가늘게 남아있던 우리 사이에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언니와 함께 헬스장을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곳은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한 곳이었으며 나 또한 지금의 언니처럼 겁쟁이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건넨 황금 열쇠가, 언젠가는 나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내가 쏟아부을 시간과 정성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는 걸.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이 여정이, 결국에는 내 마음에 작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저 기뻤다. 내가 사랑하는 이 세계를 언니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득 찼었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빼빼로데이 이벤트 포스터를 한 번 더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했다. 단지 희망으로 가득 찬 시작점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