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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Aug 30.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질투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누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누나의 팔을 잡고 나직이 물었다.


 “실장님이랑 뭐 했어?”

 “……응?”


누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급하게 내 손에서 팔을 뺐다. 


 “하긴 뭘 해?”

 “요즘 실장님이 누나 자주 부른다며?”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쩐지 누나가 황 실장과 만나는 것이 싫다. 

누나는 잠시 말없이 가만히 서 있더니 손을 더듬어 나를 찾아낸다. 

그리고 내 귀에 가까이 다가서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석헌아. 나 어쩌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뭐?”

 “실장님이 알아봐 주신대.”


급하게 속삭이는 누나의 말. 


 “그런데 비밀이야.”


기가 막혔지만 한 편으론 믿고 싶은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정말일까? 실장님이 누나의 엄마를? 하지만 어디에서 정보를 알아냈을까? 

게다가 그 양아치 같은 실장 놈이 아무 조건 없이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고? 

애초에 살아있기는 한가? 반신반의했다. 

그러는 사이 누나는 다른 아이들 무리에 섞여 시설로 돌아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그게 정말일까? 


처음 느낀 솔직한 심정은 부러움이었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니. 

왜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었을까? 

바보 같아 보이던 그녀의 오랜 기도가 드디어 이루어진 것일까? 


그날, 이 생각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부러움을 넘어 질투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 그 머저리 같은 실장이 누나 엄마만 찾아준다는 걸까? 

이름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황 실장은 원장의 조카였다. 

공공연한 비밀. 모두 알지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비밀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의 얼굴도 모른다. 매일 마주했을 테지만 볼 수 없으니. 

그건 누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와 뭐가 달라서……. 


분한 마음에 잠자리에 누워도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뒤척이며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도록 내버려 둔다. 

누나가 없었다면 실장님이 내 엄마를 찾아주려 노력했을까?



그 후 누나와 둘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수시로 사라졌다. 

얼마간은 누나를 찾지 못할 때마다 질투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설에서 누나를 둘러싼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그녀를 둘러싼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누나에 대해 수군대는 소리. 

소문은 시설의 아이들이 아닌 다른 직원들과 보육 교사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각 대신 집중해서 더 발달하게 된 청각. 

문틈으로 들리는 뜻을 알 수 없는 야릇한 단어들. 어색한 공기의 흐름. 

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그날은 더위에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 한 줄기가 들어오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부족했다.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들도 지친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잠들 시간을 놓치자 어느새 정신이 맑아지며 오히려 잠이 달아났다. 

오늘은 잠자기 글렀다. 

누워있던 자리는 내 열과 땀으로 꿉꿉해져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눈을 떴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린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이 시간에. 발소리는 가볍다. 

기분이 좋아서 가볍게 날듯이 걷는 것이 아니라 체중이 덜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짝 끄는 소리. 

망설이고 있거나, 어둠을 무서워하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눈을 공허하게 뜬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 근처에서 발소리가 잠깐 멈춘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열어놓은 문을 더듬고 있는 것 이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발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죽이기 위해 사뿐사뿐 걷는 소리. 여자인 모양이다. 

여자……. 혹시 누나인가 싶어 슬며시 자리에서 움직인다. 

내 허벅지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자는 옆 사람의 다리를 깨지 않을 정도로 살짝 밀어놓고 

더듬더듬 앞을 짚으며 조금씩 움직인다. 

그러는 사이 발자국은 점점 멀어진다. 

나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복도에 내려섰다. 그리고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앞에 걷고 있는 여자는 슬리퍼를 신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신지 않았다. 

발바닥이 복도 바닥에 닿자 시원하다. 

어느덧 앞에서 걷던 발소리의 주인이 걸음을 멈췄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우리는 복도 가장 끝까지 걸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방은 당직실뿐이다. 

오늘 당직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황 실장. 

심장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성격이 급하고, 자비가 없는 황 실장. 

그가 당직일 때는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이들 모두 가능하면 일거리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을 때리지는 않지만 거칠게 대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매일 누가 당직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황 실장이 당직인 날은 알고 있다. 조심해야 했기 때문에. 

내 앞에서 망설이며 걸어가던 발소리의 주인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문을 연다. 

망설였다면 문 앞에서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에 문손잡이를 찾아내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닫힌다.     

      

나는 그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녀가 열었던 문이 닫히기 전 삐걱 이며 가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소리로 봐서 아마 침대일 것이다. 

알고 있다. 그녀가 누구인지. 

망설이며 복도를 걸어가던 사람.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당직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 

그가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돌려 내가 자는 방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틀렸다. 질투했던 내가 바보 같다. 

그는 그녀에게 자선을 베풀 만큼 착한 인간이 아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를 만나리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 그가 하는 약속이 거짓인지 모르는 그녀는 그 인간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언제 엄마를 만날 수 있어요? 라고 묻는 그녀에게 이제 곧, 거의 다 됐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라는 말로 얼마나 그녀를 꾀어냈을까? 

축축해진 내 자리를 찾아 다시 누웠을 때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공허하게 눈을 깜박거리고 있을 뿐이다. 

누나는 정말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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