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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Aug 27.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함석헌

손끝에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집에서 쓰는 물건들은 항상 정해진 위치에 놓아두고, 난 매일 다니던 길로만 걷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했다가는 길을 잃거나 다치기 일쑤이다. 

내가 지나칠 때면 혀를 차는 사람들.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불편한 생활을 할 뿐이라고 마음을 다독이지만 그들이 보기에 

나는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도 항상 다니던 길로 걸음 수를 세며 천천히 걷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른쪽 다리가 아파져 온다. 

누군가, 어쩌면 동네 꼬맹이가 나에게 돌멩이를 던졌을지도 모른다. 

이어 뛰어가는 작은 발소리가 들린다.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가려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무 의미 없다. 


 “아고, 석헌아. 무르팍 까졌나? 피 난다.”


목소리를 들으니 이웃집 아주머니다. 

이번에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 와라.”


아주머니는 내 팔을 잡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신다. 

그들의 친절은 나에게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나는 항상 당황한다. 

내가 어디까지 왔었지? 집이 멀지 않았는데…….


 “여 앉아라.”


아주머니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바닥을 손바닥으로 치는 모양이다. 

나는 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아주머니가 다시 내 팔을 잡고 천천히 나를 바닥에 앉혀주신다. 


 “니 넘어진 거 아니제? 누가 이랬노?”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모르겠어요.”

 “저 집 머스마 아이야?”


아주머니가 약을 바르자 무릎이 따갑다. 

일회용 반창고를 무릎에 붙여주시는 모양이다. 

이깟 피 좀 흘러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나는 연달아 인사를 하고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집 밖으로 나온다. 

이 모습을 할아버지가 보지 않아 다행이다.      




서울 말씨를 쓰는 앞을 보지 못하는 봉사.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자신들과 다른 외지인.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이곳은 경남 의령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시골은 단순해서 나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도 어느 정도 길을 외우면 마실 정도는 다닐 수 있다.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복잡한 것도 없는 시골. 

그리고 할아버지가 있어 다행이다. 

나에게 피붙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당연하겠지만 난 부모의 얼굴을 모른다. 

이런 내가 짐짝처럼 여겨졌는지 난 부모의 손이 아닌 장애인 보육시설에서 자랐다. 

그곳에는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이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건강한 축에 속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남자니까.      

그 아이도 나처럼 앞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아이는…… 여자였다. 


 “석헌이야?”

 “응.”


맞는다고 대답해도 손을 들어 더듬더듬 내 얼굴을 만진다. 


 “진짜 석헌이네?”

 “나라고 했잖아.”

 “응”


내가 그 아이보다 나은 것은 생일을 안다는 것, 그리고 이름을 안다는 것. 

그 아이는 부모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어림잡아 나보다 한두 살 많지 않을까? 나보다 키도 크고, 또래에 비해 성숙했던 여자아이. 

겨울에 버려진 아이. 

이 아이에게도 불려야 할 이름은 필요했기 때문에 보육원에서 대충 이름을 지어주었다. 


 ‘김정희.’


나중에야 흔하디흔한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그 이름을 싫어했다. 


 “내 진짜 이름이 아니잖아. 내 엄마랑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엄마랑 아빠라는 사람들은 우리를 버렸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언젠가 다시 나를 찾으러 올 거야.”

 “아직도 그 얘기야?”


놀랍게도 그녀는 10년 넘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 정말 언젠가 시간이 흘러도 

그녀의 부모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녀를 데리고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랬다면 그녀도 행복할 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녀를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시설 곳곳을 찾아도 그녀는 없었다. 


 “정희 누나 못 봤어?”


그녀를 찾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다들 나처럼 앞을 보지 못하거나,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그녀를 봤어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손바닥 만 한 보육원 안에서 사람을 잃어버리기란 쉽지 않지만, 그녀는 종종 사라지곤 했다. 

나중에 만나서 어디에 있었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실장님이 불러서 갔는데?”

 “실장님?”

 “응. 실장님.”

 “왜?”

 “응?”

 “실장님이 정희 누나를 왜 불렀냐고.”

 “나야 모르지.”

 “……어디로 불렀어?”


느낌이 안 좋다. 뒤통수가 차갑다. 

누나는 친구와 시설 아이들의 빨래를 개키고 있었다. 


 “몰라. 그런 말은 안 했어.”

 “어디로 오라고도 안 했는데 정희 누나가 알아서 갔다고?”

 “……응.”

그녀가 팔을 뻗어 나를 잡았다. 

내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처음이 아니야. 요즘 자주 불러.”


실장님이 시설 아이를 부른다는데 이상할 것은 없다. 

심부름시키거나 요즘 별일 없는지 상담도 할 수 있다. 

황 실장이 아이들을 상대로 상담한 적은 없지만……. 


어쩐지 주먹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망설이며 말을 잇는다. 


 “밤에도 가끔…….”

 “지금 어디 있어?”


그녀가 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몰라. 어디 있는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작은 시설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다. 

손가락 끝으로 벽을 만지며 시설의 구조를 기억해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나직이 욕을 하며 벽을 따라 코너를 돌고, 다른 사람과 부딪히며 

건물을 뒤지고 다녔지만, 그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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