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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발병 나다

몸이 아프니 여행에 대한 간절함이 커졌다

by 류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더니 아이들 냅두고 혼자 놀러 다녀서 인지 발병이 났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지 14년째. 직장에 매인 몸이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은 중독이라더니 한 번 맛들이기 시작하니 안 가고는 못 배기는 취미가 되어버렸다. 아마 주변에 여행을 같이 다닐만한(마음 맞고 시간 맞는) 여행 짝꿍이 있거나 남편이 여행을 좋아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다녔을 것이다.


여행에 대한 나의 마음을 가로막는 것은 시간, 돈, 가족에 대한 의무 외에도 체력이라는 것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갱년기가 지난 5학년(몇 반인지는 비밀), 적지 않은 나이로 체력은 점점 바닥을 향했다. 원래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고 소싯적부터 체력이 약해서 골골거리는 편이었다. 여행지에서 며칠만 지나면 힘들어서 이제 당분간 여행 안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체력 때문이었다. 심지어 요즘은 여행 떠나기 며칠 전부터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기 싫어지기도 한다. '편안한 집에서 쉬면 될 것을, 왜 힘들게 여행을 떠나는지, 내가 미쳤지.' 하면서도 갔다 와서 한 달쯤 지나면 또 항공권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하는 웃픈 현실. 정녕 여행 외에는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게 하는 오아시스가 없었단 말인가.


한 번 가기 쉽지 않으니 가서는 뽕을 뽑고 와야 된다는 생각에 양말에 구멍이 나도록 돌아다닌다고 언젠가 썼던 기억이 난다. 진짜 여행자는 한 곳에 최소 열흘 이상, 한 달도 머무는 사람이라는데, 휴직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그런 여행을 하기 쉽지 않다. 혹자는 교사니까 그 긴 방학 동안 여행 다니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1년 연가가 21일이다. 그렇다고 3주간 달아서 여행을 갈 수는 없다. 급한 용무가 있을 때 한 번씩 조퇴도 내야 되니까. 그리고 아직은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기에 마음껏 길게 여행을 가지는 못하고, 긴 여행이 성향에 맞지도 않다. 짧은 기분 전환식 여행이 나에게 더 맞는 것 같다.


이런 단기 여행에서도, 아니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려고 온 단기 여행자라서 더욱 체력이 달린다. 작년부터 하나 둘 몸이 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중증 퇴행성 관절염으로 시작하여 족저근막염, 디스크 협착, 하지정맥류까지, 하체가 부실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몸이 안 좋을 때는 만 보만 걸어도 힘이 든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여행 가면 삼만 보 걸은 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까지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자문하며 우울해질 때도 있다. 의사는 나의 무릎 관절이 쪼그리고 밭일 한 70살 할머니의 상태라는데, 아직도 일하고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인간 승리다. 그렇다고 해서 휴양지만 다닐 수는 없다. 바다를 좋아하니까 휴양지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좀 심심하다. 아마 기어 다니지 않는 한 계속 여행을 다니지 않을까? 많이 걷지 않아도 무릎이 아픈 날에는 마음이 급해진다. 지금도 무릎이 후들거리지만 더 심해지기 전에 멀리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남미, 아프리카, 미국, 캐나다, 호주, 인도,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 이제 해외여행 5개년 계획을 세워야 하나, 웃으며 혼자 중얼거린다.


70대지만 자유 여행을 많이 다니는 블로그 이웃님이 계신데, 하루에 한 두 곳만 간다고 하셨다. 그분과 같이 다니신 분의 말을 빌리면 체력이 좋으신지 잘 걸어 다닌다고 했다. 중간에 쉬면 오히려 힘들다고 연달아 움직인다고. 나는 중간에 쉬어 주지 않으면 발이 납덩이같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무릎과 발이 약하니 신발만 자꾸 사게 된다. 주로 인터넷 쇼핑을 하니 신어보고 안 편하면 또 사고, 운동화만 눈에 띈다. 그리고 운동 관련 용품들.


황금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부럽다. 연휴에는 항공권부터 너무 비싸서 잘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10일이나 쉬는데 아까운 생각에 이번에는 갑자기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다. 자차로 동해 7번 국도 여행. 얼마 전부터 나의 로망으로 떠올랐다. 운전 교대해 줄 사람도 없는데 아이랑 둘이 가능할까? 도로 정체도 걱정되지만 저질 체력이 더 무섭다. 그래도 힘들면 쉬어가고 못 가면 돌아오자는 생각으로 출발하려고 한다.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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