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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3개, 두더지 가족

한 두더지가 나가서 셋이 남았네

by 류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남자는 여자에게 결혼 상대로 인기가 없었지만, 언변이 뛰어나서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다. 여자는 친구가 많이 없었고 고향을 떠나 외로웠다. 연애 경험도 없어서 그냥 좋다고 하니 만났다. 남자는 더 늦기 전에 결혼을 꼭 하고 싶었고, 여자는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주변에서 반대를 하니 불같이 활활 타올라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충동적으로 결혼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남자와 여자는 서로 너무 달랐다. 여자는 도시를 떠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남자는 농사에는 무관심했으나 시골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퇴근하면 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가족과 함께 여행 가고 외식하기를 바랐지만, 남자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즐겼다. 싸우고 도망치고 일하면서 여자는 점점 지치고 지겨워졌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가 둘 태어났다. 좀 더 멀리 도망갔으면 좋았을 걸, 애초에 어른들 말을 들을 걸, 여자는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날개 달린 선녀 옷은 이미 잃어버린 후였다.


일하고 아이 키우고 울고 싸우고,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각자의 동굴에서 행복을 찾았다. 여자는 동굴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여행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남자는 그 언변으로 다른 여자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는 걸 여자는 늦게야 눈치를 챘다. 그런데도 헤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의 약속으로 동굴에는 위장된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다 남자는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과 자유를 찾아 다른 보금자리로 떠났다. 그렇다고 다른 여자와 함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두 지붕 한 가족이 된 후에는 오히려 전보다 대화가 많아지기도 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거리,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둘은 표면적으로는 가족이라는 형태를 유지했다.


남자는 잔소리가 없는 자신만의 왕국에서 행복한 것 같다. 여자는 약간의 경제적 도움 외에는 혼자 일하며 자녀를 책임져야 했기에 때로는 불행했지만, 어느새 또 다른 의미의 편함에 적응했고 익숙해졌다. 남자는 주말에 와서 잠깐 아이들 얼굴을 보고 갔고, 둘은 서양 스타일로 친구처럼 대화했다.

그럼 아이들은 어땠을까? 귀찮게 말 걸고 안 받아준다고 화내는 아빠가 없어 홀가분해진 것도 있지만, 아빠의 부재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예민한 시기인데 고민을 어디에 나누지도 못하고 각자 땅굴을 파며 고통을 속으로 삭였을 것이다.

평범한 가족이 되지 못하는 이상한 두더지 가족. 하지만 두더지 가족의 굴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자기만의 동굴에서 각자도생 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핏줄처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어느 날 우리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보통 가족이 되는 날을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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