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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조각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추석이 코앞이다.
처음으로 명절에 엄마의 고향에 간다.
엄마의 시댁 어르신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야 말이다.
식단 조절을 했다.
연이은 야근에도 시간을 쪼개어 운동을 했다.
이제는 반겨줄 사람 하나 없고
오래도록 우리를 기다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묘 위치도 여전히 모르지만,
제일 나은 모습으로 가고 싶었다.
사람도 건물도 사라지지만, 땅은 그대로 있으니까.
가장 나은 모습으로 발도장을 찍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소박하게 품은 바람이므로.
땅은 그대로니 다행인 일이다.
이럴 때는 마치, 시간이 우리 편인 듯한 기분이다.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는 중인데도.
누군가의 풍요로움은 때로
다른 이의 혹한으로 빚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뭐든 될 것 같고 괜찮아질 것 같은 희망을 품게 된다.
며칠 전에는 지하철을 타려는데,
유아차 한 대가 나오다가
바퀴가 틈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찰나였는데
내 옆에서 기다리던 여성분이
냅다 바퀴를 붙잡으셨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반대쪽 바퀴를 붙잡아 도왔다.
세상에는 그런 어른도 있는 것이다.
있는 힘을 끌어모아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고
타인의 생명과 밥그릇을
마치 그래도 되는 냥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 말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을 돕고
나를 헤아리듯 남을 헤아리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에서 벗어나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힘쓰는 사람.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다.
그릇된 어른과 참된 어른.
명절을 앞둔 데다
조금 힘들었던 며칠을 보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만큼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나’에 대해서.
앞서가는 어른들을 보면서
오답은 좀 알겠는데,
정답은 영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우리의 오늘.
아직 힘차게 널뛰는 우리의 심장.
그리고 사진 한 장 없이도 느끼는 엄마의 엄마와
시댁 제사만 지내느라 잃어버린 엄마의 아빠와
마지막으로
마침내 구박데기 손주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사실.
엄마의 고향에서
겨울이 지나
봄을 맞이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엄마의 고향에서 엄마와 함께 보내는 모든 순간도.
by 개복사
[조각의 둘레], [조각의 둘레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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