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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Sep 03.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질투

 그 후로 시설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녀가 수시로 황 실장을 만나러 간 것이 맞다면 그 시간이 벌써 반년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 벌써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난 누구에게도 

누나가 엄마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학교 외에 외출했다는 말 또한 듣지 못했다. 

누군가 누나를 만나기 위해 시설에 왔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그랬던 그녀가 오랜만에 외출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엄마를 만났을까? 

황 실장이라는 놈의 실체를 알면서도 나는 기대를 한다. 

그가 누나를 배신하지 않기를. 

다소 바보 같지만 10년 넘는 세월 동안 간직했던 염원이 이루어졌기를. 


 “원장이 서둘러서 데리고 나갔다던데?”

 “아……. 그래?”


심드렁해진 말투로 대꾸한다.


 “며칠 전부터 아팠어.”

 “뭐? 어디가?”

 “몰라. 지난 주말에는 계속 누워만 있었어. 아무것도 못 먹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얼굴을 돌린다. 


 “언제부터 그랬는데?”

 “조금 됐어. 그때…… 후원으로 포도가 들어왔잖아. 그때도 하나도 못 먹었어. 엄청 맛있었는데.”

 “포도?”

 “응. 기억 안 나?”

 “그게 언젠데?”

 “언제였지? 지난주보다 더 오래된 것 같은데.”


언제부터 아팠지? 왜 나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지? 

내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누나에게 무관심했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누나가 황 실장에게 불려가기 전에는 이 시설에서 가족 같다고 느낀 사람은 누나가 유일했는데. 


오랜만에 누나를 기다린다. 

누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시설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누나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누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한테 화가 났을까? 

내가 그동안 누나한테 소원해서 토라져 버렸을까?      




 “석헌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 누나다. 


 “응?”

 “학교…… 같이 가자.”

 “……그래.”


학교 가는 길이라고 해도 통학버스를 타고 가기 때문에 둘이 함께 걷거나 

무리와 떨어져 따로 갈 수도 없는데 누나가 이상한 제안은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지금?”

 “응. 지금 나가자.”

 “왜? 아직 밥도 안 먹었는데?”

 “지금. 같이 나가자.”


누나는 목소리는 초조했다.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누나 몸은 괜찮아? 이제 안 아파?”

 “응. 이제 괜찮아. 어제 병원 갔다왔잖아.”

 “누나 기다렸는데.”

 “……지금 학교 가자. 석헌아, 나가자.”


누나는 다급하게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미안한 마음이 있던 터라 누나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뒀다. 

급하게 책가방을 들고 누나를 따라나섰다. 


당연하게도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등교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와 있었다. 


 “석헌아.”

 “응?”

 “네가 맞는지…… 한 번 만져봐도 돼?” 

 “응.”


오늘따라 누나가 이상하다. 

아니다. 누나는 내가 맞다고 해도 원래 내 얼굴을 만져서 확인했던 사람이다. 

그래도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석헌아.”

 “왜?”

 “미안해.”

 “뭐가?”


누나가 내 팔을 더듬더니 손을 찾아내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쥐어준다.


 “이거 뭐야?”

 “USB."

 “이거 왜?”

 “필요할 때가 올 거야. 내 이름도 써 놨어. 빨리 주머니에 넣어.”

 “뭔데 그래?”


가슴이 뛰기 시작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쓴다. 

누나가 어쩐지 불안해했다. 

나는 주머니를 찾아 누나에게 받은 USB를 넣는다. 


 “미안해. 석헌아. 나…… 너를 질투했어. 네가 부러웠어.”

 “나를? 왜?”

 “너…….”


누나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떨렸다. 


 “누나 울어?”

 “너…… 할아버지를 찾았어.”

 “뭐?”


누나에게 들은 말은 상상을 초월하는 말이었다. 

너무 믿기 어려운 말이라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할아버지라고? 

나는 놀란 마음에 앞을 더듬어 누나의 팔을 잡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할아버지라니?”

 “시설에 몇 번 왔었어. 너를 데리고 가려고.”

 “그게 정말이야? 진짜냐고?”

 “응.”

 “그런데 왜 아무도 나한테 그런 말을 안 해줬어? 왜 나는 몰랐냐고?”

 “원장이랑 황 실장이 말 못하게 했으니까. 그래서 아무도 몰랐어.”

 “원장이? 왜?”

 “할아버지가 너를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원장이 안 된다고 했어.”

 “뭐? 왜?”

 “……네가 할아버지한테 가면 지원금이 안 나오니까.”

 “뭐?”


내 몸에서 피가 식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머리가 차가워진다. 지원금이라니? 돈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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